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원더풀 라이프>의 국내 개봉을 앞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만났다. 장시간의 인터뷰를 거의 끝나갈 즈음,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고레에다의 극영화 데뷔작이었던 <환상의 빛>에서, 남편이 죽은 이유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평온했던, 행복해 보였던 가정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자살한다. 아내는 그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믿는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사람까지 만났지만, 과거의 기억 그리고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는 남편이 자살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아내도 끝내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이 '환상'처럼 과거와 현재 사이를 흐를 뿐이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답해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기도 모른다며.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현실에는 늘 해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해답이 있다 해도, 그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유서를 써 놓았다고 해서, 그것 때문 만이라고 100%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 말고 더 큰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고, 숨기고 싶었던 무엇이 있을 수도 있다. 저명한 대학교수나 대기업 임원이 자살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스트레스나 우울증 때문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죽어야 할 이유를, 그 자신이 아니고 누가 알 수 있을까.
현실이란 그런 것이다. 정확하게, 양단간에 결정이 나거나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현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있다. 해답을 내리지 않아도, 그 현실을 담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다큐멘터리가 그런 법칙을 충실하게 지킨다. 대상에게 근접하여,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매체가 다큐멘터리다. 사실 예술이란 역시 애초에,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에 목적이 있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한 감독이다. 대만의 거장 후샤오시엔을 인터뷰하러 갔다가 감명을 받고, 극영화를 찍게 되었다고 말한다. 극영화를 찍으면서도 여전히 다큐멘터리의 방법론과 미학을 가지고 있던 고레에다로서는, <환상의 빛>에서 남편이 자살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을 수도 있다. 세상이란 그런 것이니까. 해답이 없어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보다 보면, 그런 묵직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아무도 모른다>의 어른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아이들을 비통한 마음으로 볼 때에도, <걸어도 걸어도>의 무겁지만 결코 내칠 수 없는 가족들을 물끄러미 바라 볼 때에도, 고레에다의 시선은 엄정하다. 연민과 온정이 담겨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의 시선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무겁고 참담한 기분이 든다. 그게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힘이었다.
그의 영화에 언제나 존재하는, 현실의 무게. 그것을 짊어지고 걸어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마음. <하나>처럼 코믹하게 흘러간다 해도, 세상의 무거움은 크게 덜어지지 않았다. <하나> 역시, 세상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에, 우리 즐겁게, 가급적 짐을 벗어던지고 유쾌하게 살아갑시다,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고레에다의 힘은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바라보게 하는 시선이었다.
<공기인형>의 기본적인 시선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섹스를 위해 만들어진 공기인형이 마음을 갖게 되고, 점점 인간처럼 되어가면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근원적인 절망. 공기인형을 보면서, 자신도 텅 비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아마도 이 세계는 공허한 무엇이 아닐까.
고레에다는 그 공허함을 이기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묘하다. 고레에다가, 아니 <공기인형>이 발언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영화는 진부해진다. 거식증을 앓는 여자, 인형의 팬티를 보며 자위를 하는 남자 등등 소통하지 못하고 텅 빈 채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하게 한다. 뻔한 이야기를, 너무나도 단순하게 동어반복을 한다. 현실보다는 판타지가 더 큰 무게를 차지하는 영화였기 때문일까?
다만 <공기인형>의 배두나는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몸도 예쁘고, 무표정한 얼굴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일본의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영화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몇 개의 대사들은 귀에 남았다. 그 중에 하나.
'공기인형은 타지 않는 쓰레기, 인간은 타는 쓰레기.'
▲ '공기인형'으로 일본 아카데미 우수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배두나 ©jpnew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