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일본6대일간지 ㅣ 정치 ㅣ 경제 ㅣ 사회 ㅣ 문화 ㅣ 연예 ㅣ 그라비아 ㅣ 스포츠 ㅣ 역사 ㅣ 인물 ㅣ 국제 ㅣ 뉴스포토 ㅣ 뉴스포토2 ㅣ 동영상 ㅣ 동영상2 ㅣ 독자 게시판
섹션이미지
일본6대일간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연예
그라비아
스포츠
역사
인물
국제
뉴스포토
뉴스포토2
동영상
동영상2
독자 게시판
회사소개
회원약관
개인정보취급방침
광고/제휴 안내
사업제휴 안내
소액투자
기사제보
HOME > 뉴스 > 문화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만화 원피스 작가, 완결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오다 에이치로, 올해만 건강 이상으로 두번 연재 중단
 
김미진 기자
전세계적으로 만화 '원피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발매된 최신 단행본(70권)도 발행부수 400만 부를 넘은 가운데, 이제 곧 3억 부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이는 전세계 만화업계에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런데, 원피스 작가 오다 에이치로의 건강 이상이 심상치 않다. 벌써 올해만 건강이상으로 두 번이나 연재를 중단했다. 본래 휴재를 안 하는 작가로 유명한 그였던 만큼, 그의 건강 이상에 우려를 나타내는 독자들이 많다.
 
원피스는 '드래곤볼', '유유백서', '슬램덩크' 등 전설적인 만화를 여러 편 연재한 일본의 인기 만화잡지 '주간소년점프'에서 연재 중이다. 그런데 3월 18일 호에 원피스 연재 중단 공지가 올라온 데 이어, 5월 23일 발매 호에서도 연재 중단 소식이 발표됐다. 모두 건강 이상 때문이었다.

▲ 오다 에이치로     ©JPNews
 

작가 본인도 원피스 공식사이트를 통해 연재 중단을 사과하는 글을 올렸다.
 
"제 불찰입니다. 아픔을 너무 참아서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다만, 지금도 치료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다음회에 드디어 새로운 전개가 펼쳐지는데 빨리 독자분들께 보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일본 제이케스트뉴스에 따르면, 오다는 2012년쯤부터 이미 건강에 대한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만화가 마츠모토 타이요와의 대담에서 "매주 19페이지를 그려내는 게 힘들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힘듭니다. 나는 육체적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페이스로 일을 지속하기 어려워졌어요. 그래도 이 기세랄까, 압박감이 풀어지면 재미도 반감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본래라면 매주 소화하는 양을 줄이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고민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2013년 들어서도 오다는 "(원피스의) 마지막 신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재밌어진다"고 말하면서 "마지막 장은 재밌어요. 길면 길수록 재미있는 라스트신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재미 면에서는 걱정 안 해요. 그런데 제 체력이 계속 버텨줄지가 유일한 걱정이네요"라고 말한 바 있다.
 
▲ 원피스 카니발. 주간소년점프의 표지를 장식한 '원피스' ©JPNews/야마모토 히로키
 

그의 이 같은 솔직한 고백에 많은 일본 독자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과연 원피스의 완결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만화 팬들로부터는 "역시 과로였어", "이번에는 정말 위험할지 몰라", "제대로 쉬어주면 좋은데. 안심해서 마지막까지 읽고 싶단말야", "그가 편히 쉬는게 작가, 독자 양쪽에 좋은 일이다" 등의 코멘트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 원피스는 '베르세르크', '더 파이팅'과 더불어 과연 완결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만화로 손꼽히고 있다. 
 
오다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매번 마감시간에 쫓길 때 생겨나는 기발함이나 초인적인 힘에 기대하게 돼요. 아슬아슬한 시간에 아이디어가 번뜩이거나 기세 있는 그림이 그려지는 경험이 계속 쌓이면서 그 순발력에 기대게 되는 거죠. 이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몸을 곤경에 빠뜨려야 돼요. 그 결과, 점점 괴로워지는 거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
 
휴식도 휴식이지만, 팬들을 위해서(?)라도 몸을 혹사시키는 그의 작화 스타일은 다소 바꿀 필요가 있어보인다.

