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연재물이므로 처음부터 읽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점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타쿠(1부)
헌책방(2부)
걱정(3부)
이별(4부)
한국남자(5부)바둑(6부) 아내의 아버님, 그러니까 미래의 장인어른은 26년간 일본적인 개념으로 봤을 때 아무런 문제없이 전형적인 일본인 여성으로 살아왔던 딸로부터 갑자기 남자친구, 그것도 외국인과 동거하겠다는 말을 들은 셈이다.
얼마나 놀랬을지 지금 두 딸의 아빠가 된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만난지 31일이 지난 12월 12일, 아내는 "집을 나오고 싶고, 오빠와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이다.
11월 10일 오전, 아내가 기숙사로 온다고 했을때 얼결에 "그, 그래"라고 했을 때와 아마 발음의 톤이나 내용이 똑같았을 성 싶은 "그, 그래"라고 아내의 제안에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때처럼 잠결도 아니었고, 이미 3주간 장인어른과 바둑을 통해 만나본 상태였다. 무슨 일이든 첫 경험이라면 두근거리고 떨리고 당황할 수 밖에 없지만, 어느정도 경험해 봤다면 프로세스를 생각하게 된다.
우선은 "그, 그래"라고 대답했지만 이내 이것저것 작전에 관련된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장인어른께 인사하러 갈때 무엇을 사들고 가야 할까, 실제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하면 될까에 도움이 되는 프로파일링 작업일 수도 있다.
'그는 담배를 안핀다. 다른이가 담배피는 걸 싫어한다.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녹차, 특히 이토엔 계열을 상당히 좋아하는 듯 하다. 정치 이야기는 좋아하지만 자민당은 싫어한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극도로 싫어한다. 하지만 상당히 보수적이며 신중한 성격이다. 한국에 대해선 과거에 한번 골프여행을 간 적이 있지만 전혀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둑을 두면서 가족 이야기를 한번도 한 적이 없다...'
3주간 3번 만난 장인어른과의 만남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짐짓 자신감도 생겨났다.
장인어른을 정식으로 만났을 때 자민당과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심하게 비판하자. 아참, 비판하다가 목이 마르면 이토엔의 '오~이, 오차'를 마셔야겠군...등등.
그런데 이런 상상 혹은 계획을 아내는, 또 깨버렸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 같이 좀 가 줬음 좋겠어""오늘!?""응. 아버지한테 사귀는 사람 데려온다고 말했거든."".......-_-" 그리고 20분후. 아내의 집앞에 서있는 나. 아내가 초인종을 누를 때 나는 심호흡을 했다. 초인종 건너편에서 장인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미와코?""응""...혼자야? 아니면...""데리고 왔어" 딸칵,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목조단독주택의 목조도어 건너편 목조마루를 넘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일본주택은 벽넘어 저쪽 소리가, 왜 이리도 잘 들리는 걸까? 5초도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원래대로라면 이틀후에 공민관 바둑교실에서 만날 분이 아내를 먼저 보고 천천히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금테안경이 씰룩이면서 입이 반쯤 벌어졌던 장인어른의 그 표정은 내 기막힌 묘수로 인해 자기 대마를 잡혀 만방으로 패배했을 때보다, 질량적으로 본다면 약 10배이상 놀란 표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장인어른이 놀란 그 '질량'만큼 나도 놀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인생에 몇번 정도는 거짓말, 아니 연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시도때도 없이 해버리면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가 되지만, 인생의 터닝포인트에서 분위기 파악 못한다면 평생 그렇게 살다 죽을 수 밖에 없다. 할 때는 확실하게 해줘야 한다.
장인어른이 아직 상황파악을 못해 주춤거리고 있을 때 선수를 쳤다. 이때만큼은 흑번필승의 진리를 믿었다.
"오! 이런! 다카하시상 아닙니까?! 아니, 당신 아버님이 다카하시상이셨어? 이런 말도 안되는 우연이 있다니...! 내가 말 했었잖아. 금요일날 바둑 정말 잘 두시는 분이 계셔서 그 분과 바둑둬야 한다고. 그분이 바로 당신 아버님이라니, 우와! 진짜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대?" 발군의 센스와 순발력을 자랑하는 아내도 이때만큼은 내 얼굴을 멍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윙크를 보내자 그때서야 원래 표정으로 돌아오면서 장단을 맞춘다.
