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베토벤'으로 불리는 일본의 클래식 작곡가 사무라고치 마모루(50)가 지난 13일, 도쿄 긴자에 있는 야마하 홀에서 신작 '피아노 소나타 제2번'을 발표했다.
그는 이날,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의 넋을 달래기 위해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3·11 대지진을 오래도록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
그는 이번 신작에 대해 "대지진 고아와의 교류를 통해 만든 레퀴엠(진혼곡)을 더욱 많은 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으로 만들고자 스케일을 확대해 재창조했다"고 소개했다.
그의 신작 발표회에는 NHK, TV아사히 등 일본의 각 주요 방송사를 비롯한 일본의 유력 언론매체가 참가했다. 일본언론이 그에게 이토록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가 청각장애를 지닌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항상 수화통역사가 따라붙는다.
사무라고치는 30대에 음악가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청력을 잃었다.
그는 절망에 빠진 나날을 보내면서도 절대음감에 의지해 작곡활동을 지속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국 TV에서 그의 사연이 소개된 것을 계기로 그의 작품은 빛을 보게 되었다. 그의 '교향곡 제1번 히로시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만 장 단위로 팔리기도 쉽지않은 클래식 음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무려 17만 장 이상 팔렸다. 특히 대지진 피해지역 주민들은 그의 작품을 '기적의 심포니'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의지가 없는 인간이라서 대지진 뒤 앞에 나설 용기가 없었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교향곡이 피해지에 희망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후 현지에 여러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대지진이 발생한 지도 2년이 지난 2013년의 어느날, 그는 피해지인 미야기 현 오나가와초에서 야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야영한 다음날 아침, 그는 "지진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곡을) 쓰라'고 허락해주신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희생자의 분노, 괴로움, 슬픔을 선율에 담았고, 이를 통해 그 때의 기억을 차세대에 이어가려 한다고 그는 밝혔다.
그의 염원을 담은 신곡은 이날, 추첨을 통해 선정된 200명의 관객과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10분 분량으로 일부 공개됐다. 연주는 지난 2011년 차이콥스키 기념 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2위를 차지한 세계적인 한국인 피아니스트 손열음 양이 맡아 눈길을 끌었다.
사무라고치는 "이 곡은 인간의 감정이 모두 담겨있다. 초절정의 기교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손열음 양이기 때문에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으며, 그녀가 연주함으로써 이 곡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연주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아 신작 '피아노 소나타 제2번'을 손열음 양에게 헌정했다.
▲ 현대판 베토벤 사무라고치 마모루, 손열음 양에게 '피아노 소나타 제2번'을 헌정하다. ©오오스기 준페이(大杉隼平) | |
오는 9월부터 사무라고우치와 손열음 양은 일본 전역을 돌며 공연할 예정이다. 사무라고치의 신곡은 9월 16일, 요코하마 미나토 미라이 홀에서 세계 최초로 세간에 공개된다.
그의 신곡을 담은 앨범 '사무라고치 마모루: 진혼의 소나타'는 오는 10월 23일 발매될 예정이다. 이 앨범에는 지난 작품인 '피아노 소나타 제1번', 2011년에 처음 공개된 'JURI'와 함께 수록된다.
사무라고치는 이날 발표회에서 "해외에서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을 들으며 자란다. 일본에서는 이름을 말하지는 않겠지만 일부 아이돌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 저 같은 사람을 계기로 해서 클래식이 더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 사무라고치 마모루는 누구? 히로시마 출생으로, 원폭 피해자를 부모로 둔 그는 5살때부터 피아노 영재교육을 받아 11살에 베토벤과 바흐의 곡을 칠 수 있게 됐다. 이후 어머니로부터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한다.
이후 작곡가를 희망하여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악식론, 화성법, 대위법, 악기법, 관현악법 등을 독학했다. 그런데 18세 때 원인불명의 편두통과 청각장애가 발생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청각장애인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뒤에는 현대음악의 작곡법을 싫어해 음악대학으로 진학하지 않고 독학으로 작곡을 배운다.
청력의 저하를 숨기면서 빈궁한 생활을 지속하던 중 영화 '가을 벚꽃(秋桜)', 게임 '바이오 하자드' 등의 음악을 만든다. 1999년 게임 '귀무자'의 음악 '교향조곡 라이징 선'으로 그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이 작품에 착수하기 직전, 완전히 청력을 잃어 청각장애자가 된다.
이후 각종 신경증과 더불어 항상 보일러실에 갇혀 있는 듯한 굉음이 멈추지 않는 두명증(頭鳴症), 이명발작, 중증 건초염 등에 괴로워하면서도 절대음감에 의지해 작곡활동을 지속한다.
2000년, 지금까지 써낸 12번까지의 교향곡을 모두 파기하고 새롭게 교향곡의 작곡을 개시했다.
이 해부터는 장애아를 위한 시설에 방문해 보란티어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시설의 여자아이 중 한 명이 절망에 빠져있는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었고, 사무라고치는 교향곡 제1번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2003년 가을, '교향곡 제1번 히로시마'가 완성됐고, 그는 영감을 줬던 그 여아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
◆ 손열음은 누구? 올해로 27세인 그녀는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여류 피아니스트다.
1997년 12살 때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쿨에서 최연소 2위를 차지했고, 오벌린 국제콩쿨(1999)과 독일 에틀링겐 국제 피아노 콩쿨(2001),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 콩쿨(2002)에서 모두 최연소 1위를 차지했다. 그 실력을 인정 받아 2004년 10월, 유니버설 뮤직을 통해 그녀의 쇼팽 연습곡 전집이 한국에서 CD로 발매됐다.
그녀는 2009년 열린 제13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도 2위를 차지했고, 그 특전으로 음반사 '아르모니아 문디'를 통해 연주 CD가 발매됐다. 또한, 2011년 6월 열린 제 14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쿨에서 한국인 최고순위인 2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는 베스트 퍼포먼스상도 수상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와의 공연이 많아,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 필하모닉,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과 공연을 펼친 바 있다. 또한 뉴욕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취임식에도 초청받아 연주하는 등 젊은 나이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