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가 다니는 교회의 지역 모임이 있었다.교회의 지역 모임이라고 하지만 그냥 만나서 맛있는 음식 먹으며 수다떠는 모임이었다.
시각에 장애를 가진 나를 위해 치치다씨가 우리 집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함께 딸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역인 히가시키타자와역까지는 길이 매우 안 좋다. 인도가 옆으로 기우뚱하게 기울어져있고 그나마도 중간에서 사라지고 만다. 인도가 사라지는 곳부터는 차선 옆으로 흰선만 그어져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 길을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가자니 매우 불편했다.
치치다씨와 자연스럽게 유모차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치치다씨는 아들 쌍둥이가 있는 나에게는 선배 엄마다. 이 아들 쌍둥이 때문에 치치다씨네는 아이들 물건이 모두 두 개씩이다. 이 쌍둥이가 아기였을 때는 당연히 유모차도 두 개였다.
치치다씨네가 몇 년 전 한국 여행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유모차 두 대를 가지고 갔다. 그때 엄청 고생했나 보다.
“서울에는 교차로에 횡단보도 대신 지하도가 많더라고요. 남편하고 저하고 각각 유모차를 밀고 다녔는데 지하도를 건널때 엘리베이터가 거의 없어서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또 횡단보도가 있어도 턱이 높은 곳이 상당히 많더군요. 인도에는 왜 그리 장애물이 많아요?”
이와같은 치치다씨의 경험은 실제 유모차로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이런 점은 일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도쿄의 거리가 서울과 비교하면 유모차를 가지고 외출하기가 수월한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보도에 턱이 별로 없고 대중 교통도 이용하기 편리하다. 전철이나 지하철이 잘 발달되어 있고 버스도 많이 운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역시 유모차를 이용해서 외출을 하면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전철과 지하철이 많은 도쿄의 경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역이 적지 않다. 이런 역에서 유모차를 이용해 아기를 데리고 외출을 하는 경우엔 매우 힘들다.
도쿄 내의 서울이라고 할 수 있는 신오오쿠보를 가려면 jr 야마노테선 신오오쿠보역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이 역을 가끔 이용하는 우리 부부도 언제나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인 베리어보다 더욱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엄마들을 곤란하게 하는 것은 유모차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모차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이점에 관심을 가진 후쿠다 교수는 k대학의 보육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모차에 대한 베리어프리(barrier free)와 관련해 조사 연구를 실시했다. 이 조사 보고에 의하면 ‘버스나 전철의 바람직한 승차방법’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유모차를 접고 아이를 안고 승차한다(58.8%)’로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상태로 승차한다(16.7%)’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렇게 유모차를 접고 아이를 안고 승차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유모차를 이용해서 버스나 전철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이 같은 방법이 얼마나 불편한가를 잘 알것이다. 더욱이 아기가 어릴 경우에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전철과 같이 문이 여닫히는 시간이 짧은 시간에 아이를 유모차에서 내린 뒤 유모차를 접고 아이를 안고 승차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또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기와 함께 외출을 할 경우 기저귀 등 아기 용품이 많아서 일반 핸드백보다 큰 가방을 들고 다닌다. 가방과 아기 그리고 유모차를 들고 전철을 타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유모차와 휠체어를 대하는 의식에 대한 연구도 있었다. 이 연구에 의하면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시각장애가 있어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의 불편함에 대하여는 ‘시설 개선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거나 ‘비장애인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아야한다’는 등 비교적 관대한 의견이 많았던 반면 유모차에 대하여는 상대적으로 냉랭한 의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이유에 대해서 장애인의 경우에는 그 장애가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회복이 불가능한 반면 유모차의 문제는 ‘일시적인 문제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거나 “모두 그런 식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의식이 많았던 것이다.
‘베리어 프리(barrier free)’란 말이 있다. 원래 장애인의 어려움을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장벽 없애기’란 장애 운동의 일환으로 출발한 개념이다. 하지만 요즘은 장애 영역의 운동에서 머무르지 않고 학술적 연구도 활발하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는 유모차뿐 아니라 장애인의 이동권도 보장한다 ©jpnews | |
내가 속해 있는 도쿄대학교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에도 베리어프리 연구 분야가 별도로 존재할 만큼 중요한 개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에 관한 베리어프리는 많이 발전하고 확대된 것과 비교해 육아 문제에 관한 베리어 프리의 접근은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육아 문제를 사회학적 개념으로 접근하는 접근 방식은 많은 반면 실제 육아문제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는 ‘베리어프리 신법’이 있다. 장애인이나 고령자등 생활 전반에 걸쳐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이다.
그러나 이 법에서도 육아와 관련된 조항은 아주 짧게 명시된 정도이다. 이제 우리의 아기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육아 베리어 프리’가 필요할 때이다.
유모차가 언제 어디든 편하게 갈 수 있으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도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도 장바구니 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줌마도 안심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란?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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