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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무라 전 아사히 기자를 말한다(3)
위태로운 촛불 같은 그와의 '만남'
 
강명석

지금 회상해봐도, 내가 경험했던 홋카이도에서의 유학 생활은 조금 특별했다. 단순히 좋은 의미에서의 '특별함'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는 도무지 접할 수 없는 일들을 늘 가까이해야만 하는 '특별함'이었다.

 

아무러면 다니고 있는 학교에 수강 중인 수업에 매일같이 폭파 예고 편지가 날아드는 유학생활을 그 누가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홋카이도에서 반년짜리 유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대학에서 일어과를 다니고 있었지만 일본어 회화가 아주 서툴렀기 때문이었다. 가톨릭대학교는 홋카이도의 삿포로 소재 호쿠세이대(北星学園大学)과 자매결연 학교로 가톨릭대 일어과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반년짜리 해외현장학습 프로그램이 있었다. 원래는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었지만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참가하는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 들었다.

 

이는 현실적으로 양국의 학교 관계에 커다란 문제로 다가왔다. 매년 보내는 학생 수가 줄어버리면 학교간의 관계도 소원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일본어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는 복학생인 내가 전공 교수님의 눈에 띄었는지 교수님은 나에게 해외 현장학습 참가를 강력하게 권해 왔다. 영문도 모른 채 교수님 방으로 끌려가 상담을 받았고, 이어서 이미 접수가 마감된 해외현장학습에도 불구하고 추가 지원 서류를 넣는 등  이 모든 전개가 마치 사전에 계획된 것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래서 마침내 홋카이도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2014년 9월, 삿포로 외곽인 오야치(大谷地)에 위치한 호쿠세이대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호쿠세이대는 하얀 눈이 쌓이는 겨울날이면 근처 숲에 사는 야생 여우가 학교 운동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배회할 정도로 온화하고 따뜻한 풍경이 있는, 작고 평화스러운 학교였다. 홋카이도 사람들은 따뜻하고 친절했으며, 배려가 깊었다.

 

이처럼 겉모습만 봤을 때는 이 조용한 학교에서 비상근 강사의 해임을 두고 맹렬한 외부의 압력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우에무라 다카시. 그는 전 아사히 신문 기자 출신으로 젊은 시절, 한국 최초로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증언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이야기를(보도 당시엔 익명이었다) 보도한 인물이다. 1991년 8월 11일의 일이었다.

 

그는 이 기사를 작성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20년도 더 지난 2014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우익 성향의 일본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고, 인터넷과 SNS 상에서는 그를 향한 저주에 가까운 말들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왔다.

 

물리적으로는 신문사를 조기 퇴사하면서까지 소망했던 대학교 교수에의 이직이 막혀버렸다. 그것은 같은 해 2월, 일본의 유명 주간지 주간문춘(週刊文春)에 다음과 같은 표제의 기사로부터 시작됐다.

 

<‘위안부날조’ 아사히신문 기자가 아가씨 여자대학 교수로>

 

주간문춘은 우에무라 전 기자의 1991년의 기사에 대해 ‘정신대 용어의 혼용 표현에 대한 오류’, ‘故 김학순 할머니의 기생 학교 이력 생략’ 등을 지적하며 당시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장모를 돕기 위한 의도적 날조 기사라고 비난했다.

 

물론 주간문춘의 기사는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세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없었던 일본 독자들은 주간문춘의 기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주간문춘은 마치 사람들의 분노를 조장하기라도 하듯 노골적으로 대학과 기자의 이름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이것은 의도하지 않고는 공개적으로 실명을 밝힐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이후는 한일 양국 언론에 난 그대로다. 이튿날부터 해당 학교에는 매일 같이 항의성 전화가 빗발쳤다. 우에무라 전 기자를 교수로 채용하면 학교를 폭파시키겠다는 협박전화도 부지기수였다. 결국 학교 이미지와 안전을 고려했던 대학 당국은 이 같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우에무라 전 기자를 안고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로써 그는 당연한 것처럼 대학교수 임용이 취소됐다. 

 

지난 번 연재에 등장했던 고베쇼인여자대학교가 바로 우에무라 전 기자의 교수 임용이 취소되었던 곳이다. 그는 이 대학의 교수로 가기 위해 다니던 아사히 신문 기자직까지 그만둔 터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익들의 협박에 그만 학교가 손을 든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비상근 강사직으로 강의를 하고 있던 호쿠세이대학에서도 그의 입지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호쿠세이대학은 한국어가 유창하고 한국, 이란 특파원을 역임한 기자로서의 경력이 풍부한 그를 고용하고 싶어했지만, 연일 빗발치는 ‘해임하지 않으면 학생에게 가해하겠다’, ‘폭발물을 설치하겠다.’ 는 등의 협박 공세를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이 즈음이 바로 내가 호쿠세이에서의 유학 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물론 당시 나는 아직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유학생 환영 파티에 참석해 홋카이도 한정판, 삿포로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우에무라 교수의 존재와 대학에까지 미치는 우익들의 공격에 대해 듣게 된 것은 수강신청을 하는 키라리(Kirari)라고 불리우는 유학생 전용 기숙사의 거실에서였다.