 

ⓒ 일본이 보인다! 일본전문뉴스 JPNews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사입력: 2013/07/24 [09:50]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작품 진행이 왜 어려울까? 구조적인 문제이다 13/07/27 [20:36]
원피스가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힘든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는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는 비교적 명확히 답할 수 있는데 반해 무엇이 진리인지는 말하기 힘들다. 예컨대 한반도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열도 사람들이 칼을 들고 찾아오는 것은 명백히 진리가 아니다. 반면, 북한 사람들이 칼을 들고 찾아오는 것은 때로 진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한에 사는 난 주체사상 추종자일 수도 있으니까.

"수령님 만세~ 괴뢰정부를 타도시켜요!"

물론 꼭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언제나 빨갱이를 때려잡아야 한다고 외치는 보수 우익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빨갱이 탄압의 대표주자 - 전두환 장군님께서 칼을 들고 광주에 방문하시는 것은 진리일까? 때로 진리가 될 수 있고, 때로 진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대한민국의 광주에 살고 있다면 사상에 관계 없이 전두환은 진리가 아닐 가능성이 큰 것이다. 가족, 혹은 지인들이 광주학살의 희생자일 수도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80년대 눈 부신 한강의 기적을 이뤄주신 전두환 장군님을 지지하는 편에 설 수도 있어요~ 오공 만세!

... 이처럼 우리는 문제가 제기되는 틀에 맞추어 자신을 분별함으로써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 답하기 쉽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드래곤볼이 대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예쁘고 깜찍한 여자애가 드래곤볼을 모아 소원을 이루겠다는데, 방해하는 털이 숭숭 난 남자 어른은 악당일 가능성이 크다. 비록 손오공이 이후 수련을 거쳐 앞서 물리친 악당보다 크고 강해졌다 하더라도 때로 지구를 방문하는 외계인이 손오공보다 세기만 하다면 악당일 가능성이 크다. 고로 방문자를 물리치는 것은 진리인 것이다. 베지터가 그랬고, 프리저가 그랬다. 인식의 지평선을 넘어 이곳을 방문하는 자들은 보통, 원주민보다 능력이 좋다. 그래서 방종한다. 방종하는 자들은 늘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이곳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우리가 보려던 진리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말할 수 없어도, 최소한 저 악당만큼은 제거해야 본래의 시야를 회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조선의 독립이 정당성을 인정받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 것이다. 그러나, 그 틀이란 무엇인가? 애시당초 진리가 무엇인지 말한 적 없다면 기껏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틀에 의지하여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 확언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겠는가? 같은 문제가 전일보에게도 따랐다. 챔피언에게 한 번 패했지만 멋지게 재기하여 챔피언 벨트를 따낸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답을 내놓을 순 없었다. 그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사라질 뿐이었다.

