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번역서를 출간했다. 일본의 저명한 호스피스 의사 모리츠 준코의 <僕が僕に還る旅/ 내가 나에게 돌아가는 여행>으로, 그 출간 기념회를 준비하느라 두 달여 동안 정신 없이 보냈는데, 아차, ‘긴자의 튀김 전문점을 가다’ 이후 <도쿄 거리 걷기>의 마지막 얘기를 정리하지 못한 게 생각났다. 늦었지만 이제야 글을 올린다.
일본 여행을 스시 때문에 좋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는 스시를 무척 좋아한다. 서울에서도 아프고 난 다음이나 입맛을 잃고 기운이 떨어졌을 땐 스시를 먹고 나서야 원기가 회복될 정도다.
그렇게 스시를 좋아하고 일본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으면서도 숨겨진(아시는 분은 다 아는) 보석 같은 이곳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해 여름 도쿄를 방문했을 때, 친지가 안내해준 곳이 바로 쓰키지(築地)라는 곳이었다. 긴자(銀座)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쓰키지는 우리나라의 노량진이나 가락동의 수산시장처럼 새벽이면 활기가 흘러 넘친다. 전국의 싱싱한 생선이 다 모이고 경매가 이뤄지며, 이들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모여든 부지런한 상인들과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이 시장에 생기를 부여하는 곳이다. 일본에서 가장 크다는 수산시장인 쓰키지. 아쉽게도 늦은 저녁시간이라(밤 10시경) 시장의 활기찬 모습은 보지 못했다.
시장 주변에는 음식점이나 술집, 찻집 등이 많았는데 특히 싱싱하고 맛있는 생선회나 스시를 파는 곳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밤시간이라 문을 연 가게가 적어 새벽의 활기는 느낄 수 없었지만, 우리를 안내한 지인의 단골집이라는 곳에 들어서니 늦은 시간임에도 테이블마다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맛있게 식사하며 한 잔 기울이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 우리가 갔던 스시잔마이 별관 입구와 메뉴판. 마침 그 때 가격을 50% 세일하는 행운을 만나기도~! ©jpnews | |
윤기 흐르는 밥알(샤리) 위에 얹은 생선살(네타)은 평소 내가 서울에서 즐겨먹던 스시에 비해 훨씬 두툼하고 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탱글탱글 싱싱하고 달달하면서도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내리던 그 맛이 생각나 배에서 꼬르륵, 난리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평소 같으면 ‘먹을까 말까’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비싼 ‘도로(참치 뱃살 중에서도 가장 맛있다는 부위. 서울에서는 한 조각에 만원 정도 한다)’도 거침없이 주문했다. 내용에 비해 가격이 착한 것은 기본.
새벽에 그곳에 간다면, 스시 매니아나 관광객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는 스시집은 보통 1시간, 어떨 땐 2, 3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는데, 복권에 당첨된 것 같은 자신의 차례가 왔어도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 생각해 느긋하게 앉아 젓가락질 할 상황이 못 된다고 한다. 천천히 스시의 맛을 음미하려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늦은 시간에 갈 것을 추천하고 싶다.
메뉴 고르는 데 자신이 없다면 오마카세(お任せ, 주방장이 추천하는 메뉴)를 선택하는 것도 요령이다. 두툼한 네타(요리 재료로 주로 밥 위에 얹는 생선살)에 놀라고 그 맛에 놀라는 쓰키지 스시. 그 맛 때문에 일본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제 정신이냐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솔직히 지금 내가 그런 심정이다. 꼴~깍~.
쓰키지 수산시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될 계획이라는데, 그 전에 다녀올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불고기(갈비)나 김치를 꼽는다면,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단연 스시(초밥)를 빼놓을 수가 없다. 우리의 불고기나 김치가 밥을 따로 먹어야 하는 데 비해 스시는 그것 한가지만으로도 훌륭한 식사가 된다.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일식집이 있고 스시가 빠지지 않는 메뉴인 것 같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의 김치나 불고기도 세계인들이 편안하게 시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될 날을 기다린다.
나에게 쓰키지를 안내해 준 사람은, 일본에 살면서 한국 음식점을 경영하는 교포 여성 김미진 씨였다. 새벽이면 쓰키지에 나가 싱싱한 재료를 구입해다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에게 어머니 손맛을 제공한다.
집 떠나 외국에 살다 보면 가장 생각나는 음식들, 된장찌개와 육개장, 김치볶음밥, 오징어덮밥/볶음 등이 <마마 하우스(가게 이름도 어머니 손맛을 생각나게 한다)>의 주 메뉴다. ‘가정식 백반’인 셈. 식재료는 최상품만을 고집하고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는 대신 말린 새우를 가루로 내어 양념으로 쓰며 갈치조림이 일품이라고 하니, 나도 꼭 맛보고 싶어진다.
일본에서는 공기밥이나 반찬을 추가 주문(お代わり、오카와리)하면 당연히 돈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마마 하우스에서는 그냥 준다. 손님이 달라는 대로 퍼주다 보니, 남는 게 있느냐며 오히려 손님들이 걱정해 줄 정도라고 한다.
그녀가 만드는 육개장과 김치 볶음밥은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진짜 엄마손맛’이라고 하는데, 다음에 도쿄에 가면 꼭 들러서 먹고 올 작정이다. 예쁜 세 딸과 함께 살아가는 그녀는 바쁜 틈을 쪼개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라고 한다. 노인 양로원 등을 다니며 틈틈이 봉사를 하는 그녀는, 몸은 고달파도 딸들이 건강하고 올바르게 커가는 모습에 힘든 줄도 모른다며 환하게 웃는다.
▲ 바다향이 진하게 퍼지는 성게알 스시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 서울에서는 한 조각에 보통 3,500원~5,000원 하는 관계로 언제나 거의 마지막에 한 두 조각 시켜먹곤 했지만, 이날은 여러 번…행복을 만끽했다~ㅎㅎ) | |
▲ 탱글거릴 정도로 싱싱하고 단 맛이 돌았던 아마에비 스시 ©jpnews | |
▲ 1층의 카운터 식 좌석. 의자 아랫부분에 손님이 물건을 놔두고 편하게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한 받침이 달려 있다. ©jpnews | |
▲마마 하우스를 경영하며 봉사활동도 열심인 김미진 씨. 세 딸과 함께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jpnews | |
▲ 우리가 들어갔던 ‘스시잔마이’의 종업원.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묻자 폼을 있는 대로 잡는다. © jpnews | |
▲ 쓰키즤는 도쿄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면서 곧바로 태평양 연안과 맞닿아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가 ‘도쿄해양대학’으로 이곳에는 대학원도 있다. | |
▲ 내가 머물렀던 신주쿠 프린스 호텔 맞은편에 있는 회전초밥집이다. 3박4일 있는 동안 두 번 다녀왔다. 마침 이곳에서도 일부 품목에 한해 50% 세일 중이었다. ©jpnew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