"어! 그랬어? 정말 우연이다. 아빠 정말이야?""그, 그래. 일단 안으로 들어오지. 박군 자네도..." 둘의 합동공격에 정신이 없는 듯 장인어른은 얼결에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아내는 후일 이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었다.
"그때 아빠는 사실 '오늘 말고 다음에 오게. 그리고 밖에서 같이 사는 건 허락하지 않을테니 그렇게 알게나' 라고 말하면서 문을 '쾅' 닫을 생각이었대. 또 사실 나도 그정도는 예상했어. 어차피 계속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넘어가겠지라는 심정에서 하는 거였으니까. 근데, 오빠가 유창한(?) 일본어로 그렇게 멋진 퍼포먼스를 보일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거든. 정말 신들린 것 같았다니까. 하하하" 하긴 나도 예상치 못했다. 일본어 실력이 상급수준에 다다른 지금도 그때, 그러니까 장인어른과의 '공식적'인 첫 만남에서 구사한 일본어와 감정표현은 정말 완벽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앞에서 몇번이고 말했지만 연애가 잘 되려면 몇번씩 신(神)이 강림도 해주고 그래야 한다. 나의 경우 숫자, 바둑, 연기의 신이 차례대로 돌봐준 격이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아내의 집은 전통적인 일본의 목조가옥이었다.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물어(東京物語, 도쿄 모노가타리)"에 나올법한 조그마한 다다미방 4개와 거실이 하나, 그리고 부엌이 있었다. 일본식으로 하자면 4ldk 가 되는 셈이다.
일본식 난방시설인 코다쯔(火燵)에 녹차가 3잔 놓여졌고, 아내와 나는 이쪽, 그리고 장인어른은 건너편에 앉았다. 그런데 별로 대화할 것이 없었다. 왜냐면 장인어른은 이미 내가 어디 출신이고, 무슨 생각으로 유학을 왔는지, 그리고 장래희망은 무엇인지 등 일반적으로 첫 대면에서 오고 갈법한 '호구조사'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둑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만 물어볼 수 밖에 없는데, 이게 또 보수적이고 근엄한 아버지 입에선 잘 안 떨어진다. 무슨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자네 우리 애랑 언제부터 만났나? 어떻게? 왜?'라는 질문은 당신이 생각해도 격이 떨어진다고 보셨나 보다.
결국 의례 그래왔던 것처럼
바둑만 두었다.
금요일이 아니라 수요일, 공민관 바둑교실이 아니라 아내의 집이라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샷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겨울저녁의 고즈넉한 풍경.
12월 12일 저녁 우리는 2시간동안 바둑을 두었고, 아내는 옆에서 줄곧 지켜 보았다. 장인어른이 2번을 이기고 내가 1번을 이겼다. 장인어른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내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을 꺼낸다.
"너도 바둑 배우면 잘할텐데 말야. 진득하게 오래 기다릴 줄도 알고 오셀로도 잘하니까""응. 나도 배우고 싶어. 항상 재밌겠다고 생각해 왔거든" 장인과 아내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녹차를 마시며 듣고 있는데 갑자기 장인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박군이 좀 가르쳐 주고 그래보지" 순간 사래가 들렸다. 쿨럭, 쿨럭. 아내가 급히 타올을 건네주며 등을 두드린다. 이 집안 사람들은 왜 이렇게 적재적소에서 사람을 놀래키는지 모르겠다.
결국 바둑을 가르쳐주려면 만나야 하는 법이니 잘 사귀어봐라는 말인 셈이다. 프로파일링에서 언급했듯이 보수적인 아내의 아버님이다. 죽어도 사귀는 걸 허락한다는 말은 못하고, 또 그런 말 해봤자 쓸모도 없다. 25살 먹은 딸아이가 연애하겠다는 데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다만 만나보고 이건 정말 아니다, 혹은 이건 정말 괜찮다 싶으면 조언정도는 할 수 있을테다. 사귀지 말라는, 또는 사귀라는 표현을 넌지시 던지는 것. '박군이 바둑을 좀 가르쳐 주지'라는 표현은 물론 후자의 영역이다.
참고삼아 말한다면, 장인어른은 2005년 3월 6일 이후 바둑을 완전하게 관뒀다.
