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웨이>의 내용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홋카이도의 고등학교 3학년인 히로와 슈는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히로는, 슈가 도쿄의 와세다 대학에 진학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히로는 과연 어떻게 할까? 오로지 그 얘기다. 그러고 보니 <4월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영화의 내용도 아주 간단했다. 짝사랑하던 선배를 쫓아 도쿄의 무사시노 대학에 진학한 소녀가 그를 만난다. 그 간단한 과정을 세밀하게, 차분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농담들을 늘어놓으면서 <4월 이야기>는 유유하게 진행된다. <하프웨이>도, 고백을 하고, 데이트를 하고, 슈의 지망학교를 히로가 알게 되어 잠시 헤어지고 등을 반복하며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렇다. <하프웨이>의 제작자는 바로 이와이 슌지이고, 대본작업에도 일부 참여했다.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풍경, 한없이 순수하고 투명한 일상, 농밀하게 터져오르는 청춘의 정서가, 이와이 슌지의 영화들에서처럼 <하프웨이>에도 가득하다. 거기에 하나 더 주목할 점이 있다.
<하프웨이>의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이는 <롱 베케이션> <뷰티풀 라이프> 등 일본 멜로드라마의 명작들을 써낸 기타가와 에리코다. 멜로의 여왕이, 미소녀 청춘영화의 제왕인 이와이 슌지를 만나 만들어낸 청춘영화 <하프웨이>. 그것만으로도 일단 기대가 된다. 그리고 기대처럼, 영화가 끝나면 쌉쌀하면서도 푸근한 느낌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아다치 미츠루의 초기작 <슬로우 스텝>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엘리베이터에서 남학생 하나가 고백을 준비하고 있다. 전철에서 매일 당신을 보았습니다...어쩌고 하면서 여학생에게 할 대사를 연습하는 것이다.
얼마 뒤 길거리에서 남학생이 예쁘장한 여학생에게 고백을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연습한 대사를 그대로 읊으면서. 그런데 여학생이 기쁜 얼굴로, 좋아요, 하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 남학생이 음....생각 좀 해보고요, 라며 돌아서 가버리는 것이다. 어이없기도 하고, 어쩐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은 야릇한 기분이 <슬로우 스텝>을 보면서 들었다.
<하프웨이>에 그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히로가 고백을 하려고 둑길에서 기다리고 있다. 자전거를 탄 슈를 가로막고 선 히로가 말을 못 한 채 우물쭈물하자, 이미 그 마음을 알고 있던 슈가 말해버린다. 나하고 사귈래요? 라고. 그러자 히로는, 아니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생각해볼게요...라며 돌아선다. 그리고 자전거가 둑길 아래로 돌진하며 넘어지고, 슈와 히로가 악수를 하고, 바이바이 하며 히로가 돌아서는 장면들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너무 좋으면서도 아닌 척 하고 싶고, 왠지 창피하기도 하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고 그런 고조된 기분들이 화면 위로 가득 펼쳐진다. 맞다. <하프웨이>를 보면서 이와이 슌지의 <4월 이야기>과 <하나와 앨리스> 그리고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가 떠올랐다. 맹렬하게, 웃고 울면서도 끝없이 아득하게 달려 나가는 청춘의 찰나들이 떠올랐다.
히로는 자신을 두고 떠나가려는 슈가 미웠다. 하지만 정작 슈가 와세다를 포기하고 자신과 함께 있겠다고 하자, 망설인다. 마음속으로는 보내기 싫지만, 보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하프웨이>를 보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아무리 굳세다고 해도, 그들의 미래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지금 너무나 사랑한다 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그들도 알고는 있다.
'하프웨이'라는 제목처럼, 이것이 단지 '도중'이라는 것을 그대로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히로는 슈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 흔들리는 마음, 요동치는 현재가 바로 청춘의 특권이자 모든 것이다. 아무 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한없이 불안하면서도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시절. <하프웨이>는 그런 청춘의 한 순간을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그려낸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들과 잠깐 비교한다면, 물론 이와이의 영화가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영화적'이라는 의미에서는 더욱 더. 하지만 <하프웨이>의 장점은, 지극히 세밀하고 사실적인 심리 묘사다. 히로의 마음을 그려내는 대사와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그녀가 사랑스러워진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가, 남자가 그리는 소녀에 대한 판타지라고 한다면, <하프웨이>는 같은 여성의 시선으로 순간순간을 포착한 소녀의 일상이자 마음이다. 보기에는 이와이 슌지의 영화가 한층 풍성하지만, <하프웨이>에서는 히로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히로라는 캐릭터에게 무한한 애정이 생겨난다. 역시 일본은 청춘물의 낙원이라는 생각이 들며, 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