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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청구권 등 전후보상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전후보상, "日 국가전략국에서 풀어야"
 
김현근 기자
"원고측의 어떠한 청구내용도 법적근거가 없으며, 만일 법적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모든 청구의 근거가 소멸되었다"

지난 10월 29일 도쿄 지방법원에서 열린 태평양전쟁시 강제징용,징병에 대한 개인적 보상을 요구하는 '군인군속재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패소했다. 15초만에 기각된 이 판결에서 일본 사법부는 한일청구권 협상으로 끝난 이야기므로 더 논의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일청구권 협상이 어떻게 이루어졌길래, 번번히 패소하고 마는 것일까.

한일 청구권 협상이란?

 '한일 협정'은 해방후 단절된 한국과 일본의 국교수립을 위해 1965년 6월 22일에 조인돼, 같은 해 12월 16일 발효되었다. 이때 기본조약과 함께, 특별조치중 하나인 '한일청구권 협상'도 같이 조인되었다.
 
이 협정에서 일본은 1,080억엔(3억달러)의 10년간 무상제공하고, 720억엔(2억달러)을 10년간 유상제공하기로 했다. 이것으로 한일간 양국민의 청구권이 일본정부에 따르면 '완전하게 또한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처리되었다. 일본이 경제협력을 하는 대신에, 한국은 청구권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일본정부는 이 협정을 바탕으로 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국내법을 제정했다.
 
한국은 조약시 개인의 재산권은 소멸되지 않으며, 단지 외교보호권을 포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손해를 입은 국민의 구제조치는 별도의 문제라고 주장, 어떻게든 민간청구권은 남기려고 했다.
 
그러나 아시아 각 나라와 배상협상을 '경제협력'으로 치환해서 진행해온 일본은 경제재건을 서두르는 박정희정권을 압박해 포기하도록 했다. 그 결과, 모든 청구권, 즉 국가 뿐 아니라 국민간의 청구권도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협정이 조인된다. 당시 한일협정을 한국 국내에서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으나 박정희 정권은 협정 조인을 강행했다. 
 
▲도쿄 고등 법원 앞에서   ©이승열/jpnews
 
개인 청구권은 과연 소멸된 것인가

한일 청구권 협상에 대해 전후보상운동을 펼쳐온 우쓰미 아이코 교수(와세다 대학원 아시아 태평양 연구과)는 그의 저서 '전후 보상으로부터 생각하는 일본과 아시아'에서 두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번째는 한국정부가 일본정부로부터 받은 '경제협력'의 일부를 가지고  개인보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일본측은 '한국병합'이 합법적이므로 '배상'할 이유가 없으며, 이 돈은 말하자면 '청구권'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독립축하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2006년 12월 4일 후쿠시마 미즈호 의원(현 사민당 당수 및 소비자 안전식품, 소자녀 대책 담당 장관)이 대정부 질문시 물은 '무상자금'의 성격에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무상자금 3억달러는 청구권과 별개로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명목으로 제공한 경제협력자금이라고 선을 그었다. 

어쨌거나 한국은 한일청구권협상 후 1971년부터 국내 보상법을 제정, 보상에 나섰다. 그러나 너무나 적은 금액에 유족이 수령을 거부하거나 항의를 했고 보상기간이 제한적이었고, 서류가 없어서 수령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었다. 이 법률에 의해 유족이 보상금을 받은 것은 전체 유족의 40%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청구권협상시 전쟁시 다친 사람이나 살아돌아온 사람은 아무런 해당이 안된다는 점이 문제로 남았다. 
  
두번째는 재일동포의 재산, 권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일본정부는 한국인으로부터 보상청구는 물론이거니와 재일동포의 요구도 '한일협정으로 모두 끝났다'고 버텼다. 
 
일본정부는 청구권 협상 후, 협정 2조 3항에 있는 '일본 관리하에 있는 재산・청구권에 대한 조치에 대해 한국은 앞으로도 어떤 주장도 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근거, 일본 국내법을 제정해 일본 관리하에 있는 재산 등의 청구권을 소멸시켜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전후보상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 일본정부은 일부 재일동포 상이군인・군속에 조의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문제는 일본이 소멸시킨 것은 국가간의 청구권에 관한 '외교보호권'일 뿐, 개인적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일본 관료의 답변도 있었다는 것이다.
 
