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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진짜 이유
[서평]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김현근 기자
작년 한일양국을 서로 방문한 숫자가 각각 24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재작년에는 원화가 강세여서 일본에 한국 관광객이 넘쳐났고, 작년에는 원화가치의 폭락으로 일본관광객이 한국에 쇄도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제 한쪽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한류, 일류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로 변모했다. 90년대 후반 일본문화 개방과 함께 문화침략이 시작된다고 걱정했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그러나 시계를 65년전으로 돌려보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도상에 없었고, 일본은 조선,만주,중국,필리핀,인도네시아,버마(현 미얀마)를 집어삼키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등장한 미국과 거대한 태평양을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군은 수나라,당나라 등 사절단을 파견해 배우러 갔던 중국대륙을 마음대로 유린하고 있었으며 만주에는 괴뢰국을 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제국으로 미국에 맞먹는 생산력을 자랑하던 소비에트 연방과 국경선을 맞대고 국지적인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편, 조선은 온통 어두운 기억뿐이다. 조선은 일본이 광기에 젖은 전쟁을 확대하면 할수록 끝없는 수탈과 동원이 대상이 되었다.  한때 일본에 반기를 들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항공기를 만들고 항공모함을 띄우며 제국을 확대해가는 일본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많은 지식인들은 앞장 서서 천황을 위해 입대를 독려하고 있었다. 마을 곳곳이 학도병이나 근로 정신대,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흉흉했다. 그렇게 끌려간 조선인들은 일본의 패전 후 전장에서 포로로 붙잡힌 뒤 b급 전범으로 몰려 강제처형을 당했다.
 
한때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흘러간 수많은 문화를 떠올리면 일제 식민지 시대는 치욕의 시대였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증오와 분노가 섞인 채로 그들의 잔혹함을 드러내는데 주력했을 뿐, 조선을 지배했던 물리력의 실체, 일본군이 어떤 조직인지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았다. 해방 후 54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일본군이라고 하면 군국주의와 야스쿠니, 강제 징용, 징병 기억만 남았을 뿐 모든 것은 봉인되었다.

▲ 미 해군 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열린 항복문서 서명식  ©jpnews
책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일본군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 책을 보면 '조선을 억누르고 억압했던 일본군이 실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조직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책의 저자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이 패배할 수 밖에 없던 이유를 6개의 전투를 예를 들어서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격돌한 4개 주요 전투(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작전, 레이테 해전, 오키나와 전투) 이외에 소련군과 맞붙은 '노몬한 사건', 도박에 가까웠던 인도 진격 작전 '임팔 작전' 등이 그것이다.

이 전투의 실상을 보면 흔히 일본 패망의 주 요인으로 거론되는 '원폭투하'와 미일간의 생산력의 차이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근본적으로 러일전쟁 후 일본군은 아무런 진보가 없었다는 점이 태평양전쟁의 승패를 갈랐다고 본다. 결정적으로 일본군 조직이 합리성이나 실패한 전투에 대한 최소한의 학습도 없이 오로지 정신력만 가지고 돌격한 결과, 무참히 그리고 무기력하게 전투에서 패배해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러일전쟁 후 아무런 진보를 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일본의 너무 빨랐던 성공에 그 원인이 있다. 동양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열강을 따라잡는데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몇천년간 동양의 패권을 쥐고 있던 중국을 청일전쟁으로 간단하게 물리치고, 열강 중 하나인 러시아까지 거꾸러뜨린다.
 
특히 러일전쟁의 승리는 일본 스스로도 놀란 경험이었다. 노기 마레스케 육군대장이 이끌었던 뤼순전투는 병력 13만 명 중 5만 9000명을 희생하는 막대한 피해를 냈지만 결국 승리했고, 그 결과 총검을 들고 돌격하는 백병전이 향후 일본 육군의 주요 교범으로 자리잡게 된다. 
 
