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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이런 한국 외교관이 있었어?"
 
유재순
올해 가장 큰 수확은 김현중 총영사를 만났다는 것!

지난 주 토요일 저녁, 도쿄 도심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사이타마현 니시가와구치(西川口)에 갔다. 송년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두개의 송년회가 있었다. 하나는 일본기자들이 주축이 된 송년회가 신주쿠에서 있었고, 또 하나는 일본주재 한국영사관의 김현중 총영사가 주최하는 송년회가 니시가와구치에서 있었다.

사실 니시가와구치로 향하는 전철을 탈 때까지, 내 마음은 어느 송년회에 참석할까 솔직히 망설였었다.

일본기자들과의 송년회는 내 직업상 상당히 중요한 모임이다. 지난 1년 동안 서로 바빠 만나지 못했던 기자들을 한자리에서 모두 만나 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또한 궁금했던 정보들을 듣는, 그래서 올 1년 한해를 정산하는 그런 성격의 송년회여서 해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공교롭게도 두개의 송년회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겹쳐 있었다. 때문에 당연히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전날 만났던 마이니치신문기자가 아주 중요한 사람을 소개해줄테니 송년회에 꼭 참석해야 한다는 언질까지 미리 받았던터라 갈등은 더욱 심했다.

결국 난 니시가와구치로 가는 전철을 탔다. 무엇보다 김총영사가 공적이 아닌 사적인 송년회에 참석하자고 권유를 한데다, 장소도 도쿄시내가 아니라 변방인 니시가와구치에서 한다는 것에 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니시가와구치역 서쪽 출구 앞에 있는 <자매식당>. 늦게 도착해서인지 벌써 열댓명의 한국인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모두 처음보는 얼굴들. 아니 신주쿠에서 경기민요연구원을 운영하는 김정희 원장은 내가 관계하던 한국잡지에 인터뷰를 게재한 적이 있어 전혀 초면만은 아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낯선 얼굴이었다.

그동안 20여년 가까이 일본에 살면서 해마다 많은 송년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이날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송년회는 처음이었다. 잠시나마 다른 송년회에 참석할까 갈등했던 순간들이 부끄러워질만큼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의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선 참석자들의 면면이 의외였다. 김 총영사와 연결되는 부분이 없었다. 있다면 유일하게 재일동포로 참석했던 사이타마현 한국인상공회 최낙훈 회장만이 희미하게나마 연결고리가 될 뿐이었다.

그런데도 김 총영사는 그날 송년회의 한 중심에 있었다. 재미있는 퀴즈를 내어 맞추게 하고, 비록 값비싼 물건은 아니지만 수건이나 튜브로 된 미니 고추장을 상품으로 주면서 한사람 한사람에게 덕담을 건네 모두를 즐겁게 했다.

잠시 각자 개인적 대화를 나눌 때는 옆자리에 앉은 이의 일본생활의 애환을 물었다. 그러면서 이런 모임이 1회성이 아닌, 두달에 한번씩이라도 만나서 타국에서 사는 사람끼리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면서 살자고 말했다.

모임의 이름도 김총영사가 즉석에서 당신과 나의 귀중한 만남이라는 의미로 ‘당나귀’이라고 명명했다.
 
최근까지 일본거주 한국인에 비친 일본주재 한국대사관의 이미지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교민들의 권익옹호와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고  위상을 높이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일본에 부임한 외교관들의 태도가 그동안 너무 권위적이고 불친절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태도는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파견나가 있는 외교관들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걸핏하면 외국에 파견나가 있는 외교관들의 불친절 고발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오곤 했다.

물론 요즘 들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해외교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김 총영사는 달랐다.
 
1년 반 전 그는 부임하자마자 한국인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으로 달려 갔다. 한국식품전문점인 수퍼에도 갔고, 보석세공을 하는 공장에도 들렀다. 그런가하면 재일동포들이 사는 지방에도 직접 찾아가 그들의 과거사를 직접 들었다. 일찌기 전례가 없었던 외교관의 ‘현장답사순례’였다. 

이날 송년회에서도 김 총영사는 어김없이 참석자들의 지나온 애환을 들었다. 50대의 한 여성 참석자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20여년 전,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니시가와구치에서,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살아왔다고 토로했다.