"챔피언을 이겼습니다. 하지만 아직 진짜 강하다는 것을 모르겠습니다. 과연 진짜 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젠장,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국내 챔피언을 따냈으니 이제 세계 챔피언을 따면 되겠지. 하지만 만일 세계 챔피언을 이긴 뒤에도 같은 문제가 남아있으면 어떡하지? 우리는 아직, 지구에서 열리는 복싱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도전장을 들고 찾아오는 외계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반면 손오공이 사는 동네는 달랐던 것이다. 암만 평화롭게 살고 싶어도 늘 이상한 애(?)들이 세계정복을 부르짖으며 찾아왔기에 그들과 맞서 싸우는 동안 전투력의 거품이 일어났다. 결국 전일보와 같은 질문을 던질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프리저나 마인부우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을지 몰라. 하지만 그들이 내미는 전제조건은 언제나 세계정복이었다. 그래서 아빠 손오공부터 초사이어인이 돼야 했고, 아들의 아들대에 와선 초초초 슈퍼 사이어인이 탄생했다. 심지어는 저승에 가서도 손오공은 수련을 계속하더라. 만화 드래곤볼과 더파이팅의 세계관이 다른 까닭이다.
전일보는 기껏해야 세계 챔피언까지 따고 나면 그만이지만 손오공 집안은 늘 자신보다 강한 외적의 방문을 염두에 둬야 한다. 평화로운 이 세계란 외적을 물리친 뒤 티 없이 맑아진 이곳 - 인식의 지평선을 중심으로 설정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화가 그려지는 동안에 이 세계 인식의 지평선은 결코 수축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외적의 침입을 받을 때로 한정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평화롭다고 믿고 있던 세계가 사실은 잘못된 가정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가정을 받아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금 이 외계인의 침입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문명 자체가 붕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면 어떡할까? 손오공이 외계인과 맞서 싸울 명분도 적지 않이 사라지지 않겠는가? 그러니 어서 보다 발전된 문명의 기술력에 의지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이 미개인들아. 이완용 만세! 아차차, 지금 일본 얘길 하고 있었지. 아무튼 기술문명의 폐해를 알고 있는 우리로선 캡슐 코퍼레이션의 지휘에 맞춰 컨베이어 벨트처럼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인간 세계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단 말야. 때로 지구를 방문하는 외계인을 물리쳐주는 것만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물론 일본 자신은 지난 60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세계의 인식이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의 차이이다. 한반도에서 열도를 보면 끝이 보이지. 하지만 열도에서 한반도 쪽을 보면 분명 지평선이 열려 있단 말씀이야? 그래서 전통적인 일본인의 세계관을 그려내는 듯한 드래곤볼에는, 실존적인 삶의 문제를 고뇌해야 하는 더파이팅에서와 같은 명백한 목표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목표가 정해지는 순간 인식의 지평선 너머 뿐만 아니라 그 안쪽을 정의하고 있는 자신의 한계 또한 명백히 정의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자신이 몸 담은 세계의 필멸을 예고한다. 때문에 양차세계대전의 원인을 놓고 섬나라 정신 운운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원인은 그리 간단치 않은 것 같다. 영국도 섬나라지만 주변과 어울리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혹, 중국이 사용하는 문자와 관련있는 건 아닐까? 그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지 못하는 것 또한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세계를 인식의 지평선 너머에 제물로 바치게 된다는 점에서 위험하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든 더파이팅의 연재가 힘든 것은 이 때문이다. 즉, 이 만화가 아무리 실존을 모방하고 있어도 전일보가 세계 챔피언을 따낸 뒤에는 더 이상 연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지. 현실에서의 삶은 계속될 텐데 말이야? 그렇다고 작가가 독자들의 성화를 이기고 이대로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국내 챔피언을 따기까지의 과정이 무척 흥미로왔으니까. 그런데 만일 세계 챔피언에 등극하고도 전일보가 같은 질문을 또 던지면 어떻게 할까?

"빌어먹을, 난 아직 진짜 강하다는 걸 모르겠단 말야, 이 작가 x끼야!!!"

그래서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 의지하여 이곳의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연재에 지연이 찾아오는 것이다. 물론 작품이 완성되는 시점에 작가가 노벨만화상을 탄다거나 해리포터 시리즈와 같은 대박이 예고되어 있다면 그 뒤에 찾아올 작품의 실존적 고뇌는 뒤로 한 채 재빨리, 아직 태어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생아를 출산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일본이 정말로 노벨상을 많이 탔다고 해서, 혹은 대박을 친 만화작품이 많다고 해서 인간의 실존적 고뇌에 접근할 자격, 혹은 대답할 권리가 보다 많이 부여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이 세계가 정점으로 하고 있는 열려진 인식의 지평선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에만 찾아오는 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던 삶 그 자체는 잘못된 가정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로 감당이 안 될 만큼 두렵고 힘에 겨운 존재일 수 있겠지. 아직 누구도 말한 적 없고, 누구도 상대한 적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 만화를 계속 그려나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기고 강해져야만 하는 걸? 아마도 그렇게 열린 인식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지존과도 같은 천황의 존재였을 것이다. 아무튼 악당들은 늘 바다를 건너 찾아왔으니까.

