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이 9월 14일로 예정된 민주당 대표선거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로써 민주당 대표선거는 간 나오토 현 총리와 오자와 전 간사장의 대결로 압축됐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매력적인 대진표다.
또 일본국민들을 위해서도 이 두 사람이 전면에 나서 정책논쟁을 벌이는 편이 낫다. 180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두 후보자의 정책논쟁을 통해 민주당의 정책과 이념이 어떤 것인지 국민들이 안다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민주당은 '내각총해산=중의원 총선거'를 치르지 않는다. 총선거를 치를 경우 과반수 획득이 어려워 질 수 있다. 참의원 선거와 마찬가지로 대패의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기자가 얼마전에 만난 한 중의원은 대표선거 직후의 총선거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손을 흔들면서 "없다, 없다. 어떻게 잡은 정권인데..."라는 말을 했었다. 이 말은 곧 총선거를 치를 경우 민주당이 패배할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책은 물론 그 인물 캐릭터마저 양 극점에 서 있는 간 나오토와 오자와 이치로가 정정당당하게 토론을 벌여 그 내용을 국민들이 아는 것이 중요해진다.
게다가 간 총리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토론의 달인이요, 논객이다. 재무성 장관 이후부터 발언을 삼가하는 경향을 보여왔지만 오자와 씨와의 토론에서는 예전의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대표선거에서 낙선하면 모든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룹계파로 본다면 간 총리가 절대적으로 열세다. 간 그룹계 의원은 50명에 불과하며 간 총리는 지지하겠다고 나선 마에하라 세이지 그룹(40명), 노다 요시히코 그룹(30명)을 합쳐봐야 오자와 그룹 150명에 못미친다.
게다가 오자와 그룹에 이어 당내 최대 계파로 불리는 하토야마 유키오 그룹(60명)이 8월 19일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서 얼마전 가진 연수회에서 오자와 지지를 표명했다. 또 오자와 씨 스스로가 구(旧) 민사당 그룹 및 구 사회당 그룹, 하타 그룹 등에 지지를 요청하고 나섰다.
민사그룹과 하타 그룹은 오자와 씨가 자민당을 나와 자유당, 신진당 등을 만들었을 때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또한 구 사회당 그룹의 최대 실력자로 불리는 고시이시 아즈마 의원은 오자와 의원의 복심으로 불린다.
하지만 민주당 대표선거는 의원들의 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포인트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이 선거는 합계 1,224포인트 중 과반수를 획득하는 후보가 대표로 선출된다.
물론 1인당 2포인트가 부여되는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지방의원 0.04포인트, 당원 및 서포터 0.0008포인트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지만 지방의원과 당원수가 국회의원보다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단순비교가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
7월말 현재 민주당에 등록된 국회의원은 412명이다. 반면 지방의원은 2,382명이며 당원 및 서포터는 34만 2,493명에 이른다. 이들은 포인트로 환산하면 국회의원 824, 지방의원 100, 당원 및 서포터 300로 합계 1,224포인트가 된다.
이는 곧 당내의원간 세력분포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에 놓여있는 간 총리지만 오자와 씨와의 정책논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히 보여준다면 지방의원 및 당원들의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 씨는 이번 대표선거에서 만큼은 '무언의 총리'가 아닌 '토론의 명수'로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럴 경우 필연적으로 오자와 씨의 정치자금 의혹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오자와의 정치자금 의혹은 법적으로는 불기소 판정을 받았지만(현재 검찰심사회에 회부된 상태) 여전히 '설명책임' 논란에 빠진 상태다.
일본언론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번 오자와 씨의 대표선거 출마에 강한 불만을 털어 놓고 있으면서도 "오자와의 정치자금 규정법 의혹에 대한 간 총리의 날카로운 추궁을 기대한다"(아사히신문 27일자)고 말할 정도다.
언론 입장에서도 답답하다. 재작년 9월부터 근 2년간 검찰은 물론 언론들도 오자와의 주변을 샅샅히 파헤쳤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반인들로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오자와 씨에 대해 불기소부당, 기소상당 등의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법적으로 오자와는 결백하다는 것이 현재까지 내려진 결론이다.
한 거대언론사의 사회부 기자는 일전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심정적으로 본다면 오자와 씨가 분명히 제네콘들한테 뇌물받고 접대받고 그런 건 확실한 거 같은데 아무리 뒤져봐도 안 나오니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라고 푸념을 늘어놓은 바 있다.
'오자와의 이와테현 후원회 - 그 어두운 흑막'을 두 달에 걸쳐 취재했던 주간문춘의 h 기자 역시 "의혹투성였지만, 그(오자와)가 직접 관여했다는 결정적인 물증은 없어서 결국 조금은 김빠진 기사가 돼 버렸다"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국민에 대한 설명책임'이다. 하지만 오자와 씨는 국회증인으로 출석한 적이 한번도 없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자민당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13억엔에 대해 해명한 바 있지만 오자와 씨의 경우 민주당이 증인심문에 응하지 않아 한번도 국회 증언대에 서지 않았다.
