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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건축 인테리어 전문가로 산다는 것"
일본인을 통해 본 일본사회 (5) - 인테리어 40년 한 길 요시다 씨
 
김현근 기자
지구상에는 하루에도 수 많은 집과 건물이 지어진다. 샐러리맨의 평생 꿈이 담긴 마이 홈부터 셀 수 없이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주인을 기다리는 상점가, 최첨단 기술이 동원돼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마천루까지. 건축은 시대에  따라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며 발전해왔고 삶의 일부를 규정해왔다. 
 
건축가가 외관으로 사람들 시선을 끌고 내부 공간이라는 틀을 제공한다면 인테리어 전문가는 그 안에 조명과 가구, 편의시설을 어떻게 배치할지 결정해 온기를 불어넣는다. 어느 건물을 들어가든 우리 눈에 비쳐지는 모든 것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아있다.
 
jpnews는 <평범한 일본인을 통해 본 일본사회 5번째 코너>로 40년 건축 인테리어 한 길을 걸어온 요시다 다다시 trk 대표를 만나 그의 인생과 인테리어,일본의 건축문화에 대해 물어보았다. 

요시다 씨는  도쿄의 인기 데이트코스인 오다이바의 비너스포트 상점가, 명품족이 모인다는 롯폰기 힐즈의 케야키자카(けやき坂) 점포 인테리어를 담당했으며, 이온몰 등 250여 점포가 입주하는 대형 상업시설 인테리어 일도 해왔다. 또한 대만,홍콩,중국,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도 일을 해왔고, 한국은 롯데월드 부산의 설계 감리를 위해 반년간 체류한 적도 있다. 

 "그림 그리는 일이 좋아서 하다보니 평생 하게 됐네요." 

▲ 건축 인테리어 전문가 요시다 다다시 씨     ©jpnews/이승열
동북지방 야마가타현에서 장난감 가게를 하는 아버지가 요시다 씨에게 '너는 장남이니까 아버지 가게의 뒤를 이으라'는 말에  고교 졸업 후 도쿄로 상경, 부기학교를 다녔지만 적성에 안맞았다. 요시다 씨는 부모를 설득해 디자인스쿨을 다닌 뒤 평소 눈여겨봤던 인테리어 디자인회사에 자신이 만든 작품을 가지고 가서 입사를 졸랐다. 결과는 성공.
 
"3년정도 그곳에서 일했어요.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우선 공장에 가서 1년간 일해 보라'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도쿄의 고토구(江東区) 공장에서 도장(塗装)부터 벽지를 붙이거나, 목수일,전기 배선 등의 일을 했죠."
 
'실제 어떻게 공사하는지도 모르는데 도면 등을 그릴 수 있겠느냐'는 것 때문에 공장으로 보내진 것이다. 그때 인테리어의 실제 공사는 이렇게 하는구나를 알게 됐다고. 그는 현장 경험 1년 후 도쿄 나카노에 있는 본사로 돌아와 디자인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일할 사람이 없으니 영업 쪽 일을 하라"는 지시를 받고, 갑자기 의욕을 잃고 전직을 했다. 전직한 곳은 일본 인테리어 회사 중 톱 3에 드는 대형업체 t사. t사는 규모가 커서 팀 하나에 7-8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chief가 있고 의뢰가 들어오면 어떤 디자인 컨셉으로 갈지 미팅을 하고, 프레젠테이션 합니다. 그것이 결정되면 도면을 그리고 공사에 들어가는 그런 흐름이었는데, 매우 재미 있었죠."
 
도면을 그리는 것은 건축가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디자인스쿨에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다 할 수 있다'며 인테리어 도면을 위해 따로 건축학과를 다닐 필요 없다고 강조한다. 대형 업체 t사에서 일을 한창 하다가 7년째 되던 해 그만뒀다. 이유는 역시 인사이동 때문.
 
"어느 정도 직무경력이 높아지니까 현장에 가서 견적서를 내는 일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저는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일은 못한다고 하고 사표를 냈지요."
 
그후 프리랜서일을 하면서 예전 동료나 거래처일을 받다가 유한회사 trk를 84년에 설립했다.  
 
