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입국을 표방해 온 일본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일본 관광국(jnto)이 올해 1월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수가 679만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얼핏 많아 보이지만 2007년 834만명, 2008년의 835만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물론 2009년에는 세계적인 불황과 엔고 현상, 신종 플루라는 악재가 겹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갑자기 156만명이나 감소한 사례는 전례가 드물다. 고이즈미 전 총리 시절에 본격적인 관광입국을 내걸고 201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1천만 시대를 연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운지라 그 충격은 더욱 컸다.
그래서일까? 지난 해 12월 한국관광공사 주최로 열린 이벤트에서는 일본관광공사 사장을 포함한 거물급 관계자들이 총출동했다. 당시 명함을 뿌리며 '일본'을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던 그들의 모습은 매우 신선해 보였다.
지난 해 9월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 뒤 일본에서는 지금 자민・공명당 연립정권 당시 세워진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은 공개심의를 통해 이전 정권이 당연하다는 듯 써왔던 분야의 예산을 대폭 삭감시켰다.
국토교통성은 거의 반세기를 이어온 얀바댐 건설계획을 백지화시켰고, 각 지역의 대형 댐 건설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본격적인 예산 절감에 나섰다. 집권 민주당의 철학인 '콘크리트에서 인간으로'를 감안한다면 일견 당연한 모습.
그러나 서슬퍼런 예산삭감의 칼날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관광관련 정책 및 사업은 살아 남았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성 장관은 "관광사업은 저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다"며 고이즈미 정권 시절 수립된 관광입국전략 '요코소! 재팬(ようこそ!ジャパン, 일본에 어서오세요!)을 충실히 이행할 뜻을 내 비쳤다.
정부 뿐만 아니다. 각 지자체들도 중앙정부 못지 않게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키타 현 같은 경우 일본을 가장 많이 찾는 한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한국에서 최근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을 지자체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아키타(秋田) 현의 이 작전은 멋지게 성공했지만, 다른 지자체들은 들인 노력에 비해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156만명 감소라는 충격적인 수치가 이를 말해준다.
제 아무리 3대 악재가 겹쳤다 해도 이 정도까지 떨어졌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타겟팅'의 전환이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외국인 관광객의 프로필을 더 구체적으로 분류해 세분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등장한 것이 바로 'mice'(meeting, incentive, convention, event/exhibition)라는 개념이다. 일본관광청의 다케하라 유이치(竹原勇一) mice 담당 참사관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mice는 누구를 대상으로 관광전략을 짤 것이냐는 타겟팅의 개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 일본관광청 다케하라 유이치 mice 담당참사관 ©박철현/jpnews | |
그는 "mice는 지금까지 막연하게 해 왔던 관광전략과 차원이 다르다. 미팅, 인센티브, 컨벤션, 이벤트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보다 기업, 관공서,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관광유치활동"이라며, "2010년을 '일본 마이스의 해(japan mice year, jmy)'로 선정했고, 각 지자체들과 연계해 mice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설 생각"이라고 밝혔다.
mice는 관광객이 156만명이나 감소하자 느닷없이 나온 것은 아니다. 일본은 자민당 정권 말기인 2009년 3월 '관광입국추진전략회의'를 통해 mice를 하나의 관광전략으로 내세웠다. 다케하라 씨는 "지난 해 3월부터 일본 내의 분야별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초빙해, 네 차례의 회의를 거쳐 mice의 기본전략을 짰다"고 말한다.
그가 건네준 자료에는 이시즈미 타다오(石積忠夫) 일본전시협회회장, 기무라 타다시(木村正) 일본이벤트산업진흥협회 전무, 고바야시 히로카즈(小林裕和) jtb 글로벌마케팅 산하 gmt 투어리즘 연구소장, 노다 유미코(野田由美子) 요코하마시 부시장 등 mice와 관련있는 민간 및 정부단체, 지자체의 저명인사들이 총집결해 있었다.
최근 mice 산업에 역점을 두고 있는 한국의 제주도도 그렇지만 mice에는 여러 이점이 있다. 일본 최고의 mice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다케하라 씨는 "경제적 파급효과, 국가 및 지역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 mice 산업"이라고 말한다.
mice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있는 단체와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소비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효과가 크다. 특히 인센티브는 기업차원에서 실시하는 성과급 여행이기에 일반 관광객들의 일명 '올빼미' 투어보다 그 씀씀이가 몇 배 이상 클 수 밖에 없다. 실제 독일같은 경우 mice 관련 시설 옆에 카지노, 대형 쇼핑몰을 구비해 놓고 있다. 돈 좀 쓰고 가라는 말이다.
또 mice 관광객들이 각 나라의 여론주도층일 가능성이 높아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일본을 방문한 기업체 대표와 고위 공무원들이 일본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간직한 채 귀국하면 그것 자체가 브랜드 이미지 상승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대형 국제회의의 경우 도시명이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고, 아예 조약 및 의정서 제목에 붙는 경우도 많아 브랜드 이미지가 더욱 극적으로 올라간다.
다케하라 씨는 "일본은 mice에 관한한 완벽한 초보자"라며, 지난 1월 아시아의 mice 최선진국인 싱가폴을 견학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는 "일본이 초보자이긴 하지만, 사실 일본은 mice라는 개념 자체는 몰라도 이미 mice를 계속 해 왔던 측면도 있어서 사실 그렇게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라고 덧붙인다.