2005년 3월 6일은 우리의 결혼식 날이다. 혼인신고, 결혼, 한국집의 반대 등에 관해선 나중에 다시 설명할 때가 올 것이라 본다.
아무튼 우리는 일본에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한지 약 2년 6개월만에 정식 결혼식을 한국에서 올릴 수 있었다.
이때 한국을 찾았던 장인어른은 결혼식을 마친후 우리 고향집에 들렀고 이때 당대최고의 싸움바둑꾼인 막내 삼촌과 나의 접전을 목격하게 되었다. 문제는 삼촌과 내가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것을 보고, 장인어른은 삼촌과 당신이 비슷한 실력이라고 착각해버린 것이다.
삼촌과의 대국이 적당한 선에서 매듭을 짓고 아내와 잠시 밖에 나가 친척들에게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그때 옆에서 보고 있던 장인어른은 삼촌에게 손짓을 하면서 "나하고도 한판두자"는 어필을 하고 있었다.
그 자리를 떠나면서 나는 삼촌에게 소리쳤다.
"삼촌! 적당히 적당히... 알겠지?" 1시간 30분후 아내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장인어른은 아무말도 안하시고 다만 tv만을 보고 계셨다. 한국말만 나오는 tv가 재미있을리 만무하다. 장인어른 눈동자의 초점은 어딘가 모르게 핀트가 나가 있었고 초췌해 보였다. 장인어른은 내 얼굴을 보더니만, 헛헛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돈댁 바둑이 정말 세더군. 자네도 끝내기만 제대로 배우면 정말 센 바둑일텐데 말야..." 소파옆에서 다른 어른들과 고스톱을 치고 있던 막내삼촌이 나를 보더니 "어! 니네 장인 바둑이 영 약하더라. 일본바둑은 원래 그런거냐?"고 장난스럽게 웃는다. 인정사정 볼것없는 싸움바둑. 그러지 말라니깐. 어휴.
그후 장인어른이 바둑두는 모습을, 나는 본적이 없다. 장모님 말로는 금요일 저녁엔 동네 자치회 분들과 마작을 친다고 한다.
그러나 위 에피소드는 시간이 꽤 흐른 2005년의 사례다.
2001년만 하더라도 장인어른이 우리의 동거나 결혼을 그다지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건 확실하다. 이때만 하더라도 장인어른은, 아내와 내가 사귀는 건 암묵적으로 허락했지만 동거에 대해서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장인어른의 이러한 스탠스는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던 2002년 8월 22일까지 이어졌다.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니 니가 결정해라는 마인드. 쿨(cool)해서 좋긴 좋은데, 나중에 혼인신고서를 시청에 제출해야 했을 때도, 장인은 마지막까지 결혼 보증인 란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 그때 장인어른은 이런 말을 했다.
"결혼은 너희들이 결정한 것이니 난 찬성도 반대도 안한다. 그러니까 도장을 찍을 수 없다. 너희들의 결혼을 찬성하는 누군가에게 보증인이 되어 달라고 하렴" 그때는 이 말이 상당히 이상하게 들렸고, 아내 역시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나는 지금도 간혹 장인어른의 이 말이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보곤 하는데 뚜렷한 답이 안나온다. 지금이야 아내는 "원래 우리집이 좀 그래"하면서 털털하게 넘기고 말지만, 마음 한구석엔 섭섭한 감정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우리는 그로부터 1주일후 아내의 직장에서 도보 5분거리에 있는 m시에, 2005년 10월 31일까지 약 3년 11개월간 동고동락할 셋집을 얻어 같이 살게 되었다.
이 3년 11개월은 아내와 나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시기였던 것 같다.
아내도 나도 누군가를 만나 과거의 추억을 말할 때 등장하는 시츄에이션, 공간, 스토리, 디멘션 등의 약 90% 이상이 이 3년 11개월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방금전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아내는 말했다.
"오빠는 그때 산소였어. 날 살아가게 해주는 산소같은 존재" 물론 금세 다음 말이 이어졌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냥 잡성분 다 섞여있는 공기지만 말야. 깔깔" 200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동거를 시작한지 5일째 되던 그날 우리는 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내가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고마워"라고 말했던 이유를 아내는 자분자분 털어 놓았다.
■ 8부
일본여친 "오빠 섹스기피자인줄 알았어" ■ 글쓴이 주(注)
링크 혹은 부분 전재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부 퍼가는 것은 삼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