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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무라 전 아사히 기자를 말한다(4)
‘목소리를 낸다는 것의 중요함’
 
강명석

2017년 2월 25일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날로부터 3일 뒤 나는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이날 팽목항에 도착한 건 오후 5시 경. 사방을 둘러봤지만 인적은 거의 없었다. 필자가 타고 온 버스가 마지막 버스였기 때문이다.

 

어스름 옅게 깔린 팽목항 부두에는 노란 리본이 그려진 빨간 등대가 불을 밝히며 서 있었다. 메모지에 적혀있는 추모의 글을 따라 천천히 부둣가를 걸었다. 아직은 바닷바람이 차가웠다. 그리고 더 차가웠을, 바닷물 속에서 천천히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을 떠올려 보았다. 상상할 수도 없는 두려움과 고통이 그 아이들을 엄습했었을 것이다.

 

내가 일본 유학 후 곧바로 팽목항을 찾은 이유는 유학중 우연치 않게 열어본 유튜브 동영상이 강하게 뇌리에 남았기 때문이다.

 

단원고 학생들이 침몰하는 배 안의 상황을 찍은 동영상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학생들은 그저 ‘이동하지 말라’는 선내 방송에 따라 이미 크게 기울어 물이 들어차고 있는 객실에서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서로에게 농담 섞인 말을 건네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오히려 친구들의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 주려는 듯이 말이다.

 

나는 동영상 속의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동영상을 촬영했던 그로부터 벌써 3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선장 및 선원들은 재판을 통해 법적 처벌을 받았지만 이 배가 숨기고 있는 비리와 부정의 온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채다.

 

또 다른 동영상을 열어보았다. 그 영상에는 청와대 앞에서 절규하는 피해자 유족들의 절규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앵글은 유족들의 모습에서 서서히 움직여 경찰들이 굳게 지키고 있는 청와대의 담 너머 하늘로 시선을 두었다.

 

어쩐지 나에겐 이 일련의 사태가 한일 ‘위안부’ 문제와 매우 닮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리치는 피해자, 외면, 은폐하고 축소시키려는 위정자와 이를 방관하는 사람들, 이 3박자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거기에 사실을 왜곡하는 미디어는 덤이다.

 

팽목항 곁에는 아직도 피해자 가족들이 생활하고 있는 컨테이너 박스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팽목 분향소’라고 적힌 단원고 피해 학생들의 작은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분향소에서 짧게 추도의 목례를 마치고 민박을 찾아 나서려는데 ‘휴게소에 들러 차 한 잔 하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눈에 들어와서 발걸음을 옮겼다.
 
휴게소 안에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혼자 오셨어요?’
‘저녁식사는 아직이지요?’

 

살가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그렇게 엉겁결에 식사를 대접받게 되었는데 ‘술은 조금 하시나?’로 자연스레 이어져 술자리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팽목항 부두에 걸린 헌 리본들을 새 리본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하러 온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이들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사람들로 정기적으로 이곳 팽목항을 찾아 남아있는 피해자 가족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술이 얼큰하게 들어가고 취기와 함께 자리의 분위기도 서서히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그들이 궁금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정기적인 모임을 갖게 되었는지.

 

혼자 와서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는 나를 배려해줬던 서른 초반의 광주에서 온 막내 봉사자 분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들은 그냥 모두 술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사연을 들어보니 이곳 팽목항에 남아있는 피해자 가족들은 유가족도 될 수 없었던 ‘미수습자 가족’들이라고 한다. ‘미수습자 가족’이란 아직 선체에 있을 유체를 수습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가족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 자원봉사자들은 ‘미수습자 가족’들의 사정이 너무나도 딱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매주 촛불집회에도 참석해 선체에 남겨진 가족과의 재회를 애타게 기다리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그 아픔에 공감하고, 피해자의 권리 회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저항하는 이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사회의 정의를 지탱해 오고 있는 주체들일 것이다.

 

▲ 지난달 진도 팽목항의 모습. 어스름이 옅게 깔린 팽목항 부두에는 노란 리본이 그려진 빨간 등대가 불을 밝히며 서있었다.  / 사진 = 강명석      © JPNews

 

한편, 2014년 호쿠세이의 가을, 아직까지 우에무라 다카시 비상근 강사에 대한 고용 중단을 발표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호쿠세이 대학이 괘씸해서였는지 일본 우익들의 대학에 대한 협박 편지와 폭파 예고는 점점 거세져만 갔다.

 

인터넷상에서는 ‘호쿠세이 졸업생은 기업에서 채용하지 말라’ 등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었고, 결국 우에무라 본인이나 대학에 이 같은 공격이 통하지 않자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우에무라 선생님의 딸에게까지 살해 협박이 이어졌다.

 

따라서 수업 1시간 전 갑작스러운 교실 변경도, 교실 문을 굳게 지키는 경호원들도 우에무라 비상근 강사의 수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은 나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비쳐질만큼 우에무라 기자에 대한 협박사건'은 호쿠세이 대학에서 일상화가 되었다.

