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약 5개월간 연재된 1부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 2부 '일본 아내, 한국 며느리로 인정받다'의 외전 격인 글입니다. 1, 2부 시리즈를 읽고 이 글을 읽으시는 게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 (총12화)일본 아내, 한국 며느리로 인정받다 (총9화) "응애! 응애! 응애!" 지난 1월 17일 심야 0시 57분, 셋째 아이이자 장남인 준(准)이 태어났다. 아버지가 장남이고 나도 장남이니 이 녀석 우리 집안의 장손인 셈이다.
장손이 받는 대우는 역시 달랐다. 큰 딸 미우와 작은 딸 유나가 태어났을 때만 하더라도 조용했던 부모님들도 이번엔 하루걸러 국제전화를 걸어 오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평생신조인 '용건만 간단히'도 파기하셨다. 16일 저녁, 진통이 시작된 날에 마침 전화를 걸어 온 아버지가 이렇게 물어 온다.
"그래, 미와코 몸은 좀 어떻노?"
"아! 지금 진통이 온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빨리 병원에 가야지!"
"미와코가 아직 그 단계는 아닌 것 같다는데요."
"아! 그래. 그라모 니가 잘 돌봐 주래이."
"아. 네." 보통이라면 여기서 전화가 끊긴다. 그런데 아버지가 전화를 끊지 않는다. 아버지가 전화를 끊지 않는데 내가 먼저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로 아무 말 없이 뻘쭘하게 수화기만 들고 있는데 아버지가 다시 물어 온다.
"그래...(사이) 아가 몸은 좀 어떻노?" 전화요금이 세상에서 가장 아깝다는 아버지께서 직접 이런 상황을 연출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불과 10초전 당신이 직접 물어왔던 내용을 그대로 '표절'하다니.
"방금전에 물었잖아요. 진통이 오고 있는 상태지만 괜찮다니까요."
"그러니까 그 진통이 괜찮나는 그런 말 아이가. 니는 말귀도 못알아 묵나?" 그러고는 또 정적이다. 전화를 안 끊는다.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어쩔 수 없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전화 끊으세요."
"어?...어. 그래. 암튼 니가 미와코 잘 돌봐 주래이."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전화끊기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아무튼 며칠간 아버지, 어머니는 자나깨나 산모를 걱정했다. 그 걱정이 전화통화로 해소되면 손녀딸들을 찾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내 안부는 전화끊기 직전에 '용건만 간단하게' 물어 보실 뿐이셨다.
준의 탄생은 그만큼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나'다. 17일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31일까지 나는 2주일 간의 '주부'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우선 주부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우리 집엔 4살, 2살짜리 꼬마가 있어서 더 그런 것일 수 있겠지만 아무튼 남편들은 적극적으로 가사 일을 해야 한다.
내 딴엔 지금까지 '도와줬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엄청난 착각이었다. 오히려 남편들이 '도와준다'는 표현을 쓸 때, 아내들이 얼마나 짜증이 날까도 이번에 알았다. 가사일은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해야 한다. 특히 육아는 더 그렇다.
16일 밤 아내의 진통이 세졌다. 양수가 터진 건 아니지만 경험상 병원에 입원해도 될 수준이었다. 아내도 "택시 불러 줘"라고 짧게 말한다. 택시는 불렀는데 유행성 구토설사증에 걸린 미우와 유나가 영 힘이 없다. 아예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엄마는 진통때문에 주기적으로 괴로워 하고 있고, 아이들은 이런 상태다. 택시가 도착했지만 미우와 유나 둘 다 절대 병원에 가고 싶지 않단다. 종국엔 울어 버린다. 아픈 것들이 울음소리는 왜 이리 우렁찬지 모르겠다. 아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 일그러짐은 점점 주기가 짧아져 갔다.
"오빠, 힘들어. 빨리 좀 택시..." 어쩔 수 없이 비명을 질러가며 울어대는 두 아이를 어깨에 둘러메고 집 밖으로 나왔다. 남들이 보면 천상 유괴범이다. 택시운전사도 멀뚱멀뚱 쳐다본다.
