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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경제왜란 7편: 재규어센터
[신경호 연재 소설 - 기해년 경제왜란] 7편 재규어센터
 
신경호

[편집자주] 시각장애인으로 일본에서 살아가면서 느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신경호 동화작가가 새 소설 '기해년 경제왜란' 연재를 시작합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일간 무역 분쟁에 상상력을 덧칠해 그린 소설입니다. 거대 반도체 기업 세영이 위기에 빠진 오너를 구하고자 일본과 막후에서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1편 - 밀약 - http://jpnews.kr/22529

2편 - 굴뚝새 - http://jpnews.kr/22543

3편 - 개와 늑대의 시간 - http://jpnews.kr/22566

4편 - 토착왜구 - http://jpnews.kr/22587

 

5편 - 가에시(되치기) - http://jpnews.kr/22624

6편 - 다시 굴뚝으로 -  http://jpnews.kr/22718

 

7. 재규어센터

 

빨간 스포츠카 한대가 굉음을 내며 맨해튼 중심가를 빠르게 달려나갔다. 재규어 F타입 쿠페였다. 소나기가 지나간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체리는 카롤로스와 막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옆 좌석에 던졌다. 역시 카롤로스답게 이번 작전도 꽤 훌륭하게 처리했다. 과이도를 앞세워 베네수엘라에 친미 정권을 세우려던 미국의 계획은 다시 한 번 실패로 끝났다. 체리는 ‘파파는 역시 대단해’라고 혼자 생각했다. 이번 작전은 파파의 예상과 한치도 틀림없이 진행되었다. 

 

체리를 태운 스포츠카는 뉴욕 미드타운 중심가에 있는 브라이언트파크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았다. 눈 앞에 주변의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건물이 나타났다. 45층 높이의 건물 외형은 전체가 황금빛 유리로 장식되어 있었고, 그 중간 중간 검은색 동그란 창틀 때문에 마치 한마리의 대형 맹수처럼 보였다. KP매니지먼트가 사용하는 KP빌딩이었다. 빌딩 위로 선명한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체리의 자동차는 빌딩앞으로 들어섰다. 앞에는 실제 크기의 재규어동상이 포효하듯 자리잡고 있었다. 몸통이 노랗고, 배는 흰색이었다. 노란 몸통에 박힌 검은 반점은 표범과 비슷했지만, 무늬가 크고 가운데에 작고 검은 점이 있는 것이 표범과는 달랐다. KP매니지먼트의 상징 황금재규어였다. 체리는 살아있는듯한 재규어상을 향해 찡긋 윙크를 하고,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건물에 들어선 체리는 VIP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위 45층으로 향했다.

 

체리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머리가 희긋희긋한 윤진철 회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자연스런 반곱슬머리가 부드러운 인상의 윤진철과 잘 어울렸다. 진갈색 정장 차림의 윤진철 바로 옆에는 거대한 맹수가 한마리 웅크리고 있었다. 건물 1층에 서있는 황금재규어와 같은 모습이었다. 녀석은 눈만 가늘게 뜨고 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수고 많았다.”

 

윤진철이 체리에게 다가오며 두팔을 벌렸다. 

 

“파파. 잘 지내셨죠?”

 

체리도 윤진철과 포옹했다. 거대한 황금재규어가 서서히 몸을 일으켜 체리곁으로 다가왔다.

 

“골든잭. 잘 있었어? 체리 보고 싶었지?”

 

체리가 마치 고양이를 다루듯 재규어의 목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재규어가 갸르릉 소리를 냈다. 2 미터가 족히 되보이는 거대한 몸집과는 달리 자신의 목을 감고 있는 체리에게 얼굴을 부비며 아양을 부렸다.

 

”파파. 이번엔 무슨 일이세요?”

“이번엔 조금 멀리 다녀와야 할 것같구나. 시간도 걸리겠고.”

“멀리요? 어디를 말씀하시는건가요? 혹시 아프리카에서 라이온이라도 잡아오라는 건 아니겠죠?”

 

체리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코리아.”

“코리아? 어느쪽인가요? 남쪽?아니면 북?””

“남쪽인 한국이야. 어쩌면 북에 갈수도 있겠구나.”

 

윤진철이 평소와 달리 애매하게 말했다.

