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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삭풍 견뎌낸 노병 한(恨) 풀리나
시베리아 억류노병 이병주, 이재섭씨 "전우들 처음으로 만났다"
 
박철현 기자
태평양전쟁 당시 구 일본군에 강제징용 당해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재한노병들의 한이 풀릴 가능성이 커졌다.
 
시베리아 억류자들이 중심이 된 일본 시민단체 전국억류자보상협의회(회장 히라즈카 미쓰오, 이하 '전억협')는 30일 오후 1시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총궐기 집회를 개최해 '전후강제억류자들의 문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하 '시베리아 특별조치법안')을 이번 임시국회 중에 통과시킬 것을 결의했다.
 
이날 집회에는 재한 시베리아 억류자들의 모임 '시베리아 삭풍회'의 이병주 회장과 이재섭 부회장도 참석해 참가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재섭 부회장은 jpnews의 취재에 "같은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 함께 고생했던 이들을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무나 감개무량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10월 30일 참의원 의원회관 제4회의실에 개최된 전국억류자보상협의회의 집회. 한국에서는 시베리아 삭풍회의 이병주 회장, 이재섭 부회장이 참가했다  © 박철현 / jpnews
 
집회는 끊임없이 박수가 터져나올 정도로 활기에 넘쳤다. 전억협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재판이 불과 엊그제(28일) '소송기각'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평균연령 87세의 억류노병들의 얼굴표정은 밝았다.
 
전억협은 지난 2006년 10월 일본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걸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구(舊) 소련에 억류/연행된 전쟁포로들이 이후 시베리아 등에서 장기간에 걸쳐 무임금 강제노동을 한 것에는, 구 소련 뿐만 아니라 일본정부에도 책임이 있으므로 억류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이다.
 
이 재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베리아 억류자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고 있던 1945년 8월 9일 소일중립조약을 파기, 만주국과 일제치하의 한반도 북부에 공세를 가해 왔다. 불과 6일후인 8월 15일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지만 구 소련군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8월 16일과 18일, 일본령이던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침공해 점령했다. 문제는 소련의 이러한 군사적 행동이 일본의 항복선언이 나온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연합국의 제재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유는, 소련의 이 행동이 소련·미국·영국의 밀약인 얄타(yalta) 회담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자 소련군이 점령군으로 행세했던 한반도 북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일본군 군인군속들을 어떻게 처우할 것인가가 도마에 올랐다. 양국은 8월 18일 만주에서 열린 정전 회담을 통해 재류 일본인 보호에 대해 합의를 보았지만 소련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소련군 점령지에 남게된 일본군 장병들과 민간인들은 소련의 방침에 따라 하바로프스크로 보내졌고, 이후 시베리아를 포함한 각 지역에 보내져 강제노동을 해야만 했다. 이들 억류자들은 1947년부터 56년까지 10년간에 걸쳐 일본으로 돌아왔다. 이 기간동안 돌아온 사람들은 약 47만여명에 달한다.
 
전억협은 이런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의 과정에서 구 소련 뿐만 아니라 일본정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 국가를 상대로 재판을 건 것이다.  
 
재판은 패소, 하지만 입법활동은 순조로워...
 
전억협 소속 억류자들이 내세운 논리는, 먼저 국가가 자신(구 일본군)들을 승전국 소련과 협의해 '노역배상(労役賠償)'이라는 일종의 전리품 개념으로 건넸다는 점이다. 
 
전억협은 국가가 시베리아 억류자에 대해 '안전배려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일본정부의 판단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이른바 남방포로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조기귀국의무'가 시베리아 억류자들에게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전억협은 국가가 시베리아 억류자들을 위한 배상 및 보상을 위한 입법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하면서, 국가의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시베리아 억류자들은 지금도 상당한 인격권의 훼손,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토지방재판소는 기각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을 담당한 교토지방재판소의 요시카와 신이치 재판장은,
 
"원고측이 당시 일본정부가 구 소련에 '노역배상'으로 자신들을 남겼다는 근거로 제시한 고노에 후미마로(近衞文麿) 전 총리의 '평화교섭의 요강' 및 '관동군 방면 정전상황에 관한 실현보고', 구 소련군 사령관 와시레흐스키 원수의 '와시레흐스키 원수에 대한 보고' 등은, 실제 고노에 전 총리가 소련에 파견된 사실 자체가 없다는 점, 그리고 소련에 구 일본군이 작성한 각종 보고가 전해졌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고 말했다. 즉 '노역배상'이 성립되기 위한 양국간의 협의가 이루어진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 요시카와 재판장은 "종전후 해외에 남겨진 일본인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은 원고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을 해외에 잔류시키는 것이 아니라 희망자는 귀환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방침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일본정부는 희망자가 귀환할 수 있을 때까지 소련정부에 대해 식류품 및 방한대책의 배려를 희망한다고 부탁한 사실도 있어 이를 종합해 볼 때 일본정부가 태만하게 원고들을 유기(遺棄)시킨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요시카와 재판장은 이러한 이유들을 들어 원고측의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는 기각시켰다. 하지만 그는 판결문에서 시베리아 억류자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넣기도 했다.
 
" (전략) 하지만 원고측의 주장대로 원고들의 억류 자체는 피고(기자주-일본정부)가 포츠담 선언을 수락, 병사들이 무장해제한 후에 발생한 사태로 전쟁피해라고 하더라도 그 이전의 전투상태가 계속되었었던 시기의 전쟁피해와는 구별되어야만 하며, 그 피해정도도 심각하다. 
 