해군에게도 러일전쟁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끄는 연합함대가 당시 최강이라 불리던 발틱함대를 괴멸시킴으로써 함대끼리의 결전을 중심으로한 함포주의가 주요 교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본은 이후 유럽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동안, 무주공산이었던 아시아지역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황군의 깃발을 꽂았다. 특히 일본 육군은 만주,중국에 이어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도 백병총검으로 연승을 거두자, 백병총검돌격주의가 하나의 경전처럼 떠받들어졌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제대로 된 근대화를 겪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했거나 소수의 서구 열강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을 뿐 제대로 된 상대라고는 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후 일본군이 본격적으로 맞붙게 되는 미국,소련은 그전에 경험했던 전투와 차원이 달랐다는 점이다. 당시 소련,영국,미국의 군대는 1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 깨달은 전술을 중심으로 새롭게 개편된 상태였다. 지상전에서는 탱크 및 기계화 사단 중심으로 한 물량전으로 재편되었고, 해상전도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항공전으로 변모한 것이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은 본격적인 상대인 미군과 맞붙은 뒤로 그들의 전술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드러낸다. 만세돌격전으로 일관했던 일본 육군은 미군의 기계화 화력에 몰살당하기 일쑤였고, 항공전에 미숙한 일본해군은 함대결전에만 치중한 나머지 미국에 앞선 전투력을 가지고도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공모함 4척을 모두 잃었다.

▲   오키나와에 상륙하는 미군  ©jpnews
 
이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학습기각(실패 후 기존의 틀린 지식을 버리고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하는 것)도 게을리하는 조직이었다. 일본 육군은 미군과 지상에서 본격적으로 맞붙은 과달카날전 패배 이후 화력을 중시할 필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총검돌격주의로 일관했다.
 
특히 물적자원보다 인적자원을 구하는데 돈도 적게 들 뿐 아니라 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점령지에서 끌고간 사람들을 무작정 전선에 투입시켰다. 사정은 해군도 마찬가지였다. 미드웨이 패전 이후 항공모함의 증강을 꾀하면서도, 대함거포주의를 구현한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의 46센티미터 대포가 위력을 발휘할 때가 올  것이라고 끝까지 믿었다.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은 각각의 작전이나 전투를 왜 하는 것인지 목적조차 불분명했다. 육군은 소련을 주적으로 생각했음에 비해 해군은 미국을 주적으로 생각했으며 이 차이는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평행선을 달렸고, 조직인사에서도 합리적인 판단보다 인간관계 및 인맥을 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전쟁에 실패한 지휘관을 복수할 기회를 준다는 명목으로 다른 요직에 기용하는 등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합리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총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런 조직의 실패는 10만명의 민간인의 희생을 가져온 오키나와전에서 대본영과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제32군간에 의사소통이 단절되는 결과까지 내놓게 된다.

일본군 패배의 역사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어...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위에서 언급한 일본군 전체의 실패를 무척 담담하게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분석하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결사 항전' '천우신조' '성패를 초월하여 국운을 걸고 단행할 것" 등 일본군이 병사들에게 황군이라는 틀 속에서 강조했던 정신력이 실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허무맹랑한 것이었음을 밝힌다.

전쟁은 끝났고, 당시 일본군 조직의 핵심 조직원들은 일본경제의 성장을 견인했다.  ghq의 일본 점령 후 일본은 미일동맹을 축으로 군사적 비용을 줄인 채 경제에 매진했다. 일본에서도 전쟁 후 40년이 흘러서야 당시 가장 앞선 관료제 조직이라는 평을 받았던 일본군의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한 책이 나왔다. 

1984년에 출간된 이 책은 일본에서 100쇄가 넘게 팔렸다. 그 만큼 일본사회의 반향이 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서 25년이 흐른 뒤 한국에도 출간되었다. 일본군 조직을 해부한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저자가 여러명이어서 복잡한 권리관계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일본군에 대해 그만큼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게 솔직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역사책이 될 수도 있고, 조직의 승패를 논한 경영서로 읽을 수도 있다. 책에는 단순히 전쟁이 가진 흥미로운 요소 뿐 아니라 제대로 된 혁신이 가능한 조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들어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의 아픈 기억을 헤집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일본군, 일본제국의 엉성한 이면을 밝힘으로써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 당시 일본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명확하게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 노나카 이쿠지로 외 5인 지음, 박철현 옮김 / 주영사
 


 