 

앞서 밝혔듯이 당시 나의 일본어 실력은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할 정도였을 뿐, 그 이상은 불가능한 레벨이었다. 다행히 키라리에는 나보다 일찍 유학 와 있었던 후배가 있었고 그로부터 유학생활에 필요한 여러 조언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수강신청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저녁, 그 후배가 나를 찾아와 우에무라 교수의 수업을 수강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우에무라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한국을 아주 좋아하고 한국어에도 능통하다”, “과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기사를 쓴 이유로 일본 우익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으며 학교에서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교수님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그 분의 수업을 수강해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는 후배의 말에는 뭔가 울림이 있었다. 또한 후배가 존경하는 비상근 강사의 수업을 나도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에무라 교수의 수업을 수강하게 된 것이다.

 

< 살벌한 분위기 속에 시작한 수업 >

첫 수업부터 버라이어티한 전개가 펼쳐졌다. 먼저 수업을 듣는 학생 전원에게 수업 시작 1시간 전에 교실 변경 통지가 날아들었다. 교실에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뿐만 아니라 수업 시작 후 굳게 닫힌 교실 앞 뒷문에는 경호원이 철벽처럼 지키고 서 있었다. 그리고 유학생들을 전담 관리해주던 여교수는 첫 수업부터 설명이랍시고 우에무라 교수님이 강의하고 있는 수업 중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당당하게 교실에 들어와 훼방인지 조언인지 모를 얘기를 하고 돌아갔다.

 

“이 수업 중에 위험한 일이 생겨도 학교에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니 타 수업을 신청해도 좋다.”

 

학교 측으로서는 당연한 경고였겠지만 우에무라 교수님의 입장에서는 결코 즐겁지 않은 경고였다. 자신의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들에게 그것도 수업 중에 타 교수가 들어와 ‘이 수업은 위험하니까 듣지 않는 것이 좋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일본인 학생들은 처음부터 이 같은 위험성을 감지했는지, 아예 우에무라 교수님의 수업에 수강신청을 하지 않았다.

 

일본인 학생은 수업에 자주 참석하지 않는 4학년 여학생 한 명이 유일했다. 이 여학생을 제외하면  우에무라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학생은 대만인 2명과 중국인 1명, 그리고 4명의 한국인 학생이 전부였다. 일본인 학생이 다수를 이루는 다른 국제교류 수업과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현상이 계속 벌어졌다. 먼저 비밀리에 활동하는 사복 차림의 경호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연령이나 분위기가 다른 일반 학생들과는 달라 쉽게 눈에 들어왔다. 수업을 함께 듣는 유학생 친구들과 캠퍼스 내를 걷다가 그들과 곧잘 마주쳤고, 어울리지 않는 학생스러운(?) 변장을 한 그들 모습에 우리는 자주 실소하곤 했다.

 

학교 본관 건물에 붙은 학장의 통지문도 위화감을 갖게 만들었다. 학교에 불온한 동기의 편지가 다량 오고 있으며 학생들을 가해하겠다는 협박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일반 학생들은 학내의 이러한 소식에 대부분 무관심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우익들의 협박성 전화와 편지와는 상관없이 호쿠세이대학의 평화로운 수업 풍경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우익들의 협박은 매일 계속됐지만 나의 유학생활이 끝날 때까지 실제로 폭발물이 발견되거나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가해 행위는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당국이 경호를 위해 연간 3000만 엔이 넘는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변하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은 어쩌면 비범함의 극대칭 선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화로운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가혹한 것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호쿠세이대학 당국과 우에무라 교수님은 불특정 다수의 일본 우익세력과 격렬한 전쟁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나와 우에무라 교수님과의 만남은 나에겐 보이지 않았던 ‘그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동기부여를 안겨 주었다.

 

이렇게 나의 유학 생활이 특별해진 데에는 거센 일본 우경화의 바람 앞에 위태로운 촛불같은 비상근 강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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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21 [02:59]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ㅇㅇ 17/03/2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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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기사네요 송벅 17/03/21 [21:20]
1편부터 읽고있는데 구성과 짜임이 훌륭합니다. 앞으로의 내용이 기대되는군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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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사히 신문 기자 시절, 일본군 위안부 기사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가는 대학마다 협박으로 임용이 취소되는 등 일본 극우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우에무라 다카시. 그는 현재 카톨릭대학의 초빙교수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우에무라씨를 한국으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한국 유학생 강명석 씨. 우에무라씨 곁에서 그가 어떻게 일본 우익들과 싸우고 더불어 일본의 양심세력들과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지, 그 현장을 낱낱이 기록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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