문제는, 정말로 이 세계가 열려 있다면 존재의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꼬리 달린 원숭이에 불과했던 귀여운 꼬마 손오공이 나중에 어떤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변했는지 회상해 보자. 이거 원 괴물 같은 모습 아닌가! 방문하는 모든 악당들을 물리치고 진화한 결과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는가? 원작에서는 손오공과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은하 제일의 전사 브로기(맞나?)를 물리치고 손씨 가문이 은하 제일의 영웅이 됐다는 걸로 얼추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사실, 은하 자체도 열려 있지 않은가? 왜 작가는 안드로메다 은하계 최고 짱의 방문은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거기까지는 상상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도 너무하잖아! 천하제일 손오공의 판도가 고작 우리은하로 제한되다니 말이야. 우주에 은하계가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 적어도 '우리 은하단' 최고의 영웅은 돼야 할 것 아니야~~ 머리카락이 더 길어지고 번쩍번쩍 빛이 나고 근육질 덩어리가 되는 것 말고, 초초초초초 슈퍼슈퍼슈퍼 사이어인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천황이 여호와에게 밀린 것이다. 여호와는 우주 최고 짱으로 정의됐는데 반해 천황을 모시던 자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몰랐거든. 결국 천황의 신통력은 암만 세야 지구 안으로(사실은 열도 안이었지만) 제한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나중에 여호와를 정의했던 자들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 밝혀졌지만, 아무튼 우리는 여기에서 만일 상상력도 인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면 가장 명백한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가장 넓은 인식의 지평선이 필요하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진리를 당장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무한대(∞) 기호의 사용법을 알고 있으니까. 일단 여호와의 한계는 ∞ 라고 정의한 뒤 이 자리를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천황은? 어차피 여호와는 태초부터 우주 짱으로 정의된 존재였지만 같은 정의방법을 열도에 사는 사람들은 사용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바다를 건너 도전하는 자들은 천황의 권위를 무시하기 일쑤였거든. 그래서 증명해야만 했다. 곳곳에 신사를 세우고 위엄을 거룩히 했다. 그러나 증명을 시도하는 순간 자기 스스로의 한계 또한 증명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곳에서 충돌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그 너머에선 아직 이곳 인식의 정의가 통용되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앞서도 언급했듯 인식의 지평선에 한계를 두는 순간 자기 스스로 죽을 자리를 예고하는 셈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식이 더 이상 수축할 수 없다면 반드시 확장되어야만 한다.
솔직히 맞는 말 아닌가? 만일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도 천황의 권위를 인정했다면 하나의 질서에 따랐을 것이고, 현해탄에 평화가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했고, 충돌이 있었고, 결국 열도 사람들은 자기 토템의 한계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천황은 원폭이 떨어진 뒤에야 스스로 신이 아님을 드러냈다. 열도를 중심으로 밖을 향해 뻗어나가던 인식의 지평선에 수축이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토템이 인간으로 전락한 이후에도 열도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여전히 열려 있었고, 이 또한 실존의 문제였다. 만일 인식이 기반을 잃은 상태에서 두 개의 실존이 충돌한다면 어떤 길을 따르겠는가? 일본은 바로 그 수축하는 인식의 지평선을 따라 지난 60년 동안 인식의 지평선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들이 골머리를 앓았던 게 이 때문이다.

