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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비밀접촉, 과연 간 수상의 지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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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창춘에서의 북일비밀접촉, 단독행동? 아니면 수상의 지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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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일 (코리아리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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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도치기현의 아시카가시와 사노시 등 두 군데에서 강연이 있었다. 아사쿠사에서 9시 40분의 특급열차 '료모'타고 강연장소로 향했고, 낮과 밤 강연을 끝낸 뒤 밤 8시 25분에 아사쿠사에 돌아왔다. 전날 대학 동창회에서 약간 과음해서인지 몸은 무겁고 머리 회전이 둔했다.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두 강연 모두 시장과 시의회 의장을 포함한 의원들이 다수 출석했다. 이날 강연 주제는 모두 '격동하는 한반도 정세와 한일 관계의 향후'였다. 어제까지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포럼(ARF)에서 남북 접촉이 실현된 것이 화제가 돼 이야기하기가 쉬웠다. 핵 교섭 책임자인 6자 회담 수석대표에 의한 남북 접촉은 예상했던 대로지만, 서서 이야기한 정도라 할지라도 양국 외무장관끼리 접촉한 것 자체가 한국에게 있어서 의외였던 모양이다. "이명박 정권을 상대하지 않겠다"고 밝힌 북한과 당국자간 회담 및 접촉을 실현한 것에 대해 이명박 정권은 크게 기뻐한 듯하다. 한편, 북한 측은 ARF에서 중국,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회담이 있었던 사실을 전했지만, 한국과의 회담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측 입장에서 보면, 한국과의 접촉은 차후 북미접촉 및 회담을 위한 단순한 통과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북한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워싱턴으로 향하는 길"일 뿐이다. 실제로 김계관 외무 제1차관이 28일, 미국을 방문한다. 정부 초청에 의한 방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직접 이 사실을 발표한 것은 놀랍다. 미국에게 있어서도, 남북 대화는 북미 대화를 위한 단순한 의례에 불과했을 것이다. 김계관의 방미를 앞두고 클린턴 장관은, 6자 회담 조기 재개를 위해서 북한이 먼저 해야될 일로서 1) 우라늄 농축계획의 중단과 2)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원을 받아들이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과연 김계관 제1차관은 회담 상대인 스티븐 보스워즈 북한 정책 특별대표에게 어떠한 조건을 제시할 것인가? 식량지원일까, 아니면 제재 완화일까, 아니면 하이클래스의 북미회담이 될 것인가? 흥미진진하다. ARF에서 또 하나의 쟁점이 북일대화였다. 정식 대화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약간의 접촉은 있었던 듯하다. 북일 대화가 실현되지 않았던 것은, ARF에서 북한과의 접촉을 연기한 미국과 발을 맞췄던 것인지, 혹은 일본에게 그럴 마음이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일본의 요청에 북한이 긍정적 답변을 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런 가운데, 당사자인 마쓰모토 다케아키 외상은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북일대화를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북일 회담의 조기 재개를 요구하고 있는 일본 측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북일대화를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발언은 이해하기 어렵다. 일각이라도 빨리 납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과의 교섭 재개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요코다 시게루 씨를 비롯한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실망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북일교섭 책임자인 외무성의 수장이 "북일대화를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바로 이날, 중국 창춘에서 민주당 나카이 히로시 전 납치문제 담당상이 북한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담당대사와 납치문제를 진전시키기 위한 교섭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었다. 이번 나카이 전 장관의 북한 접촉과 관련해, 외무성 반노 유타카 차관은 어제(25일) 기자회견에서 "외무성으로서는 사전에 이 사실을 알지 못했고, 현 시점에서도 일절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민주당 정권은 납치문제, 북한 문제 대응에도 제각각이라는 말이 된다. 만약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한다면, 정부와 당이 서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이 "모르고 있었다"고 말한 것을 보면, 당이 움직인 것도 아닌 듯하다. 수상 관저의 반응은 어떤가 살펴보자.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연락한 것은 딱히 없다. (나카이 씨의 행동과 관련한) 사실관계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카이 씨가 독자적으로 한 행동이든지, 아니면 간 나오토 수상의 승낙 하에 이뤄진 행동이든지 둘 중 하나라는 소리다. 