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령공주', '이웃집 토토토',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등으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평화헌법 개정 반대를 외쳤다. 또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미야자키 감독이 이끄는 애니메이션 업체 스튜디오 지브리는 매달 소책자 '열풍(熱風)'을 발간한다. 7월호는 '헌법개정' 특집이었다. 18일부터 홈페이지에 무료 공개된 7월호 '열풍'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담화 형식 글도 게재됐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글을 통해 개헌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는 "헌법 개정은 당치도 않다"며 "정부나 정당을 이끄는 인물들의 역사인식 결여를 보고 있자면 기가 막힌다. 생각이 모자란 사람은 헌법은 건들지 않는 게 좋다"고 개헌찬성론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한 미야자키 감독은 자위대 존속을 주장하고, 일본내 국방군 창설 논의에도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는 "자위대는 이상한 집단이지만 차라리 이상한 편이 낫다. 국방군은 없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위대가 이라크에 파병됐으나 한 발도 쏘지 않고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돌아왔다. 나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며, 평화헌법을 존속시켜 일본이 평화주의를 유지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을 비추어 일본인들에 올바른 역사인식을 촉구했다.
그가 어렸을 적, 어른들이 중국대륙에서의 만행을 자랑삼아 이야기할 때 일본에 대한 혐오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며 "일본은 (전쟁당시) 실제로 나빴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위안부 문제도 각 민족의 긍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제대로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영토문제에 관해서는 "반으로 나누거나 혹은 "양측이 관리하자"고 제안했다.
◆ "우익 아니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바람 불다'가 20일 개봉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영화에서 1982년 사망한 항공기술자 호리코시 지로를 모델로 한 주인공의 반생을 그렸다. 호리코시 지로는, 태평양 전쟁 당시 전장을 누빈 일본의 영식함상전투기, 일명 '제로센'의 개발자다.
태평양 전쟁 당시의 유명 일본 전투기 '제로센'을 만든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에 한국 애니메이션 팬들은 거부감을 드러냈다. '일본의 전투기'라는 단어에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군국주의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반전주의자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간 숨겨왔던 우익사관을 펼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마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이 19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지브리 소책자를 통해 자신의 전쟁에 대한 견해, 역사인식, 헌법 개헌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했다.
19일자 도쿄신문에 따르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는 참의원 선거 전에 지브리의 입장을 선명히 하려 한다고 밝혔다.
지브리의 반전주의적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참의원 선거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평화헌법개정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스즈키 프로듀서는 이번호 '열풍'에서 "헌법9조, 세계에 알리자"는 담화를 게재했다. 헌법 9조는 교전권을 금하고 전력보유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일본 평화헌법의 핵심이다. 이를 바꾸기보다 자랑스러운 평화헌법을 세계에 알리자는 취지다.
이번 지브리의 신작 '바람 불다' 또한, 전투기 개발자의 이야기이나 정작 제로센은 거의 나오지 않고 전쟁 장면은 전혀 없다고 한다. 단지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지닌 소년이 군수산업체의 엘리트 엔지니어가 되어 전투기를 만들어내기까지의 스토리에 치중하고 있다.
이전에 필자가 쓴 '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호불호 갈리는 이유'에서도 적은 적이 있지만, 미야자키 감독이 왜 굳이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스즈키 프로듀서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설명해주고 있다.
"미야자키 씨는 전쟁 세대로, 어린 시절에는 전투기 그림만 그렸다. 그대로 전투기가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사상적으로는 전쟁이 극히 싫어 반전 시위에도 참가하고 있다. 그런 모순 속에서 산 사람이다. 그러니까 '왜 자신과 같은 인간이 생겨난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영화로 밝혀야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하나, 미야자키 씨의 전쟁이나 전투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취미에 그치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 여러번 설득했다. 이제 나이도 나이이니만큼 정말 잘하는 것을 해야한다고 말이다"미야자키 감독은 유명한 군사 매니아다. 전투기나 비행기에 대한 애정도 대단하다. 그의 작품에서 비행기가 자주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을 싫어해 행여나 전쟁 미화로 비춰지지 않을까 고민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카미카제(자살 특공대)를 미화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 곤혹스러워 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대부분 현실세계에서 벗어난 판타지 세계를 맴돈다. 그런 그를 30년 이상 봐온 스즈키 프로듀서가 그래서 제안을 한 것이다.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만큼("나이도 나이이니 만큼"), 자신의 사상, 역사인식 때문에 지금껏 스스로 차온 '족쇄'를 풀고 가장 하고 싶고, 가장 잘하는 것을 해봐야 할 때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미야자키 감독을 가장 잘 아는 그이기에 가능한 제안이었다. 그 제안은 사상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투기를 다루되, 철저히 전쟁 미화요소를 배제했다.
그리고 전쟁을 겪은 세대, 인생의 선배로서 현 세대에 전하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 넣었다. 미야자키는 "이 영화가 나에게는 유언과도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개봉 전날, 공교롭게도 이들의 역사인식을 담은 글이 게재됐다. 마치 이번 영화로 촉발된, 자신들의 사상에 대한 의혹을 풀려고 하는 듯이 말이다.
사실, 굳이 그런 글이 아니어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역사인식이나 사상은 지금까지의 언행과 그의 작품으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인 좌익·진보주의 인사로, 일관되게 전쟁의 비참함이나 어리석음을 주장해왔다.
미국이 일으킨 걸프 전쟁에도 반대했는데, 그의 작품 '붉은 돼지'에는 걸프전쟁에 대한 반감이 녹아 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또한 그의 반전 사상이 잘 녹아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그의 작품 상당수가 환경 보호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 '벼랑 위의 포뇨'가 대표적이다.
좌익인사라고 해서 공산주의를 옹호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1989년 천안문 사건에 대한 충격 등 때문인지 공산주의에 비판적이다. 파시즘 등 전체주의에 관해서도 좌우 이념을 막론하고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그는 민족주의를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라 일본 우익들이 외치는 애국사관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는 인생에서, 작품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 역사관을 명확히 보여줬다. 이처럼 주관이 뚜렷하고 일관되기도 쉽지 않다. 아무튼, 이번 담화형식의 글을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상을 둘러싼 논쟁은 종지부를 찍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