 

“코리아라… 혹시 이번 작전에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나요?”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체리는 한국이란 나라를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 그러나 체리에게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체리가 1살 때 자기를 낳아 준 친부모는 모두 사망했다고 윤진철이 알려주었다. 그리고 체리는 윤진철에게 입양되었다.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가겠어요. 어떤 일인가요? 그리고 저 혼자 하는 일인가요?”

“잠시 기다려라. 손님이 한 명 올거다.”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비서가 손님의 방문을 알렸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문 앞에 키가 훤칠한 동양인 남자가 서있었다. 짙은 청색 줄무늬 양복에 하늘색 와이셔츠가 잘 어울렸다. 

 

“어서 오게. 권 박사.”

 

윤진철의 말에 권찬이 사무실로 들어서다 몸집이 큰 재규어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골든잭도 앞다리에 힘을주고 권찬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놀라지 말게. 아무도 해치지 않아. 골든잭 다운.”

 

윤진철의 말에 잘 훈련된 강아지처럼 재규어가 몸을 바닥에 붙였다. 

 

“자 이리와서들 앉게나 두 사람을 소개하지. “

 

체리는 사무실에 들어서는 권찬을 보고 놀랐다. 대학교 선배였던 권찬임을 금방 알아보았다.

 

“파파. 우린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예요. 그렇죠? 권찬 선배?”

“여어. 체리. 이거 반가운걸. 몇년만이지? 회장님. 저희는 대학때 같은 모임에서 활동햇습니다.”

“그때 권찬씨는 대단했죠! 하버드가 낳은 천재.”

“이런. 전설적인 해킹왕이 누구더라?”

 

권찬과 체리가 마주보며 웃었다. 권찬은 예전의 체리를 생각했다. 하버드 재학시절 권찬을 비롯한 몇몇이 마음이 맞아 몰려다닌 적이 있었다. 우연히 모두 아시아 출신이라 다른 친구들은 그들을 ‘아시아의 독수리들’이라고 놀려 부르곤 했다. 권찬은 체리를 바라보았다. 체리와 연락이 끊긴 것이 벌써 8년이 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소식이 끊긴 체리를 8년만에 이런 자리에서 보게될줄 생각도 못했다.

 

“자 본격적인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세.”

 

윤진철이 두 사람을 미팅룸으로 이끌었다.

 

“권 박사는 국제정치학. 특히 동아시아 정책의 전문가이지. 한국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했었고, 지금은 카터재단 소속이야. 곧 우리와 함께 할거야. 그리고 체리는 시스템공학 전문이고 우리 센터 멤버일세. 먼저 권 박사가 우리 센터와 같이 일하게 되어 반갑네. 간단히 우리 센터를 소개하지. 그전에 권 박사는 일본의 사사카와재단이라고 들어 보았나?”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일본재단으로 이름이 변경된 재단이죠.”

 

“그렇다네. 사사카와재단은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인 사사카와 료이치라는 인물이 만든 재단일세. 그 자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이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무솔리니였다네. 그 정도로 극우적 사상을 가진 인물이지. 일본이 마지막 발악을 할 때 저지른 가미가제특공대도 사사카와가 창안했다는 말도 있네.”

“가미가제특공대요?”

 

체리가 물었다.

 

“가미가제특공대는 ‘한사람이 한대의 비행기로 한척의 배를 무찌른다’는 슬로건으로 일본이 2차대전 막바지에 사용한 전술이야.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미국 군함으로 돌격한 자살특공대였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체리야. 일본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게 불과 백년도 지나지 않았단다.”

“파파. A급 전범이라면 전쟁 직후 재판에서 사형당하지 않았나요?”

“태평양전쟁 직후 연합군은 극동 국제군사재판소를 설치했어. 이 재판에서 일본군과 각료등 A급 전범은 모두 28명으로 확정되었는데 그중 1명은 매독으로 인한 정신병이 인정되어 소추 면제되었고 2명은 판결전에 이미 사망했었다. 그래서 나머지 25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그 중 7명에게 사형, 16명은 종신형 그리고 2명은 유기금고형에 처해졌다. 사사카와 료이치는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으나 스가모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사사카와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특출한 재능을 가졌다고 한다. 그가 스가모형무소에 구금되었을 때도 지금 일본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를 사로잡았다는구나.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사카와는 형무소에서 나온 후 기업가로 변신해 경정사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말로는 기업이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인정한 도박사업이었지.”

 

 “그 사람이 만든 재단이 사사카와재단이란 말씀이로군요.”