ⓒ 일본이 보인다! 일본전문뉴스 JPNews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사입력: 2009/06/23 [16:59]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이거 제대로 된 책 맞나요? 그림형제 09/06/24 [07:29]
일본은 이미 한국이 조선 중기 때부터 세계 GDP 5위에 들어가는 경제 대국이었다는 사실은 알려진 것 아닌가요? 그런데 갑작스러운 현대화라니 정말 이상하군요. 게다가 미국이 일본에 먼저 공격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아직도 진주만 기습이라는 말도 안되는 것을 쓴것을 보면 확실히 오래된 책이네요. 소개를 하시려면 최근에 나온 일본 비판 서적이 좋았을 듯 싶습니다. 수정 삭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하나요? 도고헤이하치로 09/06/24 [08:12]
그림형제) 조선중기때부터 세계 지디피5위라니? 소스 좀 보여줘 보세요. 조선 중기때도 지디피개념이 있었나 보군요. 그리고 경제력과 현대화는 다른 거거든요? 근대로 나아가느냐 마느냐 그런 개념에서 봤을때 페리제독의 개항과 메이지유신으로 인해 일본이 현대화로 나아간건 전세계가 인정하는 "정설"입니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 양군사이의 '본격적'인 전쟁은 진주만 기습때문에 발발했다는게"정설" 맞습니다.(혹시 페리제독 어쩌고 하는 일미백년전쟁설 같은 음모론? 그렇다면 님은 세뇌된 것 맞습니다. 어디가서 함부로 그런말 하지 마세요.) 수정 삭제
조선시대 당시의 일본의 GDP kori2sal 09/06/24 [11:01]
Angus Maddison이 2008년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구매력평가로 환산한 실질 달러 기준으로 일본과 세계 1인당 GDP(실질적인 GNP)의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단위는 달러)

일본 세계 대세계배율
--------------------------------
AD.1 400 467 0.86
1000 425 453 0.94
1500 500 566 0.88
1600 520 596 0.87
1700 570 615 0.93
1820 669 667 1.00
1870 737 873 0.84
1900 1,180 1,262 0.93
1913 1,387 1,526 0.91
1940 2,874 1,962 1.47
1950 1,921 2,113 0.91
1960 3,986 2,775 1.44
1970 9,714 3,736 2.60
1980 13,428 4,521 2.97
1990 18,789 5,162 3.64
2000 21,051 6,055 3.48
2006 22,976 6,710 3.42
----------------------------------

세계 평균을 1로 봤을 때 일본이 최초로 세계 평균 GNP를 넘었던 것은 1820년의 일입니다만 이건 거의 세계 평균과 같아진 것이고, 실질적으로 세계 GNP 평균을 넘어선 것은 태평양 전쟁 직전인 1940년의 일입니다. 그리고 패전 이후 계속 세계 평균 이하였다가 1960년대에 와서 한국 전쟁을 발판으로 성장해 세계 평균을 넘어섰습니다. 일본이 세계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것은 1970년대의 일입니다.
참고로 조선 초기인 17세기의 일본 GNP는 세계 평균의 87%였고, 18세기에도 93% 수준입니다. 나름 일본 내에서 경제적으로 풍요했다고 평가되는 에도시대 말기인 1820년 조차도 세계 평균인 667달러를 2달러 넘어선 669달러입니다.

참고로 일본이 570달러(세계 평균 대비 0.93)였던 1700년 이탈리아의 GNP는 약 1150달러, 영국의 GNP는 약 1230달러, 네덜란드의 GNP는 약 1540달러였습니다.

에도 시대 당시의 일본의 경제력은 유럽 열강들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GNP 기준만으로 봤을 때는 중국보다는 앞서있었지만, 경제규모가 비교도 안 되었죠.)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으로 생산력, 유통력, 소비력 모든 부분에서 몇 단계 앞서가던 유럽 국가들이 활개치던 시기입니다. 쇄국정책하면서 내수에 의존하고 그나마 산업은 가내수공업 중심에 농업에 절대의존하고 있던 일본이 어떤 식으로 하면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었다는 가설이 세워질 수 있는지 매우 궁금하네요.

