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모신문사에서 필자를 여자로 알고 사진도 함께 게재하면 좋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순간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지만, 편집부의 다소 여성스런(?) 문체 때문에 그런 오해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는 일본과 중국에 근무하면서 내가 직접 겪었던 고충을 소개하면 혹시 남자로 믿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일본사람은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지 않는 습성이 있어 사업을 하는 한국인들은 애를 먹는다. 그래서인지 자주 한국인들에게 듣는 이야기가 바로 YES인지 NO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사실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한 나도 이부분에 있어선 정답을 말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자신의 속내를 여간해서는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개성이 있기 때문에, 식별하는 방법은 그저 꾸준히 찾아가 상대방의 특징이나 습성을 익히는 수밖에 없다. 원래 일본사람은 마음이 약해 귀찮을 정도로 찾아가면 못이기는척 하면서 대부분 도움을 준다.
오래전에 형식적이기는 하나 일본관청에서 허가를 받아야 할 일이 있었다. 문제는 허가 도장을 받는 데 있다기보다는 휴일에 나오기 싫다는 것이었다. 일본국민들을 위한 일이므로 공무원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와야 하지만, 개인적인 시간이 사라져 당연히 싫어했다. 하지만 출근하면 휴일 수당도 나오는데...
그래서인지 좀처럼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허가 받으러 가야 할 곳은 일본지방도시 다카마츠(高松). 동경에서 비행기로 1시간 반가량 걸리는 곳이었다. 나는 허락을 받을 때까지 선물을 사들고 4번이나 찾아갔다. 이때 조심할 것은 아무리 뇌물성 선물이라도 값비싼 선물은 절대 금물이다.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2,000엔 이하의 과자를 들고 가는 것이 가장 무방하다.
한국인의 경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값비싼 선물을 선호하는데, 일본인은 우선 선물값이 4,5천엔 넘으면 받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다. 왜냐하면 값비싼 선물은 '뇌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물만 안 받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인에게 주는 선물은 주는 쪽도, 받는 사람도 똑같이 부담이 없어야 한다. 즉 성의만 느껴지면 되는 것이다.
결국 나는 허가를 받을 때까지 동경에서 4번이나 갔으며, 그 비용만 해도 25만 엔이나 들었다(교통비,숙박비,선물비 등등). 게다가 4번 간만큼 4일이라는 시간소비도 했다. 어떻게 보면 중국이나 한국출장이 더 편할 수도 있다. 외국 출장의 경우 한두 번 만나 쇼부(허가)를 볼 수가 있으니까.
일본공무원, 즉 관공서 사람 중에 고급공무원과 사귀려면 그들이 한달이나 두 달에 한번식 개최하는 벤쿄카이(勉强會/공부모임)에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운이 좋아 어떤 벤쿄카이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 모임에 외국사람은 오로지 나 한사람뿐이었는데, 모임의 구성원이 대단히 화려했다.사무차관을 정점으로 국장과 과장은 물론이고, 경제계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었다. 언론계사람도 멤버이며 내가 참석한 벤쿄카이는 두달에 한번 열렸다.
그 모임은 대체로 15명 전후가 모이는 그야말로 사적인 모임이다.그 맴버중 훗날 사무차관이 된 사람이 1명, 지사가 된 사람이 2명이니 인맥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게다가 나로서는 본인이 속하는 회사의 주무부서이니 더할나위 가 없을 수밖에.
여기서 일본공무원에 대해 간략하게 사족을 붙이자면, 공무원의 최고 우두머리는 사무차관(그 부서 소속 3만 공무원의 정점임)이며, 그 권한과 영향력이 한국의 차관에 비할바가 아니다. 공무원 전체의 최고 사령탑으로 그 권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사무차관은 공무원들의 지존이다.
한국의 차관은 어떤 사람이 장관에 임명되느냐에 따라 그 보직도 왔다갔다 하지만, 일본의 차관은 그리 쉽게 자리 이동을 하지 않는다. 또한 차관을 그만 두고 나서도 그 부서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하다.
바로 이같은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능한 국장과 과장을 벤쿄카이 가입시켜, 서로 이끌어주고 받쳐주는 끈끈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이 모임의 비용은 대개 경제계 인사가 부담하지만 그 액수는 그리 많지 않다.
가령 도쿄 아카사카의 작은 바(20평정도 크기)를 빌려 스시(초밥)와 오드블(애피타이저), 약간의 술을 준비하는 정도로 그 지위에 비하면 비교적 조촐한 모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여기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우의를 다진다. 때론 가라오케를 곁들일 때도 있다.
내가 그 모임에 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 좋은 탓이었다. 우연하게도 그 벤쿄카이의 주최자인 사무차관이 한국을 좋아했고, 이를 안 일본 경제지 기자가 나를 소개한 것이다.
그 사무차관이 주최하는 벤쿄카이는 일본공무원들이 가장 참석하고 싶어하는 모임이었다. 그런데 들어가고 싶어도 못들어가는 그 벤쿄카이에 내가 참가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도쿄대 법대를 나와 고시를 합격한 고급공무원 모임에, 민간인 그것도 외국인이 참석할 수 있다니. 웬 생각지도 않은 보너스!!!
민간기업이 관공서에 민원으로 가면 상대하는 사람은 보통 주임(주사)이나 계장급이 담당한다. 과장보좌, 과장, 심의관, 차장, 국장, 차관은 수십년간의 이력뿐만 아니라 지위와 영향력도 절대적이어서 장관조차 어려워 한다. 어떤 일본인은 이들의 지위가 하늘과도 같다고도 말한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긴장할 수밖에.
