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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피뉴스가 살아남아야 하는 법!
 
유재순(jpnews대표)
가는해 2010년, 오는해 2011년을 회사에서 맞이했다.

어느덧 제이피뉴스가 창간된 지 햇수로 세 해를 맞이한다.
지금 제이피뉴스는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  얼마만큼 성장했을까?
그동안 제이피뉴스는 최선을 다했는가?
기자들은 혼신을 대해 현장을 찾아가고,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영혼을 만나 그것을 글(혹은 기사)로 완벽하게 끄집어 냈는가? '일본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 한국독자들에게 소개를 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부끄럽게도 '아니다' 다.
우선 의기양양하게 겁없이 제이피뉴스를 창간한 나부터, 기자와 회사대표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때문에 지난 한해는 온통 반성해야 것 투성이다.

지난 9월, 순전히 회사대표인 나의 무능함으로 기자 몇 명이 무기한 무급휴가에 들어갔다. 그 중에는 생활고 때문에 다른 분야로 전직한 기자도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붙잡고 싶었지만 그러기 전에 먼저 그들의 인건비부터 구해놓는 것이 순서였다. 그래서 일본은행, 한국지점을 수없이 돌았다. 

일본은행, 도쿄주재 한국은행지점들, 어디서든 담보가 없으면 대출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고 능력있는 한인들 상당수는 담보가 없이도 원하는 대출을 따내 빌딩도 사고 식당도 차렸다. 그런데 이같은 능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능력있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자괴감을 느꼈다. '아 능력있는 회사대표는 아무것 없어도 저렇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구나!'  하는 감정.

일본금융계에 이런말이 있다. '은행은 날씨가 좋을 때 우산을 빌려주고 대신 비올 때는 반대로 우산을 거둬간다'고. 실제로 금융현장에서 겪어보니 이 말이 그렇게 실감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솔직히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제이피뉴스는 '희망열배'였다. 독자들의 성원은 날이 갈 수록 더욱 뜨거워졌고, 같은 언론계에서는 우리 기사를 자주 '표절'할 만큼 뉴스매체로서 크게 인정을 받았다. 지금도 내놓으라 하는 메이저 매체 기자들이, 스스로 제이피뉴스 정기구독자라고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워줄만큼, 일본전문 뉴스사로서 확고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인정을 받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작년 가을, 한국에 있는 모 단체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왔다. 거물 정치인이 관계있는 단체다. 일단 거절했지만 그래도 계속 생각해보라는 제의에 장문의 이메일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 나는 이런 표현을 썼다.

'지금 나에게는 자살도 사치일 정도로 제이피뉴스가 절박한 상황입니다만...'

실제로 그랬다. 유난히 연예인들의 자살이 잦아 신문지면의 톱뉴스로 등장하지만 나에게는 자살조차도 사치였다. 이처럼 자금란에 시달리는 나에게 들어 온 달콤한 유혹.  일년에 수백억원의 자금이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제이피뉴스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그래서 기자들에게 제이피뉴스를 던져주고 돈 걱정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을 함께 해보자는 '대단히 현실적인 달콤한 유혹.'

나는 정확히 거절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나에겐 자살도 사치'란 다소 극단적인 표현을 썼다. 자살하는 이들이 오죽하면 자살하겠느냐만은, 그러나 나는 제이피뉴스 기자들과 필자들에게 해결해야 하는 미지급 임금과 원고료가  바로 코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자살만큼 무책임한 일은 없었다.

간단하게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혼자 자살하면 본인은 홀가분할 지 모르지만 남아있는자, 산자의 고통은 고스란히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자살하더라도 책임질 일은 다 해결하고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다.(그런데 다 해결하면 왜 죽어? 죽을 이유가 없잖아!) 

어쨌든 모 단체의 제안대로 제이피뉴스를 버리고 그곳에 가 적당히 일하며 여유자적 안락한 삶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삶을 지향하는 나였다면 애시당초 제이피뉴스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안락한 삶속으로, 소위 말하는 세속적인 풍요속으로 도저히 안주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렇게 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면 절체절명에 있을 때마다 도와준 이들을 배반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편안하게 사는 삶을 거절했다.