참고자료
Angus Maddison 교수의 논문
http://www.ggdc.net/maddison/articles/ruggles.pdf

사회실정 데이터도록의 해당 항목 해설 부분
http://www2.ttcn.ne.jp/honkawa/4545.html
수정 삭제
청나라도 서양국가들한테 발렸는데 일본이 뭔수로 5위를 하냐? 자살골 09/06/24 [12:56]
일본제국의 전성기때도 5위안에 못들었다. 공업력이 이탈리아보다 못한 수준이었음. 일본이 경제대국 자리에 올라간 건 2차 세계대전 이후임... 존네 환상 가진 놈들 많네... 수정 삭제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러시아,청나라,네덜란드,스페인,포르투갈 자살골 09/06/24 [13:05]
강대국이 얼마나 많았었는데 일본은 1차 세계대전 이후에나 강대국으로 인정 받았지.... 근데 그것도 존네 기형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서양국가들보다 모든면에서 딸렸음. 군수산업을 키운 건 맞지만 기술적인 수준은 높은 편이 아니었음. 이탈리아 보다 낮았다고 보면 됨.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유무역체제에 들어가게 되면서 지금의 일본이 된것임. 수정 삭제
dd 09/06/24 [15:44]
단순한 논문 가지고 장난 치시네요.
첨에는 그냥 gdp라고 했다가. 슬며시 1인당 gdp로 고치고.
유럽 열강만 따져도 일본보다 잘 살 나라가 5개는 더 될테고
미국도 뺏네요. ㅋㅋ
글고 정설이 아닌 그깟 논문을 근거로 아우 웃겨ㅋㅋ
게다가 슬며시 말 바꾸기.
대놓고 쪽바뤼 티 내시네여 수정 삭제
첨가자료. kori2sal 09/06/24 [15:44]
위의 어떤 분이 주장하는 일본이 조선시대 당시에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었다는 이야기는 2채널이나 일부 우익 사이트 등에서 꽤 자주 눈에 띄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가 나오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700년의 전세계 경제규모는 약 371,344,000달러였습니다.
대륙별로 보면,

유럽주요국토탈(30개국) 81,213,000달러(약 21.9%)
동유럽토탈(7개국) 11,393,000달러(약 3%)
구소련연방국토탈 16,196,000달러(약 4.4%)
유럽 합계 108,802,000달러(약 29.2%)

오세아니아토탈 833,000달러(약 0.22%)
남아메리카토탈 6,346,000달러(약 1.7%)
아프리카 토탈 25,692,000달러(약 6.9%)

아시아 토탈 229,671,000달러(약 60.1%)

이렇습니다.
당시 일본의 환산 GDP는 약15,390,000달러 정도 되는데, 이것은 당시 대국이었던 러시아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구소련계 국가들의 총인구가 불과 약 2655만명 수준밖에 안 됩니다. 당시 전세계 인구가 약 6억349만명이었는데, 당시 일본은 인구가 2700만명이나 되었습니다. 1700년 당시 영국의 인구가 856만명, 이탈리아가 1330만명, 프랑스가 2147만명이었고. 당시 유럽 전체 인구가 8000만명을 조금 넘었던 것을 생각하면 1700년 당시의 일본 인구는 무지막지한 수준이었던 것입니다.(러일전쟁 직전이 1900년에 구소련 지역의 인구는 1억2450만명 수준이었고 러시아 단독으로는 인구가 8000만명 수준이었는데, 일본이 4410만명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인구가 약 730만명 정도에 불과했고, 프랑스 인구도 4000만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일본은 엄청난 인구 대국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환산한 1700년 당시의 세계 GDP 순위를 보자면,

1위 인도 90,750,000달러
2위 중국 82,800,000달러
3위 프랑스 19,539,000달러
4위 구소련계 국가 총합 16,196,000달러
5위 일본 15,390,000달러
6위 이탈리아 14,630,000달러
7위 독일 13,650,000달러
8위 영국 10,709,000달러
9위 인도네시아 7,598,000달러
10위 스페인 7,481,000달러
11위 조선 7,320,000달러

