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이좋게 마을을 위해 고생했던 분들한테 왜 이런 일이..." 나가사키현 운젠시의 인구 7천명 남짓한 조그만 마을 아즈마쵸(吾妻町)가 슬픔에 잠겼다. 아즈마쵸는 이번 부산 사격장 화재 참사를 당한 운젠시의 아즈마 중학교 동급생들 9명(사망 6명, 중상 3명)이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다. 중학시절을 같이 보낸 이들은 학교를 졸업한 후 잠깐 흩어지긴 했지만 10년정도 지나 대부분이 지역사회인 운젠시 아즈마쵸로 귀향했다. 학창시절부터 유달리 사이가 좋았다는 이들은 공교롭게도 귀향시기도 비슷해 "젊은 우리가 힘을 내서 마을 한번 살려보자."는 의미로 친목단체 '라츠(ratz)'를 만들었다. 대부분이 36, 37살이었다. 규슈지역의 지역신문 <니시니혼신문>에 의하면, '라츠'라는 이름은 이들 대부분이 72년생 쥐띠(rat)라는 것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이번 투어에 개인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했다는 다나카 가즈노리 씨는 "rat에 영어 알파벳 마지막 글자 'z'를 붙인 이유는 '마지막까지 우리 주욱 함께 가자'는 의미에서 붙인 것이었는데... 결국 먼저 가고 말았다"면서 눈물을 보였다. 30대 중후반이었던 이들은 아즈마쵸의 소방단, 청년상공회등의 중책을 맡았었다고 한다. <나가사키신문>는 "고인들은 아즈마쵸의 지역 마쯔리(축제)를 주도적으로 열고 지역사회의 발전과 마을을 부흥시키는 운동에도 나섰던 지역사회의 일꾼들이었다"며 소개했다. 친목회의 멤버였지만 자녀의 '시치고산' 행사(기자주-여자아이들이 7살, 5살, 3살이 되는 해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여는 이벤트) 때문에 이번 투어에 참가하지 못했다는 미우라 씨는 "여행나가는 것을 배웅까지 했었는데, 이렇게 돌아오지 못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아직 아이들도 어린데...어떻게 해야할지. 아직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흐느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참변을 당한 아라키 히데키(36) 씨는 고교졸업 후 후쿠오카에 취직했지만 10년전에 부모님이 하시던 축산업을 잇기 위해 귀향한 케이스다. 08년 1월에 장남이 태어났다. 중상을 입은 하라다 요헤이(36) 씨 역시 아들 둘, 딸 둘을 두고 있는 등 이번에 참변을 당한 이들은 모두 기혼자라는 사실이 가족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번 참변에 대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알려달라.", "사격장이 어떻게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사격장에 대한 관리 및 인허가는 상당히 복잡하며, 또 번화가 한복판에 설치되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개인이 사격을 즐길 경우에는 허가된 클레이 사격장, 공기총 사격장에서만 가능하며 이 경우 '총포 및 도검류 소지 단속법'이 정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무기전문가 쓰다 데쓰오 씨는 jpnews의 취재에 "일본은 한국과 달리 총포, 도검등이 폭력단의 자금원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어서 총기단속에 관한 법률이 엄격하다. 따라서 일본국내에서 일반인이 사격을 체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에서의 색다른 체험중 하나로 사격체험을 내걸고 있는 투어가 인기를 끌어왔다는 것이다. 거리가 가까운 관계로 규슈 관광객들이 1박 2일 코스는 물론 당일치기로도 자주 찾는 부산의 경우 이런 류의 민간사격장이 4군데나 있다. 규슈지역의 일본인들에게 있어 사격장 투어는 어느정도 일반화되어 있다고 한다. 미야자키현에 사는 한국전문 여행가이드 오미야 켄시(53) 씨는 "예전에는 경주 관광지 투어, 그리고 때밀이, 맛사지, 음식등 미용 투어가 많았지만, 매번 같은 스케줄만 있으면 그러니까 색다른 투어를 내걸기도 한다. 해병대 체험이나 사격장 투어등이 그런 예다."라고 말한다. 한편 <니시니혼신문>은, 아즈마쵸의 주민 입을 빌려 "이번 일을 계기로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 희생된 분들에 대한 보답을 위해서라도 철저히 지켜 나갔으면 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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