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있는 오사카 히가시오사카시는 오사카 이쿠노구에 버금가는 재일한국인 밀집지역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역사가 아주 오래된 오코노미야키집이 있었다. 가게이름은 이코나(伊奈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자주 갔던 곳이었다.
오래된 초등학교 같은 멋스러움이 있는 공간에, 민속공예조각이 새겨진 가구, 작가 시바료타로 씨의 '가로를 걷다(街道を行く)' 작품의 삽화를 그린 수다 코쿠타(須田剋太) 화백 그림들이 늘어서있는 신비한 느낌으로,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오코노미야키집은 가게 안의 종업원들이 구워주지만 여기는 셀프서비스로, 각자 자신이 굽고 싶은데로 굽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는 이 가게를 '히가시오사카의 귀빈관'이라고 맘대로 정하고 먼 곳에서 오는 손님들을 이 곳으로 초대했다.
내가 프리랜서 기자로 갓 독립했을 무렵, 어떤 남성주간지에서 맛집기사 연재를 맡게 되었다. 그 중 어떤 날, 야키소바를 테마로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이코나 메뉴에 있는 스지(소힘줄) 조림 야키소바를 소개하게 되었다. 스지 조림이란 소의 힘줄 부분을 고추장으로 맵고 달게 조린 음식으로 재일한국인들에게는 소울 푸드 같은 것이다.
그 때 만난 사람이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시인 정장(丁章) 씨다. 정장 씨는 재일한국인 3세로 당시 이코나 2대째 주인이자 시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분이다.
스지 조림 야키소바 취재를 하러 찾아갔던 어느 날, 동행했던 사진기자는 "중요한 기재를 놓고 왔다"며 기재를 가지러 가는 작은 사건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사진기자를 기다리게 되었고, 정장 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정장 씨와는 어릴 때부터 가게를 오가며 알고 있는 사이였지만,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많은 재일코리안을 만나고 사귀어 왔지만 일본 학교를 다니는 도중에 일본이름에서 우리 민족 이름으로 바꾸고, 자신의 정체성인 재일이라는 존재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가 바로 정장 씨였다.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
이야기가 잘 통했던 이유는 환경적으로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같은 재일이었고, 둘 다 배우자는 일본인이었다. 또한 정장 씨의 장녀, 우리집의 장남은 같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기막힌 우연이었다.
나의 모교이기도 한 중학교에는 무궁화회라고 하여 한국과 인연이 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민족 모임이 있다. 정장 씨는 그 모임의 초대회장이었고, 나는 그 곳에서 한국어, 무용, 노래등을 배웠다.
정장 씨의 부인과도 친해지게 되었는데 어느 날 "배우자를 뭐라고 부르세요"라고 물어보니 "아이들과 같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어요"라며 웃었다. 한 가정 안이지만 아이들과 부인은 정장 씨를 '아버지'라고 우리말로 부르고, 어머니는 '오카상(일본어로 어머니)'이라고 부르도록 교육했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집은 평소에 마마라고 부르고, 아들이 어리광부릴 때만 엄마라고 한다)
나는 지난해 조선 국적을 가진 정장 씨(사적으로는 '오빠'라고 부르고 있다)에게 '무국적 네트워크' 활동을 배웠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국적이라고 하면 북한을 가리키거나 북한 체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오해이다.
조선국적은 일본에 있어 외국인 등록법 상의 문제일 뿐, 국적은 아니다. 오히려 기호나 지역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일본에 살고있는 많은 재일코리안들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지만, 1965년 한일조약이 성립하기까지 재일 코리안 모두는 일본에 무국적 상태였다. 그리고 나도 결혼을 계기로 여권을 만들 때 일본에 출생신고는 했지만 한국에 호적이 없는 것을 처음 알았다. 모르고 있었을 뿐, 오래동안 무국적 상태였던 것이다.
자신을 항상 "무국적 재일사람"이라고 부르는 정장 씨는 조선 국적을 유지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조국(남북한)이 통일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국가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나는 언젠가 정장 씨에게 "조국이 통일하면 무국적을 포기하는 건가요? 통일 국가 국적을 선택하는 건가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정장 씨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 국적을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되는 나라가 만들어진다면."
같은 재일코리안이라고 해도 현재는 2세, 3세들이 중심으로, 조국으로부터 떨어져 세대도 가치관도 다양화되고 있는 상태다. 시간이 지나면서 민족과 핏줄에 대한 고민도 옅어지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코리안 중에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신 안에 있는 핏줄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언젠가 내가 본 한국 드라마에서 '사람은 두 번 죽는다'라는 말이 나온 적 있다. 하나는 생물적인 죽음, 그리고 또 하나는 기억으로부터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많은 재일코리안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에 대해 정장 씨는
"재일이라는 존재를 전하는 것은 재일로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이코나는 안타깝게도 문을 닫고 말았다.
대신 바로 근처에 같은 주인이 운영하는 카페 미술관(喫茶美術館)이라는 곳이 있다. 카페 미술관에서는 한국가요 콘서트,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 등 한국과 관련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이 곳에 가면 정장 씨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 곳을 새로운 히가시오사카의 귀빈관으로 삼고 중요한 손님들을 초대하고 있다.
혹시 여러분이 오사카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그 때는 부디 이 곳, 카페 미술관에 들러주었으면 한다. 많은 미술품이 있고 테이블에는 사계절에 맞는 꽃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음악과 함께 정숙을 즐기는 독특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재일사람'을 찾아주기 바란다. 카페미술관은 카페와 미술관을 겸한 공간, 커피와 오리지널 케이크, 미술, 민예,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카페미술관 간판의 글씨는 시바료타로 씨가 쓴 것이라고 한다.
홈페이지:
http://www.waneibunkasha.com/index.html주소: 577-0805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 호우지 1-2-18 와네이분카샤
연락처: 06-6725-0430
영업시간: 평일 오후 2시부터 9시 30분까지/ 주말, 휴일 오후 12시부터 9시 30분까지
정기휴일: 수요일
* 이 기사는 일본어를 원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문을 읽고 싶은 분은 일본어판을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