이런 순위입니다.
일본이 무려 세계 5위의 GDP를 자랑하고 있지만, 1위는 인도이고 2위가 중국이며, 조선도 11위에 있습니다. 이 수치는 경제력 지표로서 그다지 의미 있는 순위가 아닌 것입니다. 실제로 의미 있는 수치는 앞서도 이야기한 구매력평가로 환산한 실질 달러 기준의1인당 GDP입니다. 이걸 토대로 비교해보면,

1위 네덜란드 2,130달러
2위 영국 1,250달러
3위 벨기에 1,144달러
4위 이탈리아 1,100달러
5위 덴마크 1,039달러
6위 오스트리아 993달러
7위 스웨덴 977달러
8위 프랑스 910달러
9위 독일 910달러
10위 스위스 890달러
중국 600달러
일본 570달러

입니다.
집산 가능한 국가 중에서 일본의 순위를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유럽 주요 30개국 평균이 997달러이고, 동유럽 평균도 600달러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일본의 1인당 GDP는 완전히 순위권 밖입니다.

통계라는 게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단순히 18세기 초에 환산 GDP가 세계 5위였다는 것으로 “일본은 조선시대에 이미 GDP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하면, 정말 역사고 경제학이고 기본을 모르고 하는 소리겠죠. 수정 삭제
dd: 좀 읽어보고 말을 하시죠. kori2sal 09/06/24 [15:46]
dd님 저는 저 위의 '그림형제'라는 분의 어이 없는 덧글에 대한 반론을 하고, 그 근거를 제시한 것인데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시는지?
그리고 대체 제가 쓴 글 어디에 쪽바리 티가 나는 것인지 자세히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글은 읽어보시고 말 하십니까?
중요한 부분만 발췌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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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으로 생산력, 유통력, 소비력 모든 부분에서 몇 단계 앞서가던 유럽 국가들이 활개치던 시기입니다. 쇄국정책하면서 내수에 의존하고 그나마 산업은 가내수공업 중심에 농업에 절대의존하고 있던 일본이 어떤 식으로 하면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었다는 가설이 세워질 수 있는지 매우 궁금하네요.
--------------------------------------------------------------------