그러자 김 총영사는 “그럼 지금 사는 것은 어떻습니까? ”하고 되물었다.

그 여인은 이제는 겨우 먹고 사는 생계형 고생을 면했다고 대답했고, 이에 김 총영사는 이제는 늘 건강을 챙기셔야 한다고 그 여성을 위로했다.

이같은 김 총영사의 진심이 통했던지 이날 송년회 장소인 <자매식당>에서는, 모임 자체가 너무나 의미있는 것이기에 식사를 무료로 대접한다고 선언했다.

그러고 보니 <자매식당> 문 입구에는, 유학생에 한해서 점심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실시해오던 봉사라고 한다.

이날 내가 놀란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외교관 이미지에서 정반대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보통 외교관하면, 적당히 교민들과 어울려 악수 몇 번 하고 되돌아서서 자기들만의 생활을 하는, 교민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부류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외교관들의 생활이 그런 면이 있었다.

하지만 김 총영사가 주축이 된 이날 송년회에 모인 사람들은, 이같은  외교관의 이미지를 깡그리 뒤엎는 그런 모임이었다.

우선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화이트칼라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랫동안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던 사람,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쳐 이제 겨우 기반을 닦은 사람, 그렇지만 지나온 세월이 너무도 고달퍼 누군가로부터 무조건 위로를 받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바로 그런 한인들을 위해 김 총영사는 앞에 소개한 최상공인 회장, 경기민요 김연구원장 등을 불러모아 송년회를 함께 한 것이다.

나는 내심 놀랐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송년회의 면면이었기에.

더구나 노래방으로 2차를 가는 도중에는, 김 총영사가 어렸을 적 생각이 날 거라면서 손수 길거리에서 열댓개의 붕어 방을 사서 참석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 모습은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의 모습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기존의 외교관들의 특징이랄 수 있는 권위적인 태도는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국내나 외국 어디에서든, 고위관리가 내 옆에서 친구가 되어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특히 유학이 아닌 순수하게 돈을 벌러 온 블랙칼라의 고달픈 한국인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바로 김 총영사가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었다.

송년회가 끝나고 나중에 남은 남성 한분이 내게 말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전화를 하라는 총영사님의 말씀이 처음엔 빈말인줄 알았지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 총영사님께 직접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더니 정말로 손수 나서서 편리를 봐주시더라구요. 깜짝 놀랐지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외교관이 있나 하고."

이어서 12월 14일 월요일, 이날에는 우에노 보석세공 관련 일을 하는 몇 분이 김 총영사를 초대했다.

그렇지만 김 총영사는 이미 옥타도쿄지부(세계한인 비지니스협회)의 행사 참석이 예정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옥타의 공식적인 행사만 참석하고 2부는 생략한 채 곧바로 우에노로 달려왔다.

이날도 나는 우연히 하루 걸러 김 총영사를 다시 만나게 됐다.

서울에서 오신 손님을 모시고 평소 친분있는 사람끼리 저녁이나 함께 하자는 보석세공업자의 초대로 식당에 갔더니 마침 김 총영사도 늦게나마 참석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토요일에 있었던 송년회의 감상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같은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그분을 초대한 거예요. 비록 비싸고 거창한 음식은 아니지만 꼭 함께 식사라도 하고 싶어서."

"아이쿠 그 양반 니시가와구치까지 가셨어? 하긴 우리같은 모임에도 꼭 오시는 분이니까."

"일본에 산 지 30여 년이 다 가도 우리 사무실에 총영사 분이 오신 적은 처음이야. 그때 어찌나 감사하고 힘이 나던지 내가 여간해서는 사람에게 감동을 잘 안하는데 그 양반한테는 진짜 감동을 받았어요."

"누가 우리같은 노동자나 기술자들이 일하는 현장을 일일히 찾아다니겠어. 그동안 무시나 했지. 하지만 그분은 다르더라구. 모두들 놀라워 해." 

"근데 왜 그동안 이렇게 발로 뛰며 교민들의 생활을 하는 챙기는 외교관이 없었을까? 당연히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인데."

그들의 말은 요즘 한인들이 만나면 이런 평들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 약 한 시간 쯤 늦게 도착한 김 총영사.

