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때쯤이면 일본은 '황금연휴'로 시내는 한산하고 외곽도로는 이동인구로 북적인다. 일명 '골덴위크'로 통하는 이 황금연휴는, 추석이나 설날처럼 오래전부터 정착된 기간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1년전에 계획을 세워 나들이를 하기도 한다.
바로 이 황금연휴에 관동지역, 특히 도쿄와 인근지역에 사는 사이타마 현 주민 등은 예기치 못한 지진에 혼비백산했다. 그동안 작은 지진은 간간이 있었으나 이번 지진은 그 수위를 넘었다.
5일 새벽 5시경에 일어난 지진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사히, 마이니치 신문 등 일본의 복수 언론은 5일 발생했던 지진여파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이례적으로 상세히 보도했다.
우선 시민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또 대지진이 온 것인가?"하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2011년 3월 11의 동북대지진 같은 큰 지진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극도의 공포를 5일 지진 때 느꼈다고 한다.
"잠기가 어두워 왠만한 소리에는 깨지 않던 우리 아이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내방으로 왔습니다. 저도 너무 놀라 움직이지 못했어요. 그냥 마음속으로 이러다 죽는구나 하고 공포에 떨었을뿐이죠."
▲ 일본인들 사이에 '대지진 공포'가 또다시 확산되고 있다. ©JPNews | |
대학생 딸이 자신의 방으로 비명을 지르며 뛰어들어왔는데도 가네시로 노부코(51세) 씨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아무런 미동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사는 집이 10층이었기 때문에 한참동안 아파트 건물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는 것. 그렇게 심하게 흔들린 적이 최근에는 없었다고 한다.
"지진이 일어나도 늘 아파트가 잠깐 흔들리고 마는 정도여서 이번에도 그렇겠거니 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옆으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세로로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순간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대로 얼어붙었죠."
일본인들은 옆으로 흔들리는 지진에는 그다지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다. 그 정도의 지진에는 아주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아래 위, 세로로 흔들리는 지진에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왜냐하면 세로로 오는 지진은 건물 자체가 폭삭 주저앉을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부분의 건물은 왠만한 지진에는 끄떡없을 만큼 특수공법으로 건축 설계가 되어 있다. 때문에 3,4도의 지진이 발생, 건물이 흔들려도 무너지거나 주저앉을 염려는 없다. 하지만 지진이 나 세로로 흔들릴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대형사고의 전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지진이 세로로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또다시 대지진이 왔구나!"하는 생각을 공통적으로 가졌다는 것이다.
고서점을 운영하는 야나기가와 사장(50세)도 마찬가지였다.
진도 5가 관측된, 도쿄도 츠요다구 간다 진보초에서 건축공학 전문 '무라야마 서점'을 운영하는 야나기가와 사장도, 가네시로 씨처럼 "또 대지진이 온 것인가"하는 공포심을 느꼈다고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2011년 동북대지진 때, 1만여권의 책 중 30%가 땅에 떨어져 이번에도 걱정돼 30분 빨리 출근했다는 그는, 다행히 책이 5권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만약의 경우를 상정,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손님을 어떻게 피난시켜야 하는지를 사원에게 교육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약 10여년 전부터 관동지역을 중심으로 일본 언론과 주민들 사이에서는, 대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지진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나돌아 왔다. 실제로 일부 언론에서는 '만약의 경우'를 상정, '관동대지진 시뮬레이션'을 구성해 보도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5일 발생한 지진에 대한 반응이 여느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다음에는 진짜 대지진이 올 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주민들 반응보다 더 깜짝 놀란 일본언론의 보도 내용을 봐도 그렇다. 그런만큼 관동지역 주민들의 극심한 불안과 그 공포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3년 전의 동북대지진 공포가 이제는 관동지역 주민들에게 이어지는 분위기다.
복수의 일본언론에 의하면, 비상식품이나 비상용품 등을 체크하고 부족한 물품을 채워넣는 가정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대지진 발생시 피난길을 안내하는 지도, 적어도 일주일 버틸 수 있는 건빵류의 비상식량, 후레쉬 등 '지진비상용품'을 세팅하는 회사에도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정부 또한 앞으로의 여진에 대한 세심한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민관 모두 보이지 않지만 의식적으로 '비상사태'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만큼 대지진에 대한 공포가 바로 눈 앞에 와 있다는 체감온도의 발로다.
이처럼 5일 지진은 관동지방 주민들을 또다시 대지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