1991년 8월 2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외무성 조약국장은 "한일 협정은 국가로서 가지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서로 포기한 것으로, 개인의 청구권 그 자체를 국내법적으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92년 3월 27일 중의원 법무위원회에서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외무성 아시아국 북동아시아과 과장은 "한일 협정으로 한일양국 및 국민의 재산권 및 청구권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라고 답했으나, "여기서 청구권은 국가로서 가지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서로 포기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개인의 재산, 청구권 그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에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즉, 우쓰미 교수는 "일본 국내법으로 한국인의 채권이 소멸된 것이지, 협정으로 소멸된 것이 아니며, 국가가 이처럼 국내법으로 타국민의 권리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 가능한지 쟁점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 도쿄 고등 법원 앞에서    ©이승열/jpnews

일본 정부, 강제연행 및 징용자에 미불금은 어떻게 소멸시켰나 
 
이번 군인・군속 재판에는 강제연행자 및 징용자의 일본내 노동에 대한 미불금에 대해 청구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을 조선・대만 등에  시행하는 건'을 통해 '국민징용령'을 조선에 들이밀었다. 조선으로부터  '모집'이라는 형태를 취했으나 실제로는 강제로 집단연행해 일본의 탄광이나 광산에 끌고 갔다. 게다가 군수산업이나 긴급산업에 조선인을 동원하는 계획까지 세워져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 일본에 연행된 조선인은 72만4천870명(일본측 자료)에 이른다. 패전시 일본에는 강제연행자 포함해 200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있었다.
 
전쟁시 일본은 기업에서 일한 노동자에 대해 손에 쥐어주는 돈 액수에 제한을 두고, 그 이상의 금액은 저금을 하도록 하고 있었다. 저금은 장부상으로 기록, 처리했다.

그러나 각 탄광 및 광산에서 발생한 미불금, 예금저금, 퇴직적립금, 후생연금보험 등의 재산도 '한일협정'을 근거로 만든 일본 국내법에 따라 소멸된다.
 
일본정부는 그 과정에서 '공탁'이라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일본정부는 1946년 10월, 각 기업에 미불금을 '공탁'시키도록 했다. 그러나 채권자인 조선인 본인이나 유족에게 이런 내용을 통지하지 않은채 10년이 넘긴 뒤 시효를 통해 공탁금을 소멸시켰다. 아직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맺지 않은 상태였지만, 본인이나 유족에게 알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특히 일본정부가 가지고 있던 '미불금 공탁보고서'에서는 채권자의 이름・본적지가 면,리까지 상세하게 명기되어 있었음에도, 92년 3월 27일 참의원 법무위원회에서 일본정부는 '원래부터 주소를 알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일본정부가 '공탁'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은 전후 당사자의 위탁을 받은 재일조선인연맹 등 재일동포 단체가 미불금의 지급을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공탁은 곧 미불금 지급에 대한 동결・몰수조치였다. 일본 정부는 각 기업에 의도적으로 공탁을 시킨 후에 법령에 정해진 공탁통지서의 발송을 게을리하고 있다가, 한일협정시 청구권 항목에 넣어 일본 국내법으로 소멸시켜버린 것이다
 
우쓰미 교수는 "이것이야말로 기업과 일본정부가 일체가 되어, 미불금을 '몰수'한 것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일본정부가 보관 중인 미불금은 액면가만 징용피해자가 2억 1514만엔, 군인・군속 9131만엔 등 총 4조원대로 추정되고 있다.

▲ 2심 판결 후 중의원회관에서     ©이승열/jpnews

민주당 정권 교체는 전후보상을 위해 된 것이 아니다?
 
이처럼 청구권 협상을 둘러싸고 무상자금의 성격, 개인 청구권 유무에 대해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일본 법정에서 전후 70여건에 이르는 전쟁피해보상 재판은 모조리 원고측이 패배했다. 지난 10월 29일 열린 군인군속 2심 재판도 마찬가지다.
 
이번 재판은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된 뒤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재판으로 원고 측은 그 어느때보다 기대를 가졌으나 물거품이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 재판을 지원하는 일본 시민단체와 한국 측은 향후 전망에 대해 약간의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한국 원고 측은 정권이 교체된 만큼 일본정부의 보다 빠른 대응을 기대하는 상황이나,  일본 지원 단체는 정권이 교체되었다 하더라도 아직 전후처리를 할 만큼의 역량이 현정권에 모아지지 않고 있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아리미쓰 켄 '전후처리 입법을 요구하는 법률가・유식자 모임' 담당자    ©jpnews
지난 10월 29일 군인군속재판 2차 보고대회 때 아리미쓰 켄(有光 健) '전후처리 입법을 요구하는 법률가・유식자 모임' 담당자는 정권교체와 전후 보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민주당 정권이 선거시 발표한 마니페스토(정책공약집)에 '전후처리'나 '전후보상'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겨우 마니페스토와 셋트로 발표된 정책 인덱스안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즉, 독일의 슈레더 정권이 총선거 때 마니페스토에 독일의 강제연행 문제 해결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뒤 바로 2000년부터 5400억엔의 기금을 세운 것과 달리, 일본의 민주당 정권은 그걸 내걸고 선거에 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질적으로는 일본 국민이 '전후처리'를 하라고 투표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민당에게 질려서 민주당에 투표한 것이므로 이런 정치역학적인 측면을 살펴 봐야 한다."
 