전 님이 더 웃기는데요. 수정 삭제
어렵네요^^;;; 삼순이 09/06/24 [16:25]
전 잘 모르지만,(숫자는 넘 어려워요) dd님이 댓글을 잘 안읽으신거 같네요...;;; 수정 삭제
이게 과연 객관적인 서평일까... 서평인가요? 09/06/24 [22:46]
박철현씨는 JP뉴스의 기자이고, 이 서평을 쓴 김현근씨도 JP뉴스의 기자이다. 이게 과연 얼마나 객관적인 것일까? 이런 식의 서평을 쓰는 언론은 없을 것이다. 수정 삭제
안녕하세요 김현근 09/06/24 [23:32]
이 글을 쓴 사람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 기사는 일본뉴스를 표방하는 곳으로서 일본에 대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라 한번쯤 소개해야될 내용이라고 판단해서 기사로 작성해서 썼습니다. 그러나 지적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향후 기사를 작성할 때 충분히 참고할 생각이며, 앞으로 기사가 나갈 때에는 편집자주 혹은 기자주를 넣어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할 예정입니다. 댓글로 지적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수정 삭제
일본이 5위? ..말이절대될수가없다.. 이성환 09/06/25 [05:30]
최소한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 네개국가는 유럽경제 선진국이였고
비록 1차대전이후 해체되었다곤해도 오스만투르크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청 인도 이렇게만 잡아도 일본은 최대 9위다...
네덜란드가 영국보다 2배이상의 큰규모를 지녔고 동양에서 인도와 중국의
영향력이 아주강햇던 시절인데 일본이>? 수정 삭제
5위 09/06/25 [10:09]
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5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정 삭제
ㅋㅋㅋㅋ 지나가다 09/07/12 [00:46]
조선의 인구가 약 730.....? 이건 어서 가져온거임 제가 알기론 조선시대 정확한 인구를 추정한 사람은 여태 아무도 없는것으로 아는대......
글구 겨우 730만..?ㅋㅋㅋ 수정 삭제
조선의 인구는... kori2sal 09/07/12 [17:19]
조선시대에는 3년에 한번씩 호구조사를 실시해서 호적대장에 기록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호적대장이 비록 대부분 유실되어 일부만 남았고, 전국의 호구총수가 기록된 자료가 극히 미미하지만, 실제 자료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구 변화의 추세선을 만들 수 있어 조선시대 인구는 비교적 정확하게 계산되는 편입니다.
거의 중론으로 이야기 되는 것은 조선 초기 인구는 500만을 넘지 못했고, 영조 시대에 와서야 700만 정도 수준이었으며, 19세기 초에 와서야 800만을 넘었다는 것입니다.
한일합방 당시의 조선 인구도 불과 1200만명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은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정 궁금하시면 서점에 관련된 서적이 많이 나와 있으니, 한 권 서서 읽어 보시던가요. 수정 삭제
일본의 GDP가 5위라는 논점에 대해 작곡가 09/09/25 [05:39]
해석의 문제일 수는 있긴 하지만 다들 그리 객관적이진 않은 것 같아서 이의 및 추가 의견 제시합니다. 1700년 경 일본의 인구가 그렇게 많았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생산력, 특히 농수산 생산력이 매우 높은 수치였을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반면 임란/호란 등으로 완전히 피폐해진 조선의 인구가 730만 밖에 되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후 조선이 특별히 생산력이 향상된 것 같진 않습니다. kori2sal님이 제시하신 그 근거에 달아놓으신 해석을 보면 '인도, 중국'이 1, 2위를 차지했고 조선도 11위이기 때문에 '그다지 의미있는 수치가 아니다'라고 하셨는데, 그 데이터가 옳다는 전제 하에 보았을 때 의미있는 수치가 아닌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1700년 당시 세계 최강국은 중국의 청나라와, 인도의 무굴제국이었습니다. 너무도 유명한 강희제의 통치기간(1661 ~ 1722) 중인 청국, 그리고 제국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아우랑제브 1세(1658 - 1707)의 통치하에 있던 인도... 당연히 세계 GDP 1, 2위를 차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3위인 프랑스는 이미 유럽의 중심이었고 태양왕 루이14세의 통치 기간이었으니 당연히 최상위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생산력도 굉장했고요(구소련계국가계열은 일단 생략합니다). 그 나라의 경제력을 볼 때 GDP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정치력, 군사력, 국제사회에서의 '힘'을 의미할 때 말이죠. 1인당 GDP가 의미있다고 하셨나요? 현재의 중국의 1인당 GDP가 룩셈부르그의 1/10은 하나요? 하지만 어느 나라가 더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요? 그 데이터를 근거로 일본이 이미 5위라는 것은 확실히 이미 일본이 상당히 강력한 국가였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임진왜란 당시 명과 조선을 상대로 국제전을 벌일 정도로 규모가 커진 것입니다. 수정 삭제
kori님은 2335 10/06/03 [10:56]