아무튼 내가 참석하는 벤쿄카이의 수장인 사무차관은, 한국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었던데다, "성이 임(林)씨이므로 자기는 한국에서 건너 온 후손일지 모른다"며 한국노래까지 곧 잘 불러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 당시 일본사람이 부른 노래는 고작해야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슴 아프게', '노란샤쓰의 사나이', '아리랑' 정도였는데, 그 차관은 '한오백년', '봉선화' 등을 부를 정도로 한국을 좋아했다.
만일 이 양반이 한국을 좋아하지 않고 보통 고급공무원이 그러하듯 권위적이었다면 나의 출세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기쁘게 했던 것은, 조국인 대한민국이 발전하여 일본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한국요리, 한국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회적으로 공인된 한 조직의 대표자리에 오른 것도, 이런 배경없이는 행운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때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
8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음식점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은, 마늘냄새가 나고 불고기 굽는 연기가 옷에 배여 특히 여성들이 기피하는 그런 곳이었다. 김치도 잘 먹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민주주의가 성립되어 있지 않는 군사독재의 나라,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는 나라로 일본인들은 인식했다. 때문에 그 당시에는 접대를 할 때도 한국식당을 찾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한국식당 또한 연기가 안나고 냄새가 배이지 않는 세련된 레스토랑으로 변신하여 일본인 손님을 맞이했다. 그러다보니 한국인들의 식당업 경제활동이 아주 활발해졌다. 역시 모국이 잘 살아야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나 뉴커머들의 어깨도 한층 당당해지고, 경제 활동폭도 넓어진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아, 대한민국 만세!"
다시 벤쿄카이 모임으로 돌아가자면, 역시 일본사람의 특징을 느낄 수가 있다.
첫째, 매번 한두 명 새로운 사람을 부르는데, 분위기에 맞지 않는 사람은 다음부터 절대로 부르지 않는다. 두 번 다시 부름을 받지 못한 사람은 내심 불쾌하겠지만 그렇다고 겉으로 드러낼 처지도 못된다. 그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간다.
둘째, 모임의 분위기가 상당히 부드럽다. 엄연히 이 모임에는 '계급'이라는 서열이 있는데도 모두들 전혀 개의치 않는다. 부하가 인사권을 가진 상사에게 거리낌없이 농을 걸기도 하고, 또 윗사람은 이를 권위로 누르지 않고 자유로이 담소할 수 있도록 오히려 상관으로서 부하들에게 아낌없는 배려를 한다.
셋째, 참석자 개개인은 정확히 자기위치를 알고 처세함으로써 모가 나지 않게 행동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술주정하는 사람은 어느 모임에도 있게 마련이다. 나중에 지방현의 지사가 된 어느 과장은, 술만 마시면 아무에게나 키스(kiss)를 하는 버릇이 있어, 나도 그 자리에서 난생 처음으로 (남자에게) 입술을 뺏겨 잊지 못할 밤이 된 날이 있다.^^'
하지만 내가 그 벤쿄카이를 통해 느낀 것은, 그 부서의 절대권력자인 차관도 주어진 권력을 50%정도밖에 사용하지 않고, 나머지는 유능한 후배들에게 행사케 하고, 자신은 불우한 부서직원의 취직자리를 알선하거나 부서간의 충돌, 정치가와의 문제를 푸는 정도로 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절대권력을 가지면 마음껏 휘둘러 보고 싶은것이 권력자의 본능이거늘...
그래서일까. 일본공무원은 선배들이 퇴임을 하면 그 후에도 깍듯이 선배대접하는 풍토가 형성되었다. 자연스럽게 하나의 룰이 된 것이다.
아무튼 일본의 공무원 조직이나 대기업의 경우, 가장 권한이 있는 사람은 '담당과장'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상대로 비지니스를 하려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이 같은 상식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일본에서 사업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이다.
물론 벤쿄가이(勉强會)는 위와 같은 모임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모임도 있다.
일반적인 형태를 말하면, 4~60명이 회원이면서 2달에 한번 모일 경우 20~40명 내외가 참석하며 정계, 전현역 공무원, 재계인들이 대개 구성원이 된다. 모임내용은 약 1시간 동안 초청강사로부터 강연(정치,경제,문화)을 듣고 질의응답을 하며, 2부에서는 서로 명함을 맞교환 하면서 서로의 인맥을 튼다. 회비는 보통 8,000~10,000엔 정도이며, 공무원의 경우는 대개 3,000엔 수준이 일반적이다. 필자가 회원인 다른 모임에서는 하토야마(鳩山) 전 수상, 마에하라(前原) 전 외상, 일본최대신문인 요미우리신문 오이가와(老川) 사장 등이 강사로 나온 적도 있다.
*사족: 지난번 글의 댓글에서 어느 여자분이 "왜 그 자리에서 거절하지 않느냐"라는 의문을 달았는데, 일본사람은 상대방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서 거절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또한 나와 그 일본여자는 그저 알고 지내는 정도의 관계이며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일본인의 길잡이 노릇을 한 것 뿐이다.
* 권아둔(權亞鈍, 필명) 씨는 한국에서 29년, 일본에서 31년, 중국에서 4년간 생활한 경험이 있고, 한국 S대 사학과 졸업. 현재는 도쿄에서 회사를 경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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