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족쇄를 풀었다"
일본정부가 공개를 거부해온 1965년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의 일본 측 문서에 대해 일본법원이 일부 공개를 명령하는 판결을 내리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환한 미소로 이 같이 기쁨을 표현했다. 비록 1심에 지나지 않지만, 획기적인 판결임에는 분명했다.
이용수 할머니와 최봉태 변호사, 그리고 일본의 시민단체 '한일회담문서·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 인사들은 판결 후 법원 정문에 모여 '승소'라고 쓰인 푯말을 들어 보이며 환희를 감추지 않았다.
일본 도쿄지방재판소 민사 2부는 11일, 일본 외무성이 한일기본조약 관련 문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위법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인사 11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문서 비공개 결정처분 취소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 한일기본조약 문서 공개 판결 © JPNews | |
▲원고로 나선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최봉태 변호사 ©JPNews | |
일본 외무성은 그동안 '북한과의 협상 불이익', '독도문제 등에 관한 한국과의 협상 불이익', '타국과의 신뢰관계' 등을 이유로, 지금까지 공개한 6만여 페이지의 한일기본조약 관련 문서 가운데 25%에 해당하는 문서에 일부 먹칠을 하거나 완전히 비공개했다.
이에 원고 측은, 외무성이 4차~6차로 공개한 5만여 페이지, 1,600여 개 파일 가운데 비공개된 382개 파일의 공개를 청구했다.
이날, 재판부는 30년 이상 경과한 문서를 외무성이 비공개 처리하려면 "나라의 안보에 영향이 끼치는 경우"여야 한다며, "비공개를 선택했다면, 법적 보호에 상당하는 개연성을 가지고 그 주장과 근거에 대해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 외무성이 밝힌 북한, 한국과의 협상 불이익 등의 비공개 이유로 보기 어렵다고 보았다. 따라서, 재판부는 원고 측이 공개를 요구한 382개 비공개 파일 중 외무성의 입증 근거가 부족한 268개 파일에 대해 전면공개 또는 일부 공개 명령을 내렸다. 나머지 114개 파일은 비공개가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완전한 승소는 아니지만, 공개를 요구한 부분의 70% 이상에 해당하는, 의미있는 성과다.
특히, 재판부가 공개를 명령한 비공개 문서에는 독도나 위안부 문제 관련 내용도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일본 외무성이 '한국과의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며 비공개한 내용들이다. 이 문서들이 공개된다면, 앞으로 한일관계에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원고 측 변호단의 히가시자와 야스시 변호사는 "획기적인 첫 승소판결이다. 아직 문서가 공개돼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확정판결이 나서 문서가 공개된다면) 당시 협상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를 알 수 있어 앞으로 한일관계의 새로운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원고 11명 가운데 한국 측 대표인 최봉태 변호사도 승소판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50년 만에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한일 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앞으로의 과제는 겐바 고이치로 외상이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과 전면 공개한 문서를 자세히 검토해 양국 국민에 제대로 전하는 것"이라며, 종군 위안부 문제나 독도 문제 등 한일 간의 가로놓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됐다고 승소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나 외부성이 이번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를 결정하게 되면 문서 공개는 뒤로 미뤄진다. 또한, 항소심에서 이번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어 문서 공개까지는 신중하자는 분위기도 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단계에서는 (항소와 관련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일단 법원 판결의 내용을 정밀히 살핀 후 관계 각처와 면밀히 검토하겠다. 그런 후에 소송을 포함한 앞으로의 대응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