 “그래. 사사카와재단은 그 엄청난 자금을 바탕으로 일본 외교를 뒤에서 조종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지.”

 

권찬은 과거 국정원에서 근무할 때를 생각했다. 윤진철이 말한대로 사사카와재단은 대단한 조직이었다. 엄청난 자금력으로 일본 외교를 뒤에서 주무르다시피 했다. 일본의 외교는 로비외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로비라는 것이 뒤에서 뒷돈 챙겨주는 정도가 아니다. 사사카와재단은 미국의 다양한 싱크탱크에 연구비등의 명목으로 자금을 지원한다. 미국 뿐만이 아니고 세계 유수의 대학이나 연구소에 자금을 지원한다.

 

또, 가능성 있는 전문가를 발굴해 그 개인을 직접 지원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사카와재단에서 지원받은 싱크탱크와 전문가들은 일본의 정책을 그들의 입으로 대신 대변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 정책에 관한 이런 사사카와재단의 접근법은 지금까지 매우 효과적이었다.

 

미국에는 중동 전문가에 비해 아시아 전문가가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크게 중국의 확장을 견제하고 북한을 적당히 관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 국무부는 세계 2위경제대국 일본을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으로 동아시아 정책을 펴왔다. 반대로 일본은 이런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역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이 최대한 미국 정책에 반영하도록 사사카와재단등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였다. 싱크탱크가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미국 외교정책의 특징을 간파한 일본은 싱크탱크들이 정책보고서를 발표하기 전에 일본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을 미리 육성하고 지원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사사카와재단은 미국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을 미리 확보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다른 싱크탱크를 활용해 자신들의 정책을 만듭니다. 또 싱크탱크의 전문가가 바로 국무성에 입각하여 정책결정자가 되기도 하고 말이죠. 일본은 이런 예비 정책결정자들을 싱크탱크 시절부터 지원하며 그들이 정책을 입안하거나 결정할 때 일본의 이익이 반영되도록 자금을 지원합니다. 가장 유명한 재단이 사사카와재단이고 그렇게 길러진 사람 중 한 사람이 지금 미국 안보보좌관 존 볼튼이죠.”

 

“역시 권 박사는 전문가라 다르군. 우리 센터도 사사카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었네. 물론 그 목적과 방식은 전혀 다르지. 우리는 제3세계국가들의 민주주의를 지원하고 제국주의의 팽창을 막기위한 활동을 하고 있네. 또 일을 처리하는 방법도 달라. 외교적 접근이 아닌 사건 하나하나에 직접 우리 멤버를 투입해서 해결하고 있다네. “

 

 “카터재단과 비슷하군요. 카터재단도 평화, 자유, 민주주의 발전, 보건위생 증진을 목표를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이런 사업을 위해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를 비롯한 제3국가들의 선거감시와 식량증진 사업, 질병 예방등의 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중 저는 주로 동아시아 지역을 담당하고 있죠.”

 

“알고 있네. 그래서 내가 권 박사를 스카우트하는거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카터재단과도 다르네.”

윤진철은 작은 상자를 하나 권찬에게 내밀었다. 권찬이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크레디트 카드와 시계, 그리고 자동차 열쇠가 들어 있었다.

 

“우리 멤버들에게 지급하는 것일세. 그 카드는 월 10만 달러를 센터에 보고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네. 물론 임무 수행에 필요한 경비는 별도로 지급되네.“

 

세가지 물건 모두 포효하는 재규어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체리가 권찬의 시계를 손목에 채워주었다.

 

“잘 어울리는 걸요. 근사해요! 이 시계는 단순한 시계가 아니예요. 센터와 연락할 때 필요하죠. 또 여러가지 기능을 담고 있어요. 만약 당신이 위기에 처해있다면 당신을 구해줄수도 있어요.“

 

권찬은 시계를 살펴보았다. 겉으로는 그저 평범한 시계 같았다.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웠다. 다이얼에 박혀있는 로고는 포효하는 재규어였다. 이런 로고를 가진 메이커는 없었다. 독특한 것은 크라운 위와 아래에 작은 버튼이 하나씩 있었다.

 

“이 시계로 어떻게 연락을 하지?”

 

권찬이 체리에게 물었다.

 

“나중에 제가 설명해 드리죠?”

“제가 센터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조금 전에도 말했네만 우리는 어떤 사건 하나하나에 직접 우리 팀원을 투입하고 있다네. 이번에 권박사와 체리가 해야할 임무는 일본이 시작한 경제 전쟁을 처리하는 일일세.”

