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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가락 희아, "미래 걱정하지 않아요"
[인터뷰] 세상에서 가장 작은 피아니스트 이희아 도쿄에서 만나다
 
안민정 기자
"희아 씨는 오렌지 주스로 하겠어요?"
"아뇨. 저도 맥주로 주세요. 시원하게~"
 
기억 속 이희아는 언제나 작은 소녀였다. 작은 키, 작은 두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소녀. 세상에서 제일 작은 피아니스트, 네 손가락 이희아가 어느 새 맥주 맛을 아는 스물 다섯 처녀가 되어 있었다.
 
이희아는 1급 척추장애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선천적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양 손에 손가락이 두 개 뿐이고, 다리 장애가 심해 무릎 아래로 절단수술을 받았다. 지능 발달이 늦어 아직도 산수는 어렵고 돈 계산도 못한다. 그러나 이희아는 장애를 극복하고,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세계적인 장애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이희아, 일본을 찾다

지난 5월 11일, 하네다 공항 tv 카메라가 출국장을 빠져 나오는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출국장을 빠져나오던 사람들은 카메라에 깜짝 놀라면서도 "어머 누가 오나봐~"라며 궁금해하는 모습. 호기심많은 사람들은 카메라를 든 기자에게 직접 다가와 묻는다. "누가 오는 거예요?"
 
카메라 기자는 귀찮은 듯 말한다. "아.. 한국의 피아니스트예요. 이희아라고" 그런데 물어본 일본인의 눈이 반짝한다. 한국에서는 벌써 십 년 넘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유명인이지만, 일본에서는 과연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했더니 금세 알아챈다. "tv에서 봤어요.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그 분이 오시는 구나"
 
그리고 비행기 도착 시간으로부터 한 40분 쯤 지났을까. 휠체어에 탄 작은 몸의 이희아가 등장했다. 카메라 기자들은 재빨리 달려가 이희아 모습을 담았다. 환하게 웃는 희아. 어느새 준비된 꽃다발이 전해지고, 공항 안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그녀를 맞이했다.

▲ 하네다 공항을 빠져나오고 있는 이희아     ©jpnews/ hiroki,yamamoto 
 
이희아가 일본을 찾은 그 날 밤에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조촐한 환영파티가 열렸다. 매년 이희아의 공연을 돕고 있는 사람들과 이희아 특집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는 일본 방송국 스텝들이 모였다. 가와사키 시에 있는 연변 요리 전문점에 한식과 비슷한 듯한 음식이 식탁 위를 물들였다.
 
사람들이 음료를 주문하기 시작하자 이희아는 당당하게 "저도 맥주 주세요. 시원하게"라고 말했다. 가게 주인은 걱정스러운 듯 "주스도 있어요"라고 말하지만 이희아는 웃으며 맥주를 가리킨다. 
 
"나이가 든 걸 느끼냐구요? 음.. 별로. 근데 20대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맥주도 마실 수 있고"

이희아는 가끔 해외 공연에서 이렇게 파티를 하게 되면 술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얼핏 얼굴만 보면 아직도 앳된 모습 그대로지만 그녀도 우리처럼 똑같이 나이를 먹고 있었다.
 
"이번 일본 공연 제일 마지막이 홋카이도 삿포로거든요. 아직 한 번도 못 가본 곳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특히 삿포로 맥주는 맛을 보려구요. 하하"
 
이희아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 없이 자기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을 정도로 밝은 성격이다. 보통이라면 얼굴이 알려지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많을텐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불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스스로를 '방송 체질'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제 어렸을 때 꿈이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언니같은 애국자가 되는 거였어요. (웃음) 그런데 이렇게 해외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서 느낀건데 해외에 나오면 애국심이 생기는 것 같더라구요. 저를 통해서 한국을 알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기도 하고. 어렸을 때 꿈을 이루게 된 것 같아 행복해요"
 
모든 것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생각하니 피부가 절로 좋아진다. 가까이서 봐도 주름하나 없는 뽀얀 피부. 스물 다섯인 지금도 10대 소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스트레스를 거의 안 받아요. 밥도 한국 음식만 먹고, 잠도 정말 많이 자요. 얼마나 자냐구요? 밤 10시에 자면 아침 10시에 일어날 정도? (웃음) 비행기 오래타면 몸에 부담되지 않냐구요? 아니요. 기내식 두 번 먹을 수 있어서 좋은 걸요" 만사 걱정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 맥주도 곧 잘 마시던 이희아 씨      ©jpnews/ hiroki,yamamoto 

일본에는 1996년 초청을 받아 처음 왔다. 이희아가 11살 때 일이다. 한류 열풍이 불기 전, 월드컵도 개최하기 전의 일이었지만 열한 살 이희아의 눈에는 일본이 좋아보였다고 한다. 그 후로 10년이 지난 2005년 다시 초청을 받아 일본에 오게 된 이희아는 이후 일 년에 한 번씩 일본 각 지역에서 연주회를 열고 있다.
 
"일본하면 깨끗하다는 이미지가 있고, 일본인들은 정말 정중하고 친절했어요. 물건 잘 만들고 정직하고... 그런 반면에 감정을 억누르고 닫혀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제 공연을 통해서 일본분들도 한국 사람 같은 자연스러운 스마일, 자유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이희아는 도쿄 이외에도 나고야, 히로시마, 홋카이도 삿포로 등 지역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히로시마와 삿포로는 처음 가보는 곳.
 