즉 언론들은 오자와의 출마가 탐탁치 않으면서도 '논객' 간 나오토가 이번 대표선거에서 오자와를 상대로 정치자금을 추궁한다면 오자와 씨 역시 그간의 의혹에 대해 털어놓을 수 밖에 없다고 전망하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 이번 대표선거는 친관료와 탈관료의 맞대결이기도 하다. 보통이라면 탈관료가 간 나오토, 친관료가 오자와 이치로라고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지에 불과하다.
인물을 본다면 확실히 자민당 다나카 파벌이었던 오자와가 구 정치의 대명사로 비춰진다. 그에 비해 간 나오토는 시민활동가 출신으로 후생성 장관 시절 약물피해 명단을 발표하는 등 관료주의 타파 및 정보공개에 열심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간 총리는 하토야마 내각 시절 재무성 장관 및 부총리를 역임하면서 관료주의에 물들어갔다. 그가 참의원 선거 당시 내 건 소비세 10% 인상안 역시 관료들의 렉쳐(교습)를 받았기 때문이다.
정치평론가 이토 아쓰오 씨는 "야당시절 탈관료를 주장하는 사람들, 특히 시민활동가처럼 리버럴 쪽 출신이 권력을 잡았을 때 관료들과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며 "공무원제도개혁을 주장하는 와타나베 요시미 우리모두의 당 대표가 민주당과는 절대 같이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다 그런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금 간 나오토 내각은 탈관료가 아니라 친관료적 색채를 띠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이다. 그는 하토야마 내각시절 행정개혁쇄신담당장관을 맡았지만 공무원개혁에 실패했다. 오히려 그는 "관료들과의 마찰을 피하는 것이 일본을 위해 바람직하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관료들의 교육은 그만큼 엄청나다.
오죽하면 사형폐지운동의 대모로 불리웠던 지바 게이코 법무성 장관이 사형집행 명령서에 서명을 했을까. 그녀를 잘 아는 시민운동가들은 "설마설마했는데 지바 법무상이 그럴 줄 몰랐다"며 "그녀는 법무성 형사국으로부터 주 1회씩 사형집행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렉쳐를 받고 결국 굴복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한다. 관료들의 교육은 한 인간이 일생동안 품어왔던 신념마저도 버리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 민주당 내에서 나홀로 탈관료를 외치고 있는 사람이 오자와 씨다. 그는 자민당 시절부터 관료주의의 장점과 폐해를 동시에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관료들의 프로의식이 일본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해 왔다고 말하면서도 "이 나라는 관료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국민의 뜻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이 관료들을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영국식 의원내각제를 본 따 각 부서에 장관 1명, 차관 2명을 정치인으로 배치하는 관료조직 구조개혁안을 90년대 말에 이미 구상했다. 물론 그는 이런 생각을 근 십여년간 한번도 굽힌 적이 없다.
이는 공무원개혁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와타나베 요시미 모두의 당 대표의 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참의원 선거 직후 부분연립안을 내 놓은 간 총리에 대해 "지금의 간 내각과는 절대 안 한다"면서 "우리가 주장하는 공무원제도개혁을 100% 받아들인다면 생각해 보겠다" 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모두의 당'의 공무원제도 개혁과 야당시절 민주당이 표명했던 행정개혁제도는 거의 차이가 없다. 즉 매니페스토(정권공약)대로만 한다면 둘의 연립은 가능하다. 하지만 간 내각은 우리모두의 당의 이런 주장을 "무리한 요구"라며 일축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한다면 '친(親) 관료주의 간 내각'이야말로 구 정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자와 이치로는 어떨까? 와타나베 대표는 오자와 선생이라면 신뢰할 수 있다며 몇 번의 공식석상에서 오자와를 높이 평가하는 발언을 해 왔다.
작년 5월 기자도 참가했던 도내에서 한 강연회에서 와타나베 대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오자와 선생이 매일같이 와 주셨다. 그 마음도 마음이지만 오자와 선생의 굽히지 않는 '탈관료 구조개혁'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말했다.
이미지적으로 보자면 구 정치의 대부인 오자와 이치로지만 그의 사상이나 정책은 언제나 "국민생활이 제일"이라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한때 민주당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했던 이 표어는 지금 간 총리가 만든 "원기왕성한 일본을 부활시킨다"에 밀려버렸지만, 전자가 후자보다 '민주당'스럽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 '원기왕성한 일본을 부활시킨다'에 밀린 '국민생활이 제일'(포스터 우측 하단) ©jpnews데이터베이스 | |
또한 오자와 씨는 정보공개에 있어서도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며 거대언론사들로 구성된 일본의 기자클럽제도에 회의적인 입장을 폈다.
