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들어 우리부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해결되었다. 딸 비와 아들 새벽이가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 1층에 있는 보육원에 다니게 된것. 그전까지는 가까워도 도보 10분 이상 거리여서 보육원에 데려다 주고 데려 오는 문제가 항상 걸렸었다.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이 이동은 당연히 불편하지만 아이들과의 동행은 불편을 넘어 위험하기까지하다. 우리 부부는 그래서 같은 건물에 보육원이 있는 현재의 맨션으로 들어오기 위해 2년 이상 줄기차게 노력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집은 도쿄도에서 운영하는 '도영주택'이다. 도쿄도가 설립한 도쿄도주택공급공사가 운영하기 때문에 야칭(월세)도 저렴하다.
일본의 부동산 임대료는 무척 비싸다. 우리나라와 같은 전세제도도 없다.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은 상당히 비싼 야칭을 지불하고 집을 빌려야만 하는데 일본에서 집을 구하기는 그리 쉽지만은 않다. 또 '레이킹'이다. '시키킹'이다 해서 처음 집을 계약할 때 들어가는 돈도 상당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영주택에 들어가길 원하고 그만큼 경쟁도 높다.
(편집자주: 레이킹- 집주인에게 주는 사례금으로 월세 1개월치, 시키킹- 나중에 청소 및 수리를 위해 받아두는 보증금으로 월세 1개월 혹은 2개월치를 받는다)
우리는 현재의 집에 입주하기 위해 2년간 부단히 같은 장소에 신청을 했었다. 다행히 몇차례에 걸쳐 고배(?)를 마신 뒤 현재의 집에 입주하는데 성공했다. 야칭도 매우 저렴해서 같은 조건의 민간주택과 비교하면 3/1 내지 4/1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세대주의 수입에 따라 금액이 조정된다.
예를 들어 도영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이 실직을 한다면 그 다음해부터는 야칭도 감액된다. 또 세대주가 부양하는 가족이 늘어도 야칭의 조절이 가능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도쿄도의 도영주택에서 좋은 이미지를 받은 것은 그 공평성과 함께 '더불어 산다.'는 것이다.
도영주택은 도쿄도에 일정기간 이상 (대개의 경우 3 년이상) 살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률이 매우 높다.그래서 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 보완제도를 갖추고 있다.
보통 도영주택을 신청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하나는 추첨식이고 다른 하나는 포인트식이다. 추첨식은 누구나 조건이 되는 사람(도쿄도 주거 기간)이상이 되면 신청이 가능하다. 이 경우 장애인이나 고령자들, 사회적 약자에게는 보통 사람에 비해 7배의 추첨기회가 부여된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은 번호표를 한 장 받는데 비하여 장애인이나 고령자는 번호표를 7 장 받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영주택에 장애인이나 고령자가 입주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보통 경쟁률이 100 대1 이상이고 특정 지역의 경우에는 1,000 대 1을 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7 배의 추첨기회라도 경쟁률이 조금 하락할 뿐이다.
다른 방법은 포인트식이다. 이는 일정 조건이 되는 사람들에게 일정 점수를 매기는 방법을 통해 가장 점수가 높은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입주를 허용하는 방식이다.예를 들면 소득수준, 세대원 중 장애인이나 고령자의 여부, 부양 자녀의 수, 세대주의 연령등에 점수를 부여해 가장 높은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입주를 하게 하는 방식이다.
물론 점수가 높은사람이 사회적으로 곤란한 상태에 있는 확률이 높다. 우리도 이 포인트식으로 입주를 했다. 그런데 단지 이런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큰 의미에서는 이 두가지 방법에 속하지만 세부적으로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 입주자를 모집한다.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신혼부부만을 위한 신청을 받는다던지 자녀 수의 제한을 두며 신청을 받는 경우도 있고 젊은 부부만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는 경우도 있다. 또 '나홀로 세대'가 신청 가능한 조건도 있고 도영주택에서 독거노인이 혼자 살다 숨진 기분나쁜(?) 주택만을 한정해 신청자를 모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신청 주택이 전혀 별개의 주택이 아니다. 예를 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의 경우 건물 3 개동에 약 600 세대가 함께 살고 있다. 이 세대 중 우리 같이 포인트식으로 입주한 사람도 있고 추첨식으로 입주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옆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입주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모두 도영주택에 입성 가능한 운이 좋은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언젠가 한국의 어느 신문에서 같은 아파트임에도 임대주택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다니기 싫다며 다른 동 사람들이 별개의 출입구를 만들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이 기사의 아파트는 심한 경우일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임대주택 제도는 그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둘로 나누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어느 동네에 사는가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갈리고, 같은 동네라도 임대 아파트인지 일반 아파트인지에 따라 신분이 갈리는 사회가 진정 더불어 사는 사회인지 궁금하다.
장애인, 고령자, 한부모 가족등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국가가 또는 사회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더불어 함께 살자'라는 취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 '더불어 살자'가 '그냥 도와 줄테니 당신들끼리 살아라'가 된다면 그 배려가 정말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볼일이다.
이는 비단 주택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많은 사회복지제도 중 상당수가 이런 신분 나누기나 2등 국민 만들기에 좋은 전달체계를 갖추고 있다. 같은 예산과 노력을 들이더라도 우리나라의 임대주택과 일본 도쿄의 도영주택의 차이는 매우 크다. 나는 한 푼의 도움보다는 사회속에서 더불어 사는 장애인이고 싶다.
p.s : 일본의 주택 정책에는 임대료가 비싼 민간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정 소득이하거나 세대수가 많을 경우 야칭을 보조해주는 '주택 조성금' 제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