그는 늦은 저녁식사여서인지 이미 어수선해진 식탁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남아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괜히 그런 모습이 미안했다. 좀 더 깨끗하게 남겨놓을 걸 하는 마음에...

그는 이날 모임에 참석한 기미츠카 다이토구(台東區) 구의회 부의장을 보자마자, 얼마전 아자부에 있는 민단건물에서 한인들의 보석전시회가 있었을 때 구청으로 전화했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얼마전 다이토구 구청에 전화를 했습니다. 요즘같이 경제가 어렵다보니 한인보석업계 사람들이 주최하는 전시회에 혹시 구청에서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있나 하고요. 그랬더니 구청에서 홍보비 정도는 협력해 줄 수 있다고 합디다. 그러니 앞으로도 우리 한인들 잘 부탁합니다."

이쯤되면 주객이 전도된 양상이다. 이날 식사모임에 참석한 몇 명은 한인 보석협회의 간부도 있었다. 사실 다이토구 구청에 전화를 걸어 지원제도에 대해서 문의를 해야 하는 사람은 이 지역에 사는 바로 이들이다. 그런데도 김 총영사가 손수 전화다이얼을 돌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주변의 지인들에게 부탁하여 볼란티어로 한인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사는 우에노 지역의 지도를 만드는 모임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또한 우에노에 사는 한인들이 해야 될 일이다.

그러자 기미츠카 다이토구 구의회 부의장이 반색을 했다.

"총영사님께서 그런 지도를 만들어 주시면 우리 구로서는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만큼 한인이든 일본인이든 많은 사람들이 우에노를 찾아 오지 않겠습니까? 저도 다이토구 구 부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만사 제쳐놓고 협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박수를 쳤다. 
 
분명 세속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김 총영사는 옥타 모임이 더 잘 어울린다. 총영사 정도면 그래도 꽤나 높은 외교관 신분이니까. 게다가 옥타의 멤버들은 하나같이 사장 직함이다. 즉 돈이 많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아마도 행사가 끝나면 총영사를 모시고(?) 고급유흥업소에 가서 대접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그러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그는 그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자마자 우에노, 그것도 외교관의 신분에 비하면 당사자들이 '우리같은 미천한 사람들의 초대에' 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식사모임에 기꺼이 참석했다.

또한 김 총영사가 신주쿠에서 우에노까지 택시가 아닌 전철을 타고 왔다는 것을 우리는 '몇 번 출구로 나가야 식당과 더 가깝느냐' 는 김 총영사의 식당주인에게 묻는 전화소리를 듣고 알았다.

흔히들 국민들은 국가공무원들의 권위적인 태도와 불친절한 업무 행태에 대해 '대민봉사'를 부르짖는다. 물론 요즘에는 지방자치제가 잘되어 공무원들의 대민봉사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해외공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주재 한국영사관에 가서 매번 불쾌한 경험을 했다는 한인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국영사관을 칭찬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제이피뉴스>에 시각장애인 부부가 공동으로 칼럼을 쓰고 있는데, 12월 14일 칼럼에도 한국영사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동화작가 신경호씨는 칼럼에서, 일본 관공서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도움이 되는 안내를 해주는데, 과거 한국영사관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첫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러 영사관에 갔을 때 대필해줄 수 없겠느냐고 문의했더니 위층에 있는 민단사무실에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신경호씨는 서류작성해주고 5천엔을 요구하는 민단관계자에게 아무소리 못하고 돈을 줘야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런데 이번 두번째 아이의 출생신고 작성에는 다행스럽게도 해당창구 직원이 친절하게 대필을 해주어 무사히 출생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고 썼다.

신경호씨의 칼럼을 읽으며 혹시 김 총영사가 영사관 직원들에게, ‘교민봉사 친절서비스’ 를 철저하게 하라고 지도한 덕분이 아닐까 하는, 내나름대로의 추측을 해보기도 했다.

아무튼 말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언행일치를 이루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김현중 총영사의 대교민 행보는, 이국 땅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자 좋은 소식이었다.

그를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방문이 큰 자극제가 되고 실제로 많은 힘이 됐다고 말한다.

