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어학원 교실에 붙어있는 한국지도 © jpnews | |
일본 내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과 한류열풍 이후, 한국어 수요가 늘어나면서 nhk 한국어 강좌 책은 한달에 약 20만 부씩 발행하고 있고, 이미 고등학생들의 제 2외국어 선택과목으로 지정되는 등 한국어 붐이 계속되고 있다. 2006년도 문부성 발표에 의하면,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본 고등학교가 73교(1995년)에서 286교(2005년)로, 10년 만에 약 4배가 늘어났다고 한다.
이런 한국어 붐을 타고 일본 전국 곳곳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설학원이 늘어나고 있다. 그 중에는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 경영상태가 어려워져 금세 문을 닫는 학원도 있는가하면, 일본 자본에 밀리지 않고 한국인이 설립하여 한국어학원계에서는 최대의 규모로 성장한 학원도 있다.
2002년 한국어학원의 원조 격으로 시작해 현재 도쿄도 내 5개교, 모두 약 1000여명의 일본인 수강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일본 최대 한국어학원, 신오쿠보어학원 이승민 원장을 만났다.
▲ 신오쿠보어학원 이승민 대표 © jpnews | |
1996년 일본에 건너와 다년간의 유학생활과 직장생활을 했던 이승민 원장은, 몸담고 있던 일본 한인회에서 주최하는 무료 한국어 강좌를 맡고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맞이하여 주최한 무료 한국어 강좌에는, 10명 모집에 20~30명이 지원하는 등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반응을 직접 지켜본 이승민 대표는 '한국어를 비즈니스로 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 2002년에 도쿄 신오쿠보에 한국어학원을 설립했다.
"그 당시 일본인이 운영하는 한국어학원은 몇 개 있었지만 한국인이 운영하는 것은 거의 없었어요. 그나마 일본인이 운영하던 한국어학원 대부분도 경영이 어려운 상태였죠. 그래서 제가 한국어학원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꽤 많았어요. 오래 못 갈 거라고 말리시기도 했구요.
그런데 저는 한국인이 일본어 공부하듯이 언젠가 일본인도 한국어를 공부할 날이 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제가 1996년에 한국의 시사일본어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건너왔는데, 그 당시 일본어를 배우는 한국인이 80만 명이었거든요. 그렇다면 백분의 일인 8000명이라도 일본인이 한국어를 배우려고 한다면 비즈니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료 강좌가 아닌 사업으로서 학원 경영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학생을 모집해야 하는데 '한국어학원'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우선 홍보가 급선무였다. 초기에는 손으로 직접 전단지를 돌리기도 하고, 약 20만 엔을 들여 신문에 전단지를 끼워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전단지를 보고 연락한 사람은 단 두 명. 그들이 신오쿠보어학원의 제 1호 수강생이 되었다.
"6개월 이상을 적자로 보냈고, 8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월급을 책정했습니다. 일본어만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어, 영어, 중국어 수업도 병행했지요. 물론 주변에서 도와주신 자금으로 시작한 사업이니 조바심도 있었죠. 그러나 학생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가는 것을 보고, '이건 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승민 대표는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들의 공부패턴, 성격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학생들은 1년이면 1년, 기간을 정해두고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성과를 내길 바랍니다. 매일 학원을 나오더라도 빠른 시간 안에 승부를 가리려고 하죠. 그러나 일본 학생들은 매일 학원에 나오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몇 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어학공부에 2년, 3년, 5년 등 장기계획을 세우는 거지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학원을 운영하려면 일본 학생들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작은 비록 2명이지만, 꾸준히 마케팅하면 학생수는 줄어들기보다 늘어날 것이니까요. 2년 후면 200명, 4년 후엔 400명 이런 식으로 누적된다고 생각하면 매출을 예상할 수 있었고, 힘든 것보다는 기대와 즐거움이 컸습니다" 이렇게 현장에서 직접 부딪쳐보고 깨달은 노하우로, 2004년 후반부터는 다른 외국어는 접고,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만 가르치게 되었다.
이승민 대표의 예상대로 일본 학생들은 이탈율이 적어 수강생 수는 점점 늘어만갔다. 2002년 2명으로 시작한 학생수는 2003년 말에 115명, 2004년 말에는 340명으로 급증했다. 현재는 신오쿠보 본원에만 600명, 신바시, 요코하마, 시부야 등 5개원에서 1000명을 가르치는 최대 규모 어학원으로 성장했다.
