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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만의 판결, 35초간의 눈물!
[현장] 10년 가까이 싸워온 日 전후보상 판결 방청하고 나니
 
김현근 기자
2009년 10월 29일 정오, 일본의 주요 관청가가 몰려있는 가스미가세키 도쿄고등법원앞.  미소노 씨는 '일본의 양심을 피해자들의 두손에'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오늘 재한군속군인 항소심 판결이 101호 법정에서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베리아 억류자 문제해결 및 야스쿠니 합사 취소 해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꼭 방청해주세요."
 
그 앞에서는 재판을 지원하는 일본시민 7-8명이 재판 내용을 알리는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전단지는 점심시간을  맞이해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관청가 사람들 손에 쥐어지고 있었다. 
 

▲ 도쿄 고등 법원 앞에서     ©이승열/jpnews

재한군인군속재판이란 일본정부를 상대로 태평양전쟁때 희생당한 군인,군속 유족 및 시베리아 억류자들이 ■생사확인 ■유골반환 ■미불금 지급 ■야스쿠니 합사 취소 ■b,c급 전범에 의한 피해보상 ■시베리아 억류에 관한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며 2001년 6월에 제소했으나 2006년에 1심에서 패소, 다시 항고한 것이다. 
 
이번 재판은 단순히 태평양전쟁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상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전쟁 후 찾을 수 없는 유골 문제나 야스쿠니에 합사되어 있는 부모님 위패를 빼달라는 등 1965년 한일협정 청구권 협상 때 제대로 논의가 안된 문제를 모아서 총결산하자는 것이다. 즉 보상만이 아니라 일본이 외면해온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된 입장을 밝히고 행동에 나서라는 것이다.  
 
12시 30분경, 재판을 앞두고 이번 재판의 원고로 나선 태평양전쟁유족회 홍영숙 회장, 시베리아 억류자 모임 '한국시베리아삭풍회' 이병주 회장과 이재섭 부회장 및 태평양전쟁피해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공동대표가 법원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희자 대표는 "일본이 54년만에 정권이 교체되었으니까, 지난 2006년의 최악의 판결보다는 좋은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최악의 판결이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2001년에 재판을 시작해서 2006년에 1심 재판을 하기까지 우리가 엄청난 자료를 준비해서 제시했다. 거기에 대한 아무 설명도 없이 무조건 그냥 기각해버렸다. 보상문제는 청구권 협정으로 끝났다고 치자. 유골문제는 아직 끝난 게 아니지 않은가. 이외에 여러가지 다른 문제 제기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없다.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기각한다는 말 한마디하고 재판관(판사)이 들어가버렸다."며 기각 이전에 제대로 된 이유도 못들었다는 것이다.

▲ 법원 앞 판결을 앞두고     ©이승열/jpnews
 
그러나 이런 기대도 잠시였다.
 
■ 도망치듯 판결을 끝내고 사라져버린 재판관

"본건 모두 기각한다. 항소비용은 원고측의 부담으로 한다."
 
오후 1시 30분, 도쿄 고등법원 제 2민사부 오하시 히로아키(大橋寛明)재판장은 재판이 시작되자 이 두마디만 하고, 도망치듯 법정을 빠져나갔다.  법정 내 사진촬영하는데 2분이라는 시간을 허가했음에도, 판결을 내리는 데는 채 15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노구를 이끌고 바다 건너 일본으로 건너온 원고측에 눈길도 주지도 않았다. 

판결전,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는 점, 비슷한 사례 중 니시마쓰 건설의 전시중 중국인 강제연행자 보상 문제 (10월 23일)가 재판을 통해 화해 및 피해보상의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1심과 달리 어느 정도 기대를 갖게 했다. 방청인들은 기각은 되더라도 항소심인 만큼, 적어도 어떤 설명이라도 들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재판장은 굳은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서서 통보하듯이 두마디만 내뱉고 판결문을 읽지도 않은 채 1심 판결과 같은 내용으로 기각했다. 대부분 일본인 지원자로 채워진 방청객들은 분노했다.  
 
"무슨 소리하는 거냐"
"이유는? 이유는?"
"장난치는 거냐"
"실격이다, 저 따위!!"

"재판장!!!!!"
 
100명에 가까운 방청객들은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재판관은 문을 닫고 사라진 뒤였다. 공허한 메아리가 법정에 허무하게 떠돌았다. 이렇게 하여 8년에 걸친 '재한군인군속재판'의 2심 판결은 어이없이 끝나고 말았다. 자세한 판결 내용은 종이로 대체되었고 1시간이 지나서야 받아볼 수 있었다.
 

