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리가 살고 있는 구청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우리 부부가 문의했던 한 기기의 지원액에 대한 답변을 해왔다. 우리가 문의한 기기는 ‘요무베’라는 기기였다. 이 기기는 일종의 스캐너다.
그런데 일반 스캐너와는 다른 기능이 있다. 그것은 이 스캐너 위에 책이나 우편물을 올려놓고 스캔 버튼을 누르면 보통의 스캐너와 같이 그림 파일로 변환되는 것이 아니고 인쇄된 내용을 음성으로 변환하여 출력해주는 기기이다.
물론 텍스트파일로도 저장을 해준다. 컴퓨터와 연결을 하지 않고도 스캐너 단독으로도 기능하며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조작도 매우 간편한 시각장애인용 보조공학기기이다. 우리 부부 모두 책이나 우편물등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이 기기를 구청의 지원을 받아 구입을 하려고 문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대답은 나와 아내의 지원액이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런 장애인의 보조공학기기등의 일상생활 용품을 대략 10%를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 90%를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해준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비슷하다. 지원하는 제품도 매우 다양하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계부터 음성이 출력되는 체온계나 혈압계, 체중계도 가능하며 확대독서기나 점자단말기와 같은 20-40 만엔하는 고가 장비도 포함된다.
또 컴퓨터와 관련해서는 필요한 소프트웨어도 지원이 된다. 대개의 제품은 몇 개의 제품군으로 분류하고 어떤 제품이 그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지원 제품으로 포함될 수 있다.
우리 부부가 문의한 요무베의 경우는 아쉽게도 우리 부부에게는 지원액이 조금 적게 책정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각장애인의 독서를 위한 지원 제품군이 크게 점자단말기류와 독서확대기류, 그리고 음성출력기류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잔존시력이 있기 때문에 독서확대기류와 음성출력기의 지원이 모두 가능하다. 그래서 난 26만엔 정도하는 점자 단말기도 하나 지원받아 사용하고 있고 먼저글에서 말했던 데이지포맷의 파일을 재생하는 데이지플레이어도 지원받아 사용하고 있다. 또 확대독서기도 지원을 받았다.
아내의 경우는 아직 어떤 제품도 지원받은 적이 없어 이번에 요무베를 아내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와 그럴 경우 얼마 정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문의한 것이었다.
담당자는 요무베의 경우 아직 특별한 제품군이 없으므로 기능상 독서확대기와 음성출력기류에 포함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아내의 경우 시력이 전혀 없으므로 독서확대기류로는 지원이 불가하고 음성출력기류로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독서확대기류와 음성출력기류는 지원액이 다르다. 독서확대기는 20만엔까지 지원이 되나 음성출력기는 9만엔이 상한선이어서 우리가 원하는 요무베를 구입하려면 자기 부담금이 조금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대답이었다.
같은 요무베라고 하더라도 나의 경우엔 기기값 20 만엔중 10%인 2만엔만 지불하면 되는데 반해 아내의 경우엔 지원 상한액인 9만엔의 10%인 9천엔과 기기값의 차액인 11만엔을 합해 약 12만엔이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나의 경우엔 같은 제품군에 중복 지원이 힘들기 때문에 이미 독서확대기를 지원 받은 나는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
조금 아쉽긴 했지만 나름 합리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글에서도 말했지만 장애인 보조공학기기는 그저 하나의 제품이 아닐 수 있다. 한 개인의 삶을 바꿀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이 초보 단계인 나는 일본에 와서 여러가지 보조공학기기를 접하면서 매우 유용하게 불편함을 줄이며 생활하고 있다. 제품의 종류도 다양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체계도 매우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어 매우 유용하다.
실제 이제 1 개월된 아이와 3 살된 아이를 키우면서도 갑자기 열이나거나 하는 응급상황에서도 음성 체온계등을 이용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이런 장애인의 보조공학기기를 대하면서 우리나라도 조금 지원체계를 다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에 대한 보조공학기기의 지원은 대략 세가지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의료보장구로 국민건강보험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 주로 신체의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보완해주는 의료보장구가 이에 속한다.
둘째는 직업 생활을 하고 있는 장애인을 위해서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실시하는 보조공학기기 대여 사업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직업 생활을 하고 있는 장애인이 극히 적은 현실에 빛춰 볼 때 큰 현실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세번째로는 행정자치부가 1 년에 한번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장애인 정보화 기기 지원 사업’이다. 의료보장구의 경우 그 품목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못되는 경우가 많다. 시각장애인의 예를 살펴보면 의료보장구로써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품목이 의안, 안경이나 독서확대경(독서확대기가 아니다.), 보행용 흰 지팡이 정도이다.
의료보장구는 국민겅강보험공단에서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원이 되고 있는데(의료 급여자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지원된다) 그 품목도 매우 적고 지원 상한액도 실제 제품액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게 책정된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그 품목이 실제 장애인의 생활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제품이 많다.
또 행정자치부에서 지원하는 정보화기기 지원 사업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으나 1 년에 한번 한시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또 예산도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신청한 사람중에서 실제 필요성과 소득상황, 사회 참여도 등의 기준을 가지고 선정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장애인들이 지원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1년에 한번 사업이 실시될 때면 누구나 무조건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람이 지원에서 탈락도 되고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지원을 받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사업이 실시되는 6-8월이면 이에대한 불만의 목소리로 각 장애인 단체나 행정자치부에 항의하는 장애인의 목소리가 높다. 또 몇 년 전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대당 500만원에 달하는 점자단말기를 시각장애인 1300여명에게 무상으로 기부한 적이 있는데 이 제품을 지원받은 사람들이 매매를 하거나 양도를 하는 사례가 있어서 시각장애인계에서 많은 논란을 빚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한시적인 지원은 그야말로 복권 당첨되는 식으로 필요성을 생각하지 않고 누구나 신청을 하게되는데 있다. 만일 일본과 같이 일상적으로 지원이 이루어지고 또 품목도 다양해진다면 이런 ’우선 신청하고 보자’는 식의 생각은 많이 줄어들 것이고 실제 필요한 사람만이 신청을 하게 될 것이다.
또 이런 한시적 지원체계는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의 제품에 대한 연구 개발보다 지원 제품에 선정되려는 노력에 더욱 힘을 기울이는 경향도 보인다. 일본에서와 같이 어떤 제품군을 정하고 그 제품군에 들어가면 어느 회사의 제품이던 지원 품목에 넣는다면 보조공학 시장자체의 경쟁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제품을 특정해서 선정하고 그것을 한시적으로 지원을 한다면 제품의 개발보다는 선정 노력에 회사의 힘을 기울이는 일이 많을 것이다. 실제 행정자치부에서 지원을 받은 제품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는 장애인의 목소리도 상당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매우 훌륭한 제품의 보조공학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많다. 먼저 소개한 센스리더의 경우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기능을 보유한 제품이고 내가 일본에서 지원받아 구입한 독서확대기도 알고보니 국내 기업이 만든 제품이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보조공학기기의 기술이 세계적인 경쟁력도 갖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장애인 보조공학기기는 단순한 하나의 제품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을 바꿀수도 있다. 그런 제품을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현실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런 시스템의 구축이되면 장애인의 사회 참여도 보조공학 시장의 활성화도 무엇보다 같은 울타리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