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여름, 우리 가족은 후쿠오카에 갔었다. 당시 나는 연구 등으로 조금 지친 상황이었고 그래서 휴식이 필요했다. 마침 남편도 히로시마에 갈 일이 생겼다. 일본의 시각과 청각을 모두 상실한 시청각장애인들이 1 년 마다 한 번씩 모이는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남편은 한국에서 참가하는 시청각장애인의 통역을 위해 3 박 4 일간의 히로시마로 간 후 후쿠오카로 오기로 했고 나는 먼저 딸아이와 후쿠오카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후쿠오카는 내가 처음 일본에 유학을 했던 곳이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를 딸처럼 예뻐해주시는 분도 있는 곳이라 지친 마음과 몸을 쉬기에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후쿠오카를 가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했다.
내가 이용하고자 한 항공사는 ‘스카이마크’였다. 후쿠오카와 도쿄등 주로 국내선 장거리를 오가는 항공사로 신칸센 보다 저렴한 요금으로 이용이 가능한 저가 항공사였기 때문이다.
“8 월 oo일에 후쿠오카 비행기를 타고 싶은데요.”
“네. 손님. 탑승하실 분은 몇 분이신가요?”
“저와 1 살된 딸 아이. 이렇게 둘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예약되었습니다. 예약 번호는 몇 번입니다. 특별히 부탁할 사항이 있습니까?”
“네. 제가 시각장애인이라 탑승시와 도착시 안내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손님. 전혀 보이지 않나요?”
“네. 그런데요.”
“손님, 장애로 인해 아이를 케어할 수 없으면 탑승이 불가능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전에도 이 항공사 여러 번 이용했는데요.”
“전의 상황은 알 수 없고 저희로선 안된다는 말 밖에는 드릴 수 없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말씀드렸지만 비상시 아이를 케어할 수 없으면 탑승이 불가능합니다.”
“아니 내 아이를 내가 케어 하지 못한다면 누가 하나요?”
‘손님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알았어요.”
“손님 예약은 어떻게 할까요?”
“마음대로 하세요.”
예약 담당 직원과 실갱이를 했지만 도무지 않된다는 주장만을 들어야 했다. 하도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한 참 후에 다시 항공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좀전의 직원보다 조금 상사인듯한 사람인듯 했다.
“손님. 죄송합니다. 손님처럼 시각장애인 혼자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탔던 전례가 없어서 저희들이 잘 몰랐습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손님 혼자서 아이를 케어하시는 거죠?
“물론이죠. 엄마가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면 누가 돌보나요.”
“그럼 탑승이 가능합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직원의 사과로 일단 티켓을 예약하는 일은 마무리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일본의 시각장애 엄마들은 혼자서 아이 데리고 여행 안다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또 한번 전례를 깨뜨렸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언제까지 나는 ‘전례 깨기’를 계속해야 할런지….
장애인이 활동을 하려면 여러가지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전례가 있고 없고에 따라 그 대응 방법이 무척 다르다. 전례가 있으면 대개의 경우 그 전례대로 일이 처리된다. 아마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성향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의 경우 나의 후쿠오카 항공기의 경우처럼 전례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많은 부분에서 부딪힌다. 대개의 경우에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되는 것을 넘어서기 어렵다. 적어도 일본에선 말이다. 내가 일본에서 유학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만 13 년동안 줄곧 이런 ‘전례깨기’를 해야만 했다. 뭐 특별한 사명감 같은 것이 아니고 일단 내가 전례를 깨지 못하면 당장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전례깨기가 이후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겐 참 유용한 전례가 될 수 있다. 나 말고도 더 많은 장애인이 사회속에서 전례를 깨야 한다. 장애인이라고 외국인이라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안된다고 했던 모든 전례가 깨진다면 그것이 베리어 프리가 아닐까? 그러나 이젠 전례깨기가 아닌 제도적 장비가 만들어져야 한다. 개인 개인마다의 몸짓으로의 전례깨기가 아닌 시스템적인 몸짓이 필요할 때이다.
ⓒ 일본이 보인다! 일본전문뉴스 JPNews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