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세계 3위의 D램 업체 ‘엘피다’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이에 한국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반사이익이 따를 것이라는 의견이 잇따라 흘러나왔다.
엘피다가 파산보호 관리를 받게 되면 설비투자 집행에 제약을 받게 될 것이고, 정상적인 생산 및 영업활동이 어려워져 한국 업체들이 수혜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본의 잡지사 '저팬 메일 미디어(Japan Mail Media)'가 '엘피다' 파산보호신청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반응을 조사했다.
신슈 대학 경제학부 마카베 아키오 교수, JP모건 증권 일본 주 전략가 기타노 이치, 메릴린치 일본증권 전략가 키쿠치 마사토 씨 등 3명의 일본 전문가들에게 '엘피다 사태'에 대해 물은 것이다.
'일장기 반도체'라고 불리어 온 엘피다 메모리의 경영 파탄.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각 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 엘피다 파산에 대한 ‘마카베 아키오’ 교수의 의견우선 정책으로 구제된 적이 있는, '일장기 반도체 메이커' 엘피다 메모리가 이번에 사실상 파산한 것은 많은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 시사점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일본 반도체 제조업체가 한국의 라이벌에게 지는 것 아닐까?’라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 제조업 전체의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고 단적으로 말할 생각은 없지만 아마도 상당한 분야에서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제조업을 둘러싸고, 근래 매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엔고현상이 계속되고 있고, 대지진의 영향으로 일시적이나마 공급망이 두절됐다. 또한, 법인세 부담 등 다양한 마이너스 요인이 있었다.
최근 중소 제조업체 경영자에게 상담을 받았다. 그 기업은 전형적인 제조업부문의 중소기업으로서 지금까지 주로 자동차관련부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부품제조와 관련해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던 부분도 있고, 일본 자동차산업의 발전에 호응해 사업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고수익을 자랑하는 우량 기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기점으로, 일본 자동차산업의 판매대상이 선진국에서 조금씩 신흥국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생산 거점이 국내가 아닌 해외로 정책이 바뀌면서 이 회사를 둘러싼 환경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한 예로, 자동차 메이커로부터 한국과 중국 등의 기업에서 할인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이유로, 부품가격 인하요청을 자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일본 자동차메이커조차, 한국이나 중국의 부품 업체에 주문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반대로 일본 중소기업에 대한 주문은 크게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자동차메이커의 경영자에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상담을 받은 중소기업경영자가 말한 상황과 현재 처해 있는 현실이 매우 가깝다는 것이다. 그에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꽤 우위에 있던 일본의 자동차메이커들이, 현재 한국 업체 등의 맹렬한 추격으로 마냥 안주(安住)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 부품조달에 대해서도 품질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 제작사가 어느 국적이든 간에 조금이라도 싼 부품을 사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반도체와 자동차뿐만 아니라 가전제품이나 IT 관련 업계에도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대기업 전기메이커 8개사 중 절반이 2012년 3월기에는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를 기록한 가장 큰 요인은 TV사업 적자이었다. 그 예로 40인치 평면 TV의 가격이 최근 4만 엔 이하로 살 수 있을 정도로 크게 하락, 1인치당 1,000엔으로 떨어졌다.
평면 TV 가격 하락의 배경에는 반도체 분야와 마찬가지로 주로 한국 등 제조업체의 추격이 있다. 한국기업의 기술추격은 당초 일본기업이 예상한 속도보다 훨씬 빠른 것 같다. 게다가 한국기업은 매우 과감한 경영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고액의 설비투자를 통한 효율적인 제품과 신기술개발을 이행 할 수 있는 체제를 정비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기업에 있어서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IT관련기업에 있던 기술자 한 사람은 "고객이 갖고 싶어 하는 제품을 싸게 만드는 기술은 이미 일본기업보다 한국과 중국기업에 더 나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또 그는 "일본기업은 기술력에서 경쟁사에 지지 않지만, 엔고와 무거운 법인세 부담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제조업의 기초가 되는 기술, 특히 고객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싸게 만드는 기술에서 일본이 점점 뒤쳐지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일본제조업의 중요한 포인트다. 일본의 산업 안에는 지금도 소재 및 핵심 부품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분야도 있다. 하지만 그 우위성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나는 '일본의 경제는 쇠퇴하는 길밖에 없다'는 지적에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일본기업이 아직까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가 많다. 또한 현재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는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인건비가 높은 선진국에서도 애플과 같이 IT관련 단말기를 만들어서 높은 수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도 있다. 일본기업들이 이러한 새로운 제품과 사업모델을 만들 수 있다면, 새로운 발전 경로가 보일 것이다. 그것에 기대를 하고 싶다.
◆ JP 모건증권 일본 주 전략가 ‘기타노 이치’
엘피다 메모리 경영파탄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 굳이 말한다면, 한국 원화의 저가전략의 수정이 드디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 언론은 ‘역사적인 엔고‘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실제로 각국의 물가로 조정한 실질, 실효 엔 환율은, 1973년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후에는 평균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2월말 시점에서 평균보다 0.7 %만큼만 엔화 약세일 뿐이다. 따라서 결코 '엔고'가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역사적인 원 약세'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2월말 시점에서 실질 실효 원화환율은 평균보다 30.3%나 싼 수준이다. 이 하나만으로 한국 수출기업들은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경험적인 관점에서도, 이론적인 관점에서도 일본 엔의 실질 실효 환율에 대해 평균회귀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매우 저렴한 한국 원화가 언젠가는 상승세로 돌아선다 하더라도 결코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계기'(한국 원화 약세의 종말)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엘피다 메모리의 파탄은 그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2007 년은 지금과는 정반대였다. 당시의 엔은 '역사적인 엔화약세'라고도 말 할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질 실효 엔 환율이 1973년 변동환율제 전환 후에 가장 최저가를 기록한 것은 2007년 6월이다. 그 당시는 평균보다 25.3%나 엔화 약세였다. 이러한 '전대미문'의 엔화약세를 배경으로 일본의 수출기업은 호조를 보였고, 반대로 한국 수출기업은 곤경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엔화약세가 계속 이어질 리 없었다.