이번 일에서 철저히 소외된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은, "본래, 외교는 정부가 일원화되어 이뤄져야 한다. 나카이 씨 건에 대해, 마쓰모토 외상이나 간 수상이 모르고 있었다면 문제가 있다. 이원화되면, 협상 상대에게 빈틈을 보이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무성이 교착상태를 타개할 수 없다면, 이원외교든, 삼원외교든, 의원외교든, 민간외교든, 사태의 진전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옳다. 북한과의 교섭을 보류했던 오바마 정권 하에서도, 핵문제로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와 클린턴 전 대통령, 카터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저명한 학자 등 많은 미국인이 북한을 방문, 북한 측 요인과 직접 담판을 지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이원외교라 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움직이기 위해 남북비밀접촉을 포함, 여러가지 루트를 사용해 대북외교를 전개해왔다. 그와 같은 움직임이 하나 둘 쌓여 이번 남북접촉도 북미접촉도 빛을 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오히려, 반대로 놀랐던 것은, 송일호 대사가 민주당 내에서 북한 문제에 가장 강경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나카이 전 장관과 만났다는 사실이다. 나카이 씨는 2010년 9월까지 1년간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을 지낸 적이 있다. 이 때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황장엽 전 노동당 서기와 대한항공 폭파사건의 김현희 전 공작원을 일본에 초청했다. 또한, 북한 여자 축구대표팀의 입국문제와 조선학교에 대한 수업료 무상화 문제에 이의를 제기해온 인물로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북한이 '북한 적대 정책'의 장본인인 나카이 씨를 비밀 접촉 파트너로서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간 수상의 특사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납치문제의 해결 및 국교정상화를 위해서는 나카이 씨 등 강경파를 설득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했던 것일까. 후자라 한다면, 이것은 일찍이 납치의원연맹 회장이었던 나카야마 테루키 국회의원을 받아들인 것과 같은 수법이다. '매파(강경파)의 논객'으로 알려진 나카야마 전 중원의원은 당초 "납치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대북 식량지원을 단행해선 안된다"고 발언하는 등 매우 강경한 자세를 보였었다. 그런데 북한 측과 접촉해 1997년 11월 북한을 방문한 뒤 '선 국교정상화, 후 납치문제 해결'로 입장을 전환, 북한에 매우 융화적인 인물이 됐다.
나카이 씨가 '제2의 나카야마'가 될 리는 없겠지만, 만약 나카이 씨의 배후에 소문대로 간 수상이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내에서 오자와 이치로 씨와 가장 친하다는 나카이 씨가 간 수상을 돕기 위해 납치문제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라 보고 있지만, 비밀접촉이 세상에 공공연하게 알려진 이상, 납치문제의 진전도, 또한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소문이 돌고 있는 간 수상의 전격 방북 계획도 이걸로 무산될 것이다.
▲ 나카이 히로시 전 납치문제 담당상 ©JP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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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7/27 [13:10] 최종편집: ⓒ jpnews_co_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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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반도라는 용어 |
음 |
11/07/28 [0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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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반도라는 용어를 한국에선 쓰지 않습니다. 한국언론에 투고하려면 한반도라는 용어를 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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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의연금 |
수해의연금 |
11/07/30 [1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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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의연금 내역은 어떻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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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요지는 뭔가요? |
ss 501 |
11/07/31 [1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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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글을 왜 썼는 지 알수가 없어서입니다. 장황스럽고 군더더기 가득하며 상관없는 내용도 아무곳에서나 툭툭 튀어나오고 그것도 일방적 관점의 내용을 읽고 있자니 고역입니다.
