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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이라부 선수, 은퇴 후 인생 고민했다
이라부 선수의 죽음, 파란만장했던 그의 42년 인생
 
이동구 기자
158km의 강속구, 메이저리그 양키즈에서 일본 선수 최초로 챔피언링 획득. 일본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이라부 히데키 씨가 42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에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야구계 관계자들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롯데, 한신과 메이저리그 양키즈에서 투수를 맡으며 활약, 미일 통산 106승을 올렸던 이라부 선수. 그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27일 오후 미국 LA근교의 자택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라부 선수는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고 한다. LA 보안관 사무소 당국자는 그의 죽음을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이라부 씨의 죽음에 대해, 양키즈 시절 통역이었던 조지 로즈 씨(45)는 28일, 요미우리 신문의 취재에 "(자유분방한 말투를 구사했던) 이라부 씨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정말 따뜻한 사람이다. 정말 충격적이고, 너무 슬프다."라고 그를 추모했다.
 
1998~99년에 통역을 했던 그는 이라부 선수의 은퇴 이후에도 연락을 하는 사이였다. 마지막에 만났던 것은 지난해 8월. 그 때 당시 이라부 선수의 모습을 상기하며, "건강한 듯 보였지만, 야구를 그만둔 후 인생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듯했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이라부 선수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그가 한때 몸담았던 뉴욕 양키즈 구단은 28일, 이같은 추모문을 발표했다.
 
"이라부 히데키의 죽음은 매우 슬픈 일이다. 우리 유니폼을 한번이라도 착용했던 선수는 모두 양키즈 패밀리다. 부인과 2명의 아이, 그리고 그의 모든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전한다."
 
전 롯데 감독으로 현 ESPN해설자인 보비 발렌타인 씨도 애틀란타 저널지의 인터뷰에서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
 
그는 "놀란 라이언(현 텍사스 라이언스 오너)가 이라부 선수를 봤을 때, 이렇게 굉장한 공을 던지는 투수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최고의 투수였다. 그러나, 메이저 리거로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했고, 마지막에는 스태인블래너 오너로부터 '살찐 개구리'라는 소리까지 듣는 등, 신뢰를 잃었다. 당시에는 노모 히데오 투수에 이은 일본인 메이저리거의 개척자, 선구자적 존재였기 때문에 그 중압도 컸을 것이다"라고 언급, 메이저리그 최고의 자질을 지녔던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라부 선수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굴곡있는 인생을 살았다.
 
효고현 출신인 그는 고향에 있는 진세이 가쿠인고등학교를 다녔고, 1988년 드리프트 1위로 롯데에 입단했다. 150km대 후반의 강속구를 무기로 붙박이 선발투수가 됐다.
 
1993년 5월, 당시 세이부 구단에 소속했던 기요하라 선수와의 대결에서 당시 일본 최고 구속인 158km를 기록해 그 이름이 일본 전역으로 알려졌다. 기요하라와의 힘겨루기는 '헤이세이(일본의 연호)의 명승부'로도 일컬어졌다. 1996년에는 2년 연속으로 최우수 방어율, 3년연속 2자리 수 승리를 달성해 명실공히 일본 야구계를 대표하는 투수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97년 5월, 꿈에도 그리던 양키즈 구단에 입단했다.
 
이 구단 오너인 조지 스태인블래너 씨는 당시, 이라부 선수의 투구를 보고 '일본의 놀란 라이언'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98년에는 13승을 올려 팀의 우승에 공헌했고, 일본인 선수로 첫 챔피언링을 획득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활동 당시 그의 언행과 행동은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호흡을 맞췄던 포사다 선수의 리드를 공공연히 비판, 온화했던 토리 감독을 격노시킨 적도 있었다.
 
28일자 석간 후지에 따르면, 어느 메이저 관계자는 당시 그가 보여준 기이한 행동에 대해 이 같이 증언했다고 한다.
 
"선발 투수가 등판전에 먹는 몇 알의 흥분제를 대량으로 섭취했는지 정신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듯했다. 전신에 문신을 그리고 나타나, 라커룸에서 동료들을 놀래킨 일도 있었다."
 
그는 6년간 플레이해 메이저 생활을 보냈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더욱 그의 기이한 행동은 세간의 비판을 받았다. 결국 그는 2003년에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일본에 복귀했다. 복귀팀은 한신 구단. 그러나 부진한 성적으로 1년 만에 전력외 선수가 됐고, 결국 현역에서 은퇴했다. 다시 현역에 복귀하려 고군분투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불과 8년여 세월이 지난 2011년 7월 27일, 그는 이 세상을 은퇴했다. 
 
※이라부 선수의 간략한 약력
 
1988년에 롯데에 입단, 1994년에 15승을 올려 최다승, 1995년, 96년에 최우수 방어율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1997년에 양키즈에 입단했다. 메이저리그 6년째 성적은 34승 35패 16세이브였다. 일본 통산성적은 72승 69패 11세이브, 방어율은 3.5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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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7/29 [10:11]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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