방청에 참여한 오오가마 씨(남)는 "할말이 없는 판결이다. 고등법원이라면. 이런 문제에 대해 기각을 할 때 이런 이유로 기각을 한다던가 하는 것을 좀더 확실하게 해야되지 않나"라며 "결론만 그렇게 한마디 던져놓고 가버리는 건 정말 예의가 없는 것"이라 말했다. 또 다른 방청객인 나카자와 씨(여)는 "이렇게 부끄러운 나라가 없다. 바다 건너 일본에 몇년이나 건너 온 원고분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인권의 '인'자도 모르며 인간을 마주보지 않고 등을 돌리는 재판관이라며, 그동안 계속 일본이 부끄럽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새삼스럽게 실감했다"라며 분노를 금치못했다.
 
판결이 끝나고 재판소를 나선 이희자 대표는 할말을 잃은 듯 얼어붙었다. 이 대표는 "기각을 하더라도 적어도 설명은 해야되는 게 아니냐""근거 자료가 없는 것도 아닌데 있는 것은 이것이 어떤 것이 잘못돼서 기각한다는 등 재판관이 자기 입으로 설명을 해야지 왜 도망가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 법원 앞 판결이 끝나고  법원 앞 기자회견    ©이승열/jpnews

판결 내용, 모든 것은 한일청구권협상으로 넘겨라?

2심 판결 내용은 1심과 똑같았다. 원고 측의 9가지 요구사항에 대해 도쿄고등법원은 "어떠한 청구내용도 법적근거가 결여되어 있으며, 만일 법적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재산 및 청구에 관한 문제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일본국과 대한민국간의 협정'(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모든 청구의 근거가 소멸되었다"는 일본정부측 손을 들어주었다.
 
판결문에는 심지어 "모든 청구는 한일청구권협정이 적용되므로, 각 주장에  관한 실체권의 존재 여부에 대해 검토할 필요도 없으며, 그럴 이유도 없다고 해야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즉 1965년 한일청구권 협상으로 모든 청구는 일체 불가능하며, 유골문제는 일본정부가 유골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기각한다. 야스쿠니 합사 문제는 정부가 행정서비스를 해준 것에 불과하므로 정부가 주도해서 합사를 한 것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번 재판을 주도적으로 지원해온 미소노 '재한군인군속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장'은 기자회견에 앞서 "단 15초로 모든 것을 끝내버린 장난치는 듯한 판결에 정말 열 받는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일본 사법부가 헌법위반조차 재판할 수 없다는 저열한 모습을 보여줬다""사법부가 일본 정부가 저지른 인권 침해에 대해 아무런 법적 구제가 안된다는 것, 야스쿠니 합사, 전후 시베리아 억류, 식민지 지배때 일본으로 사람들을 동원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아무런 판단을 할 수 없다는 데 분노한다"고 말했다.   

▲ 법원 판결이 끝나고 오구치 담당 변호사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승열/jpnews

 ■ 일본 중의원 회관, 35초의 눈물
 
오후 3시 30분 일본 중의원 제2회관 제2회의실에서 기자회견 및 간단한 보고집회가 열렸다. 이곳에서  집회가 열린 이유는 일본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의원 의원들에게 직접 호소를 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이시게, 고바야시, 다니, 고우리 가즈코 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해 당일 판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교도 통신 등 일본 언론사들도 관심을 갖고 취재했다.

담당 변호사 오구치 아키히코 씨의  판결 보고가 끝난 뒤 원고들의 소감을 듣는 자리.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넘겨받은 이희자 씨는 35초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일제시대 강제징용된 뒤 생사여부도 끊어진 아버지를 찾아 헤맨 지 50년.지난 1992년 처음으로 아버지 이사현 씨가 1945년 5월 19일 중국광서성에서 환자 수송중 경기관총을 든 중국군의 습격을 받아 우하퇴부에 총상을 입고 이틀 뒤 24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 내용을 1997년 야스쿠니 신사의 합사 기록에서 찾아냈다는 것이다. 강제로 끌려가 죽어서도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군  혼령으로 묻혀있다는 것을 알고 분리 소송을 제기, 가장 열심히 앞장 서서 싸워왔기  때문일까, 일본인, 일본 언론, 민주당 의원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눈물을 닦고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 중의원회관 이희자 태평양전쟁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이승열/jpnews

"우선, 이 재판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언론, 방송, 지원자, 변호사 여러분 감사합니다. 제가 야스쿠니 신사 소송을 건 것은 어떻게 가족에게 사망 통보조차 하지 않고 무단으로 합사를 할 수 있는지 그 책임을 묻고 싶었습니다. 몇년을 고민하다 2001년 6월 29일 제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자료를 찾느라 참으로 고생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2000년,2001년 재판을 준비했을 때를 다시 돌이켜봤습니다."
 
