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병헌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지아이 조>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지만, 이병헌의 카리스마나 연기는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지아이 조>에 출연한 이병헌의 평가에 대해서, 한 일 양국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일본의 일부 언론과 블로그 등에서 이병헌의 출연에 대해 불만과 표시하고 비난을 가한 것이다. 그것을 접한 한국의 언론과 블로그 등에서는 그런 일본의 반응에 대해서 역시 공격을 했다.
<지아이 조>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역은 스톰 쉐도우라는 악역 닌자다. 원작에서는 일본 출생으로 되어 있지만, 이병헌이 출연하면서 약간 애매하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는 동경에 위치한, 소림사를 빼닮은 외관과 승려들이 있는 절에서, 한국말을 하는 소년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들이 기분 나빠 하는 이유도 짐작할 수는 있다. 애초에 일본인이었고, 일본의 캐릭터인 닌자 역을 왜 한국인이 연기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한국인들은 이병헌이 더욱 매력적이고 연기를 잘해서 뽑힌 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한다.
▲ 일본에서 헐리웃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이병헌 ©jpnews | |
둘 다 일리는 있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할리우드의 동양인에 대한 사고방식이다. <게이샤의 추억>은 일본의 게이샤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공리, 양자경, 장쯔이 등 중국 배우 일색이다.
<게이샤의 추억> 일본 개봉을 앞두고 감독과 배우가 방일했을 때, 일본 기자들이 감독 롭 마샬에게 물었다. 일본 게이샤 역을 왜 모두 중국 배우에게 맡겼냐고. 그러자 감독의 너무나 맥빠지는 답이 나왔다. '아, 그런가. 미처 생각하지 못 했다. 미안하다.'라고. 그리고 '다 같은 동양인 아니냐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보기에, 일본인을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연기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 <작전명 발키리>에서 톰 크루즈가 독일군 장교 역을 연기하는 것처럼, 동양인이라면 어떤 나라 사람의 연기를 하던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니까. 중심(이라고 착각하는 곳)에서 보기엔, 변방이 다 똑같아 보이는 법이다.
<게이샤의 추억>에서 중국 배우를 뽑은 이유는 간단했다. <게이샤의 추억>은 일본 혹은 미국의 아시아계 미국인을 위한 마이너 영화가 아니라 전 세계의 관객을 대상으로 한 블록버스터였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유명한 배우를 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미 007 <네버 다이>에 출연했던 양자경과 <와호장룡>과 <러시 아워2>에 출연했던 장쯔이를 기용한 것이다. 일본 배우 중에서는 그 정도의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배우가 없기 때문에.
<지아이 조>에 이병헌이 출연한 것은, 프로듀서와 감독이 보기에 이병헌이란 배우에게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인이기만 하면, 국적 같은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아니 주연의 경우에는 가능하다면 동양인 역할도 서양인에게 맡기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동양인 배우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tv 드라마 <쿵푸>의 주인공은 애초에 이소룡이 맡기로 했던 것을 데이비드 캐러딘에게 준 것이다. 혹은 혼혈인 배우에게 동양인 역을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춘리의 전설>에서 어머니가 중국인인 크리스틴 크룩에게 춘리 역을 맡긴 것처럼. 다만 무술과 액션 연기가 중요한 배역에는 아시아 배우를 선호하고, <엑스맨>이나 <지아이 조>처럼 등장인물이 많을 때에는 다양하게 인종을 배치한다.
일본에서 <지아이 조>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신들의 캐릭터를 한국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불만이라면. 한국인들은 오히려 아량 있게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병헌도 그렇고,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하는 <닌자 어쌔신>에서도 비가 주인공을 연기한다. 그것 역시 닌자 캐릭터다. 일본의 고유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이병헌과 비 등 한국의 배우들이 닌자를 연기하는 것은 한편으로 즐거운 일이다. 한국의 배우들이 그만큼 실력 있고, 인지도도 높아졌음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하지만 <지아이 조>와 <닌자 어쌔신>의 이병헌과 비의 출연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면도 있다. 왜 한국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연기하는 것이 주로 닌자와 사무라이 등 일본 캐릭터인 것일까?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에서 중국과 일본의 고유 캐릭터는 있는데 왜 한국의 고유 캐릭터는 없는 것일까?
한국의 문화가 더욱 발전하고, 세계에 뻗어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배우와 가수의 개별적인 활약만이 아니다. 체계적으로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상품화시킬 수 있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고유 캐릭터를 어떻게 발굴하고 만들어낼 것인지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