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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IT황제, 손정의의 삶과 일(10)
손정의의 가족, 그리고 그의 유년시절
 
제이피뉴스 기획팀
일본 근대사에서 1800년대의 풍운아가 사카모토 료마라면, 190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본 IT산업의 쓰나미를 몰고 다니는 이는 역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다. 일본에서 손 회장이 움직이면 늘 그곳에는 크고 작은 바람이 인다. 왜냐하면, 그는 일본의 현대판 풍운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4개 현에 100억 엔이라는 재해연금을 내 일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런가 하면, 원전폭발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자, 이제는 태양에너지 활용 친환경운동가로 변신해 일본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바로 그에 대한 일대기를 매일 제이피뉴스에서 연재하기로 한다.


비록 조부모와 부모가 먹고살기 위해서, 일본사회에서 가장 비천하다고 하는 폐품수집과 이웃에게 얻어온 음식찌꺼기로 가축을 키우긴 했지만, 집안의 화목함은 남부럽지 않았다.

"삼헌이는 쉬지 않고 일했어요. 누나인 우리가 할 일도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신 일해주기도 했고,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자식들의 훌륭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가혹한 일본인들의 차별 속에서 정말이지 개미처럼 일했어요."

이렇게 말하는 이는 사가 현 도스 시에 사는 손정의의 고모, 다마무라 도모코(玉村友子)씨. 그런 삼헌씨에게 둘째 아들 손정의는 영특함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아 손씨 가문의 희망으로 여겼단다.

이렇듯 전 가족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손씨 가족은 번지수 없는 조선인 부락에서 가장 먼저 자립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손정의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사가 현 도스 시를 벗어나 후쿠오카 현 기타규슈 시내(北九州市內)로 이주했다.

그러나 손씨 가문의 희망이라는 손정의의 이름은 여전히 일본이름인 '야스모토 마사요시(安本正義)'였다. 그 시절만 해도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노역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차별행위는 매우 잔혹했고 또 대단히 노골적이었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침 뱉고 때리는 것은 다반사요, 어른세계의 일본인들은 아예 사람 취급도 하려 들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소위 세속적으로 이야기하는 일류 대기업의 회사원이 된다거나,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언감생심 있을 수 없는 일에 속했다.  

손정의가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친했던, 어렸을 적 일본인 친구는 일본 매스컴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우리 일본인들은 조선인 부락을 일부러 피해 다녔어요. 왜냐하면 재일조선인들이 사는 그쪽은 언제나 지저분했고 또 냄새가 지독했어요. 하지만 마사요시가 재일한국인이란 사실은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알았어요."

돼지나 닭 등 가축을 기르고 있으니 자연 냄새가 날 수밖에. 하지만 일본인은 그 당시 조선인 하면 무조건 더럽고 냄새가 나는 '이방인'으로 취급, 아이들에게도 조선인과 어울리지 말라는 교육을 시켰다. 실제로 일본소설이나 영화에는 그 당시, 냄새나는 조선아이들과 놀지 말라는 부모의 말을 듣고 자랐다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 북한을 조국으로 인식하는 조총련계의 재일동포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국적을 숨기고 일본인 이름을 사용하며 어설픈 일본인으로 산 사람이 은근히 많았다. 자식을 차별행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재일동포 1세들의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위장에도 불구하고 부정확한 일본어 발음 때문에 이내 재일한국인임이 탄로나기도 했다.

손 정의의 가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손(孫)씨 성대신 야스모토(安本)라는 일본이름을 사용했지만, 주변의 일본인들은 그들이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아무튼, 번지수가 없어 호구조사에도 전혀 들어가지 않는 조선인 부락을 떠나 기타 규슈로 이주해 온 삼헌씨 일가족이,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사금융업이었다. 일명 '소비자금융업'이었는데 손 정의의 고모 두 명도 함께 참여했다.

이 사금융업은 일본사회에서 '음성비지니스' 혹은 '지하금융'으로 인식되고 있는, 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면 고리대금업자 같은 성격의 '돈놀이'였다. 돈을 빌려 가는 대신 높은 이자를 붙이는데, 대부분 서민층에서 빌려 가기 때문에 못 갚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빌려 준 돈을 받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일본 야쿠자와 손을 잡는 재일동포들도 간혹 있었다. 

손정의의 아버지 삼헌씨도 예외 없이 돈 떼먹고 야반도주하는 채무자를 뒤쫓아 일본 전국을 헤매야 했다. 

훗날, 손정의가 사업에 성공하고 일본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이같은 손삼헌 씨의 직업력 때문에 손정의를 질시하는 일본인들로부터, 아버지가 악덕 금융업자출신이라고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아버지 덕분에 손정의는 윤택한 초등학교 생활을 보낼 수가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손정의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절대 평범하지 않은 소년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손정의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담임이었던 미우에(三上) 선생은 교사생활 10년 차. 그는 교사생활 10년 동안 가장 인상에 남는 학생 한 명을 만났다고 한다. 바로 5학년 반장이었던 손정의를 가리키는 것.

"야스모토는 눈이 선하게 생긴 아이로, 공부도 잘했지만 정말이지 모두와 잘 어울리고 잘 놀았다. 또한 집중력,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설득력, 리더쉽도 발군의 실력이었다."

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 사이에서는 "안 상(야스모토)의 힘으로 반이 움직인다"고 할 만큼 특출한 리더쉽을 보였다. 특히 연극이나 미술, 스포츠 등 그룹활동에도 적극적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아이들조차 선생보다도 반장인 손정의를 더 따를 정도였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손정의와 함께 찍었던 흑백사진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미우에 선생은, 손정의가 뛰어난 리더쉽 뿐만 아니라 가정 환경이 불우한 급우나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친구에게는‘아주 특별히’ 잘해 줬다고 말했다. 인정이 많은 소년이었다는 것이다.

미우에 선생의 이 같은 증언은 곧바로 중학교 생활과도 직결된다. 손정의가 중학교 1학년 되던 해, 아버지의 금융업이 번창해, 사업을 후쿠오카시로 확장했다. 당시 조선인들 사이에 조금만 현금 조달력이 있어도 너도나도 뛰어 들던 파친코업에 마침내 진출한 것. 

당연히 그의 가족도 기타규슈에서 좀 더 번화가인 후쿠오카 시로 거주지를 옮겼다. 손정의도 중학교 1학기를 마치고 후쿠오카 시내의 일류로 알려진 세이난(城南)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흥미로운 것은 이때 당시 손정의의 모습이었다. 대개 전학을 올 때는 부모와 함께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손은 성적표와 학적표를 직접 들고 혼자 당당하게 교무실로 찾아 왔더라는 것이다. 그것도 중학교 1학년생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혼자 전학서류를 가지고 보무도 당당하게 학교를 찾아온 것도 놀라웠는데, 그가 내민 성적표를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고 한다. 왜냐하면 성적이 모두 최상위였기 때문. 

그 때부터 손정의는 그 학교의 귀염둥이 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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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2/06 [09:28]  최종편집: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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