문제는 소문이 어찌나 빠른지 한국의 내놓으라 하는 메이저 신문사 두곳에서, 2억원에 제이피뉴스를 사고 싶다, 또 한군데는 투자, 혹은 인수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 모두  조건과 목표지점이 달라 결렬됐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딱 한번 세무사가 개인파산 선고를 권유한 적이 있었다. 이 역시 나는 거절했다. 비겁하게 법의 테두리 속으로 도망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투자하기로 했던 어느 대학과  도장을 찍기 바로 전에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으로 투자유치가 취소됐다. 그때 나는 너무 충격이 커 패닉상태였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본은 없다'  표절사건으로 전여옥과 재판 중인 소송이, 음으로 양으로 압력이 계속 들어왔다. 그녀와 화해를 하라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재판부로부터 '강제화해조정명령'이 내려졌다. 전여옥이 먼저 건 소송을 자신이 불리하니까 새삼스럽게 화해하자는 그 명령을 당연한 것이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여자가 원하는 화해를 나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때 평소 아주 친한 출판사 사장과 그 임원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튿날 여의도 중소기업진흥공단 사무실 앞에서 만나자고. 거기서 나는 그 출판사 사장의 목동 아파트 집 문서를 보았다. 그리고 그 이튿날 5천만원이란 거액이 내통장에 입금되었다. 40여만원의 세금이 제해져서 5천만원이 안된다고 다시 그 잔액까지 채워서 말이다. 그 달 나는 그 돈으로 기자들 월급을 주었다.

그 양반이 지금 투병중이다. 병원비가 걱정이 돼 그 출판사 간부에게 내가 말했다.
"그 양반이 나을 수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제이피뉴스를 팔아 빚도 갚고 병원비를 대겠습니다."

그랬더니 그 임원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유대표가 그럴까봐 여태까지 사장님 아픈거 말 안한 거예요. 유대표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사장님이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리고 사장님 병원비는 걱정마세요. 만약 그분이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못 받는다고 전화 몇 통화만 넣으면, 한시간도 안돼 5천만원 모으는 거 금방이예요. 주위에 사장님이 워낙 베푼게 많아서."

정말이지 2010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이를 꽉 아물고 왠만해서는 안 울었는데, 그 전화를 마친 후 나는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다. 회한이 몰려와서였다. 그때까지 난 무얼 했던가. 친구는 죽음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타인에게 부담을 줄까봐 혼자 투병을 하고 있는데, 나는 계속 힘들다 힘들다 혼자 세상 고통 다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투덜대고만 있다니! 참 많이 반성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언론계 사회친구는 제이피뉴스가 결정적으로 힘들때마다 아무말 않고 급전을 만들어 일본으로 보내주었다. 나중에는 주변 선배와 후배까지 십시일반 생활비를 쪼개 직원들 월급에 보태라며 통장에 넣어주었다.  

대학동창 역시 제이피뉴스는 꼭 살아남아야 한다면서, 샐러리맨 생활을 하면서도 힘들때 마다 본인은 물론 주변 후배들까지 설득해 도와주었다. 시각장애인 신경호 전영미씨 부부도 제이피뉴스가 힘들때마다 결정적으로 큰 힘이 되어 준 사람들이다.

이처럼 제이피뉴스를 도와주는 이들은 오로지 제이피뉴스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지상명제 하나 때문에 아무 조건없이 도와주었다. 이들이 온몸으로 말하는, '제이피뉴스가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의미는 앞으로도 계속 올곧게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그래서 현실적으로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허투루 달콤한 제안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광고수주 때문에 만난 어느 한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해보니까 어떠슈? 많은 사람들이 당신은 선, 나는 악이라고 곧잘 비유하던데 지금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거요? 좋은 일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지 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당신처럼 그달 그달 사원 월급도 못 맞춰 쩔쩔 매는 대표는 절대로 선이 될 수 없어요. 좋은 뜻도, 좋은 일도 자본이 받쳐줘야 이루어 질 수 있는거지,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선이지 사람 양심이 선이 되는 시대가 아니란 말입니다. "

1년 전만 같아도 그 사람의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의 얘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래서 우리 제이피뉴스에 광고를 게재할 의향은 있으신 겁니까?"

그의 대답은 '생각해 보고'였다.
나는 그 한인 사장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옳은 이야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해서 누군 선이고 또 다른 누군 악이라는 말은 결코 좋은 비유가 아니다. 지난  20여년동안 전여옥과의 '일본은 없다' 표절사건을 놓고, 인터넷 상에서 유재순은 선, 전여옥은 악'이란 구도가 형성돼 있는 것을 보고 참 난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마음 속으로 내가 그여자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선'이 된다면 이세상 모든 피해자들은 모두 '선'이 되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럼 '선'으로 규정된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게? 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당신은 우리가 이렇게 '선'으로 규정했으니 앞으로도 쭈욱 착하게 살아야 돼' 하는 강요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변사람들에게 민폐 안 끼치고, 그리고 가능하면 나보다 약한 이들에게 호의를 베풀며 선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선'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강요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일정부문 좋은 보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의 한인사장의 '돈이 선'이라는 주장에는 참 받아들이기 힘들다. 내가 지향하는 진정한 의미의 '선'은 제이피뉴스를 아무말 없이 도와 준 이들의 생각과 삶 그 자체다. 그래서 그들을 사고와 삶을 생각한다면, 재이피뉴스가 지금보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더 올곧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무와 책임이 나와 우리 제이피뉴스에게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2010년 한 해는 죽음보다 더 깊은 상처와 고통과 아픔이 있는 1년이었다.