국가 전체의 GDP와 1인당 GDP(국제무역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식민지 교역이 중심이었던 이 당시에는 사실상 GNP로 계산하는 것이 타당하겠죠.) 중 어느 것이 더 의미있는 자료인지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시고 있는 것 같군요.
1인당 GDP는 해당 국가 국민들이 누리는 후생 수준을 평가하는데는 좋은 척도가 될지 모르나 '국력'을 평가하는 요소로는 그다지 적합한 자료가 아닙니다.
1인당 GDP 순위에서 매년 톱을 다투고 있는 룩셈부르크나 스위스를 보세요. 분명 국민 개개인은 매우 윤택한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이들 국가의 국제적 영향력이나 발언권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반면 이들 국가보다 1인당 GDP는 훨씬 뒤지고 있는 중국, 인도 등은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신흥 강국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요. 문화적 파급력과 선진기술, 즉 소프트파워가 중시되는 현대에서조차 국력의 척도는 거의 전적으로 해당 국가의 GDP 총량으로 결정되고 있는데 맨파워, 즉 머릿수가 곧 국력의 척도로 인식되고 있던 중세와 근대 초반에는 1인당 GDP 같은 것은 별다른 의미를 줄 수가 없죠. 물론 19세기 초반부터 근대 산업 국가와 전근대 국가 간의 산업 생산성 차이, 기술수준의 차이가 극명해지면서 1인당 GDP가 GDP총량에 비해 해당 국가의 국력을 평가하는 척도로 더 유용해지게 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만(기술수준, 산업 생산력의 차이로 근대국가와 전근대국가 사이에는 오늘날의 핵보유국과 비보유국과 같은 전력 비대칭이 발생하므로) 아직까지 유럽 국가들이 비유럽권 강국들을 군사적으로 압도할 만한 우위를 점유하고 있지 못하던 1700년 정도의 상황에서는 GDP총량을 통한 국력 비교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수정 삭제
결국 1인당 GDP가 2335 10/06/03 [11:06]
국력 척도로서 유의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비교 대상국 간에 엄청난 산업력, 기술수준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죠. 19세기가 바로 이러한 시기였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19세기 중국의 1인당 GDP를 저만치 넘어서고 있었던 북유럽 국가들이 중국보다 더 큰 국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1인당 GDP비교는 GDP 총량이 비슷한 국가 간의 국력 비교에서나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수정 삭제
일본 gdp설 일본 정부에서 꾸며낸 이야기가 gdp 10/06/24 [12:56]
있던데...아직까지도 과장 허술로 세계 2위라는 추측을 내고 있죠;;
일본에서 현대 구라로 알려진게 일본이 세계 경제 2위 대국이라는 거죠 ㅋㅋㅋㅋ
데이터가 20년이 지났지만 업데이트 되지 않은 내용이 많다고 들었네요 ^^; 수정 삭제
케인즈가 형님 하겠네 ㅎㅎㅎ 10/10/14 [18:23]
한글이 쉬워서 그런지 일본인들 댓글이 종종 많이 보이더군요. 여기도 그러네요.
모두 추측에 근거하여 멋대로 수치를 부여하는 것은 과학의 기본적인 개념조차 없는 것입니다.
수치를 통한 계량화를 통하여 통계가 잡히는 것이지만 그것은 기본 베이스로 정확한 조사가 바탕입니다.
옛날에 우리 할아버지가 부자였다. 만석꾼이었다. 만석지기였으니까 총생산량이 만석에 어쩌구.. 하는 꼴입니다.
더구나 당시 조선에게 있어서 왜인들은 난동이나 피우는 골치덩어리들라는 인식이었습니다.
GDP 세계 5위? 차라리 당시의 인구 수대로 서열을 세우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근대적의미의 주식과 주식회사를 만든 네덜란드보다 일본의 GDP가 더 높겠네요.
7~8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과 일본 구석기문화 70만년 전, 신의 손은 일본인들의 사고를 자신들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수준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군요. 수정 삭제
역사를 작게 전공한 졸부로서 보면...예날 기록을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 봉건일본 11/06/21 [21:44]
좀 위험하죠...일본은 메이지 전엔 막부중앙정부와 지방 영주정부(하나의 조선과 같은 조정을 가진 정부) 조직이 따로 작용하는 구조여서 농민들은 이중의 착취를 당하고, 현대의 하나의 일본구실을 거의 못했었고 ,여러나라로 분열되어 있다가 가리발디의 활약에 의해 이탈리아는 통일된지 약 170년전인가 밖에 안됐고..독일도 프로이센 주도로 비스마르크의 활약에 의해 통일된지 170년전인가 밖에 안되어 한 나라로서의 역할이 얼마 안되었죠..인도는 수많은 지방 왕국들과 분권적 성격...등 위 통계는 별 의미없고 정확치 않은 통계가 너무 많습니다.. 수정 삭제
조선과 중국 그리고 중앙집권적 전통이 오래되었지만 ... 봉건일본 11/06/21 [21:51]
일본 독일,이태리,인도네시아 ,구러시아등은 지방 분권적인 성격이 강해 1700년경에한나라로 경제적 정치적 역할...현대 의미와는 전혀 다릅니다..거의 이름뿐이지 하나라로 볼수 없습니다..그리고 일본의 고대 생산력이 거의 세계 1퍼센트라는 것은 증거 불충분이고 극히 지방 분권적인 그 시대에 그 경제 통계가 의미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수정 삭제
재밌네요 화음노동자 13/06/05 [05:10]
꽤 재미있는 책일 것 같아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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