보통은 전쟁에서 패하면 남자들은 싹 다 죽고 여자들은 노예로 끌려가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일본은 그 반대였다네. 대체 무슨 조화였을까? 일본은 이러한, 자기들이 직면한 이 말도 안 되는 모순에 직면하여 우회경로로 답하기 위해 해적 검은수염단과 세계정부의 충돌을 준비했다고 보여지며, 만화 원피스 자체가 그 이야기의 구조상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도전정신만은 높이 사고 싶다. 하지만 무리가 아니었을까? 예컨대 드래곤볼에선, 주인공의 무한대로 높아지는 전투력을 통제하기 위해 소원을 들어주는 신룡을 준비했다. 제 아무리 응전을 통해 강해진 영웅이라 할지라도 때로 죽는 법이기 때문이다. 망자를 소환하기 위해선 반드시 초월적인 매개물이 필요하다. 이것은 인식의 지평선을 세상 끝까지 밀어붙인 영웅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이 세계의 균형을 파괴시키지 않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전투력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초월적인 매개물을 파괴시키는 데에는 전투력만으로도 충분하지만 - '신'을 죽이면 된다 - 그것은 보통 악당들의 몫이다. 이곳을 지키는 자들은 신성한 토템을 존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 후반부로 갈수록 이 초월적인 힘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손오공의 후대가 강해지는 바람에 배경과 투사체의 지위가 바뀌긴 하지만, 적어도 손씨 가문이 은하 제일의 영웅 브로기를 물리칠 때까지는 죽은 손오공의 신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전투력에 거품이 일어난 이후를 한낱 에피소드로 치부할 수만 있다면 이 만화는 오락물로서 훌륭하다.
그런데 만일, 그들의 전투력이 무한대로 강해져 한낱 손짓만으로도 은하계 일부를 파괴할 정도가 되면 그 때부턴 무슨 문제가 발생할까? 더 이상 손오공이 지구의 수호신이고 뭐고를 따질 때가 아니다. 이곳에 사는 시민들조차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한단 말이야! 비슷한 예로서, 만일 슈퍼맨이 숨 한 번 쉴 때마다 지구 한쪽이 떨어져 나간다면 계속 히어로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 대저 제국주의자들이 깽판칠 때 그랬던 것이다. 그 엄청나게 넓어진 인식의 지평선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실존적 고뇌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세계가 정점으로 삼고 있던 열려진 인식의 지평선이 산산이 부서지는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사실 외계인은 무력으로 도전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아직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잘못된 가정에 기반하여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설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부는 못하고 과학기술은 전부 와이프에게 떠넘긴 손오공이 이러한 실존적 문제와 마주했을 때 과연 어떠한 대답을 내리겠는가? 계속 이 세계의 문명을 유지시키는 편에 설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서구 제국주의자 친구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천황은 매우 바람직한 존재였던 것이다. 여호와가 천황에게 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조선인 입장에선 아직까지 찬성할 수 없겠지. 그 대답해야 할 목을 여러분께서 잘라 주셨으니까 말이야. 아무튼 다음 외계인의 방문이 계획되기 전까지는 드래곤볼의 다음 편도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더파이팅에서도 폭주를 막기 위한 조치를 준비했다. 만일 전일보가 한낱 허영심이나 채우기 위해 챔피언 벨트를 쫓는 바보였다면 나는 이 만화에 그리 감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진짜 강하다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었고, 이것은 자신이 그 강함의 길을 통해 약점을 보강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넘을 수 없는 벽이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에 던져질 수 있었다. 항상 왕따를 당하는 자신이 싫어 권투를 배웠고, 덕분에 친구를 사귀었으며, 맞고 사는 현실을 딛고 일어나 가난한 홀어머니를 봉양할 틀을 세웠다. 공감하기에 충분치 아니한가? 그런데 만일 더파이팅의 연재가 이어진다면 작가는 어떻게 전일보의 내면세계를 운용할 심산인지 궁금하다. 이미 국내 챔피언이라는 충분한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세계 챔피언에 도달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법이다. 내면의 구도심이 처음과 같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마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약점을 찾으려면 우선 자신의 시야부터 넓혀야 하는데, 그 넓어지는 시야가 부숴지는 인식의 지평선을 넘어 들어오지 않고는 온전히 자기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처음 챔피언에 도전할 당시 그랬다. 시야가 좁았기에 자기 자신의 눈에 발목이 잡혀버린 것이다. 결국 처참히 깨졌다. 대신 시야를 얻었다. 이를 활용해 다음 도전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물론 신인왕전에 도달하기는 훨씬 쉬웠다. 친구들이 지렁이 냄새가 난다며 몇 대씩 쥐어박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벌써 국내 챔피언이다. 넘어야 할 벽의 크기부터가 다르다. 관객의 기대도 달라져 있다. 과연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는 길을, 드래곤볼에서와 같이 후일의 에피소드 정도로 치부하여 그릴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이미 실패한 작품이다. 더파이팅은 단순한 오락만화가 아닌, 실존적 고뇌를 담은 작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세계 챔피언이 물어왔을 때 손오공을 대신하여 답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