매월 말일이 되는 것이 두려웠고, 아침이 밝아 오는 것이 무서웠던 한해였다. 그렇지만 지난 12월 한달동안 나의 사고가 많이 변했다. 전에는 광고 좀 달라고 말 한 마디 못했던 내가 이제는 먼저 그말을 꺼낸다. 그래서 12월 한달은 하룻밤에 서너군데의 망년회를 잇달아 참석한 적도 있다.

이런 나를 두고 어떤 이가 이제 비로소 경영인으로서 첫발자욱을 내디딘 것 같다고 말한다.
 "좋은 일을 하려고 돈 벌 생각은 말아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해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간 쓸개 몽땅 빼놔야 합니다.  물론 자존심은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양심도 당분간은 지갑속에 꼭꼭 숨겨 놓으세요. 그리고 이담에 돈 많이 번 다음에 그때 다시 꺼내서 개같이 번 돈 정승같이 우아하게 좋은 일에 쓰세요. 그러는 것이 당신이 세상을 이기는 겁니다. 진정 제이피뉴스를 위한다면 지금은 그냥 거지가 되세요. 기사는 기자들보고 쓰라고 하고."

오늘은 새해 첫날.
그래도 제이피뉴스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제이피뉴스가 지향하는 목표는 온전히 그대로 갈 것이고, 더욱 분발할 것이다.

또한 지난 달보다 더 많이 나는 '광고수주'를 위해 '거침없이 하이킹'으로 '거지같은' 광고 구걸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자존심은 위의 한인의 말대로 지난 12월에 쓰레기통에 콱 처박아버렸다.

그렇지만 버리지 않는 것이 있다.
절대로 내 영혼을 팔지 않는 것, 그리고 제이피뉴스 창간 당시의 의식을 결코 버리지 않는 것. 그래서 '있는 그대로 올곧게' 앞으로 쭈욱 나아가는 것.

2011년 여러 기획안들이 설정돼 있다.
재미있는 인물 인터뷰, 심층현장르포, 지방현지 취재, 꼭 가보고 싶은 유적지나 관광지 소개도 기획되어 있다. 인물인터뷰 시리즈는 이미 시작되었다.

제이피뉴스 독자 여러분!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세요.
아직은 어설프고 완성도가 많이 부족한 언론매체지만, 앞으로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그런 제이피뉴스가 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도록 모두가 열심히 뛸 것입니다.
인간답게 사는, 그래서 평화가 공존하는 그런 세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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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1/01 [10:15]  최종편집: ⓒ jpnews_co_kr
 


연재소개 전체목록
1958년 5월 충남공주 출생


<인터뷰>
[일본] 나카소네, 도이 다카코, 다케시타 노보루, 우노수상, 미치코 황후 인터뷰
[태국] 츄안 수상 인터뷰
[미얀마] 아웅산 수지여사 인터뷰
[필리핀] 마르코스 이멜다 인터뷰


<취재>
80년, 1년 8개월 동안 쓰레기매립장 ‘난지도’ 생활르포
83년, 3개월 동안 동남아시아 8개국 슬럼가 르포
85년, 1개월 동안 미국 입양아 현지 취재
88년, 사할린 르포
90년, 일본 부락민 산야 르포
2005-2006년, 3회에 걸쳐 북한르포


<그 외>
1987- 1994년 : 한국주간지 <토요신문> 일본 특파원
테레비 아사히 <아침까지 생방송 > 토론회 2회 출연
규슈 NHK 주최 <세계여성 8개국 여성 저널리스트 토론회 참석>


현재 : 일본 고단샤 발생 <주간현대> 북한담당 계약기자
아사히신문 월 1회 칼럼 연재 중
일본 전문 인터넷신문 'JPNews' 발행인


<저서>
한국 : 서울서 팔리는 여자들(1983.르포집)
벌거벗는 여자들(1984.르포집)
난지도 사람들(1985.장편소설)
여왕벌(1986.논픽션)
하품의 일본인(1994. 비평에세이)
일본여자를 말한다(1998. 에세이)
일본은 지금 몇시인가(2002. 르포집)

일본출판 : 쓰레기섬에서 살다(1986. 르포집)
日정치인 우경화, 원로그룹 '입김'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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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꿈꾸는 일본, 2013 현주소
일왕과 천황, 그리고 비판과 비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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