"회사를 만든 이유는 기존에 일을 수주받던 t사가 2부 상장을 하면서 거래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최소 회사 형태가 되어야한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사원을 쓰는 건 아니었고, 공사 규모가 클 때는 사람을 불러서 쓰는 형태로 운영해왔죠."
 
1인 기업 형태였다. 그렇게 디자인, 인테리어일을 혼자서 해오다가 40대에 들어서면서 해외쪽 일이 들어왔다.   
 
"역시 40대 들어서는 디자인만으로는 감각적으로 조금 무리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대만'쪽 일이 들어왔어요." 
 
90년 초반 백화점을 경영하고 있는 대만사람으로부터 '일본 느낌의 백화점을 만들고 싶다'라는 의뢰를 받아 설계작업을 하기 위해 대만에 갔다.
 
"대만도 일본어처럼 한자를 쓰잖아요? 현지에 가 보니 바로 읽고 의미를 알 수 있었어요. 발음하고 억양만 몰랐는데,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어느 정도 말할 수 있게 됐어요. 그때부터 혹시 해외일이 자신에게 맞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대만의 습관, 음식 등에 흥미를 가지게 됐고 이후에도 대만 일이 계속 이어졌다. 때로론 그전에 해본 적이 없는 종교사원 설계도 했다. 요시다 씨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홍콩,한국,중국 등 여러나라를 다니게 된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90년.
 
현 갤러리아 백화점의 전신인 '한양쇼핑센터  영동점'의 인테리어 일을 맡아서 2주간 작업을 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과 한국의 백화점 진열방식이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는 당시 한양쇼핑센터는 1층에만 싸게 파는 물건이 많았는데, 그런 것 보다 어떻게 손님들에게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전체적인 밸런스가 안맞는 부분도 지적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를 아동복 코너  옆에 신사복 코너가 있던 것으로 들었다.  
 
"아동복집과 신사복집은 가게 분위기나 전체적인 색깔 차이가 매우 큽니다. 아동복은 밝고, 양복은 어두운데 그게 나란히 있으면 전체적인 레이아웃에 영향을 미치죠."
  
이 일을 계기로 96년에는 부산 롯데월드 내 관련시설 설계 감리를 맡았다. 6개월이나 한국에 체류했고, 한국어를 기초 수준이나마 배운 것도 이때다.
 
"롯데였기 때문에 높은 지위의 일본인이 부산에 있었어요. 그 사람이 '한글은 1주일이면 외울 수 있으니까 이거 보고 외워'라고 한글 읽는 방법이 담긴 프린트물을 줬어요. 그거 보고 해보니까 1주일만에 외우게 되더군요. 그렇게 한글은 읽을 줄 알게 됐지만, 단어 의미는 몰랐죠."
 
그는 한글의 창제원리가 혀와 입 모양을 따서 만들었다는 것에 참, 깊게 생각해서 만들었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6개월간 단신 부임한 부산 생활의 활력소는 축구였다. 축구를 좋아하는 그는 주말이면 가까운 초등학교에 가서 공을 찼고 어느새 한국아이들과도 어울리게 됐다고 한다.

 
▲ 건축 인테리어 전문가 요시다 다다시 씨     ©jpnews/이승열


50대에는 설계, 감리일을 주로 맡으면서 '인테리어가 건축에 어떤 식으로 스며들면 좋은지' 등의 조정 및 융합시키는 일을 주로 하게 됐다. 인테리어 디자인과 설계・감리는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설계 감리를 할 때는 건축 관계자와 같이 현지 건물에 들어가 인테리어 면에서 봅니다. '건축 및 설비 조건, 그런 것을 전부 받은 뒤 도면과 비교해서 체크하는 거죠. 예를 들면 '아, 여기는 전기용량이 적으니까 전기 용량을 늘려주세요'라든가, '물이 필요하니까 수도가 나올 수 있도록 주세요.'라든가. 그런데 이런 조건이 충족시키기 어려울 때는 수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임차인을 찾읍시다라는 등의 조정을 했죠."

해외에서 일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느냐고 묻자, 반드시 통역이 따라 붙어서 그리 힘든 점은 없었다고 한다. 말이 잘 안 통해도 그림을 그리면 다들 이해를 할 수 있었다고. 단, 한국의 여관에 묵었을 때 온돌이 너무 뜨거워서 잠을 못 잔 적은 있다고 한다. 
 