그런데 원피스는, 위 두 가지 예에 비추어 보았을 때 태생적으로 중요한 구조적인 결함을 몇 가지 안고 있다. 먼저 이 만화에선 주인공이 어떻게 거기까지 도달할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배를 타고 섬을 건너, 앞을 가로막는 파도를 이기고 목적지까지 도달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해적왕이라는 타이틀을 따는 것으로 최종 우승이란 설정이다. 고로 이 만화는 결정론적으로 보았을 때 더파이팅과 같이 닫혀있는 인식의 구조를 지향한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내면의 운용을 통해 승부를 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초반까지는 그런 인상이 강했다. 각각의 주인공들이 아픈 사연을 갖고 있고, 그로부터 파생된 목표를 향해 위대한 항로에 도전한다. 멋지지 않은가? 어딘지 전일보의 챔피언 로드와 닮아 있다. 문제는 [ 복싱데뷔 -> 신인왕전 -> 랭킹 상승 -> 챔피언 도전 -> 챔피언 ] 이라는 정해진 수순을 밟아나가면 되는 더파이팅과는 달리, 원피스는 닫혀있는 최종목표를 향해 열려있는 경로를 운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항해가 계속될수록 드래곤볼에서와 마찬가지로 열려진 인식의 지평선을 넘어 들어오는 적들을 끊임없이 맞상대해야 한다. 당연히 회가 거듭될수록 주인공의 전투력에도 폭주가 일어나겠지. 그런데, 목표가 무엇인데?
쉽게 답할 수 없다. 만화 드래곤볼에선 이 평온한 세계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비록 그것이 열도에서 대륙을 관찰하던 시절부터의 습성이었는지는 몰라도, 일단 칼을 빼들고 바다를 건너길 시도하는 자들은 악당일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그래서 최후에는 원자폭탄을 안고 넘어올 자들까지 상정하여 힘을 길러두어야 한다. 거기까지는 좋단 말야. 문제는 원피스에서 항해를 시도하는 쪽은 루피와 그 일행이지, 지평선 너머에서 그들을 먼저 초대한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붉은머리 해적의 초청으로 어린 루피의 마음에 해적의 꿈이 자라긴 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악당들의 응전을 불러 일으키며 이 난리통 위에 난리를 더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다들 내면의 고민만을 안고 있지, 그 목적지에서 자신이 찾게 될 해답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말이야.

