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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획연재 > 강명석의 우에무라 전 아사히 기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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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무라 선생님과의 재회
<연재> '위안부 보도' 우에무라 전 아사히 기자를 말한다(9)
 
강명석

(편집자 주: 이전 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전 글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우에무라 전 아사히 기자를 말한다(1) - 위안부 기사로 日극우의 공격 대상이 된 그의 생생한 현장기록 

우에무라 전 아사히 기자를 말한다(2) - 호쿠세이 대학에서 우에무라 기자와의 운명적인 만남

우에무라 전 아사히 기자를 말한다(3) - 위태로운 촛불 같은 그와의 '만남'

우에무라 전 아사히 기자를 말한다(4) - ‘목소리를 낸다는 것의 중요함’

우에무라 전 아사히 기자를 말한다(5) - 일본어 스피치 대회에서 우에무라 사건을 말하다

우에무라 전 아사히 기자를 말한다(6) - 예상치 못한 여학생과의 언쟁이 계기, 우에무라 기자 연구 시작

우에무라 전 아사히 기자를 말한다(7) - 홋카이도 일주 통해 체감으로 느낀 주민들의 친절함

우에무라 전 아사히 기자를 말한다(8) - 자전거 여행, 그리고 후쿠시마

 

 

 

아오모리 현은 일본 전국생산량 60%를 점유하는 사과와 연간 국내외 광광객 300만이 찾는 네부타 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아오모리 현은 일본 본토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어 홋카이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그 사이를 가로막는 쓰가루 해협을 넘어야 한다.

 

현재는 2016년까지 세계 최장 터널이었던 세이칸 해저터널로 이어져 있어 철도를 이용해서 쉽게 건널 수도 있지만 일부러 8시간 걸리는 배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쓰가루 해협 위를 지나는 연락선(페리) 위에서 멀어지는 본토와 가까워지는 홋카이도 땅을 바라보는 것이 일본 자전거 종단을 도전하는 여행자들의 한 가지 로망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갑판 위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북쪽 땅을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오오!’하고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푹푹 찌는 저 멀리 남쪽 섬 규슈에서 드디어 일본 최북단의 홋카이도에 도착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던 것이다.


그렇게 홋카이도 도마코마이 항에 도착했지만 북쪽 대지에 첫 발 내딛은 감상은 의외로 무덤덤한 것이었다. 땅은 얼마든지 있다는 홋카이도민만의 대담함의 표상인지 건물들은 서로 거리를 두고 널찍널찍 최대한 심플하게 서있었다. 넓게 트인 공간으로 따뜻한 돌풍이 들이닥쳤다. 가을부터 봄까지 유학하고 있던 터라 나에게 홋카이도는 년중 절반 가까운 시간이 눈으로 덮이는 ‘겨울왕국’이었는데 본토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여름 날씨에 괜히 배신감이 치밀었다.


그렇게 홋카이도에 들어와서 이틀만에 삿포로에 도착했다. 곧장 우에무라 선생님께 삿포로 도착 소식을 전하고서 바로 다음 날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먼저 약속장소였던 나카지마 공원의 삿포로 파크 호텔에 도착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약속시간이 지나도 선생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호텔 프론트의 종업원이 쪽지를 건내 주었다. ‘바쁘니 오후에 만나자’는 전언이 적혀 있었다.

 

▲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 신문 기자     ©JPNews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여행 중에 핸드폰을 분실해 연락 수단이 없었던 지라 새까맣게 까맣게 탄 남학생이 보이면 전해주라고 프론트에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늦은 오후 7시 무렵에 선생님을 뵙고서 그 전까지는 몰랐던 2014년 12월 17일 북성학원대학 ‘고용계속’ 발표 그 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먼저 과거의 연재분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2014년도 북성학원대학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91년 8월 ‘일본군 위안부’의 최초 증언자에 대한 기사를 작성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 신문 기자는 2014년 당시 사회적으로 매장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시작은 2014년도 1월 경 한 주간지가 우에무라 선생님을 ‘날조기자’ 취급한 것이었다. 그 이후 동일 기사는 인터넷 상에 유포 확산되었고 우익, 내셔널리스트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그리고 곧 선생님이 근무하고 있던 북성학원대학에는 ‘우에무라 고용중지’를 요구하는 익명의 협박 편지와 전화가 빗발쳤다.


그리고 2014년 9월 19일 주간금요일의 언론 보도를 시작으로 이 ‘우에무라 사건’이 일본 국내의 리베럴 세력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곧 북성학원대학과 선생님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와 변호인단이 조직되고 일본 국내에서 70회 이상의 개인과 조직에 의한 성명과 지지 선언이 있었다. 대학도 이 같은 여론에 힘입어 동년 12월 17일에 우에무라 선생님의 내년도 고용계속을 발표했다. 이는 명실상부한 일본 내의 양심 있는 지식인들과 언론인, 법조인, 시민들이 협력을 통해 이뤄낸 쾌거였다. (더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과거의 연재분 참조)