그가 외국을 다니면서 일본과의 차이를 느낀 점은 간판의 화려함과 심플함이다.
 
"대만에서는 건축물에 자단(紫檀-열대 상록 활엽 교목. 암갈색 재목이 단단하고 향이 좋아 고급 가구 재료로 쓰임) 같은 것은 잘 쓰는 데 일본은 색이 진한 것을 잘 안 씁니다. 색이 연한 것을 좋아하죠. 또 백화점을 만들 때 '현지 디자이너가 노란색 조명이 아니면 안된다'라고 주장하면서 풍수적으로 좋다고 했는데, 여전히 풍수적인 배경이 아직 남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는 화려한 색을 쓰면 '봐, 눈에 띄잖아' 이러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대체적으로 심플하고 차분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그
만큼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는 국민성인지도 모르죠"라고 털털 웃으며 대답했다.

애시당초 해외에서 일한다는 꿈이 전혀 없었다가 어쩌다 일이 들어 와서 시작하게 된 그는, 막상 해 보니 "아 이런 세계도 있구나, 말도 배우고 친구도 생기니 좋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해외 쪽 의뢰가 있어도 모두 다 하는 것은 아니다

 
"안 가는 사람은 안 가죠. 해외 업무에 대해 가장 고려하는 것이 먹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기름진 음식은 절대 못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다들 먹는 걸 가장 걱정해요." 

90년부터 98년까지 해외일을 주로 하던 그는, 99년부터 일본의 신 명소라 불리는 곳의 굵직한 인테리어 사업에 관여해왔다. 
 
99년에는 여성을 위한 테마파크를 짓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오다이바의 비너스포트(venus fort) 일을 했다. 비너스포트는 라스베가스의 인기쇼핑몰인 "the forum shops"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곳으로, 17-18세기 유럽풍의 분위기를 낸 쇼핑공간이다. 패션,잡화,화장품,레스토랑 등 160개 점포가 들어선 곳으로 실내임에도 천장엔 가상 하늘이 펼쳐져 있고 시간에 따라 파란 하늘부터 석양, 야경의 분위기까지 연출된다.


▲ 비너스 포트     ©jpnews /김현근


"비너스포트 작업은 즐거웠어요. 만들기 전에 오너가 라스베가스까지 가서 실물 보고오라고 비행기 태워줬거든요. '비너스 포트'는 미국 그 자체입니다. 전부 설계, 디자인부터 벽, 도장(塗装)까지 전부 미국인 전문 기술자가 직접 와서 처리했습니다. 돔의 구름도 미국인이 다 한거죠. 우리는 그것에 맞추어 어떻게 쇼핑공간을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했죠."

요시다 씨는 미국인이 만든 분위기를 살리면서 전체적인 가게의 분위기를 조정하는 일을 했다. 잡화점이나 레스토랑 등  개별 점포의 내부 인테리어 색깔이 튀지 않도록 지도했다.  1년이 소요됐다고 한다.  그는 일을 마무리하고 난 뒤 상업시설과 일반 맨션 등 거주공간과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쇼핑몰은 오픈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이벤트도 열고, 파티 같은 게 열리니까요. 사람이 모여서 북적이는 걸 보면 아! 해냈구나 이런 생각이 들죠. 일반 맨션이라면 그런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요시다 씨는 그후 도쿄 도심의 랜드마크가 된 롯폰기힐즈의 케야키자카 40 점포 가량의 인테리어에도 참여했다. 롯폰기 힐즈는 17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복합시설로 미술관, 전망대, 회원제 클럽, 극장, 각종 숍을 갖춰서 만들어졌다. 오픈 후 단번에 도쿄를 상징하는 명소가 됐으며 지난 2008년까지 약 5년간 방문자수가 2억명에 달했다.
 
"종합단지나 쇼핑몰 등 대규모 개발과 입점이 이루어질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어떤 분위기의 거리를 만들 것인지와 그에 맞는 임차인을 불러모으는 것입니다. 즉, 개발회사가 의도하는 어떤 컨셉이 있다면 그것을 이해해주는 임차인을 모집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상점가  분위기가 뒤죽박죽 제 멋대로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임차인을 모으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죠."
 