특히 몸으로 부딪쳐 돈을 버는 현장 일선의 한인들 경우, 국가기관의 간부가 손을 잡아 주며 힘내라고 격려했을 때의 그 효과는 배가 된다.

어떤 이는 일본에 와서 고급국가공무원으로부터 ‘사람대우’를 받아 본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것도 고위관리가 직접 현장에 찾아와서, 조근조근 자신들의 애환을 들어주며 메모한 이는 단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역시 사람의 느낌은 대개 비슷하다. 특히 김총영사에 대한 평가들이 그러했다.

"올 한해 1년동안 일본에 살면서 한국인으로서 가장 큰 소득은 김현중 총영사 같은 외교관을 만났다는 것이다(서울서 온 기자출신 손님과 복수 한인들의 말)."

나는 여기에 더 보태, 만약 ‘외교관 노벨상’이 있다면 바로 김현중 총영사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도 한국교민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앞으로도 더욱 더 잘하라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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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2/15 [16:24]  최종편집: ⓒ jpnews_co_kr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좋은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으라차차 09/12/15 [22:50] 수정 삭제
  앞으로 권위적이지 않은 분들이 많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분들이 많아져야 할텐데, 말이죠. 많은 분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말씀하신"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 을 갖추면 좋을텐데, 아쉽습니다. 이번글 역시 잘 읽었습니다. 저번에 글을 읽고도 댓글을 남기지 못했는데. 지금 댓글을 남깁니다. 참~ 소송건은 잘 해결 되어 가시는지요? 저번달에 다른신문 기사에서 글을 읽었었거든요. 심정적으로는 본때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그렇지만, 소송비용등 개인적인 시간과 정신적인 힘듬이 예상이 되어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겠네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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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중총영사화이팅!! 미밋들 09/12/16 [06:00] 수정 삭제
  훌륭한외교관을가진 교민들은행복하시겠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분을 발굴하셔서 자랑하시고 제2제3의 외교관이탄생하길기원합니다.유재순사장님 도화이팅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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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 기사네요 썬메리 09/12/16 [18:23] 수정 삭제
  좋은 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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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중 총영사님 화이팅 맛깔 09/12/17 [03:20] 수정 삭제
  재외공관에 이런 분이 계셨군요.
안그래도 불친절한 대사관원들 때문에 민원이 많이 들려 오던데 김현중 총영사님의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고국에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김현중 총영사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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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연해주 영사님도 마찬가지 훌륭한 분! 사모아 09/12/17 [14:11] 수정 삭제
  성은 전 씨인데 이름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네요. 연해주(블라디보스톡) 영사로 계셨던 분인데 고려인들의 뒤를 많이 봐주셨던 분입니다. 관련있는 러시아인들과 고려인들을 현지 사업가들의 협조를 받아 한국방문 같은 행사를 지원했답니다. 같이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상당히 깨인 분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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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이란 대사 하시던 임홍제 대사님도 훌륭한 분! 사모아 09/12/17 [14:16] 수정 삭제
  이란 여행시 대사관에서 임대사님을 뵈었는데 우리의 기존 관념을 깨뜨리는 분이셨습니다. 이 분은 야구로 말하면 구원투수 역할을 하시는 분이더군요. 어려운 상황이 되면 투입되어서 외교적 사안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셨어요. 주재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상당히 이해를 하시는 분이고 정말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라 제가 전에 가졌던 외교관에 대한 관념을 깨뜨리신 분입니다. 정말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모두 김현중 영사님이나 임홍제 대사님, 그리고 전 모 영사님같은 분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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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네요 에델바이스 10/01/12 [11:27] 수정 삭제
  김현중 총영사가 히로시마에 있을 때에도 교민들과 흉금을 터 놓고 애환을 나누며 지냈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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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저런 외교관이 있었어요? 정말 10/01/15 [19:15] 수정 삭제
 
대단합니다.