"아! 아이들이 자꾸 병원에 안 가려 해서요. 하하하"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설명하고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변명하고 보니 분위기가 더 이상하다. 아내가 같이 타지 않았다면 분명 이 아저씨 경찰에 신고했다.
문제는 병원에서 터졌다. 입원수속을 밟고 마치 호텔방 같은 독실을 배정받는데 둘째 유나가 설사를 하고 만 것이다. 간호사가 생글거리며 물어 온다.
"어머! 괜찮아요?"
"아! 지금 유행성 설사구토증이라는 걸 앓아서..." 기저귀를 갈면서 주섬주섬 대답하자 간호사 얼굴이 사색이 된다.
"안됩니다. 당장 나가세요." 너무나 단호했다. 그녀의 말인즉슨 이 설사구토증이 전염병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옮았다간 큰일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고 또 그것까지 신경쓰지 못한 이쪽 잘못도 크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180도 자세가 바뀔 줄이야. 유나 기저귀를 제대로 갈지도 못한 채 우리 셋은 병원에서 쫓겨났다.
나중에 의료 저널리스트를 하는 지쿠마루 야스코 씨에게 이 에피소드를 들려주니 지쿠마루 씨가 그런다.
"산부인과가 일본 병원중에서 제일 예민한 곳이야. 맨날 소송당하거든. 의료사고재판 통계를 보면 80%가 산부인과 재판이니 말 다 했지. 그리고 산부인과는 한번 잘못 소문나면 간판 내려야 해.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 덕분에(?) 나는 물론 아이들까지 병원출입금지 처분을 받았다. 아내도 준을 낳고 난 다음 우리들과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다른 층의 독실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옮긴 이 독실의 입원료가 상상을 초월했다.
무려 하루에 4만엔. 물론 시설은 좋았고 밥도 잘 나왔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병원 입원료만 20만엔이 나오다니. 지금 환율로 따지면 순수한 입원료만 300만원 가까이 나왔다는 말이 된다. 결국 총 병원비는 66만엔이 나왔다.
둘째 유나를 마산의 조산소에서 낳았을 때는 전부 다 해서 100만원(당시 환율로 약 8만 5천엔) 정도 들었다. 일본에서 낳은 첫째 미우만 하더라도 40만엔이 채 안됐으니까 66만엔은 정말 큰 돈이다. 장남은 역시 돈이 들어가는 것일까? (일본정부는 아이를 낳으면 출산축하금으로 42만엔을 지불한다. 또 연말소득공제를 통해 나중에 약 4, 5만엔 정도가 돌아오므로 실제 들어가는 돈은 그렇게 많지 않다 - 글쓴이 주)
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병원출입을 금지당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나는 준의 얼굴을 태어난지 3일이나 지난 20일에나 봤다. 아내가 입원한 후 아이들을 돌보려는 계획도 전부 헝클어졌다.
원래는 엄마 없으면 죽고 못사는 유나를 병원에서 생활하게 하고, 나는 미우만 책임지기로 했었다. 보통 집 같으면 처갓집이나 시댁에서 부모들이 도와줄 법도 하지만 우리는 그게 힘들었다. 장모는 몸이 안 좋고 장인은 그런 장모를 돌봐야 했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고 있으니 무리다. 아버지는 와 봤자 별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아내가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다분하다. 어쩔 수 없이 아내와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 병원, 탁아시설이 완벽했다는 것이다. 이 병원관계자 말로는 최근 일본에서는 우리처럼 이미 아이가 있더라도 양쪽 집안 어른들이 도와주지 않거나 도와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이미 아이가 있는 가정을 위해 탁아시설만큼은 제대로 갖추자고 생각했단다. 훌륭한 마인드다.
앞서 언급한 지쿠마루 씨가 지적한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일본도 출생율이 1.3정도에 불과하거든. 이 출생율을 높이려는 대책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싶다면 난 '산후 한달'을 어떻게 국가가 지원할지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단적인 예로 출생신고만 해도 그렇지.