뭐, 시대적인 배경이 대해적시대이고, 해적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한 이상 쓸데없는 질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이미 결정되어 있단 말야. 이 치명적인 사실이 작가에게, 배가 목적지를 향해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이상 그들의 내면세계에 개입할 명분을 주지 않는다. 예컨대 더파이팅에선 전일보가 도전하다 쓰러졌을 때 작가의 개입이 빛났다. 가난이라는 멍에가 챔피언 도전을 방해할 때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그런데 당시 전일보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까지 내면의 드러남이 있었던 것이다. 그 소통이, 인물들 사이에 외부로 드러난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반면 원피스에는 이미 해적왕이라는 고정된 목적과 함께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배를 움직여야만 한다. 오직 그 길을 통해서만 자아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고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다.
중요한 예외가 있는데, 워터세븐에서 고잉메리호가 해체 판정을 받을 당시 선장 루피와 캡틴 우솝이 빚었던 갈등이다. 나는 이 편을 꽤 재미있게 봤는데,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각각의 인간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한 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항해의 방법에 대한 이견이었을 뿐, 항해 자체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물론 당시의 갈등이 조직원이 될지, 안 될지 결정 안 된 미스테리한 여자 니코 로빈의 독단적인 행동과도 관계가 깊다는 점에서 달리 해석될 여지는 남아있을 것이다. 즉, 훗날의 더 큰 갈등 해결을 목표로 현재 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지. 작가는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원천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개입이 불가능한 인물들 사이의 내면에 개입할 우회로를 찾는 듯 보인다. 실제로 만화에선 이 지점에서 루피와 우솝의 관계가 끊어졌다가, 뒤에 밀짚모자 해적단과 로빈의 갈등이 해소되는 시점에 함께 복구됨으로서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그런데 이게 결국은 빚이 아니냐? 미래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어지는 행복한 결론을 바탕으로 현재의 갈등을 정당화시키는 구조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발판으로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오늘의 빚으로 내일의 행복을 담보하는 현대자본주의 논리와도 유사해 보인다. 최종적인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보다 행복한 결론을 약속하며 현재의 갈등을 부추긴다. 그렇지 않고는 현재의 이 빵덩어리를 어떻게 나눌지 모르겠으니까. 그렇게 부추겨진 갈등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전체 이야기 속 구조상 중간 지점으로 미루어지며 훗날 갚아야 할 빚의 크기만 늘려놓는다. 만일 선대의 본보기가 옳다면 최종적인 지점에서 루피가 갚아야 할 빚의 형태도 결정되어 있겠지. 젠장, 뭐 이런 구조가 다 있어? 하지만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 핵전쟁으로 망하든, 통화전쟁으로 망하든 뭔 상관이랴? 어쩌면 이 지속불가능한 개발의 파괴력만이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대해적시대를 끝낼 유일한 해법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야기까지 그렇게 진행시키면 되겠냐?
한편으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만화가 최종적인 목표를 잘못 잡고 있던 건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해적왕'이라는 목표 자체가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항해의 목적이 무엇이냐? 해적왕이 되기 위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해적왕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하지 않은 채 배를 출발시킨다. 그것은 오직 선대해적 골드 로저가 목베임을 당할 때 드러난 개념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만화 속 해적들에게나 통용되는 칭호이기에 밖에서 관찰하는 독자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작품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분명 더파이팅과 같은 유형의 결론이 예상되어지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결정론적으로도 작가에게 주인공의 폭주를 억누를 방법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니, 도리어 부추긴다!
수정 삭제
너무 길었나? 에헷~~ ^^ 13/08/01 [03:35]
작가가 현실에 대한 모방자에 그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투영시키려는 세계에 이미 자신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무엇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의 여부가 분명치 않다면 무슨 수로 외곽선을 그려내겠는가? 그래서 '해적왕'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개념을 작품의 최외곽선으로 설정한 작가의 사고방식 또한 완전히 열려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인식의 지평선이 열려있다는 발상과 지평선이 아예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예컨대 드래곤볼에선 초월적인 신룡의 존재가 주인공의 폭주를 억누를 매개물로 사용된다. 그럼에도 인식의 시작점에서부터 함께 해왔기에 친근하다. 논리나 수행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 지점에 지평선 안쪽에서 채워지지 못할 마음을 묻어두는 것이다. 덕분에 전투력으로만 똘똘 뭉친 듯한 주인공의 세계가 완전해진다. 드래곤볼의 세계관이 하늘을 향해 뚫려 있는 인식이 아닌, 양끝이 매듭지어진 생각으로 남을 수 있는 까닭이다.
반면 원피스에서 '해적왕'은 갇혀있는 생각을 바수고 본연의 인식을 회복하기 위한 매개물로 사용된 듯 보인다. 바로 그것으로 인하여 이 세상이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불완전해진다. 이 불완전성이야말로 숨 막힐 듯 갑갑한 현실세계의 틀을 부정하기 위한 실마리인 셈이다. 그런데 만일 이 불완전한 세상이 깨진 뒤에 단 하나의 받침도 안 남아있다면 작가는 어디에 기거할 생각인가? 이것이 닫힌 세상을 부정하고 인식의 회복을 주창하는 듯한 이 만화가 불안해보이는 까닭이다. 주인공과 함께 인식의 폭주를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만화에서 작가는 '해적왕'이라고 하는 이야기 속 최종 외곽물, 즉 인식의 한계점을 명백히 설정해두지 않음으로써 때로 작품 안쪽에, 때로 바깥에 기거하는 위험한 줄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스릴 넘치는 행위야말로 작품 초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전례를 찾아보면 이미 밀짚모자 해적단의 항해사가 될지, 안 될지 결정 안 된 미스테리한 해적 나미짱 구출작전 때 같은 방법이 사용된 예가 있다. 해소된 갈등의 크기는 뒤의 로빈짱 구출작전 때보다 작았지만 상어 아가리를 쥐어박고 멋지게 매듭지을 수 있었다. 이 때 해결된 빚의 형태는 어설픈 밀집모자 해적단의 전력을 보강하는 데 사용됐다. 덕분에 사라져가는 주변부에 대한 기억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추억은 주인공을 전송하는 바람이 되어, 바람은 항해의 뒤를 받쳐주는 순풍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대략 다섯 내지 여섯의 핵심 멤버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접착제가 주변부와 끈끈한 인과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야기의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한 구조로 변해간다. 왜 그랬을까?

