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문시장이 급격히 재편될 전망이다.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과 함께 일본 주류 언론을 대표하는 종합일간지 마이니치신문이 교도통신(共同通信)에 다시 가맹하기로 최종결정을 내렸다.
마이니치 신문은 26일 교도통신, 니시니혼신문(西日本新聞, 교도통신 가맹사)과의 3자 기자회견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미디어의 존재방식을 보여주고 싶다"며 "편집, 사업등 각 분야에서 업무제휴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사히나 유타카(朝比奈豊) 마이니치 신문 사장은 "앞으로 마이니치는 각 관청 기업의 발표및 속보에 관한 보도는 교도통신에 맡기고 독자적인 취재활동을 통해 독자들이 요구하는 정치, 경제, 국제, 사회분야의 깊고 심층적인 내용을 전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방지들과의 연계를 통해 지방에서 일어난 뉴스도 제공받기로 했다.
전국일간지 마이니치의 이번 결정에는 일본 종이신문업계의 불황이 크게 작용했다. 전체적으로 구독자가 많이 줄었고, 광고료 수입도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1월 24일 2009년도 중간결산보고에서 43억엔의 적자가 났다고 발표했다. 산케이신문은 1년새 30만부나 감소해, 지금은 100만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신문기자는 일은 많아도 급여수준은 최고라는 말도 있었지만 이것도 옛날 얘기다. jpnews가 직접 만난 마이니치의 5년차 현역기자 y는 "지금 월급은 어디 가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수준"이라며 "동년배 샐러리맨 월급보다 조금 많다"라고 말했다.
일본 abc 협회의 부수 보고서 최신판(2009년 상반기 전국 평균)에 따르면 요미우리 1001만부, 아사히가 803만부에 비해 마이니치는 380만부에 불과하다. 3대 전국일간지라고 하지만 부수로만 따진다면 요미우리, 아사히의 절반수준에도 못 미친다.
'경비절감'과 '저널리즘 구현'... 일석이조의 결단?! 마이니치는 2008년도 적자계상을 했다. 이후 내부적으로 사원 보너스를 삭감하고 홋카이도에서는 석간을 발행하지 않는 등 경비절감에 힘써 왔지만 '신문시장의 총체적 불황'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 58년만의 교도통신 재가맹(再加盟)은 발상전환의 묘책이라 볼 수 있다. 교도통신 가맹사가 되면 지역에서 일어난 속보, 사건, 사고등을 굳이 자사 인력을 들여 취재할 필요가 없다. 교도통신의 기사를 제공받으면 된다. 기자들은 그 시간에 다른 심층적인 취재가 가능해 진다.
또 교도통신에 가입돼 있는 56개 지역신문 가맹사의 기사제휴도 쉬워진다. 이것은 곧 전국에 퍼져 있는 '지국'(支局)의 존재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도통신 사회부 출신의 독립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青木理)는 마이니치의 간부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략) 교도통신에 가맹하면서 취재망의 재검토가 전면적으로 실시될 것이다. 순차적으로 지방지국을 없앨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도쿄, 오사카, 기타규슈(北九州)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도시형 신문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주간포스트, 12월 4일호, 126p) 즉 마이니치는 이번 결정을 통해 '심층취재'와 '경비절감'의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이니치의 이번 결정은 일선의 젊은 기자들에게도 환영받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y기자는 "제대로 된 신문 저널리즘이 뭔지 앞으로 보여줄 생각"이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지금까지는 출입처 기사송고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쪽에서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정리해서 기사로 실었다. 그 내용이 사실에 맞는지 아닌지 확인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거 왜 하나 라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다른 데서는 다 나가는데 우리만 안나가면 안되니까... 이번에 이런 결정(교도통신 재가맹)이 내려져서 상당히 반갑다. 다른 신문들이 못 다루는 주제와 테마, 다른 각도에서의 특종을 잡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사실 마이니치는 취재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요미우리, 아사히에 비해 턱도 없이 적은 인원으로 구성된 마이니치는 필연적으로 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만큼 세상을 놀라게 한 특종도 마이니치를 통해 알려진 것이 많다.
60년 10월 12일 아사누마 이네지로 사회당 위원장이 우익소년의 칼에 찔리는 현장을 담은 마이니치의 특종 사진은 61년 퓰리처 상을 받았다. 미국과 일본간의 오키나와 밀약문서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혀낸 곳도 마이니치다. 2000년에는 '구석기날조사건'을 특종보도했다.
마이니치는 일본 신문업계의 최고 권위상인 신문협회상을 가장 많이 받았다(24회 수상). 특히 06년부터 08년까지는 3년연속 편집부분을 수상했다.