▲ 도쿄 최대의 코리아타운 신오쿠보,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성장했다 © jpnews | |
특히 수강생이 급증한 2003년에서 2004년 사이는 학원 성공 열쇠를 쥔 두 가지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다. 첫번째는 영화 '쉬리'부터 드라마 '겨울연가'까지 일본 열도를 강타한 한류 붐. 이승민 대표에 따르면
"이전까지 바로 옆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지도상에 한국이 어딨는지도 모르던 일본인들이 한국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고 한다.
두번째는 일본 tv 프로그램에 이승민 대표가 출연한 사건이다. 일본 열도가 놀란 한류 붐 덕에 당시 각 미디어는 한류붐 현상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으로 가득했다. 그 중 '미야케 유지의 도시로우토'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욘사마 붐과 함께 찾아온 한국어 공부 열풍'이라는 타이틀로 이승민 대표를 초대했고, 토크쇼를 가졌다.
이 방송이 전파를 탄 후, 평소 한국어에 관심을 갖고 있던 일본인들이 학원에 대거 문의를 하면서 한 달에 40~50명씩 신규 수강생이 늘어났다. 이후에도 꾸준히 수강생은 늘어갔고, 신오쿠보어학원은 어느새 일본 내 '한국어학원'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한류붐이 거셌다고 해도, 학원의 생명은 공부를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 학생들의 만족도에 의해 결정된다. 이승민 대표는 학원 개설 처음부터
"학원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좋은 선생님과 좋은 교재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 가지 조건에 아낌없는 정성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신오쿠보어학원은 10명의 강사 지원자 중 2~3명 밖에 채용하지 않을 정도로 강사 선정에 까다롭다. 아무리 학벌이 좋고 일본 경험이 풍부하더라도, 모의 강의에서 실력발휘를 못하면 가차없이 탈락이다. 이 기준은 자신에게도 직접 적용되어, 학원 초기에는 이승민 대표가 직접 강의를 맡아하다가 다른 강사들의 강의를 보고 "저보다 잘하시니 전 이제 경영만 하겠습니다"라며 과감히 손을 뗐을 정도다.
또한 강사들과 꾸준히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개발하고 있는 교재도 호평을 받고 있다. 신오쿠보어학원 교재로 개발된 '할 수 있다 한국어(できる韓国語) 시리즈'는 일본 출판계에서 몇 년째 한국어 교재 부문 1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독보적인 퀄리티를 자랑한다.
▲ 일본 내 한국어교재 중 몇 년째 1위 고수중인 신오쿠보어학원의 교재 데키루 한국어 | |
또 하나, 신오쿠보어학원만의 성공비결이라면 '들어가기 쉽고 나오기 쉬운' 수강료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일본의 사설학원은 보통 처음 들어갈 때 입회비 명목으로 1~2만 엔을 납부하고, 3개월, 6개월 단위로 한꺼번에 수강료를 지불해야 한다. 목돈이 없으면 배우고 싶어도 학원을 다닐 수 없고, 수강 도중 그만두고 싶어도 지불한 돈이 아까워 그만둘 수 없는 시스템이다.
몇 년전 일본에서는 악질적으로 수강생에게 장기간 계약을 하게 하고 환불하지 않는 영어, 외국어 학원이 파산하여 전국에서 수 억엔에 달하는 피해자가 속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런 일본 학원 시스템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던 이승민 대표는 과감히 입회비 무료, 매월 수강료 시스템을 도입했다.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부담없이 학원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배우고 싶으면 한달치 수강료만으로도 쉽게 등록할 수 있는 학원, 직접 다녀보고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쉽게 그만둘 수 있는 마음 편한 학원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물론, 저의 역할은 수강생들이 쉽게 그만두지 않도록 최고의 교육을 하는 것이구요"
이런 식으로 학원 문턱을 낮추니 전국에서 입소문을 듣고 수강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도쿄도 밖의 이바라키나 요코하마에서 다니는 사람은 물론, 연휴에 한국어 집중코스를 열면 히로시마, 오사카에서 신칸센을 타고 와 휴가내내 한국어 공부를 하고 가는 학생들도 생겼다.