일본은 지금 생후 2주일 내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만약 아빠가 없거나, 지방이나 외국에 출장갔다고 해 봐. 부탁할 가족도 없다고 치자구. 그러면 산모가 직접 가야 해. 산후 2주일도 안 지났는데, 산모가 신생아를 데리고 시청에 찾아가서 적어도 2시간은 이것저곳에 들러 수속을 마쳐야 해. 엄청난 중노동이야. 사실 이런 것 때문에 아이 낳기 싫다는 친구들 내 주위엔 많아." 일본정부는 사실 이런 것에 대한 지원책이 아직 미비하다. 시스템만 놓고 본다면 한국보다 좋을 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은 시스템을 넘어서는 끈끈한 인간관계가 존재한다. 아기가 태어났다면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부모가 없더라도 친척 혹은 이웃집에라도 부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그게 안된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선 아내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 이번에도 안정기를 넘어선, 그러니까 임신 6개월쯤이 지나면서 매일같이 회의를 열었다.
이름하여 '준을 낳은 후 미우와 유나를 어떻게 해야 하나 대책회의'다. 나는 이번에도 한국에서 낳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것도 시즌 3에서 밝히겠지만, 유나를 한국에서 낳고서는 한국에 혼자가는 것이라면 싫다고 그런다.
반면 아내는 나에게 한달 정도 쉴 수 없냐고 물어 온다. 이건 100% 무리다. 내가 다니는 <제이피뉴스>는 기자 수가 몇 명 안되기 때문에 한 달이나 빠지면 금방 차질이 온다. 아내는 "그럼 재택근무라도 하면 안 돼?"라고 재차 묻는다. 재택근무는 어느 정도 가능할 지 모르겠다. 일단 상의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모두가 축복해주는 아이를 낳는 건데, 왜 우리 둘이서만 이런 고민을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다. 미우를 낳았을 땐 내가 옆에 있었고, 유나는 한국에서 낳은 덕분에 아내가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고모, 숙모들이 총동원됐다. 내친 김에 물었다.
"미키 상한테 부탁하면 안될까?" 미키 씨는 손윗 처남의 아내다. 평소에도 아내와 미키 씨는 개인적으로 메일을 주고 받는, 거의 친구같은 사이다. 그런데 아내가 손을 내 저으며 정색을 한다.
"안돼. 그건 절대 안돼.""왜?" "폐 끼치는 거잖아. 미키 짱도 아이가 있는데... 암튼 그럴 순 없어." 물론 손윗 처남댁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고쿠분지와 꽤 떨어진 이타바시(板橋)라는 것도 이유로 작용했다. 하지만 너무 단호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럴 땐 천상 일본인이다. 그것도 너무나 전형적인 일본인.
이런 수십회의 '대책회의'를 거쳐 도달한 결론이, 위에서 말한대로 유나는 탁아시설이 잘 돼 있고 밤에는 산모와 같이 잘 수 있는 병원측에 맡기고, 내가 미우를 책임진다는 것이었다. 회사도 긍정적이었다. 유재순 대표는 "미우를 그럼 매일 보는 거야?"라며 과일 사놓고 대기할 정도로 너무 즐거워했다. 아! 이럴 땐 역시 한국사람이 좋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은 미우와 유나의 유행성 설사구토증으로 인해 틀어졌다. 게다가 나는 졸지에 아내가 퇴원하는 21일까지, 그러니까 5일동안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는 두 아이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전업주부'로 변신해야만 했다.
▲ 왼쪽부터 유나, 준, 미우. 미우는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에서 유나는 한국의 조산소에서, 그리고 준은 일본의 고급호텔, 아니 고급병원에서 태어났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시즌 3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생각이다 ©jpnews | |
▲ 그런데 원래 미우를 담당하기로 했던 내가, 매일같이 유나와 같이 지하철 도자이센을 타고 출근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주 일요일 아침에 올라올 (하편)을 읽어주시길. ©박철현/jpnews | |
■ [외전] 2부 '주부', 아! 그 위대한 이름이여! ■ 기자 주
무단 전재는 금합니다. 링크를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