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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진짜 이유
[서평]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김현근 기자
작년 한일양국을 서로 방문한 숫자가 각각 24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재작년에는 원화가 강세여서 일본에 한국 관광객이 넘쳐났고, 작년에는 원화가치의 폭락으로 일본관광객이 한국에 쇄도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제 한쪽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한류, 일류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로 변모했다. 90년대 후반 일본문화 개방과 함께 문화침략이 시작된다고 걱정했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그러나 시계를 65년전으로 돌려보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도상에 없었고, 일본은 조선,만주,중국,필리핀,인도네시아,버마(현 미얀마)를 집어삼키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등장한 미국과 거대한 태평양을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군은 수나라,당나라 등 사절단을 파견해 배우러 갔던 중국대륙을 마음대로 유린하고 있었으며 만주에는 괴뢰국을 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제국으로 미국에 맞먹는 생산력을 자랑하던 소비에트 연방과 국경선을 맞대고 국지적인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편, 조선은 온통 어두운 기억뿐이다. 조선은 일본이 광기에 젖은 전쟁을 확대하면 할수록 끝없는 수탈과 동원이 대상이 되었다.  한때 일본에 반기를 들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항공기를 만들고 항공모함을 띄우며 제국을 확대해가는 일본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많은 지식인들은 앞장 서서 천황을 위해 입대를 독려하고 있었다. 마을 곳곳이 학도병이나 근로 정신대,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흉흉했다. 그렇게 끌려간 조선인들은 일본의 패전 후 전장에서 포로로 붙잡힌 뒤 b급 전범으로 몰려 강제처형을 당했다.
 
한때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흘러간 수많은 문화를 떠올리면 일제 식민지 시대는 치욕의 시대였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증오와 분노가 섞인 채로 그들의 잔혹함을 드러내는데 주력했을 뿐, 조선을 지배했던 물리력의 실체, 일본군이 어떤 조직인지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았다. 해방 후 54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일본군이라고 하면 군국주의와 야스쿠니, 강제 징용, 징병 기억만 남았을 뿐 모든 것은 봉인되었다.

▲ 미 해군 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열린 항복문서 서명식  ©jpnews
책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일본군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 책을 보면 '조선을 억누르고 억압했던 일본군이 실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조직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책의 저자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이 패배할 수 밖에 없던 이유를 6개의 전투를 예를 들어서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격돌한 4개 주요 전투(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작전, 레이테 해전, 오키나와 전투) 이외에 소련군과 맞붙은 '노몬한 사건', 도박에 가까웠던 인도 진격 작전 '임팔 작전' 등이 그것이다.

이 전투의 실상을 보면 흔히 일본 패망의 주 요인으로 거론되는 '원폭투하'와 미일간의 생산력의 차이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근본적으로 러일전쟁 후 일본군은 아무런 진보가 없었다는 점이 태평양전쟁의 승패를 갈랐다고 본다. 결정적으로 일본군 조직이 합리성이나 실패한 전투에 대한 최소한의 학습도 없이 오로지 정신력만 가지고 돌격한 결과, 무참히 그리고 무기력하게 전투에서 패배해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러일전쟁 후 아무런 진보를 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일본의 너무 빨랐던 성공에 그 원인이 있다. 동양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열강을 따라잡는데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몇천년간 동양의 패권을 쥐고 있던 중국을 청일전쟁으로 간단하게 물리치고, 열강 중 하나인 러시아까지 거꾸러뜨린다.
 
특히 러일전쟁의 승리는 일본 스스로도 놀란 경험이었다. 노기 마레스케 육군대장이 이끌었던 뤼순전투는 병력 13만 명 중 5만 9000명을 희생하는 막대한 피해를 냈지만 결국 승리했고, 그 결과 총검을 들고 돌격하는 백병전이 향후 일본 육군의 주요 교범으로 자리잡게 된다. 
 