저런 분이 꼭 최고위직에 올라야 하는데..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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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계들의 모함 이제야 10/01/19 [10:17] 수정 삭제
  이런 훌륭한 외교관 분들을 군계들의 모함으로 부터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서, 자주자주 기억하고 응원하면 좋겠네요. 특히 외교부는 학벌파벌,무사안일 철밥통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군계들의 모함은 반드시 있을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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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도 계시군요. 비처럼.. 10/01/19 [11:49] 수정 삭제
  7년전 제가 격은 일있니다. 일본에 와서 1년정도 됐을때 였나?
전노대통령께서 일본과 합의한 일이라고 들었습니다만 한국인 운전면허소지자에 한에서 일정의 서류만 제시함면 일본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영사관에 가서 서류를 받으려고 갔었습니다. 10시반쯤에 도착해서 순서를 기다렸지요. 어느정도 기다리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거의 내차례가 될 쯤이었나 오전 업무시간이 끝나서 오후에 다시오라는 말만 건내고 창구 문을 닫아 버리더군요. 오전 휴가를 받고 온 나로서는 너무 어이가 없더군요. 그래서 들어가는 창구 직원을 불러서 따져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대답이 어이가 없더군요. 영사님이 점심식사하러 나가서 서류를 내줄수 없을 뿐더러 시간이 걸리는 일이면 미리미리 와서 해결하라고...
너무 화가나서 몇 마디 더 따져물었더니 경비원이 오더군요..
정말 상식이 통하지 않는 ... 그때 경험으로 선입관이 밖혀서 외교관들은 권위주의 똘똘 뭉친 인간들만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솔직히 유작가님의 글이여서 믿지만, 아직도 주위에는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분들이 많이 존재하십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서비스를 기대드립니다. 누가 누가 대사여서가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국민이 세금을 들여 그 자리에 있다는것을 제발 잊지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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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를---! 학다리 10/01/26 [12:53] 수정 삭제
  요즘 같은 세태에서 이렇듯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도 힘든 세태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저도 해외에서 살고 있습니다만 여기 외교관들과 참 많이 비교되네요.
음악회에서나 치는 감동적인 박수를 영사님께 보냅니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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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입니다. 10/02/05 [03:00] 수정 삭제
  힘든사람에게 고위간부가 손내밀어주는건 큰 힘이된다는부분이 맘에 와닿네요. 특히 모국이 아니면 더욱 그렇겠죠. 국내에서도 "힘과 돈" 이있는 분들이 다른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줬으면 하네요. 협박이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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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개 전체목록
1958년 5월 충남공주 출생


<인터뷰>
[일본] 나카소네, 도이 다카코, 다케시타 노보루, 우노수상, 미치코 황후 인터뷰
[태국] 츄안 수상 인터뷰
[미얀마] 아웅산 수지여사 인터뷰
[필리핀] 마르코스 이멜다 인터뷰


<취재>
80년, 1년 8개월 동안 쓰레기매립장 ‘난지도’ 생활르포
83년, 3개월 동안 동남아시아 8개국 슬럼가 르포
85년, 1개월 동안 미국 입양아 현지 취재
88년, 사할린 르포
90년, 일본 부락민 산야 르포
2005-2006년, 3회에 걸쳐 북한르포


<그 외>
1987- 1994년 : 한국주간지 <토요신문> 일본 특파원
테레비 아사히 <아침까지 생방송 > 토론회 2회 출연
규슈 NHK 주최 <세계여성 8개국 여성 저널리스트 토론회 참석>


현재 : 일본 고단샤 발생 <주간현대> 북한담당 계약기자
아사히신문 월 1회 칼럼 연재 중
일본 전문 인터넷신문 'JPNews' 발행인


<저서>
한국 : 서울서 팔리는 여자들(1983.르포집)
벌거벗는 여자들(1984.르포집)
난지도 사람들(1985.장편소설)
여왕벌(1986.논픽션)
하품의 일본인(1994. 비평에세이)
일본여자를 말한다(1998. 에세이)
일본은 지금 몇시인가(2002. 르포집)

일본출판 : 쓰레기섬에서 살다(1986. 르포집)
日정치인 우경화, 원로그룹 '입김' 작용했다
일본인, 그들의 세가지 얼굴
부활을 꿈꾸는 일본, 2013 현주소
일왕과 천황, 그리고 비판과 비난 사이
이젠 일본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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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주년을 맞으며
‘일본은 없다’ 항소심을 끝내고 나서
[발행인의 편지] 2010년 새해를 열며
"일본에도 이런 한국 외교관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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