이희자 씨는 이어서 "2006년 1심 판결때 기각을 당했지만 지금처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실망이 크지 않았다"면서, "1심 때까지 그 동안 우리가 싸워온 정권은 자민당이었지만, 이번에는 민주당 정권이었기 때문에 정말 큰 기대를 가지고 일본에 왔는데, 너무 실망스럽다"며 재판에 임했던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일본인 여러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다" "오늘 기각판결이 실망은 크지만 좌절은 하지 않겠으며, 대법원까지 갈것이며 또다른 방법을 찾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고우리 가즈코 민주당 의원은 이희자 씨의 발언까지 모두 경청한 뒤 자리를 떴다.
 
■ 넌센스 판결, 민주당 의원 해결 위해 입법화에 힘쓰겠다

 
담당 오구치 아키히코 변호사는 "오늘 판결은 1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법정에서 재판관이 도망간 것은 물론이고, 내용 조차도 도망갔다"며, "이 문제는 반드시 일본인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재판에 대해 "야스쿠니에 한국인이 합사되어 있는 것은 태평양전쟁시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전시동원한 것에 대한 보상에 대해서는 한국인이니까 안된다는 입장은 교활한 두개의 혀(하나의 혀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번 판결 자체가 넌센스라고 평했다. 

김민철 태평양전쟁보상추진위원회 위원장은 특별보고에서 "저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이번 판결은 판결 자체보다 판결에 이르는 과정이 문제며 1심때와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근거로서 밝혀진 자료에 대해서도 눈감은 것은 최소한의 상식과 진실에 대해 일본 사법부가 외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체적으로 이번 판결에 아쉬운 소감이 주를 이뤘으나 그러나 희망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자리에 참석한 고우리 가즈코 민주당 의원은 인사말에서 "2001년의 제소, 그리고 오늘 고등법원의 판결은 정권교체후 아울러 한일병합 100년,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커다란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를 저버린 매우 안타까운 결과가 나왔다. 나는 전후 여러가지 문제를 이대로 놔두고서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여러가지 면에서 여러분께 고생을 끼쳐드리고 있으나, 어떻게든 해결이 되도록 국회 안에서 열심히 노력하겠다"라고 다짐을 밝혀, 향후 집권 여당인 민주당내의 정치적 해결 및 입법화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중의원 보고대회가 끝난뒤 저녁 6시 반부터 미나토구 노동복지회관에서 열린 2차 보고대회에도 새롭게 많은 일본 시민들이 참석해, 판결 경과를 들었으며 향후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지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 미나토구 노동복지회관에서 열린 2차 보고대회    ©이승열/jpnews

낮 12시부터 밤 9시까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원고 측 방일단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으며 이희자 씨는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을 위해 한국에서 준비해온 간단한 선물을 나눠줬다. 모임을 끝내고 나온 시각은 밤 8시 반. 도쿄는 퇴근길을 재촉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무심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날인 30일 아침 일본 조간 신문에는 "합사 중지 요구한 원고 항소 기각"이라는 제목하에 마치 재판관이 법정에서 직접 말했다는 듯이 "일본정부는 신사와 일체가 되어 합사한 것이 아니며, 협력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인 원고가 2심에서도 패소했다"고 짤막하게 보도되었다.    
 

■ 재판 이모저모
 
▲ 법원     ©이승열/jpnews
▲ 법원     ©이승열/jpnews
▲ 법원     ©이승열/jpnews
▲ 법원     ©이승열/jpnews
▲ 법원 앞 판결 전     ©이승열/jpnews
▲ 법원 앞 판결 후 눈물을 훔치는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유족회 홍영숙 회장      ©이승열/jpnews
▲ 법원 앞 낙담하는 방일단    ©이승열/jpnews
▲ 중의원회관     ©이승열/jpnews
▲ 중의원회관     ©이승열/jpnews
▲고우리 가즈코 민주당 의원     ©이승열/jpnews
▲ 중의원회관     ©이승열/jpnews
▲  군인군속재판 간사이  사무국장   ©이승열/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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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30 [01:07]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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