미국, 호주나 그 지배령하에 있던 지역(기자주-태평양 남방지역)에서 귀국한 군사포로에 대해서는 억류기간중의 노동임금에 준하는 금액을 지불한 것에 비해 시베리아 억류자들은 소련이 그 보상에 필요한 노동증명서 혹은 노동임금 계산카드를 발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등으로 인해 보상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의 나이가 평균 83세(기자주-전억협은 평균 연령 87세라고 주장)에 이르는 현재까지 보상에 관한 입법 및 예산조치가 마련되지 않아 그 노고를 보상받을 수 없었다.
 
그 결과로 인해 동종의 소송이 몇번이고 되풀이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와중에 원고들이 차례차례 사망하고 있는 가운데 이 심리를 진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억협은 비록 소송기각 판결을 받았지만 윗부분에 등장하는 "입법 및 예산조치가 마련되지 않아 그 노고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보다 시베리아 억류자들의 '노고'를 보상받을 수 있는 법안을 하루라도 빨리 성립시키자는 것이다.

▲ 10월 28일 교토지방재판소는 전억협 소속 회원들의 소송을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 박철현 / jpnews
 
탄력받은 시베리아 특별조치법안, 노병의 한(恨) 풀리나?
 
실제 '시베리아 특별조치법안'을 둘러싼 분위기는 밝다. 전억협 관계자는 jpnews의 취재에 "이번 임시국회 회기내에 상정시킬 계획"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먼저 지난 3월 참의원에 제출된 시베리아 특별조치법안을 공동으로 작성한 민주당이 수권정당이 됐다. 물론 시베리아 억류자에 대한 보상안이 민주당의 마니페스토(정권공약)에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지난 50여년간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던 이전 자민・공명당 정권에 비한다면 한결 나아진 셈이다. 
 
구(舊) 소련이 작성해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던 약76만명에 달하는 포로・억류자 명단도 지난 7월 공개됐다는 점도 법안성립의 가능성을 높혔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일본 공산당의 요시이 히데카즈 중의원은 "참의원에서는 이미 5개당(민주당, 공산당, 사민당, 국민신당, 일본신당)이 법안에 찬성했다"면서 "이번 회기내에 참의원 총무위원장의 이름으로 중의원에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원래대로라면 중의원 총무위원회에서 다시 논의돼야겠지만 이럴 경우 보수적 스타일의 내각부 법제국 관료들이 법안을 작성하고 또 이 법안은 200억엔에 달하는 예산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총무성의 검토와 재무성의 예산인가도 거쳐야 한다. 시간 역시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전억협은 참의원에서 통과된 법안을 중의원에 보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국회의 경우 보통은 중의원에서 통과된 법안을 참의원이 통과시킨다. 이번엔 그 반대다.
 
이 점에 대해 전억협의 한 관계자는 "시간만 있다면 새롭게 다시 준비해서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지만, 이 문제는 사실상 시간과의 싸움이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분들이다. 하루라도 빨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편법을 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베리아 특별조치법안은, 크게 일본정부가 이 문제에 신속하게 종합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기본방침을 정해야 한다는 것과 특별급부금을 지급한다는 두가지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기본방침'은 일본정부가 강제억류하에서 사망한 전후강제 억류자에 대한 조사, 유골, 유류품 수집에 나서는 등 그 실태파악은 해야한다는 것과 함께 일본사회에 남아있는 시베리아 억류자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담고 있다.
 
'특별급부금'은 일본정부가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것으로 억류자들의 귀환시기에 따라 5단계로 나누어 차등지급한다는 내용으로 청구기한은 2013년 3월 31일까지다. 
 
■ 시베리아 억류자들의 귀환시기와 보상금 내역
1948년 12월 31일까지 - 25만엔
1949년 1월 1일부터 1950년 12월 31일까지 - 35만엔 
1951년 1월 1일부터 1952년 12월 31일까지 - 70만엔 
1953년 1월 1일부터 1954년 12월 31일까지 - 110만엔 
1955년 이후 - 150만엔 
 
재한 시베리아 군인군속은 어떻게 되나? 
 
하지만 일본측의 이런 밝은 전망과는 달리 시베리아 삭풍회 회원등 한반도 출신으로 징병당해 시베리아로 끌려갔던 한국인 군인군속들은 조금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억협은 정부소관이 달라지고 법안내용을 다시 고쳐야 하는등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전억협은 기본적으로 한국, 중국 출신의 억류자들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계속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번 시베리아 특별조치법안을 5개당이 합의한 상황에서 '국적'에 관한 부분을 다시 건드릴 경우 외교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고, 또 총무성, 후생노동성 소관을 벗어나 외무성과도 협의를 진행시켜야 한다. 시간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전억협 관계자는 jpnews의 취재에 대해 "한국의 억류자 선생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일단 법안을 통과시켜놔야 보상에 관련된 문제제기 및 근거의 발판이 마련된다"고 말했다. 실제 법안에도 '검토' 항목에 이런 부분은 들어가 있다.
 
"정부는 전후 강제억류자이면서도 이번 특별급부금의 지급대상이 아닌 사람들과 전후 강제억류자의 유족 등에 대해 고통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책을 검토하며 그 결과에 따라 소정의 조치를 취한다"
 
즉 이번 법안만 통과된다면 이 '검토' 조항에 따라 한국, 중국등 해외억류자들도 일본정부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전억협은 오래전부터 한국, 중국의 억류자 분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에서 온 시베리아 삭풍회의 이병주 회장도 "비록 재판은 졌지만 법을 아예 새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이 있으니까 일단 이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는 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전후 64년간 시베리아 삭풍을 견뎌왔던 노병들의 한(恨)이 따뜻한 훈풍으로 변하려 하고 있다. 
 
▲ 전우들과 만나 환한 웃음을 짓는 시베리아 삭풍회의 이병주 회장(오른쪽 앞), 앞줄 왼쪽이 이재섭 부회장이다.    © 박철현 /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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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31 [12:00]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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