사실 오래 전부터 일본은 mice로 불릴만한 자원 및 제도를 소유하고 있었다. 2007년 1월 통과된 '관광입국추진기본법'이 좋은 예다. 이 법에 따라 그 해 6월 의회에서 통과된 '관광입국추진기본계획'에는 "일본에서 개최되는 국제회의 수를 2011년까지 50% 이상 증가시켜 아시아 최대의 국제회의개최국을 목표로 삼는다"는 구절이 명확하게 들어가 있다. mice 라는 개념 자체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이미 이때부터 mice의 한 요소인 미팅(m)에 힘을 쏟아왔다는 말이다.
다케하라 씨는 "국제단체연합(uia)의 통계를 보면 일본에서 열린 국제회의는 2007년 252건으로 세계 5위를 기록했다"고 말한다. 1997년에는 교토의정서(京都議定書)가 체결돼 '교토'를 일약 세계적 브랜드로 끌여 올렸고, 2008년에는 홋카이도 도야코(北海道洞爺湖)에서 g8 정상회담도 열리는 등 사실 국제회의 분야에서 일본은 단골 개최국으로 이름이 높다.
▲ 지금도 도쿄 빅사이트, 지바 마쿠하리 멧세 등에는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jpnews | |
또한 도쿄 빅사이트, 지바 마쿠하리 멧세(幕張メッセ) 등 대형 전시장을 이용한 컨벤션 및 이벤트들도 매일같이 활발하게 열린다. 지난 해엔 해외 업체들의 대거 불참으로 빛이 바랬지만,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리는 도쿄 국제 모터쇼는 세계 3대 모터쇼 중 하나다. 도쿄 게임쇼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국제적 규모의 이벤트가 심심찮게 열릴 수 있는 공간을 일본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정부가 올해를 'mice의 해'로 선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데는 이런 풍부한 인프라의 뒷받침이 있었다.
그러나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다케하라 씨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꼽고 있는 싱가폴을 예로 들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 열리는 mice에 참가했을 때 과연 어떤 메리트를 얻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 참 힘들다. 싱가폴의 경우 정부가 아예 지원금을 주기도 하고, 또 참가해줘 고맙다고 파티를 열어줄 때도 있다. 눈에 바로 보이는, 참 알기 쉬운 메리트다. 하지만 일본은 정부가 나서서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들다. 구체적인 당근을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는 국제회의장의 경우 수용면적에서 규모의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교토의정서를 체결한 국립교토국제회관의 경우 가장 큰 회의실이 18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엔 충분할 듯 하지만 다케하라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싱가폴, 홍콩 등은 5000명이 한 번에 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 초대형 회의장을 몇 개나 갖추고 있다.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대형 회의장 및 종합 컨벤션 센터를 짓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에서는 파시피코 요코하마와 도쿄국제포럼 정도가 50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하드웨어적인 인프라가, mice 경쟁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콘크리트에서 인간으로'를 제창한 일본정부가, 그것도 재원마련을 위해 예산절감에 모든 신경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건물을 새로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케하라 씨도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mice 담당부서의 예산은 2009년도의 3억6천만엔에서 2010년도 4억5천만엔으로 늘어났다. 다른 부서가 깍느라 정신없는 상황에서 예산이 늘었다는 것은 일본정부도 그만큼 mice에는 힘을 쏟아보겠다는 반증일 것이다.
"마에하라 주무장관은 관광사업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 또 한 번 성공할 경우 비용대비 효과도 크다. 즉각적인 경제효과로 연결된다. 일본은 그나마 mice를 알게 모르게 해 왔던 경험이 있으니까 이런 축적된 소프트파워를 잘 활용해보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일본의 장점이라면 우선 풍부한 관광자원이 있다.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겨울스포츠와 여름스포츠를 거의 동시에 즐길 수 있을 뿐더러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온천관광지가 수백개나 된다. 그리고 세계 최고수준의 치안도 장점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mice에 빼놓을 수 없는 '시간'을 엄수하는 대중교통이 있다. 특히 전철, 지하철, 버스의 배차시간은 오차가 1분을 넘는 일이 거의 드물 정도로 완벽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한편 일본은 동아시아 mice 추진지역 및 국가들과의 공존에 대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 2010 japan mice year의 사업개요에는 '인재육성연수'와 '국내회의의 국제화'가 포함돼 있다.
다케하라 씨는 "일본은 그 간 수많은 전시회, 이벤트, 국제회의 등을 치르며 경험을 축적한 수준 높은 미팅 플래너가 많다. mice에 관심을 기울이는 아시아 각국의 인재들이 일본에서 이들에게 연수를 받는 것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내회의의 국제화는 말 그대로 일본 국내의 회의를 국제화시킨다는 의미다.
"일본에서는 수 많은 학술회의가 열린다. 최근 우리 관광청도 지원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이런 국내회의에 외국학자, 연구자들을 참가시켜 점차 국제회의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모든 나라로 그 대상을 확장시키면 힘드니까 먼저 가까운 한국, 중국, 대만 학자들을 초청해 국제학회로 만들어가는 시나리오를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을 동아시아 각국과의 mice 협력 접점으로 삼는다면, 올 해 이 학회가 도쿄에서 열린다면 내년에는 제주도에서 열고, 그 다음해엔 상하이에서 여는 식으로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협력하고 지원을 한다면 서로간의 관계가 돈독해지지 않을까 한다." 풍부한 맨파워와 소프트파워를 보유한 대형 '신인' 일본이 본격적으로 mice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국, 특히 제주도와 선의의 라이벌이 될지 아니면 피가 튀는 혈투를 벌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