역사와 전통에 걸맞게 수많은 저널리스트와 평론가, 작가도 마이니치를 거쳐갔다. 일본 최고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으로 잘 알려진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도 마이니치 출신이다.
"마이니치는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하지만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래서 마이니치를 관두더라도 프리랜서로 일가를 이룬 선배들이 많다. 이번 교도통신 재가맹으로 인원삭감등 구조조정이 있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소수가 아닐까 한다."(마이니치 현역기자 y씨) 여기서 말하는 혹독한 훈련은 장르를 넘나드는 기사작성이다. y씨는 사회부 소속이지만 이날 일본정부의 낭비예산 공개심의 회의를 취재했다. 엄밀히 보자면 정치부가 맡아야 한다. 요미우리, 아사히가 전담부서를 따로 만들때 마이니치는 사회부 기자까지 동원된 형국이다. 그는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때는 의료관련 기사도 작성했는데 이때 시간만 나면 바이러스 관련서적을 탐독했고, 10일간 집에서 편한 잠을 자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혹독한 훈련이 마이니치의 자유로운 기풍과 절묘하게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요미우리, 아사히의 엘리트 의식에 비해 마이니치의 기자들은, 그래서 서민적인 향기를 풍긴다.
또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마이니치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일본신문업계의 기형적 구조가 정상화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통신사 vs 신문사'의 기형적 구조 사라지나? 일본은 통신사와 신문사가 경쟁관계로 설정돼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유럽에서는 이 둘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다. 신문사가 커버할 수 없는 지역뉴스, 사건 사고등을 ap통신, 로이터통신, 연합뉴스등의 통신사 기사를 받아쓰고 각 신문사들은 자신들의 취재를 한다.
그런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 이른바 전국지라 불리는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등은 각 지역에 자신들의 지국을 설립하고, 교도통신과 속보경쟁을 벌여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도통신의 탄생배경 때문이다.
▲ 도쿄 신바시에 위치한 교도통신 미디어 타워. 근처에 덴쓰가 있다. ©jpnews | |
교도통신사는 1901년 일본광고주식회사 및 전보통신사가 설립한 회사다. 전보통신사는 지금의 덴쓰(電通, dentsu). 교도통신은 당시만 하더라도 기업정보, 광고대리점 업무에 따른 속보(전보)를 제공하기 위한 필요에서 설립됐다. 로이터 통신이 주가업무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이후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등 군국주의로 빠졌다. 이때 일본언론은 너나 할 것 없이 '대본영 발표문'을 충실히 받아 썼고, 특히 교도통신은 대본영의 홍보 부서로 전락했다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패전후 아사히신문을 필두로 요미우리, 마이니치 3대 전국지는 교도통신을 탈퇴했다(뉴스제공 계약관계는 유지).
이 탈퇴에는 저널리즘적 이유가 컸다. 자기네들 눈으로 직접 현장을 확인하고 기사를 쓴다는 현장주의의 발로였다. 대본영 홍보지로 전락해 버렸던 과거를 가지고 있던 교도통신의 기사를 그대로 받아쓴다는 것은 3대 전국지의 자존심상 허락할 수 없었다.
또 주머니 사정도 좋았다. 매년 수만명씩 정기구독자가 늘어났다. 진보의 아사히신문과 보수의 요미우리신문, 그리고 중도의 마이니치는 각각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같은 팩트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관점을 투영시켰다. 마이니치의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요미우리의 구로다 기요시, 아사히의 후나바시 요이치등 개성만점의 기자들은 독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었다.
하루 1천만부씩 찍어대는 시절이다. 마이니치도 6백만부씩 찍었다. 세 신문을 합하면 3천만부에 달했다. 그러다 보니 통신사와 신문사간의 관계가 묘해졌다. 교도통신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신문사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지난 50여년간 3대 전국지가 몸소 실천한 셈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1998년에는 통신사 불필요론까지 나왔다. 가맹사인 산케이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물론 뉴스계약 체결을 하고 있던 요미우리, 아사히등도 기사 제공료 인하를 요구하는 등 교도통신의 존재가치는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독자들의 신문구독률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또 신문기사의 내용도 예전과 같은 독특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게 됐다. 어느 신문을 보더라도 비슷한 내용의 '발표보도'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신문부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일본 특유의 '통신사 vs 신문사'의 기형적 구조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마이니치의 결단은, 그렇기 때문에 일본 신문업계의 정상화를 견인할 수 있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명문(名門, 名文) 저널리즘의 산실이었던 마이니치의 부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