글 전체 내용은 일본과 북한간에 비밀접촉이 있었고 이것이 간수상의 지시든 단독행동이든 폭로되어버린 지금 시점에서는 간수상의 북한 전격적 방문도 어렵게 되었다가 이야기의 큰 줄거리로 보입니다.
이 커다란 줄거리에 남북간 외교장관 접촉을 언급하는 것이 일본 북한간 접촉을 그와 같은 맥락에서 비교나 대조하기 위해서라거나 일본북한간 접촉을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이나 배경 사실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툭 남북한 접촉을 언급하고 그것이 이 글의 큰 줄거리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내용만 그것도 편향적 시각의 내용은 사족으로도 모자라 그 발에서 발톱이 자랐다는 불필요하고 쓸모도 없는 자기만족 주장일 뿐입니다. 즉 북한도 미국도 한국과의 외교장관접촉은 그냥 미국과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통과점에 불과하고 남한은 들러리란 소리로 들리는 내용은 그 내용 자체가 심히 자신만의 왜곡일뿐아니라 그러한 내용이 과연 일본북한간 접촉과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어서 언급되는지 그 연관성도 없이 이 글의 목적과 아무런 상관없이 툭 던져진 이념이 만들어낸 사족에 볼과하단 소리입니다.
또한 외교에 대해 정부간 정식외교루트에 의한 해결이 교착상태에 있다면 그게 일원적 외교적 삼원적이든 민간외교든 사태해결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옳다란 주장은 외교의 본질도 모르는 소리이거니와 일원적 외교가 무엇을 의미하는 전혀 모르는 소리이며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 그 다음 내용의 오바마정권의 북핵해결 외교와 별도로 이뤄진 클린턴, 카터 그 외 학자들의 북한과의 담판을 지었고 그걸 이원적 외교라고 하지 않는다라면서 그걸 이번 일본 북한간 접촉과 같은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보여줍니다.
외교가 일원적이냐 이원적이냐 하는 문제는 최종적으로 외교적 의사결정의 정점이 몇 개가 있느냐의 문제이지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외교협상의 창구가 몇 개가 있느냐 그게 정식루트냐 비밀접촉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클린턴이든 카터든 학자가 북한에 가든 그들이 제시하는 외교적 협상내용은 오바마정부의 외교적 큰 틀안에서 이뤄지며 그들이 이끌어낸 모든 협상내용은 다시 오바마정부의 외교관계자에게 승인받지 못하거나 사전승인된 내용이 아니면 채택되지도 않는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이를 이번 일본 북한간 비밀접촉과 비교해본다면 간수상의 지시없이 그냥 단독적으로 행해진 행위라면 정확하게는 외교도 아니거와 이런 것도 외교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원적 외교는 안되다란 말은 바로 외교의 본질에 대한 언급입니다.
마지막으로 대북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이 이번 비밀접촉의 장본인인지라 이에 대한 분석 부분은 글 전체적으로 좋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은 정말 눈뜨고 보기 어렵군요. 쉼표 남발로 글의 의미마저 굴절되어 엉뚱하게 해석되고 있는 것을 필자나 편집자나 알고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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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도쿄에서 태어남. 메이지가쿠인대학 영문과 졸업후 신문기자(10년)를 거쳐 이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1980년 북한 취재 방문.
1982년 한반도 문제 전문지 '코리아 리포트' 창간. 현재 편집장.
1985년 '고베 유니버시아드'에서 남북공동응원단 결성, 통일응원기 제작.
1992년 한국 취재 개시 (이후 20회에 걸쳐 한국방문).
1997년 김영삼 대통령 인터뷰
1998년 단파 라디오 "아시아 뉴스" 퍼스낼리티.
1999년 참의원 조선문제 조사회 참고인.
2003년 해상보안청 정책 어드바이서.
2003년 오키나와 대학 객원교수.
2006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인터뷰
현재 "코리아 리포트" 편집장, 일본 펜클럽 회원.
니혼TV, 후지TV 등 북한전문평론가, 코멘테이터로 활약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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