본지가 이미 보도했지만 그와 그의 측근들은 작년 5월 민주당 대표직을 사임할 즈음 "거대언론들은 제대로 취재를 하지도 않고 몇 마디만 따서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 윤색한다"고 말했다.
사임기자회견에서도 모 거대언론사 기자가 '책임을 지고 의원사퇴를 할 생각은 없냐?' 고 질문했을때 그는 "제대로 좀 알아보고 물어라. 질문에도 정도가 있다. 너희들이 취재만 제대로 했다면 그런 질문을 못할 것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을 정도로 언론보도에 민감하다.
이런 개인적인 원한(?)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오자와 씨는 자신이 간사장으로 임명되자마자 즉시 정례기자회견(매주 월요일 3시)을 완전개방했다. 여당 간사장의 기자회견이 모든 이에게 오픈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이 조치로 인해 그 언론종사자도 명함 한 장만으로 자유롭게 기자회견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오카다 가쓰야 외무성 장관, 하라구치 가즈히로 총무성 장관의 기자클럽 개방이 한 때 화제에 올랐었지만 오자와 씨는 이들보다 2개월이나 빠른 09년 10월부터 이미 개방했었던 것이다.
결국 그의 구 정치인적 이미지는 사실과 많이 다른 셈이다. 기자 역시 그를 지근거리에서 몇 번 봤지만 상당한 오픈마인드의 소유자였고, 또 기자들의 질문에도 다른 정치인들에 비한다면 솔직하게 답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말한 내용들은 다음날 아침 신문이나 잡지 등에는 아주 간략하게 소개되거나 혹은 그 맥락마저 다른 경우가 많았다.
저널리스트 우에스기 다카시는 일전에 "'오자와 악인론'은 일종의 유행"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무리 오자와가 좋은 행동이나 말을 하더라도 신문지상에는 '악인'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표선거에 관심이 많은 유권자들에게는 오자와 이치로라는 인물이 상당히 극적으로 다가갈 가능성도 크다. 물론 오자와 씨는 06년 4월 간 나오토 씨와 대표선거를 실시했던 전력이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야당이었고 선거인단도 국회의원으로 한정됐었기 때문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119대 72로 오자와 승리)
그러나 9월에 치뤄질 대표선거는 일본의 총리대신을 뽑는 중요한 선거라 각 민영방송국은 물론 민주당 홈페이지에도 생중계 토론을 그대로 내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어 누구라도 쉽게 둘의 토론을 지켜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대표선거는 유권자 스스로 누가 구 정치인인지, 과연 오자와는 언론이 전하는 대로 퇴출돼야 할 정치인인지 등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편 오자와 정권이 탄생한다면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증권가 루머도 들려오고 있다. 외국계 증권회사 등은 오자와 전 간사장이 승리할 경우 주식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분석한 리포트를 착착 내 놓고 있다.
이들 리포트는 공통적으로 "지금 현재로서는 여론지지를 얻고 있는 간 씨가 승리한다고 본다"면서도 06년 오자와 vs 간 대결에서 오자와가 승리했고 과거 신진당 당수선거 등에서도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과 간 씨가 민주당 대표선거에서 3승 4패로 부진하다는 점을 들어 "간 씨가 유리하지만 오자와 씨에게도 승기는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이 리포트는 "오자와 씨가 승리한다면 내각지지율은 더 낮아진다. 오자와 총리는 지지율 회복을 위해 대형경기대책을 내 놓을 가능성이 높아 주식시장 입장에서 본다면 오자와 씨가 승리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게이단렌(한국의 전경련에 해당) 등도 오자와 총리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게이단렌의 한 관계자는 중국계 언론사 서치나의 취재에 "오자와 씨는 중국 고위층과 두터운 파이프를 가지고 있어 중국의 인프라 건설협력, 환경기술지원 등에 일본기업이 상당수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대표선거는, 그래서 단순한 정당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아니라 일본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이벤트가 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번 선거는 관료주의와 결별하느냐 융합하느냐, 국민의 생활이냐 원기왕성했던 과거의 일본(성장주의)으로 돌아가느냐, 공무원제도 개혁 여부, 선거후 정계개편 등 당면한 일본의 모든 과제들이 판가름나는 선거이기도 하다.
과연 누가 일본의 미래를 책임질 수장이 될 것인가? 그 운명의 순간이 3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 한 때 한마음 한뜻으로 정권창출을 노렸던 민주당 중진들도 이번 대표선거에서는 제대로 마음먹고 싸울 것으로 보인다. 대표선거 이후 '민주당 분열=대연립'의 가능성도 있다고 하는데 과연..... ©jpnews데이터베이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