모리 부동산은 롯폰기힐즈를 철저하게 '문화도심'을 만든다는 컨셉하에 어느정도 품격 있는 임차인들만 모았다. 요시다 씨는 가장 힘들었던 곳으로 '루이뷔똥'을 꼽았다.  
 
"당시 루이뷔통은 마감을 못 맞추었어요. 이런 건 싫다, 저것으로 하자! 등 요구사항이 무척 많았거든요. 모든 디자인은 루이뷔똥이 요구하는 대로 했죠. 시키는 대로 해야하는 일이었지만."
 

▲ 케야키자카에서 바라본 롯폰기 힐즈     ©jpnews/김현근

대형 쇼핑몰 인테리어 일로 일본 국내는 시코쿠와 오키나와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다녔던 그에게 '쇼핑몰 인테리어'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본질적으로 상업시설은 역시 물건을 팔기 위한 수단이고, 상품을 어떤 세대를 타겟으로 잡아서 어필할 것인지에 따라 인테리어가 바뀌니까, 인테리어는 잘 팔리도록 서포트하는 게 중요하죠." 

요시다 씨는 최근 일본에 등장하는 쇼핑몰은 전부 캘리포니아식 디자인을 그대로 일본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말한다. '캘리포니아식 디자인'이란 대형 2-3층 건물의 중심이 되는 가운데 공간이 뻥 뚫려있어 1층에서 윗층을 전부 조망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인테리어 일을 시작한지 40년. 소감에 대해 물었다.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지금 손자를 둔 외동아들이 있습니다. 그 녀석도 건축사무소 설계 일을 하고 있는데, 제 어깨너머로 보고 저와 같은 길을 가준 것에 대해 보람이라고 할까요."
 
건축 인테리어를 하는 만큼 보통 건축가가 하듯이 자신만의 집을 꾸미고 사는지 궁금했다.
 
"평범한 맨션에서 살고 있습니다. 1층인데 베란다 앞에  잔디풍의 정원도 있고, 솔직히 우리부부는 집을 짓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또 새로운 집을 짓고 이사를 간다면 동네주민이 누구인지도  걱정도 되고. 오히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살다가 마음에 안들면 옮길 생각입니다."
 
집을 짓지 않는 것 보다 진짜 본질적인 이유는, 단독주택에 살면서 느낀 추웠던 기억 때문이다. 어렸을 때 동북지방에서 살았던 그는 "겨울엔 춥고, 여름에 더웠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일본에는 단독주택이 대부분 목조주택으로 지어진다. 
 
"최근에는 단열재를 써서 나아지는 것 같긴 해도 역시 콘크리트 맨션과 비교해보면 목조건물이 소음도 크고 더 추워요. 그럼에도 목조건물이 많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콘크리트에 비해 가격이 싸고 빨리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쿄도내에서는 땅값이 비싸다 보니 건물에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입할 수가 없죠." 

물론 지진에도 목조 건물이 콘크리트 건물보다 약하다고도 말했다. 최근 일본 내 건축 관련 경기에 대해 물었다. 

"안좋죠. 요즘 큰 쇼핑몰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최근에 한 것은 전부 3년 정도 전에 계획한 것이니까요." 
 
물론 그는 이것이 전부 리먼쇼크로 인한 경기침체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리먼쇼크 이전에 법률로  몇만명 이상의 규모의 개발이 상당히 제한됐습니다. 그래서 개발회사가 법률 개정 전에 미리 앞당겨서 상업시설을 지었죠. 그 법률은 큰 상업시설이 들어섬으로써 생기는 인근 주민에 대한 피해와 소규모 상점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즉, 일정 규모 이상의 쇼핑몰이 지역 소상인 밥그릇까지 빼앗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같은 규제를 정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일본 최고의 높이로 지어지고 있는 송신탑 '스카이트리' 주변 점포에 대한 인테리어 의뢰가 들어왔으나 너무 낮은 금액의 발주여서 거절했을 만큼 경기가 가라 앉은 상황. 그러나 신규 건축일은 없지만, 리뉴얼은 해야하니까 경기에 그렇게 영향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느냐고 묻자, "없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일을 그만두고 싶어지니까, 힘들어지기 전에 미리 수를 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뢰가 들어오면 미리 조사를 해서 이렇게 대응해야겠다고 준비를 하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시 프로가 아니니까. 만약 고객이 제가 잘 모르는 것이라면 바로 찾아봐서 그날로 답해줍니다."라고 말했다.

