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창립 55주년을 맞는 조선대학교에서 '이곳에서 시작하는 우리 힘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기념 이벤트를 개최했기 때문. 조선대학교는 조선말로 민족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1956년 4월에 창립됐다. 현재 8학부 800명이 재적 중이다.
나는 20여 년 전, 조선대학교의 수업을 듣기 위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번 이곳을 찾아온 적이 있다. 당시에는 오사카에서 버스로 바로 왔기에 어디가 어디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노선버스를 따라 올라가는 그곳은 녹음(綠陰)으로 가득했고 그 길 끝 편에 조선대 교정이 있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기념행사장에는 각종 먹거리,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을 위한 상품판매, 저고리 입어보기, 현재 북한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 북한에서 만들어진 물품 전시 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빨간 고무신을 보고는 그것을 신고 뛰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담배를 보고는 그것을 피우는 사람을 떠올렸다. 분명히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일상풍경이었다. 아직 가본 적 없는 북한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행사였다.
또, 무대에서는 조선무용의 문화 공연, 동일본 대지진 복구를 위한 지원 콘서트 등이 열렸다. 후에 뉴스를 통해 이날 약 3,000명이 참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중에 후쿠시마 대학 김 교수님의 어머님과 합류해서 조선대의 명물 곱창을 먹었다. 변함없이 활기차고 정정하신 어머님은, 자리를 못 잡은 근처의 게이오 대학 일본인 학생들에게 다 같이 먹는 것이 맛있다며 웃음으로 합석을 권하셨다.
"이 곱창 양념은 된장이네. 제주도식인가"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난 20여 년 전 조선대에 방문했을 때 참가한 어느 연구발표 때 일을 생각했다. 그것은 '한반도 각지의 사투리'에 관한 것이었다. 평양이나 서울,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말이 완전히 달라서 연구발표는 각지의 방언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당시 필자는 한국어가 서툴렀던 터라, 제주도 사투리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재일(在日)'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고향 말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의 강의였다. 지금 생각하면 훌륭한 발표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고 있는 조선대는 이러한 것을 배울 수 있는 학교였다. 그런 만큼 이번 이상한 단체의 이상한 행동은 더욱 괴롭고 분할 뿐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무대에는 스모 챔피언 아사쇼류 아키노리가 특별 게스트로 등장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십시오. 저도 몽골에서 열심히 뛰겠습니다"라며 지진 재해지의 학생들을 위로했다.
끝날 무렵, 무대에서는 2010년 결성된 후쿠시마현 출신 밴드 '이나와 시로코즈'의 노래 'I love you & I need you 후쿠시마'를 조선대 학생들과 일본인 대학생들이 다 같이 불렀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재해를 당한 후쿠시마 대학에서는 김 교수님이 전력을 다해 부르고 있었고, 일본인 학생들도 참가했다. 코러스 부분에서는 시모무라, 그리고 사이토라는 이름의 여학생 두 명이 치마저고리를 입고 노래를 불렀다.
이 공간에는 도쿄와 후쿠시마, 일본과 북한이 이어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재일동포들은 가끔 분단된 한반도의 아픔을 현실의 이곳저곳에서 느낄 수 있다. 내가 조총련과 조선학교에 관해 글을 쓸 당시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물론 북한체제에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정치가 완벽한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무언인가를 알려고 할 때는 어디에 소속되었는지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개인'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은 사상과 정치를 뛰어넘어 이어진다고 믿는다. 사람이 만나서 사귄다는 것은 단지 그것만으로 아름답다.
내가 20년 만에 다시 만난 조선대학교과 그곳에서 배우는 재일동포들을 한국 여러분도 만나보시길 바란다.
▶ 2010년 후쿠시마현 출신 4명이 모여 결성한 밴드 '이나와 시로코즈' 'I love you & I need you 후쿠시마' (후쿠시마 대학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