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지>란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한다. 26살의 이토 카이지는 직장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별다른 꿈도 없이 나날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보증을 섰던 친구의 빚을 갚으라며 금융회사에서 찾아온다. 당연히 돈이 없는 카이지에게, 한꺼번에 돈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유혹한다. 그리고 카이지에게는, 목숨을 건 '도박의 세계'가 펼쳐진다.
<카이지>의 원작은 1998년 고단샤 만화상을 수상한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도박묵시록 카이지>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여느 도박만화처럼, 탁월한 테크닉과 운으로 강적들을 물리치며 도신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지 않는다. 후쿠모토 노부유키는 승부의 드라마나 쾌감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도박의 근원 자체를 파고든다. 인간이 왜 도박을 하는지 질문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이 세상 자체가 도박의 원리로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가장 단순한 가위바위보 게임과 외나무다리 건너기 등으로 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법칙을 설명하는 후쿠모토의 통찰력은 정말 눈부시다.
후쿠모토 노부유키는 만화가 데뷔 후 '마작잡지'에 주로 작품을 발표했다. 마작과 파칭코 등 도박잡지를 사보는 사람들은 일종의 도박 중독자들이다. 그들의 관심은, 게임에 이기는 법이다. 그리고 세상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나도 당첨자가 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복권을 사듯이, 순간의 승리에 도취되어 날마다 도박장으로 향한다. 후쿠모토는 도박잡지에 발표한 만화를 통해 도박의 테크닉이 아니라 세상의 무서움을 알려준다. 그리고 진정으로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준다. <은과 금>이 그렇고, <도박묵시록 카이지>도 그렇다.
<최강전설 쿠로사와>도 같은 주제이긴 하지만,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아가던 중년의 쿠로사와가 인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다. 도박에 빗대지 않고, 이 잔혹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자체를 인생의 패배자 쿠로사와의 고난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적은 돈으로, 약간의 운과 실력만 있으면 한꺼번에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돈이 굴러들어 온다. 그건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유혹이 아니다. 약간의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뛰어드는 게 인생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런 '모험'은 언제나 닥치기 마련이다. 다른 것은 가능성의 높고 낮음일 뿐이고. 그러나 도박장에서 돈을 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박장에서 분명하게 돈을 긁어모으는 사람은, 단 하나 도박장의 주인이다. 그리고 나머지를, 극히 소수의 사람이 독차지한다. 확률은 극히 낮다.
그러나 '나도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소망 하나만으로, 사람들은 실낱같은 가능성에 매달린다. 무엇인가에 중독이 되는 이유는, 결코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자주 채워질 수 있는 욕망이라면 누구도 중독되지 않는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매달리고, 중독되고, 목숨을 건다. 그게 '특별히'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을 사는 것은 모두가 도박이다. 누구나 가능성을 믿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만화가 <도박묵시록 카이지>였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에 등장하는 첫 번째 도박은 가위바위보다. 한 사람이 각각의 무늬 네 장씩, 모두 12장을 가지고 무작위의 상대방과 싸우는 것이다. 각자의 가슴에는 별 세 개가 달려있는데, 이기면 하나를 뺏어올 수 있다. 네 시간 동안 카드를 모두 쓰고, 가슴에 별 세 개가 달려 있으면 빚이 청산된다. 이제부터 치열한 머리 싸움이 벌어진다. 가위바위보처럼 단순한 게임이, 운명이 걸린, 수학적 확률과 자신에게 주어진 운의 무게를 일일이 따져봐야만 하는 벼랑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승부수는 결코 머리나 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속임수다. 얼마나 상대방을 잘 속이는가. 말로 속이든, 카드로 속이든 상관없이 속여 넘긴 사람은 빠져나가고 속아 넘어가거나 소심한 사람들만 남는다. 그게 바로 이 세상의 진짜 법칙이다. 공정하다고, 성실하게 노력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말은 대부분 허구다. 승자는 이미 결정되어 있거나, 거짓말과 사기에 의해 결정된다.
도박선에서 내린 카이지는 또 다른 도박에 참가하게 된다. 허공에 폭이 좁은 널빤지가 놓여 있고, 세 사람 중에 먼저 건너가는 사람만이 구제받는다. 조금만 아차 하면, 바닥으로 떨어져 큰 부상을 입는다. 한 사람이 망설이다가 건너가고, 또 뒤따른다. 알고 보니 이 게임은 조심해서 먼저 건너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었다. 뒷사람이 앞사람을 밀어 떨어트리고 자신이 1등이 되는 게임이다.
게다가 그 생명을 건 '생존경쟁'을 즐겁게 지켜보는 관객들이 있다. 인정하기 쉽지는 않지만, 그게 바로 세상이다. 카이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처한 현실인 것이다. 남을 밀어 떨어트리지 않으면, 내가 뒤처지거나 떨어지는 시스템. <도박묵시록 카이지>가 보여주는 것은 도박의 승부가 아니라, 이 세계의 자명한 법칙인 것이다.
다만 영화로 만들어진 <카이지>는 원작의 무게나 스릴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 걸작 만화를 스크린에 옮긴 일본영화가 졸작인 경우는,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