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있는 그대로 써야 하는 것, 비판의 말도 다 써"제이피뉴스 대표의 신조다. 있는 그대로의 일본, 친일도 반일도 아닌 직접 보고 느끼는 대로의 일본을 기사에 쓰라는 말이다.
'어떠한 회유와 협박에도 꺾이지 않는 진실된 보도를 하라!' 모든 기사를 책임지는 대표가 이런 말을 해준다는 것은 현장에 나가는 기자들에게 든든한 방패막이나 다름없다. 매스컴 쪽에는 '어른들의 사정'을 고려하여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적당히 써주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최근 일년간은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감한 해였다. 처음 취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을 제대로 보여주는 매체는 우리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의욕만 넘치는 매일이었는데, 지금은 조그만 취재신청을 할 때도 수십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대표의 생각은 변함없고, 어떤 매스컴이라도 사실 있는 그대로의 보도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많은 벽에 부딪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괴로워하는 기사의 벽 중 하나는 바로 취재원, 취재처의 항의다. 취재를 하게 해 줬으니 유리한 쪽으로 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 사진은 한류이벤트 이미지 사진입니다. 해당 내용과는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jpnews | |
약 2년 간 짧은 기자생활에서도 불구하고 수많은 항의를 받고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한 한류스타의 이벤트였다.
당시 한류스타 팬미팅을 보고 리포트 기사를 작성했는데, 이벤트가 예정된 시간을 채우지 않고 일찍 끝난데다, 팬들이 앵콜을 외치는 데도 두 번 다시 무대에 등장하지 않은 점 등이 아쉽게 느껴져 팬들의 인터뷰를 넣어 약간 비판적인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스타를 비난한 것은 아니었고, 한류 이벤트도 높아진 일본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좀 더 고민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점을 꼬집었는데, 이벤트를 주최한 회사에서 매우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어떤 의도로 이런 기사를 썼는지", "사전에 기사를 검토받으라고 했는데 왜 검토도 안 받고 마음대로 기사를 올렸는지", "스타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 지에 대해서는 왜 안썼나" 등 장시간의 설교와 함께 다음부터 자신들이 주체하는 행사에는 발 붙일 생각하지 말라는
'영구취재거부' 명령이 떨어졌다.
취재신청 당시 사전검열항목이 있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바였지만, 주최 측이 당연하다는 듯 기사사전검열을 요구하는 것은 내 사고로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성내는 이벤트 회사 직원에게 '그런데 언론매체에게 사전검열을 요구하는 것은 실례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당신이 무슨 스포츠신문급 영향력이 있는 줄 아냐'며 오히려 면박만 당했다. 영향력 없는 신문은 취재를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말투였다. 그렇게 서로 감정이 상한 채 그 이벤트 회사와는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어졌다.
회사 식구들은 "기사가 거짓이 아니라면 잘못한 거 없다"며 위로해주었지만, 그 후에도 내내 입맛이 썼다. 전화로는 당당하게 이벤트 회사의 영구취재거부를 받아들였지만, 앞으로 취재현장에 갈 수 없다는 것은 상당한 타격이기 때문이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이벤트에서도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한류기사를 보며 "나는 절대 저런 기자가 되지 않겠다. 타협하는 기사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날들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아예 취재현장을 들어갈 수 없다면 '다음'이란 없는 것이니 말이다.
아주 최근에도 대형이벤트에 대해 동료 일본인 기자로부터 진지한 충고를 받았다.
"부정적인 기사를 쓰는 건 나쁜 게 아니지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취재하고 싶으면 그냥 평범한 기사를 써라"라고 말이다. 당장 자극적이고 비판적인 기사가 조회수를 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런 위험한 짓을 하다가는 현장에 발도 못 디딘다는 것이다.
실제 주로 비판, 비난 위주인 일본의 주간지나 연예인 사생활을 폭로하는 사진주간지 프라이데이 등은 대부분의 취재처 '취재거부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다. 때문에 그들은 현장이 아닌 잠복이나 주변인 취재를 통해 기사를 풀어나가야하는 고충을 안게 되었다.
다른 기자들이 현장에서 불만을 터트려도 기사에는 일절 비난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한 때 '겁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내가 가지 못하는 현장에 출입하는 그들을 보며 '과연 무엇이 정답인가'라는 의문에 빠지곤 한다.
취재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현장에 얼굴을 비추려면 트러블이 생길 여지가 없는 무난한 기사를 써야한다는 것. 요즘 기사가 재미없어지는 이유는 아닐까 자문해보게 된다.
[편집자주] 이 글은 취재보도 목적이 아닌, 기자의 취재 뒷이야기, 개인적인 경험을 전하는 글입니다. 제이피뉴스에서는 앞으로도 주말 취재뒷이야기 시리즈를 전해드립니다. 일본 기자생활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의견 남겨주세요.
제이피뉴스에서 지난 2년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최신 일본 트렌드 보고서 '모리걸과 초식남의 세상(창해출판사, 12월 31일 출간)'이 발간되었습니다.
말랐는데도 가슴은 큰 여자들, 생얼로 돌아다닐 수 없다는 여자들, 이유없는 공짜는 싫다는 사람들, 이유도 모른채 줄을 서고 양키라 불리는 사람들, 그리고 도쿄의 남자 그리고 여자가 사는 법이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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