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 명회회장이 이달 15일 밤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만 95세였다.
이케다 회장은 도쿄 오타구 출신으로 1947년에 창가학회에 들어갔다. 교리는 배우는 가운데 포교 활동과 조직 확대에 두각을 나타냈고, 10년 후 만 32세의 젊은 나이에 제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듬해에 공명당의 전신인 정치단체 '공명정치연맹'을 결성했고, 1964년 공명당이 결성된 이후, 이케다 회장은 중앙 정계에도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독자적인 지위를 쌓았다.
평화운동이나 국제교류에도 적극적으로 임해온 이케다 회장은 세계 54개국을 방문해 지도자나 문화인들과 대담을 거듭해왔고, 유엔 평화상도 수상했다.
특히 중국과의 교류에 힘을 쏟았고, 국교 정상화 이후 1974년에는 베이징을 방문해 당시의 주은래 총리나 등소평 부총리와도 회담했다. 이후에도 계속 중국 최고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왔다.
이케다 명예회장은 1979년 회장직을 사임한 뒤에도 명예회장으로서 큰 영향력을 유지해왔지만 최근에는 고령 등을 이유로 대외적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케다의 죽음, 일본 정계 술렁이는 이유
이케다 회장은 일본 연립여당 공명당의 지지모체 '창가학회'에서 정신적 지주와 같은 존재였다. 일본 정계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컸다.
노년에 대외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들, 그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일본 정계에서는 "자민, 공명 연립이 오랜 세월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이케다 명예회장의 영향이 컸다"(자민당 중진)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케다 명예회장의 죽음으로 자민-공명의 공생관계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자민-공명간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자민당내 매파였던 아베 신조는 총리직에 취임하고 나서 찬반의견이 첨예하게 갈려왔던 집단적 자위권의 한정적 행사 용인, 미군 후텐마 비행장의 나고 시 헤노코 이전 등을 강행했다. 자민당의 강경우파적인 행보가 지속되자 온건 색채가 강한 공명당 내부에서는 그간 자민당 정책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자민당내에서도 공명당과의 공생관계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공명당은 2022년 참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에서 약 618만 표를 기록, 전성기때 기록한 약 900만 표에 비해 대폭 적은 득표수를 기록했다. 창가학회와 공명당의 조직력이나 영향력이 점점 줄고 있다는 증거다.
조직력이나 선거기반이 약한 자민당 국회의원들에게 있어서 창가학회의 조직력은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창가학회의 영향력이 점점 감소하면서 자민당내부에서는 창가학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자민당과 국민민주당의 연립이야기가 최근 들어 자주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연 이케다 명예회장의 죽음이 자민-공명의 파트너십에 향후 어떤 영향을 줄까.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