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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반대말은 ‘곱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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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바라보는 마음의 장벽. 장애는 '틀림' 아닌 '다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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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호 (동화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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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초등학교 국어 문제에 ‘보통’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나왔다. 대다수의 아이가 ‘특별’이라고 답을 적었는데, 어느 아이가 기가 막힌 답을 적어 선생님을 기절초풍하게 했다. 중국집 아들인 그 아이가 적은 답은 ‘곱빼기’였다. 선생님은 그 답에 힘차게 동그라미를 쳤다. 그렇다. 보통의 반대말은 특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곱빼기도 될 수 있고 쾌속(내가 타고 다니는 전차인 츠쿠바익스프레스선에선 보통열차와 쾌속열차로 나뉜다)도 될 수 있다. 언어의 사회성이란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용하는 장소와 속한 사회집단별로 말이나 용어가 달리 사용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들은 눈이 좋은 사람들을 ‘정안인’이라고 부른다. 또 장애인과 크게 나뉘는 말로 ‘비장애인’이란 말도 사용된다. 이것은 ‘보통’이란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일반’이나 ‘정상’이란 말이 장애를 차별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일 것이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일반인’이 되면 장애가 있는 사람은 일반적이지 않은 아니 일반적이지 못한 사람이 되고, 같은 의미로 장애가 없는 사람이 정상인이 되면 장애가 있는 사람은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애가 없는 사람에 대한 용어도 매우 조심스럽게 그러나 장애인과 분리되거나 차별되지 않도록 변해왔다. 내 개인적 견해로는 ‘예비장애인’이란 말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잠재적 장애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병으로 인한 장애도 있을 수 있고 가수 강원래 씨처럼 사고로 인한 장애도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성인병이라고 불리는 고혈압, 당뇨병 등은 많은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들 수 있다. 성인병 뿐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게 되고 늙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장애를 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예비장애인’인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에 대한 용어는 어떤가? 잘 알겠지만 옛날에는 병신, 불구 등의 용어가 장애를 총칭했다. 또 유형별 장애도 장님, 소경, 귀머거리, 곰배팔이, 앉은뱅이 등이 사용되었으나 1981년 장애인의 복지를 다루는 '장애자복지법'이 생기면서 장애자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장애자의 ‘자’자가 놈자라는 이유로 한 장애인이 이의를 제기했고 그래서 ‘장애자’에서 ‘장애인’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일보가 MB정권이 들어서는 초창기에 이명박씨를 당선인으로 부를 것인지 당선자로 부를것인지를 고민한것보다 훨씬 이전에 장애인계에서는 이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장애인이던 장애자던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놈 자이건 사람 인이건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랴? 놈자가 안된다면 학자는 학인으로 기자는 기인으로 불러야 할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라는 시민단체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친구라는 의미를 가진 ‘장애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많은 의식(?)있는 사람들이 이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장애에 대한 의식있는 시민단체가 만든 용어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인 듯하지만 솔직히 많은 장애인들이 이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장애를 함께 가는 친구로 인식하자는 어찌 보면 매우 좋은 의미 같지만, 영어의 ‘friend’와는 달리 한국에서 ‘친구’라고 하면 또래 집단에서의 사이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학생이 할아버지 장애인더러 친구 먹자고 하면 기분 좋은 장애인이 있을까? 그것보다도 장애인을 바라보는 의미에서 친구는 결코 동일하지 않은 거리감이나 우월감이 내재되어 있다. ‘뽀뽀뽀에서 뽀미 언니가 유치원 아이들에게 하는말 “뽀뽀뽀 친구들 안녕” 할때의 친구 말이다. 그러나 '장애인'이나 ‘장애자’ 또는 ‘장애우’라는 말에서 내 귀에 거슬리는 것은 ‘장애’라는 용어다. 그 말이 인생에 장애가 많은 사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이 사회에서 장애가 되는 인간을 말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사회 개념에서는 모르겠지만 현재 정권에서는 후자로 인식하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그러니 그 장애가 되는 인간들에게 지급되는 쥐꼬리만 한 복지예산도 매일 뺏어가려고 난리니 말이다.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장애를 부르는 용어가 다르다고 뭐가 바뀔 것인가?하고 말이다.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부르는 말에 따라서 그 대상의 인식이 바뀔 수 있는 문제여서 매우 중요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비로소 꽃이 되었다”라고.. 장애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장애가 기본적으로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환경적 문제라고 하는 면에서 장애를 다루는 분야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날개가 달린 하늘나라를 생각해 보자. 그런 사회에선 위층으로 오르기 위한 계단이나 엘리베이터가 필요 없을 것이다. 가벼운 날갯짓만으로 사뿐히 날아 오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사회에 만약 당신이 초대를 받아서 갔다면? 위층, 아래층을 오갈 때마다 날개달린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장애는 인간 기능의 불편 여부가 아니고 사회적 기능의 불편을 의미한다. 우리말에도 이런 말이 있다. ‘애꾸눈 마을에선 두 눈 달린 사람이 병신이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선 신체기능의 제약은 별로 없다. 오히려 눈이 하나인 사람보다 두눈 가진 사람이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기능적장애는 없음에도 장애인 취급을 받는다. 바로 사회인식 때문이다.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보통이 되는 사회는 없을까? 그런 사회는 결코 없다. 하지만, 그런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서로간의 차이를 틀림이 아니고 다름으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예쁜 여자, 가슴 큰 여자, 잘 생긴 남자, 몸 좋은 남자, 그리고 노래 잘하는 사람, 노래 못하는 사람, 키 작은 사람, 키 큰 사람, 못생긴 사람 등 사회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있듯이, 장애가 있는 사람도 그 다양한 부류의 사람 중 하나라고 말이다. 노래를 못해도 이 사회에서 그를 장애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조금 불편한 사람에게도 그냥 모두 같이 보통이 되면 정상인도 비장애인도 모두 없어질 텐데 말이다. 그러면 노래도 못하고 얼굴도 못생기고 게다가 눈까지 안보이는 나 같은 사람도 조금 어깨 펴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보통이란 말이 없어지면 곱빼기도 없어질까?