"학원 초기에는 꼭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사연이 있는 사람, 매니아적인 성향의 학생들이 많았어요. 예를 들면, 남자친구가 한국 사람이라던가, 배우자가 한국인이라던가. 그런데 요즘에는 케이팝 한류 붐이 불면서 젊은 여성 분들은 물론, 남성분들이나 고등학생, 대학생 등 한국어를 배우는 층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는 50~60대 중년 한류팬들이 배운다고 생각하시는 데, 사실 그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중년여성보다는 젊은 20~30대 직장인 여성들이 대부분이죠. 빠듯한 월급을 받으면서도 매월 학원비 내가며 배우러 오는 직장 여성들을 보면 '한국어를 즐거워서 배우는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 학원에 다니는 많은 수강생들이 '한국어 공부하는 것이 인생의 낙이고 기쁨이다' , '여기오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합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을 알아가고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것에 대한 기쁨을 찾은 것이죠. 사실 일본생활은 안정적이긴 해도 약간 무미건조한 느낌이 있거든요. 익사이팅하고 열정적인 한국을 알아가면서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자극을 받아서 활력을 되찾는 것 같아요 "
학원 사업을 시작한 지 벌써 9년 째, 이승민 대표는 한국어학원에 대해 "굉장히 보람이 큰 직업"이라고 말했다. 특히 매년 한번씩 개최하는 한국어발표회, 스피치 콘테스트는 이전까지 관심조차 없었던 독도문제에 대해 학생 스스로 다시 생각해보거나, 한국 문화에 대해 심도있게 조사하는 모습에는 큰 감동과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어 시장은 축소되기보다는 확대되어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제가 영어를 잘하면 제 친구도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잖아요. 자극을 받아서. 마찬가지로 가족, 친지, 친구 중에 한국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갈 것입니다. 물론, 일본에도 제일 큰 어학시장은 영어입니다만, 일본인이나 한국인 모두 어순이 다르고 외울 것이 많은 영어를 배우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구요.
그러나 한국어는 일본어와 어순이 같고, 비슷한 한자어가 많아서 1년 공부하면 어느정도는 알아듣고 말하게 되지요. 나이 든 분이라도 어렵지 않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명씩 늘려가다보면 한국어 시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도 한국이 계속 매력있는 나라가 되고, 훌륭한 한국 문화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어야겠지만요"
이승민 대표의 목표는 욕심부리지 않고 천천히 한국어학원을 늘려가는 것이다. 현재 도쿄 근교에만 총 5개원이 있지만, 조금씩 늘려 10개원, 학생수 5000명을 돌파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방에도 한국어에 대한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어서 지방 관리가 가능하다면 지방 진출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며 일본사회에서 신뢰를 쌓고 있는 신오쿠보어학원. 일본 내 넘버원 한국어학원 파워를 계속 이어나갈 것임에 틀림없다.
◆ 코리안파워, 이승민 대표의 성공포인트!
▲ 신오쿠보어학원 이승민 대표 © jpnews | |
5년 간의 직장생활 후 '나를 업그레이드하자'라는 생각으로 서른이 넘어 건너온 일본 땅. 주변에서는 유학보다 결혼을 먼저할 나이가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힘든 유학생활을 견뎌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반 년이상 캐나다 어학연수를 떠났고, 빈털털이로 다시 돌아와 일본 땅에서 무료 한국어 지도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사업계획을 세웠다. 남들은 오래 못 갈거라며 수근거렸지만, 한류붐이 오기 전에 트렌드를 먼저 읽었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국어학원 원조 격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일본에 인터넷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을 때부터 일찌감치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정보를 제공했고, 현재도 한국어학원을 검색하면 상단에 노출되도록 되어있다. 직접 현장에서 가르치며 강사들의 노하우로 만든 교재가 수강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서점에서도 꾸준한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도쿄에는 우후죽순처럼 많은 한국어학원이 생기고, 많이 사라지고 있지만 신오쿠보어학원은 '원조' 한국어학원으로서 많은 일본인들에게 넘버원 이미지를 구축했다.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천천히 넓혀가며 신뢰를 쌓아간 것도 더할 수 없는 포인트.
늦은 나이에 유학생활을 보내고 힘들게 일군 사업에 어려운 점은 없냐고 묻자,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없다"고 한다.
"사업 시작하고 아직 10년도 안 지났는 걸요. 한 20년 쯤 같은 일을 하다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고 말하는 이원장. 긍정적이고 한결같은 그의 성실함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지 않았나 싶다.
재팬 드림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이승민 대표는 말한다.
"많이 축소되었다고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우리에게 없는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시장입니다.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한국인 특유의 적극성으로 도전한다면, 성공할 시장이 분명 일본에는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 지난 9년간 학생들과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어온 신오쿠보어학원 ©jpnew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