요시다 씨도 알고 보면 숨어있는  한국 드라마 팬. 
 
대장금으로 한국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는 그는 용의눈물, 장희빈, 연개소문 그리고 이산까지 한국 사극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일이 바빠서 못 볼 때는 녹화까지 해서 볼 정도라고.

"한국 사극은 일본의 시대극과 달리, 조정에서 남자끼리 밀고 당기는 정치가 매우 재미있습니다.  거기에 장희빈 같은 악녀가 끼어들면 더 재미있죠. 일본의 시대극은 오오쿠(大奥) 안의 이야기가 많아서 남자 이야기가 잘 안나옵니다."
 
오오쿠(大奥)란 에도시대 쇼군(将軍)의 정실과 측실이 거주했던 곳으로 남자들은 출입이 금지되었던 곳이다. 그는 한국 사극의 매력을 이렇게 꼽았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연개소문, 고구려 시대 등 역사 공부가 됩니다. 뭐랄까, 역사의 실마리를 푼다고 할까요? 아, 이 이름은 다른 드라마에서 나왔는데, 그렇게 떠오르죠. 저는 매우 흥미가 있습니다."
 

요시다 씨의 부인도 한류 드라마팬이다. 한국 드라마에 빠지다 보니 요즘 일본 드라마는 거의 안 보게 된다고. 그는 한국드라마의 매력에 대해 서로 다른 풍습을 알 수 있다는 점도 들었다.

"역시 다른 생활 풍습을 보면서 공부가 되죠. 사극이 아닌 요즘시대를 다룬 드라마도 가끔 보는데 예를 들면, 장례식 절차도 알게되고 '아! 이렇게 다르구나'라고 깨닫게 되죠."
 
평생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해온 그는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즐거웠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여전히 현역 인테리어가다. 앞으로도 계속 왕성하게 일을 하겠지만, 그에게는 남은 바람이 한 가지 있다.
 
"역시 해외에서 좀 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중국어, 한국어를 어느새 하게 됐고, tv 드라마도 즐겨보고 있는데, 과감하게 혼자 가서 1년간 머무르면서 일하고 싶네요."
 
장난감 가게를 물려받으라는 아버지 뜻을 거역하고 한평생 디자인, 도면과 싸워온 건축 인테리어 인생. 반면 이같은 직업은 언제든 새로운 삶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곳으로 흘러가는 '바람'과 같은 것은 아닐까. 하지만 보통의 샐러리맨들이 은퇴를 시작하는 60대를 맞이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시설들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 건축 인테리어 전문가 요시다 타다시 씨     ©jpnews/이승열

▲ 건축 인테리어 전문가 요시다 다다시 씨     ©jpnews/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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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0/22 [03:05]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11/05/01 [11:22]
이전에 제이피에서 읽었던 글들에는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던 제 자신이 떠올랐는데, 요 일련의 하단부터 나열되어온 "일본인 인터뷰" 시리즈를 읽으면서는 그런 편견과 이질감이 상당히 옅어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가 무척 혐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교감이 따듯하게 잘 느껴지고 좋은 감흥을 주는 이런 기사들은 참 감사함마저 느끼고 있습니당..ㅎㅎ 수정 삭제
위에 것은 그냥 뭐 그렇다는 이야기구요 이어서 11/05/01 [11:26]
어찌되었든 상당히 좋은 글입니다. 제가 글재주가 없어서 말이 주저리 주저리 적고 있습니다만.. 적당히 사람 사는 내음 물씬 풍기면서도 인간적인 소재에서의 접근 좋습니다.. 단지 "완전하게 평범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취재했다고 보기엔 힘든 느낌은 좀 있네요.. 엘리트 대학생을 비롯 일본 사회 내에서도 나름 입지를 다진 인물들을 다룬 일상이라, 소시민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어뵈기도 합니다만..^^
쨌거나 제이피 뉴스가 추구하고자 하는 취지를 일부 이해하기에 뭐 그것도 나름대로 좋겠지, 하며 생각하고 있구요
잡설이 길어지는데, 결론은 이 글도 평범한 그들의 일상 단면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입니다. 꼭 의도하고 적었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훈훈한 기분도 들구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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