▲ 아시아청소년장애인게임 ©이승열/JP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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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7/25 [12:52] 최종편집: ⓒ jpnews_co_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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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 관점에 동의합니다. |
SS 501 |
11/07/25 [2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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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사회나 과거 그냥 자연속에서 살던 시기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살기에는 힘들고 생존과 직결되는 여러가지 위협에 쉽게 노출됩니다. 각종 구조물, 달리는 자동차나 심지어 무심히 걷는 정상인들조차도 위협이 됩니다. 그래서 갖는 것이 측은지심입니다. 하지만 요즘 장애인인권 외치는 사람들은 이 맘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 근간에 자신의 맘속에 자신이 장애인이란 굴레가 있는 것은 자신 스스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상인만 탓하는 장애인을 보면 정말 장애인처럼 보입니다. 보통처럼 상대가 대해주길 바라면서 자신은 보통처럼 언행하지 못하고 스스로 맘속에 굴레를 씌운 장애인들을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정상인 저조차도 남에게 도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면 당연히 감사하죠. 하지만 도움을 받았다는 것 자체를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장애인들을 보면 정말 힘들더군요. 몸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이미 장애인이라 느낌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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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학문적인 단어를 말하긴 싫다. |
난 이렇게 생각해 |
11/07/25 [2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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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두 사람이 수화를 하고 있었다. '수화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누군가 지팡이를 두드리며 길을 간다. '눈이 안보이는구나'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장애가 있다. 내 앞을 걷는 사람이 겉보기에는 나와 다르지 않아도 '인격장애'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어떤가? 난 사회가 공동체로써 서로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리반이 헬랜켈러을 가르치듯이 나와 다른 너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시간을 주려면 돈이 필요하다. 사회가 부담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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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요점은 알겠지만... |
어긋난 기사? |
11/07/26 [0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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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어긋난거 같다. 글쎄... 보통사람과 장애인 이라는 비교를 위해서 마지막에 보통이라는 단어가 사라지면 곱배기라는 단어도 사라질까? 라고 넣은거 같은데... 비교 대상이 좀 다르지 않을까? 털어서 먼지 않나는 사람은 없다. 태어나서 병원 한번 안가고 살며 죽는 사람도 물론 극소수 있겠지만, 병원에 안간다고 질병이 없다고 보는건 무리다. 한마디로 어디가 아픈가? 얼마나 아픈가? 의 차이라는 것이 더 바람직한 기사가 아니였을까? 단순히 보통사람과 장애인의 구분을 없애고 싶다라는 관점에서의 이 기사는 딱히 공감대가 없다. 기사 자체에서도 보통사람과 장애인을 굳이 구별하고 있으니까 기사를 쓴 기자 당사자 자체가 보통사람과 장애인을 구별한다고 보는게 더 타당하다면 타당하다고 본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서 쓴 기사인거 같기는 한데, 기자 당사자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썼다는 느낌이 오히려 더 강하게 드는 건 무슨 이유 일까? 기자가 편견을 가지고 쓴 기사로는 편견을 깨고 싶다는 의도 자체가 무리인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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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솔직히 |
박대근 |
11/07/27 [0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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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란 단어에다가 쓸데없이 비장애인이니 하는 단어들로 대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럼 일반인이면 일반인이지 이상한 말 가져다가 굳이 대체하는 이유가 뭔데? 장애인은 그냥 일반인중에 속해있는 하나의 단어일 뿐이다. 기자, 교사, 범죄자등 개개인을 칭할 때 쓰는 칭호일 뿐인 거다. 모두 일반인에 포함이 되는 거 아냐? 왜 일반인이라는 단어를 자꾸 사용 못 하게 하는데? 장애인 관심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해 일반 상식까지 자꾸 바꾸지 말란 말이다.
물론 정상인이라는 말은 공감 안 간다. 정상인이란 말은 말이 안되지. 저놈이 겉은 멀쩡해보여도 속이 시커먼 놈일지 누가 알아. 하지만 일반인과 정상인이라는 단어는 확실히 다른 만큼 둘을 묶어서 비장애인 운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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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언급하는 건 아니다. |
박대근 |
11/07/27 [0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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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기사를 읽다보니 평소에 생각하던 것이 튀어나왔을 뿐...
기사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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