“경제전쟁이라면 얼마전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시작한 경제 보복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네. 이번 일은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네.”

“그런데 파파. 전 일본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독일과 일본은 모두 패전국인데 전쟁 이후 태도는 정반대잖아요? 독일은 유대인을 비롯한 전쟁 피해자들한테 사죄하고 배상하는 노력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오히려 전쟁 범죄를 감추려만 하고 있잖아요?”

“그것은 일본이 독일과 다르게 한 번밖에 패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권찬이 윤진철 대신 대답했다.

 

“한 번밖에 망하지 않았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전쟁을 일으켜 제2차대전까지 저질렀지. 그리고 철저하게 망했고. 그때 독일 국민들은 뼈져리게 깨달은 것 같아. 다시는 전쟁 범죄를 저지르면 안된다고 말야. 그런데 독일과 비교하면 일본은 한번 밖에 패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정신을 못차렸다고 생각해.”

“나도 권 박사 의견에 동감하는 바이네. 사사카와재단을 세운 사사카와 료이치도 나중에는 자신이 노벨평화상까지 받으려고 안간힘을 쏟았지. 자신들이 전쟁에서 저지른 범죄자료를 모두 없애버리려 노력하면서 말이야. 특히 사사카와재단은 중국에서 저지른 난징학살이나 아시아 여성들에게 저지른 위안부 범죄를 아예 그 흔적부터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차라리 서글픈 생각마저 들어.”

“그럼 일본이 정신을 차리려면 다시 한 번 망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난 방법은 그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해. 물론 과거처럼 물리적인 전쟁을 통한 패망이 아니더라도 일본 국민들이 뼈져리게 느낄 정도로 바닥까지 가보아야해.”

 

권찬이 진지하게 말했다.

 

“권 박사 의견대로일세. 권 박사 이번 경제전쟁을 계기로 일본을 한번 부숴보게나.”

“네? 제가요?”

“그렇다네. 이번 우리 센터는 권 박사 말대로 일본을 두번째 망하게 하는 프로젝트를 단행할 것일세.”

 

윤진철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권찬은 윤진철의 KP 매니지먼트나 산하센터가 생각보다 훨씬 정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 조직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조직을 관리하는 방식이나 비밀 유지, 또 생각보다 큰 자금력을 보면 보통의 조직은 아닌듯 싶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뭐 하나 질문해도 됩니까?”

 

윤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KP가 혹시 CIA나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관련이 있습니까?”

“전혀 아닐세. 걱정하지 말게. 단지 우리는 그들의 조직 관리 방법을 조금 흉내는 내고 있지.”

“일본이 시작한 경제전쟁이네. 이 전쟁에서 일본은 반드시 패배해야 하네.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글쎄요. 제가 경제쪽은 잘 모릅니다. 다만 플라자합의가 한가지 힌트가 되지 않을까요?”

“그게 뭔가요?”

 

체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일본은 현재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있어. 흔히 오늘의 일본의 경제를 말할 때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지. 그만큼 20년 동안 일본 경제가 후퇴하고 있다는 말이야. 그런데 왜 과거에 잘 나가던 일본이 오늘처럼 어려워졌을까? 경제전문가들은 그 시작을 플라자합의로 보고 있어.”

“권 박사가 중요한 점을 지적해 주었군.”

“플라자합의요?”

“음. 1985년에 미국을 비롯한 5개 서방국가들이 플라자호텔에서 환율에 대한 합의를 한 것을 의미해. 플라자합의는 미국이 자기 나라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서독과 일본 엔화의 가치를 올리고 지나치게 높았던 미 달러의 가치를 떨어트렸어. 결과적으로 미국은 인플레이션에서 탈출했지만 일본은 그후부터 엄청난 경제적 문제를 안게 되지.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40퍼센트 법칙으로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플라자합의를 이끌어냈다고도 해.”

“음. 저는 잘 모르겠네요. 역시 경제는 머리가 아파요.”

 

체리가 고개를 절레절래 저었다.

 

“체리야. 40퍼센트 법칙이란 패권국가 미국이 세계2위 국가를 다루는 법칙이란다. 미국은 자신을 위협하는 나라의 GDP가 미국의 40퍼센트를 넘어서면 이를 지켜보지 않고 주저앉힌다는 거야. 과거 공산주의였던 소련을 해체했고, 80년대 떠오르던 일본을 주저앉힌것도 그런 이유였고, 요즘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중국의 GDP가 미국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어. “

“미국이 왜그러는 거죠?”