하지만 2015년도 8월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뵙게 된 선생님의 현 상황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2014년도에 그러했듯이 2015년에도 계속해서 우익들의 협박 공세는 이어졌고, 대학은 이 익명의 협박에 대비해 경비업체를 고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학교에게는 큰 부담이었기 때문에 학내 이사회에서 우에무라 선생님 고용중단의 여론이 힘을 얻고 있었다. 이 소식은 2014년도의 일본의 언론 투쟁과 시민운동이 끝끝내 선생님을 지켜냈다고 믿고 있었던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에무라 선생님의 일련의 사건은 나에게 있어서 일본 사회 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양심과 정의가 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본 상징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엄혹한 현실 속에서 우에무라 선생님도 법정과 언론의 장에서 투쟁을 계속해 나가고 있었다. 먼저 2015년 1월 9일 도쿄에서 우에무라 선생님에 대한 비방중상의 발원지였던 도쿄기독교대학의 니시오카 츠토무 교수와 문예춘추에 대해 명예훼손의 소송을 걸었다.


 “언론인으로서도 이후, 날조기자가 아님을 발신해나가고 싶습니다. 사법의 장에서도, 내가 날조기자가 아님을 증명해나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날조기자로 불리며 나의 제 2의 인생이 크게 왜곡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명예회복과 인생의 재생을 위해 싸워 나갈 것입니다.”


수기 ‘진실,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에는 당시 우에무라 선생님의 재판에 임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선생님은 이후 2015년 2월 니시오카 씨의 논설을 재차 퍼뜨리며 ‘우에무라 날조기자 설’ 확산에 일조한 사쿠라이 요시코와 주간신조의 신조사 WILL의 WAC사에 대해 다시 명예훼손의 소송을 걸었다.


물론 본인이 법정 투쟁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언론인으로서 부당한 비방중상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에 대해 수기를 작성하여 언론의 장에서의 투쟁도 멈추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5개 대학 강연과 함께 일본 국내에서도 각종 강연 활동에 분주했다. 정말이지 언젠가 농담처럼 말씀하신 것처럼 선생님은 “대학에서 학생들과 단란한 노후생활을 보낼 계획이” 우익들의 공세로 인해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쁜 시간으로 변해 있었다.


물론 우에무라 선생님 본인에게 있어서 이 싸움은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본인의 생존을 건 싸움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30년 이상 경력의 저널리스트로서 ‘날조기자’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싸움이었으며, 전시 성폭력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들의 명예와 함께 우익들로부터 평화, 기본적 인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선생님께서 한 가지 부탁을 청해왔다. 그것은 2015년 8월 13일 경 한국에서 있을 우에무라 선생님의 기자회견 자리에 함께 참석해달라는 것이었다. 우에무라 선생님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와 변호단, 기자단이 동행할 예정이었고 한국 사정에 밝은 내가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였다. 

 

8월 13일의 기자회견은 북성학원대학에서의 협박 공세를 받고서 열린 우에무라 선생님의 최초 한국 기자회견이었다. 계획 없이 시작했던 무모한 자전거 여행이 계기가 되어 우연하게도 선생님의 ‘싸움의 방식’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 부당한 공격에는 굴하지 않겠다”며 강한 논조로 주장했다. 기자회견장에는 산케이 신문의 극우논객이자 한국 주재원인 구로다 가츠히로 씨가 “교육부 산하의 동북아역사재단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것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봐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해왔다. 우에무라 선생님을 폄훼하려는 세력들이 한국과 우에무라 선생님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질문이었다. 

 

기자회견 이후 선생님의 응원단과 함께 신촌의 고깃집에서 회식을 가졌다. 그곳에서 선생님과 다음해 북성학원대학 고용계속의 행방을 걱정하는 목소리 나왔다. 북성학원대학 소식에 누구보다 밝은 홋카이도 신문의 하세가와 도코스미 부부기자로부터 나온 이야기였다.

 

2015년도를 끝으로 대학 측에서 고용중단을 발표해 버리면 우익들은 스스로의 승리를 과시하며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 자명했다. 선생님의 투쟁을 위한 발판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대학의 자치와 언론의 자유라는 목적으로 하나가 되어 선생님을 지지하고 있던 리베럴 세력이 목적을 상실하고 분열될 수도 있었다. 이 같은 고민들이 전혀 남일 같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다시 한 번 뛰어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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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명석은 누구?

▲  강명석    © JPNews

1990년생으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홋카이도 홋쿠세이대학원대학에 유학,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와 만남을 통해 인생이 일변한다. 우에무라 씨가 일본 우익들과 맞서 온몸으로 사투하는 것을 보며 그 자신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신문기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취미는 여행, 특기는 자전거 오래 타기. 이 취미를 살려 2015년 여름에는 하카타에서 북단 삿포로까지 일본을 종단하는 여행을 했다.

차별과 억압, 민족 등의 이슈에 관심이 많고 자유를 가로막는 사회적 압력에 대해 태생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자칭 자유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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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30 [09:39]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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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사히 신문 기자 시절, 일본군 위안부 기사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가는 대학마다 협박으로 임용이 취소되는 등 일본 극우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우에무라 다카시. 그는 현재 카톨릭대학의 초빙교수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우에무라씨를 한국으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한국 유학생 강명석 씨. 우에무라씨 곁에서 그가 어떻게 일본 우익들과 싸우고 더불어 일본의 양심세력들과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지, 그 현장을 낱낱이 기록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우에무라 선생님과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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