 

그렇지만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달갑지 않은 이 같은 현실에도 우에무라 선생님의 수업은 즐거웠다. 솔직히 당시 나를 포함한 유학생들은 우에무라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서도 교실 폭파나 가해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극심한 협박을 받고 있는 당사자인 우에무라 선생님이 아무런 내색 없이 늘 웃고 계셨다. 뿐만 아니라 소바를 함께 만들어 먹기도 했고 음악회에 참가하기도 하며 때로는 눈이 내리는 겨울날 함께 온천에 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리는 우에무라 선생님의 고용이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동안 우에무라 선생님은 우리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기본적으로 선생님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대략 설명을 해주셨지만, 학교 당국과의 관계 등 구체적인 이야기는 말하지 않았다.

 

우에무라 선생님의 고용이 중단될 지 모른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우에무라 선생님에 대한 협박 사건을 오랫동안 취재하고 있는 홋카이도 신문의 여기자에게서였다. 그녀는 취재의 일환으로 내게 ‘대학이 선생님에 대한 고용을 중단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물어 왔다.

 

나는 의견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폭파 위협을 가하는 등의 외부 압력에 굴복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해 그대로 대답했다. 기자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수업은 재미있는지’, ‘평소에 어떤 것들을 배우는지’ 등에 대해 물어왔고, 나는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충분히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의 의견을 천천히 말해 주었다. 다행히 그녀는 친절하게도 느릿느릿 말하는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를 가지 모두 들어주었다. 홋카이도 신문의 하세가와 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2014년 5월 말경부터 계속된 우에무라 선생님과 호쿠세이에 대한, 말 그대로 쏟아지는 비난 전화와 공격성 메일, 협박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경직된 일본의 언론 환경에서는 그 어떤 매체도 우에무라 선생님과 호쿠세이의 사건에 대해 기사를 쓰는 매체는 없었다.

 

협박이 학교 운영진이나 우에무라 본인에게 한정되지 않고 학생들이나 우에무라 선생님의 가족, 특히 미성년자인 고등학생 딸에게까지 살인협박을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세가와 기자는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으며 사람을 경계하기 시작한 우에무라 선생님에게 끈질기게 다가가 취재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우에무라 씨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힘든 시간을 겪으며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말해줬다.

 

지금은 희끗희끗 백발에 가까운 여기자가 되었지만 처음 만날 당시에는 아직 머리가 검었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아직 확실히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대학 이사회에서는 우에무라 씨에 대한 고용 중단 쪽으로 상황이 많이 기울었다’는 서글픈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마케루나 호쿠세이(직역:지지마 호쿠세이의 모임)’라는 시민단체와 만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마케루나 호쿠세이'모임은 ‘우에무라 선생님을 지키는 일이 지역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홋카이도의 소규모 시민단체다.


대학이 외부의 압력으로 굴복하는 것, 그것도 전(前) 언론인이 타깃이 됐다는 사실에 사회위기를 느낀 시민들이,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또다른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거리로 뛰쳐 나온 것이었다. 이들은 거리에 나가 행인들에게, 언론이 이야기하지 않는 우에무라 선생님과 호쿠세이 대학 협박사건을 전단지로 만들어 나누어 주며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한번은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다른 유학생들과 함께 이 전단지 배포에 동참한 일이 있었다. 많은 일본의 시민단체가 그렇듯이 ‘마케루나 호쿠세이'도 고령층의 회원들이 대부분이었다. 홋카이도는 10월이면 땅이 얼어붙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 새벽부터 미끄러운 길을 걸어 나와 목이 터져라 외쳐가며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단 하루 참가했을 뿐인 우리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젊은 사람들이 나와 배포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받아 간다’라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렇게 웃는 그분들의 표정에는 진한 따뜻함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극우들의 계속된 협박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호쿠세이 대학은 우에무라 선생님의 고용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그러자 홋카이도 시민단체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학교를 찾아와 항의성 설득을 하는 것은 물론 홋카이도 신문 등 지역 언론사들도 한 목소리로 대학 당국이 협박에 굴복하는 것은 곧 사회정의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서 일본 전국의 언론매체들이 동참해 같은 목소리를 냈다.   

 

결국 홋쿠세이 대학도 시민들과 올곧은 언론인들의 외침에 고용중단 결정을 번복했다. 학장은 “언론과 대학의 자치를 탄압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선언하며 우에무라 씨의 고용중단 결정은 없던 일로 한다고 발표했다. 양심적인 시민들의 발로 뛴 승리였다. 덕분에 우메무라 선생님의 고용도 지켜낼 수 있었다.

 

사회에는 이런저런 모순들이 있다. 언제나 내포하고 있는 모순들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들을 끄집어내어 하나하나 이야기 해나가는 것에 대해 부담감과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사회가 갖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그저 순응해 나가는 일이라고 역설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있다. 나 또한 이와 비슷한 부류의 한 사람이었다.

 

사회에는 언제나 모순이 존재한다. 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촛불시위에서도 확인했듯이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부정한 정권을 끌어내리고 거대한 선박을 들어올렸듯이 우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홋카이도에서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결코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 한 비상근 강사의 부당한 해임을 막아낼 수가 있었다. 당장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이야기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을 때도 있다. 지금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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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08 [01:48]  최종편집: 1999/11/30 [00:00]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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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사히 신문 기자 시절, 일본군 위안부 기사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가는 대학마다 협박으로 임용이 취소되는 등 일본 극우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우에무라 다카시. 그는 현재 카톨릭대학의 초빙교수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우에무라씨를 한국으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한국 유학생 강명석 씨. 우에무라씨 곁에서 그가 어떻게 일본 우익들과 싸우고 더불어 일본의 양심세력들과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지, 그 현장을 낱낱이 기록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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