“지금까지 미국은 수많은 전쟁을 했지만 미국 본토가 공격을 받은 적은 딱 두번밖에 없었어. 한번은 일본이 저지른 진주만 기습이고, 한번은 2011년 테러에 의한 뉴욕 쌍둥이빌딩과 팬더곤에 대한 공격이었지.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을 때 일본의 GDP가 미국의 약 40퍼센트였어. 미국은 그때의 기억으로 GDP가 미국의 40퍼샌트가 넘는 나라는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지.”

윤진철과 권찬이 번갈아가며 설명했다.

“플라자합의가 이번 경제 전쟁애서어떤 힌트가 된다는 말인가요?”

“일본이 경제적으로 매우 탄탄한 구조를 가진 나라처럼 보이지만 환율 한방에 20년 이상 맥도 못출 정도로 약체라는 점이 증명되었지. 지금 일본은 엄청난 재정적자로 인해 경제 구조가 불안한 상황이야. 그리고 일본 무역 상황은 한국과 미국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야. 난 이번 경제 전쟁이 오히려 일본의 추락을 가속화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그렇다네. 그래서 이번 임무를 권 박사한테 부탁하는 것이네. 지금 일본 총리는 내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경제 부흥을 부르짖으며 안간힘을 쓰고 잇다네. 그런데 일본이 행하고 있는 억지적인 노력이 오히려 일본에게 부흥이 아니라 패망을 안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권박사의 의견은 어떤가?”

“그렇습니다. 회장님. 특히 일본이 지금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은 후쿠시마 원전 문제입니다. 추락하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올림픽을 이용하려 하지만 그 섣부른 대응으로 2020 도쿄올림픽은 역사상 최악의 올림픽이 될지도 모릅니다.”

”권 박사가 상세한 계획을 만들어 보게나. 그리고 당분간 카터재단 소속으로 있게나.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서도 그게 유리할걸세.”

 

세 사람은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권찬이 사무실을 나올 때 골든잭이 눈을 가늘게 뜨고 권찬을 바라보았다. 체리는 권찬을 1층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마치 맹수를 닮은 한 대의 자동차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길게 뻗은 차체와 커다란 알루미늄휠 덕분에 마치 도약하는 재규어와 같은 날렵한 인상을 주는 자동차였다. 차체 뒷면에는 뛰어오를듯한 재규어 문장이 있었다. 재규어사의 최신작 XJ 50 모델이었다. 외형에서부터 ‘아름답고 빠른 차를 모토로 하는 재규어의 가치관이 그대로, 드러내듯 차체가 낮게 깔려 있었다.

 

“어때요? 맘에 드시나요? 제가 함께 시승해도 되겠죠?”

 

체리의 말에 권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사람이 자동차에 올랐다. 찬이 시동을 걸자 거대한 맹수가 잠에서 깨어나듯 엔진이 으르렁거렸다. 권찬이 차를 출발시켰다. 두사람을 태운 재규어가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선배,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했었다고요? 왜 그만두었나요?”

"음…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권찬은 체리의 질문에 대강 얼버무리고 말았다. 자신이 그 조직을 떠난 이유를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권찬은 국가정보원에 들어갈 때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를 위해 남몰래 움직이는 조직,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국가정보원이었다. 그런데 실제 그가 그 조직에서 본 것은 전혀 달랐다.

 

간첩을 조작하고, 정권을 위해 댓글을 달고, 나랏돈을 개인주머니로 옮기고, 그러다가 정권의 눈밖에 나면 의문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자신이 몸담았던 그런 조직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미국 유학 프로그램이 있어 운좋게 발탁되었다. 미국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일과 성격이 비슷한 카터재단에서 제의가 있었다. 권찬은 국정원을 그만두고 카터재단으로 옮겼다. 다행히 정권이 바뀌면서 국정원도 바뀌어갔다. 카터재단에서 몸담으면서 국정원의 과거 팀과 몇몇 프로젝트는 공동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체리야 말로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더니 이런 곳에서 만나네. 어찌된 일이야?”

 

권찬도 궁금한 것을 체리에게 물었으나 체리 역시 미소로 대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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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08 [06:27]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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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반대말은 ‘곱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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