그러나, 그는 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전후 보상에 대한 생각은 확고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1993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자민당 정권이 붕괴된 뒤 호소가와 정권이 발족했을 때, 8월 14일 마이니치 신문 1면 톱에 '정부는 1조엔의 전후보상기금의 준비를 하겠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이걸 들고  나온 것이 당시 관방장관(수상의 비서실장)인 하토야마 현 수상이다. 그 후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기가 하겠다고 했으나, 관료의 반발로 일주일만에 폐기됐다.
 
또한 종군위안부 법안 문제에 대해서도 민주당으로서 전후 '전시 성적강제 피해자 문제 촉진법'이라는 것을 2000년 4월에 처음 내놓았는데, 이것도 하토야마 대표의 판단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물론 당 내에서 만장일치를 보지 못해서 통과가 안되었다."

 
지난 10월 9일 하토야마 수상이 한국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과거 및 역사를 직시하겠다"라고 발언했으나, 하토야마 정권 내각 18명의 면면을 보면 여러 세력들이 결합이 되어 있다. 즉, 자민당출신이 5명, 사회당출신이 4명 등 좌와 우를 동거하고 있어 의견 통일을 내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더구나 현재 민주당 정권내에서 가장 권력을 쥐고 있는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으로, 15년 전에 당시 여당(자민당)의 간사장을 하던 인물이 정권교체가 된 지금에도 다시 새로운 여당(민주당)의 간사장을 하고 있다. 일본정치가 과연 변한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다.  

관료집단, 사법부의 벽을 넘어 문제 해결 방법 있나

그렇다면 일본 관료집단과 사법부에 맞서 전후 보상 문제를 어떻게 푸는 것이 좋을까.아리미쓰 씨는 "정권교체와 맞불려 새롭게 설치되는 '국가전략국'에 주목 해야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전후보상 문제에 관해 일본정부는 외무성, 후생노동성, 법무성, 총무성으로 나누어 창구를 통일하지 않고 서로 떠넘기 듯 회피해왔다. 이렇게 일일이 대응하는 방식으로는는 정권교체가 되었다고 해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관료집단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보다 큰 정책을 집행하는 곳에 이 문제를 가져가지 않으면 안된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간 나오토 씨가 담당하고 있는 국가전략실에 이 문제를 넣는 것이다. 내년 1월 통상국회에서 현재 국가전략실에서 국가전략국으로 바뀌는데, 이때 기존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서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국가전략국이란, 정치를 관료로부터 정치주도로 되돌려 오기 위해 신정권이 새로 설치하려고 하는 기구로 '예산'과 '외교'의 기본방침을 정하는 곳이다. 국가전략국을 담당하게 되는 간 나오토 부총리도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적인 인사로 평가되나, 수상관저 내에서는 간 부총리에게 별로 힘을 실어주지 않으려는 브레이크도 상당히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리미쓰 씨는 진짜 승부는 국가전략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내년 3월부터 8월까지'라고 밝혔다.

"국가전략국이 제대로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내년에 전후 65주년, 한국병합 100주년 8월 맞이해 어떻게 할 것인지가 국가전략국의 문제로써 물을 수 있게 된다. 바로 그때 일본 시민단체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 궁리할 필요가 있다. 그때를 위해서 지금부터 많은 분들의 여러가지 제안을 준비해서 공을 던지는 수 밖에 없다."
그는 "다만, 현재 볼을 던진다 하더라도 일본 정부 내에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섹션이 없으므로, 조금 더 기다려야할 것 같다."며 말을 끝맺었다.

아리미쓰 씨의 요지는 관료 및 사법부를 통해서 기존의 절차를 밟아 전후보상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보다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구(국가전략국)를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아리미쓰 씨의 이 발언은 일본의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2심 패소에 낙담하고 있는 가운데,  힘을 북돋아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싸움은 한국인 원고뿐 아니라 일본인 스스로가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것이 지원단체 및 대리변호사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2심 패소 후 다시 최고재판소로 가게된 군인・군속재판. 지난 10월 말 일본을 다녀간 이희자 대표와 홍영숙 회장은 앞으로도 줄기차게 법정에 설 계획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기록으로 다 남으니까. 일본 재판부, 사법부의 양심이 이런 정도였다라는 것을 후세 사람들이 알아놔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후 총결산의 의미를 띄고 있다는 이 재판 및 일본의 전후처리 문제는 내년 이후 치열한 싸움을 통해 역사적인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 기록으로만 남을지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끝> 

▲ 도쿄 고등 법원 앞에서    ©이승열/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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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1/05 [23:29]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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