"히로시마에는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이고 평화기념관이 있잖아요. 시간이 되면 꼭 들러보고 싶어요. 그리고 삿포로는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영화 '러브레터'를 촬영했던 곳이니까요"
 
tv로 본 영화 '러브레터'의 깨끗한 이미지가 삿포로의 이미지로 남았다. 그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일본 여자 배우는 나카야마 미호가 되었다. 
 
스물 다섯 해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세계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고 관객으로부터 박수를 받았을 때다. 어떤 나라에 가던지 피아노 연주는 물론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를 부르는 데, 서로 아는 노래를 통해 세계인들과 교류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반대로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때를 묻자 얼굴이 어두워진다.
 
"어렸을 때 아이들이 많이 놀리고 했지만 슬프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그래 내가 귀신이다' 이라고 말하며 다가갔죠. 근데, 살면서 가장 슬펐던 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였어요. 억울하게 돌아가셨잖아요. 노무현 대통령은 장애인 복지에도 많이 신경 써 주셨던 분인데... 제 가슴에 항상 남아있어요" 스물 다섯 이희아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을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날, 슬펐던 사건으로 마음에 품었다.
 
▲ 이희아 도쿄 연주회     ©jpnews/ hiroki,yamamoto 
 
2006년부터 매년 일본 각 지역을 돌면서 공연을 하면서 일본 활동을 후원하는 사람도 생겼다. 가와사키시 이이즈카 마사요시 의원도 그 중 한 명이다. 한국 부천시와 자매도시인 가와사키 시의 우호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부천 명예 시민으로 인정받은 독특한 이력의 의원. 
 
2008년 가와사키 시에서 공연을 하면서 알게된 이이즈카 의원은 이희아의 피아노 실력도 실력이지만, 장애를 극복한 것에 감탄했다. 이후 가와사키 시에서 공연을 할 때는 언제나 든든한 서포터이자 조언자가 되고 있다. 
 
일본 내 가장 든든한 지원자는 코리아 아트 센터 이철우 대표. 2006년부터 매년 일본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일본 내 매니지먼트를 진행하고 있다. 재일교포 3세인 이철우 대표는 이희아는 물론, 희아를 피아니스트로 키운 어머니 정신을 일본 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한다고 생각했다.
 
"이희아 씨는 밝아서 좋아요. 보통 몸이 불편한 사람은 사람과 만나기 싫어하고 피하는 데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재일교포들도 희아씨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재일교포 중에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컴플렉스에 장애까지 이중으로 제한을 받는 경우도 있죠. 그 분들이 희아를 보고 희망을 얻었다며 편지도 쓰고 연락도 하고 있습니다" 이철우 씨는 앞으로도 희아와 어머니를 더 많이 소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이희아와 어머니 우갑순 씨     ©jpnews/ hiroki,yamamoto 
 
사회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겠어요!

이희아를 이야기하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존재가 희아를 세계 장애의 희망으로 만든 어머니 우갑순 씨다. 건반을 누를 힘은 물론, 연필 쥘 힘도 없었던 아이에게 이름이라도 쓸 수 있는 근력을 기르기 위해 억지로 시켰던 피아노. 그러나 지금은 세계에 희망을 전하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어머니와 저는 실과 바늘같이 떨어질 수 없는 존재죠. 어머니는 악보를 읽을 수 있는 재능이 없는 저를 깨우치게 해 주셨고, 지금까지 키워주셨어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해외에 공연을 나올 때마다 어머니를 모셔오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있어요. 올해도 마침 어버이날이 있는 5월에 일본에 오게 되어 어머니가 '최고의 선물을 해줬구나'라며 기뻐하셨어요"라며 이희아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서로를 실과 바늘이라고 표현하는 어머니와 딸이지만, 언제까지라도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희아는 5년 전 쯤, 퇴행성 관절염으로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글루코사민 처방으로 많이 회복되었지만, 약을 끊게 되면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다.
 
지금도 이희아는 공연을 앞두고 연습 시간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연습을 많이 하면, 진짜 연주회에 힘이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10대 때 하루 10시간 연습하던 시간이 지금은 3~4시간으로 줄었다. 하지만, 희아와 어머니는 미래를 전혀 걱정하고 있지 않았다. 
 
"처음엔 물론 희아의 미래를 많이 걱정했습니다. 내가 없으면 우리 희아가 어떻게 될까. 하지만 지금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머니 우갑선 씨가 말했다. '행여나 어머니가 아프시면 어떻게 할까' 이희아도 걱정하지 않는다. 이희아도 어머니도 아직 살아보지 못한 미래를 걱정하는 것보다 현재를 감사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딸의 미래를 위해 결혼이라는 선택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 더 나아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나 삶의 목적이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헬렌 켈러나 마더 테레사 같이 평생 독신으로 사회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요. 저도 희아도 우리는 사회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유관순 언니 같은 애국자가 되고 싶었고, 헬렌 켈러 같은 사회 봉사자를 꿈꾸었다는 이희아. 그녀는 비록 만족할 만한 오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꿈을 평생을 통해 이루고 있는 반짝이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 일본 거리를 걷고 있는 이희아와 어머니     ©jpnews/ hiroki,yamamoto 

이희아 도쿄 연주회 현장 기사도 함께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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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5/27 [17:38]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맑고 향기로운 꽃 씨보이 10/05/28 [12:49]
지난 해, 봉하에서 문상을 하며 흐느껴 울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희아 씨, 지금처럼 불의에 물들지 않고 맑고 향기로운 꽃으로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희아 씨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많은 유혹이 있을 터인데도 이렇게 반듯하게 이끌어주신 어머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저도 노무현 대통령 서거가 제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 아닌가 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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