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김대중 전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북한 조문단과 이명박 대통령과의 직접회담은, 일본 언론에서도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보수우익으로 분류되는 <요미우리 신문>과 <산케이 신문>은 24일(월) 조간판 1면 탑기사로 양자회담을 다뤘을 정도다. 평상시라면 1면 탑에 걸만한 내용일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전후 최대의 이벤트라 불리우는 중의원 총선거를 앞둔 시기이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은 총선거(30일)를 앞두고 마지막 주말의 선거전을 1면 탑으로 올리지 않고 이웃나라의 양자회담을 탑기사로 다루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 <요미우리>와 <산케이>는 24일 총선거가 아닌 북한조문단 뉴스를 1면으로 올렸다 ©jpnews | |
이전 기사
(日, '정권교체'에 초조해진 "산케이 신문")에서도 밝혔지만 <산케이> 24일자는, 민주당과 자민당의 마니페스토(정권공약)를 비교하면서 "클린턴 방북, 양자회담등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북한이 이런 분위기를 틈타 핵 및 미사일 개발에 나선다면, 민주당내 친북세력이 나설 우려가 있다"는 식의, '라면' 기사와 '색깔공세'를 동시에 선보인 바 있다.
▲ 24일자 산케이신문. "민주 - 좌파압력, 구체적 대책 제시못해"라는 제목이 달려있다 ©jpnews | |
또 보수의 본가를 자처하는 <요미우리>는 25일자 조간에서, 23일의 양자회담을 다시 한번 다루면서 '북한 매스컴이 이명박 대통령을 부를때 대통령을 빼버리고 이명박으로 일관했다'는 가쉽성 기사를 2면 중앙에 배치했다.
외국에서 일어난 이벤트를 이틀연속으로, 그것도 새로운 팩트가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하게 배치시킨 <요미우리>의 보도행태는 확실히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요미우리>는 제목도 "북 매스컴, '이명박' 보도 - 호칭 붙이는 것 관뒀나?" 라고 자극적으로 붙였다.
신문은 먼저 "북한 미디어는 회담개최를 전할 때 이씨에게 '대통령'이라는 경칭을 붙였지만, 24일부터는 '이명박'이라고만 보도, 경칭을 생략한 비판보도를 내보내는 등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요미우리>는 "청와대 고관은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2008년까지 10년동안 계속된 좌파정권으로부터의 전환을 상징하는 키워드로서 우리는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 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했다"고 하면서 북한이 남측의 '패러다임 시프트'에 따라오지 못한다는 인상을 줬다.
신문은 또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같은 민족이라고 하는 남북관계의 특수한 구도에 갇혀 있어선 안된다" 라고 지적하며 "남북이 보편성과 국제질서에 적합한 관계가 되어야만 남북관계는 한단계 진보할 것이라는 의미"라고 보충설명을 자세하게 실었다.
<요미우리>는, '이명박 반말보도' 기사옆에 배치된 금강산 개발관련 기사에서는 "외자로 핵개발 우려"라는 강렬한 임팩트를 주는 소제목을 달기도 했다.
이런 기사들은 그 자체로만 본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 국내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이 시기에 자극적인 제목 혹은 그 내용으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기사들이 나와, 2면 우측(일본신문은 왼쪽으로 넘기기 때문에 1면 톱기사를 제외하고는 2면 우측이 가장 가독성이 높다)과 중앙이라는 명당자리에 배치된 이유는 뭘까?
그리고 이 기사는 북한 매스컴이 왜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붙이지 않았는지에 대한 취재 프로세스 없이 무작정 '북한 매스컴이 경칭을 생략한 비판보도'를 냈다며, '청와대 관계자의 입장을 성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솔직히 이 기사들만 읽는다면 독자들은 북한이 나쁘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빌 클린턴이 방북하고, 북한 조문단과 이명박 대통령 간의 전격적인 양자회담이 성사되는 등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상황을 이들 기사에서는 도무지 확인할 수 없다.
원래부터 일본의 보수우익 매스컴의 대북보도가 그래 왔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좀 더 심각하다.
왜냐면 독자들이 느끼는 '북한은 나쁜 나라'라는 감정이 "대북위협에서 우리 일본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는가?"라는 자민당의 주장에 동조되어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1천만부를 찍어내는 <요미우리>의 파워를 우습게 봐선 안된다.
사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총리를 비롯해 수많은 평론가들이 "엄청난 무언가가 터진다면 몰라도, 이대로 가다간 자민당의 패배는 확실하다"고 말해 왔다. 총선거까지 불과 5일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말하는 '엄청난 무언가'는 물론 북한의 핵미사일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 미사일이 일본본토를 향해 날아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별것 아닌 가쉽성 기사까지 총동원해서 북한을 열심히 때린다. <요미우리>의 언론혼이라고 불렸던 고(故) 구로다 기요시(黒田清)가 살아서 이런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한탄했을까?
<산케이>의 '친북세력' 보도와 <요미우리>의 '이명박 경칭생략' 보도는 일본의 보수언론 수준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후 55년간 지속되어 온 자민당 일당체제에 막을 내릴 이번 중의원 총선거는, 그래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들 보수언론들의 한반도에 대한 짝사랑도 8월 31일부터는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
▲ <요미우리> 8월 25일자 조간 2면. 왼쪽이"이명박 반말보도", 오른쪽이 "외자로 핵개발 할지도"라는 자극적 제목의 기사가 춤춘다. 총선거 시기에 이런 기사가 2면에 실린다는 것은 전례가 없다. ©jpnew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