'엔을 매수할만한 소식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이어진 가운데, '삼성,시련의 구조조정'이라는 기사가 신문에 실린 것은 2007년 7월 24일이었다. ‘한국 최대 재벌 삼성 그룹이 인력감축 등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핵심 삼성전자의 4 ~ 6월기의 영업이익이 5년 만에 1조원을 밑도는 등 수익성이 저하되어 왔기 때문이다. 수출액이 한국 전체의 20%를 넘는 삼성의 변화는 한국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 때 '삼성전자의 구조조정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면, '역사적인 엔화약세'의 종언이라고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본기업이 파산하면 곧바로 일본의 무언가에 대해 그 요인을 찾고 있지만, 그 요인이 항상 일본 측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특별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만 시선을 줄 것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또 다른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메릴린치 일본증권 전략가 키쿠치 마사토일본 유일의 D램 전문메이커인 엘피다의 회사구제법 신청은 예상보다 빨리 온 느낌이다. 원래 이 회사는 3월 15일 150억 엔의 회사채, 3월 30일 300 억 엔 및 4월 2일 767 억 엔의 신디케이트 대출 상환기한을 앞두고, 이에 대한 자금조달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일본 경제 산업성은 2009년, 엘피다를 개정판 산업 활력재생특별조치법(줄여서 ‘산활법’) '적용대상 1호'에 선정, 일본정책투자은행을 통해 기금을 모으고, 민간은행에 협조융자를 지원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다시 정부주도로 구제되지 않을까?’라는 견해가 있었다.
엘피다에게 불행했던 뉴스는, 제휴를 모색하던 업계 4위 미국 마이크론의 CEO가 사고사한 (점유율 3-4위들의 약자연합이라는 지적 있었지만)것과, 경제 산업성의 엘피다 구제법안 책임자 중 한 명이 회사주식 내부자거래로 적발돼 경제 산업성의 지원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다. 그리고 국유화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도쿄전력 문제에 대한 처리에 노력을 기울이던 당시 경제 산업성이, 엘피다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D램 업계 1-2위, 삼성전자, 하이닉스는 모두 한국기업이다. 엘피다의 도산은 일본기업이 한국기업에게 패배한 것처럼 보인다. 삼성은 D램뿐만 아니라 LCD TV와 스마트폰 등에서 일본기업을 능가하는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기술의 흉내’라는 비판을 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 발표한 OLED텔레비전에서는 일본기업이 따라잡지 못하는 기술력을 과시했다. 가전에서는 삼성뿐만 아니라 LG 역시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대자동차도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점유율을 급속하게 증가시키고 있다.
한국기업의 강점은 원화약세와 적극적인 TPP, 거국적인 기업지원, 법인세와 인건비, 에너지 비용의 저렴함, 느슨한 반독점, 경쟁력이 강한 기업에게 국가적인 경영자원의 집중, 그리고 일본의 기술을 활용한 CASH COW(한 마디로 말해서 많은 이익을 창출 할 수 있는 제품)제품에 집중투자, 신흥국가 브랜드전략 성공, 인재의 세계화 등에 있다.
한국기업이 강한 것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완제품 제조업체에 한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완제품제조업체의 비호 아래 전자 부품의 SEMCO와 자동차부품의 현대 Mobis 등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부품 업체도 있다. 또 다른 산업인 리튬이온배터리에서도 삼성SDI와 LG화학 등 한국업체가 2011년 중반에 일본기업의 점유율을 상회하여 세계 1위가 되었다.
환율이나 경제정책 등 개별기업으로서는 어쩔 수없는 부분도 있지만, 일본기업은 한국기업을 본받고, 선택의 집중과 업계재편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올해는 삼성 단 한 개 회사가 3조 엔의 설비투자를 할 것이라고 보도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규모가 작은 일본기업은 투자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한국은 소녀시대와 KARA 등 K-POP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한국을 대표할 수 있듯이, 소프트웨어 수출에 있어서도 일본을 능가하고 있다. 신흥국에서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노래와 드라마에 대해 동경하고, 이것이 한국 제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등 한국매니아들이 늘고 있다.
한국기업의 약진은 일본기업의 기술채용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국은 무역흑자를 내고 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무역적자, 즉 일본경제 전체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경쟁력을 크게 저하시킨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원은 엔화와 맥락을 달리하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에 대한 세계의 물가상승 압력이 가해지면 원화약세 일색의 정책에 대해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기업은 그 기회를 포착하여 한국에 대한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난 4월 27일, 엘피다 메모리는 도쿄증권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청원서를 접수한 도쿄 지방법원은 엘피다의 채권채무를 동결시켰고, 법정 관리인을 선임했다. 이미 도쿄증권거래소는 3월 28일, 엘피다를 상장 폐지키로 결정한 바 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특별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사건이 일어난 국가나 장소에만 시선을 둘 것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또 다른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 D램 전문 업체 엘피다 파탄은 일본은 물론 한국 역시도 일본의 모습을 통해 한국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반면교사의 계기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