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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국물에서 건져 먹고, 난 소스에 찍어 먹고
 
홍유선 번역작가

얼마 전에 조카 친구가 일본으로 여행을 왔다. 입사 순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기업의 입사 시험에 합격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온 첫 해외 여행이었다.

 

숙박은  집 근처 게스트 하우스에서, 식사는 우리와 같이 먹으며 며칠을 같이 보냈다. 하루는 같은 게스트 하우스의 룸 메이트와 함께 저녁을 먹으로 간다기에 집 근처의 라면집을 소개해 줬다.

 

야스베(일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싼집)란 이름으로, 직접 면을 뽑고 양을 곱배기, 곱곱배기여도 추가 금액 없이 선택 해 먹을 수 있는 라면집이다. 야스베는 츠케멘 전문집으로 맛있는 곳이어서 시간대 별로 긴줄을 설만큼 인기가 높아 약도를 그려주면서 꼭 가보라고 권해 주었다.

 

조카 친구는 내가 소개한 라면집에 다녀와서 그렇게 유명한 곳인 줄 현장에 가서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고 신기해 했다. 같이 동행한 사람과 식권을 산 뒤 라면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직장인 차림의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걸어 오더란다. 그것도 한국말로 회사원이냐고 물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현지인이 아닌 여행객이라고 대답하니, 그는 깜짝 놀라면서 "이 라면집은 보통 여행객으론 절대로 알 수 없는 곳이다. 일본 현지에서 오랫동안 산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특별한 집"이라고 설명해 주더라는 것이었다.

 

그가 놀란 것은 또 있었다. 카운터 형태의 테이블에 나온 라면의 양이 너무 많아 놀랐다는 것. 곱배기를 누른다는 것이 식권 자판기에 쓰여 있는 일어를 잘 몰라 곱곱배기 식권을 산 모양이었다.

 

그 친구는 한국의 따로 국밥처럼 면과 국물이 따로따로 나와 이게 무슨 라면인가 싶었단다. 나도 그럴 것 같아 미리 그에게 "야스베 라면집은 면과 국물이 따로 나온다. 그러면 모밀처럼 면을 국물에 넣어 소스처럼 찍어 먹어야 한다"고 얘기해 주었는데,막상 면과 국물이 따로 나오니까 생소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곱곱배기를 시켜 면의 양이 워낙 많아 남길 줄 알았는데, 라면 맛이 생각보다 훨씬 맛있어서 그 많은 라면을 다 먹고 왔다고 배를 두드렸다.

 

일본에는 츠케멘 라면집이 많다. 츠케는 '담그다'란 뜻으로 츠케멘 라면은 면을 소스라고 할 수 있는 국물에 담갔다가 먹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 라면 국물에 비해 따로 나오는 츠케멘 국물은 소스처럼 진하고 고명도 많다.

 

야스베는 우리 식구들도 좋아해서 주말이면 자주 가는 단골 라면집이다. 옷감에 비유하자면 실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한 식감의 면발은 물론, 소스도 일품이라 늘 손님들로 붐비는 그런 라면집이다.

 

또한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메도키란 라면집은 일본의 서민들이 즐겨 먹는 시타마치의 라면 맛을 그대로 살린 담백한 간장맛 라면집이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기 있는 라면은 기름지고 강한 맛의 돈고츠 라면이다. 반면 메도키 라면집은 고소한 맛의 돈고츠 라면과는 전혀 다른 담백한 맛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은 오전 1130분부터 3시까지 점심에만 영업을 한다. 그런데 손님이 많으면 3시가 되기 전에 문을 닫기도 한다. 그 날 하루 준비한 스프 즉, 라면 국물이 떨어지면 라면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손님이 많아 준비한 양의 라면이 다 팔리면 2시에도 문을 닫곤 한다. 이곳 역시 점심 시간에는 줄을 서야 라면을 먹을 수가 있다. 

 

허리가 구부정한 이 가게 할아버지는 저녁마다 라면 스프를 만들고 쨔슈(돼지 고기를 삶아 기름을 빼고 간장에 담가 간을 배게 한 덩어리 고기)를 준비한다. 그 날 그 날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으므로 하루에 파는 라면의 양은 정해져 있다. 쨔슈는 우리 나라의 보쌈용 돼지고기와 비슷한데 간장 소스에 담궈 맛을 낸다.

 

이렇듯 동네마다 그 동네 사람들만 아는 숨은 라면집이 무수히 많다. 그래인지 일본인들의 라면 사랑은 해를 거듭할 수록 진화하고 있다.

 

위에 소개한 야스베 라면집은 순환선인 야마노테선의 다카다노바바란 역 근처에 있다. 다카다노바바 역 주위에는 와세다 대학과 각종 전문학교 밀집 지역으로 젊은이들의 거리로 불린다. 그 중간 지점에 있다.  

 

그런가 하면 다카다노바바의 야마노테선 발차 멜로디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흑백 텔레비전으로 봤던 아톰 노래다. 아톰을 그린 만화가 데츠카 오사무의 회사인 데즈카 프로덕션이 다카다노바바에 있어 그래서 아톰을 기념해 다카다노바바 역 앞에 아톰 벽화가 그려져 있다만화 속 아톰이 태어난 과학성이 있는 장소가 바로 다카다노바바였기 때문이다.

 

다카다노바바는 아톰과 더불어 라면의 거리로도 유명하다. 한동안 연말에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집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10년전 쯤 오래노 소라(나의 하늘)라는 후미진 골목에 있던 작은 라면집이 1등을 한 이후로 다카다노바바가 라면 거리로 등극했다. 현재 역을 중심으로 반경 500미터 안에 130여 개의 라면집이 성업 중에 있고전국 1위에 뽑힌 라면집도 몇 군데나 된다.

 

가장 맛있는 라면 국물을 만들기 위해 실패에 실패를 거듭, 종국에는 이혼까지 당하면서도 라면에 목숨을 건 결과 손님들이 몰리면서 체인점까지 내는 등 대성공을 거둔 라면집 사장님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가게는 크지 않아도 나만의 맛을 고집하는 라면집 사장의 철학이 담긴 개성있는 라면 집도 있다.

 

일본은 라면 왕국이다. 라면 스프를 만들기 위해 몇 년을 수도하듯 정진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일까. 유서 깊은 어느 라면집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그 집 라면을 먹기 위해 수십년 전부터 찾아오는 단골 손님도 있다. 한번 먹어본 라면 맛을 못잊어 일본에 올 때마다 찾아오는 것이다.

 

아무튼 일본 여행을 꿈꾸는 이라면, 라면마다 각기 스토리가 있는 일본의 다양한 라면을 한 번쯤 먹어 보는 것도 특별한 여행이 되지 않을 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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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7/29 [01:31]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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