해군에게도 러일전쟁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끄는 연합함대가 당시 최강이라 불리던 발틱함대를 괴멸시킴으로써 함대끼리의 결전을 중심으로한 함포주의가 주요 교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본은 이후 유럽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동안, 무주공산이었던 아시아지역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황군의 깃발을 꽂았다. 특히 일본 육군은 만주,중국에 이어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도 백병총검으로 연승을 거두자, 백병총검돌격주의가 하나의 경전처럼 떠받들어졌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제대로 된 근대화를 겪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했거나 소수의 서구 열강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을 뿐 제대로 된 상대라고는 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후 일본군이 본격적으로 맞붙게 되는 미국,소련은 그전에 경험했던 전투와 차원이 달랐다는 점이다. 당시 소련,영국,미국의 군대는 1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 깨달은 전술을 중심으로 새롭게 개편된 상태였다. 지상전에서는 탱크 및 기계화 사단 중심으로 한 물량전으로 재편되었고, 해상전도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항공전으로 변모한 것이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은 본격적인 상대인 미군과 맞붙은 뒤로 그들의 전술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드러낸다. 만세돌격전으로 일관했던 일본 육군은 미군의 기계화 화력에 몰살당하기 일쑤였고, 항공전에 미숙한 일본해군은 함대결전에만 치중한 나머지 미국에 앞선 전투력을 가지고도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공모함 4척을 모두 잃었다.

▲   오키나와에 상륙하는 미군  ©jpnews
 
이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학습기각(실패 후 기존의 틀린 지식을 버리고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하는 것)도 게을리하는 조직이었다. 일본 육군은 미군과 지상에서 본격적으로 맞붙은 과달카날전 패배 이후 화력을 중시할 필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총검돌격주의로 일관했다.
 
특히 물적자원보다 인적자원을 구하는데 돈도 적게 들 뿐 아니라 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점령지에서 끌고간 사람들을 무작정 전선에 투입시켰다. 사정은 해군도 마찬가지였다. 미드웨이 패전 이후 항공모함의 증강을 꾀하면서도, 대함거포주의를 구현한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의 46센티미터 대포가 위력을 발휘할 때가 올  것이라고 끝까지 믿었다.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은 각각의 작전이나 전투를 왜 하는 것인지 목적조차 불분명했다. 육군은 소련을 주적으로 생각했음에 비해 해군은 미국을 주적으로 생각했으며 이 차이는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평행선을 달렸고, 조직인사에서도 합리적인 판단보다 인간관계 및 인맥을 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전쟁에 실패한 지휘관을 복수할 기회를 준다는 명목으로 다른 요직에 기용하는 등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합리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총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런 조직의 실패는 10만명의 민간인의 희생을 가져온 오키나와전에서 대본영과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제32군간에 의사소통이 단절되는 결과까지 내놓게 된다.

일본군 패배의 역사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어...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위에서 언급한 일본군 전체의 실패를 무척 담담하게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분석하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결사 항전' '천우신조' '성패를 초월하여 국운을 걸고 단행할 것" 등 일본군이 병사들에게 황군이라는 틀 속에서 강조했던 정신력이 실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허무맹랑한 것이었음을 밝힌다.

전쟁은 끝났고, 당시 일본군 조직의 핵심 조직원들은 일본경제의 성장을 견인했다.  ghq의 일본 점령 후 일본은 미일동맹을 축으로 군사적 비용을 줄인 채 경제에 매진했다. 일본에서도 전쟁 후 40년이 흘러서야 당시 가장 앞선 관료제 조직이라는 평을 받았던 일본군의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한 책이 나왔다. 

1984년에 출간된 이 책은 일본에서 100쇄가 넘게 팔렸다. 그 만큼 일본사회의 반향이 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서 25년이 흐른 뒤 한국에도 출간되었다. 일본군 조직을 해부한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저자가 여러명이어서 복잡한 권리관계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일본군에 대해 그만큼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게 솔직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역사책이 될 수도 있고, 조직의 승패를 논한 경영서로 읽을 수도 있다. 책에는 단순히 전쟁이 가진 흥미로운 요소 뿐 아니라 제대로 된 혁신이 가능한 조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들어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의 아픈 기억을 헤집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일본군, 일본제국의 엉성한 이면을 밝힘으로써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 당시 일본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명확하게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 노나카 이쿠지로 외 5인 지음, 박철현 옮김 / 주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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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6/23 [16:59]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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