간단한 이치이다. 종이에 점 다섯 개를 찍어놓고 그릴 수 있는 선분을 전부 그려 보라. 많아봤자 십 수 개 아닌가? 반면, 뒤로 가면서 최종적인 해결책을 담보로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던 때를 살펴보자. 대략 에이스 구출작전을 전후한 때가 되겠군. 강해진 주인공의 위상에 맞추어 악당들의 능력치 또한 마구 올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이야기가 재미 없어지니까. 그리고 이번엔 종이에 점 열 개를 찍어놓고 그릴 수 있는 선분을 전부 그려보는 것이다. 점이 다섯 개일 때보다 선분의 갯수도 두 배 늘어나나? 아니다. 점이 하나 추가될 때마다 도형 위에 그려지는 선분의 갯수는 급증한다. 열려있는 인식의 지평선이 존재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까닭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종반을 향해 치달아가는데 반해 전체 이야기 구조를 결정지을 분자들의 갯수 또한 늘어나면서 관계의 복잡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중반을 지나며 초기의 구도심은 잃어나가고, 벌써 핵심 멤버들의 빛을 받쳐줄 주변의 배경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저 해적 이야기답게 빠른 액션과 흥미 위주로 줄거리를 전개시켜 나갈 뿐, 그에 반비례하여 주인공들의 내면은 애시당초 시작했던 항해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는 데, 혹은 상기하는 데에만 사용될 뿐이다. 더구나 이야기가 이 세계 난리의 근원을 파헤치는 쪽으로 움직이면서 주인공들은 하지 말아야 될 고민까지 하고 있는 판이다.

물론 이 만화를 통해 전후 일본인들이 겪어야 했던 트라우마와 고민을 십분 이해한 건 사실이지만, 이래서는 감동적인 챔피언 로드를 독자들에게 안길 수 없어! 지금 드라마 찍냐? 아직도 대동아공영권 한 방으로 세계를 평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 초기조건에선 간단한 문제였겠지. 히틀러의 게르만 순종주의나 칼뱅의 자본주의 맹신론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 미국이나 중국을 보라고. 점점 늘어나는 복잡도를 어떻게 해결할 건데? 오~ 경제? 그럼 경제성장 다 끝나고 나면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데?
만일 여호와에 대한 증명 또한 천황처럼 하려고 했다간 그들 자신이 증명한 바와 같이 이 세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구조적인 문제를 드래곤볼에서와 같이 점점 강해지는 주인공의 위상을 빌어 해결하려는 듯 보인다. 말도 안 되는 괴물 같은 능력자를 등장시켜서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인식의 구조는, 드래곤볼에서 생각의 매듭을 지은 인식의 구조와 정반대 방향을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는 인식의 탈출은 커녕 생각의 번잡도만 늘어날 뿐이다. 하면, 왜 이런 삽질이 필요했을까?

그것은 본래 작가가 이야기를 시작하려던 지점이, 밀짚모자가 통에서 튀어나온 시점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해적 이야기의 속성상 루피를 중심으로 위아래로 뻗어있는 조직도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는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갈 수 없다. 만일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추동력이 단순히 고무인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과거를 관통하여 현재 세계정부에 속했는지, 안 속했는지 모를 할아버지 덕분에 한 가계를 형성하고 있는 루피와 에이스, 그리고 대략 이들을 정점으로 하는 아버지 사이, 가계 사이, 나아가 주변 인물들까지 아우르는 통제된 세계 및 해적세계 사이의 갈등구조까지 확장시켜 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때 점점 늘어나는 이야기의 구조적 중압감이 본래의 흐름을 방해하는 일종의 시간지연 현상마저 발생한다. 에이스가 동생 앞에서 꼬장 부리다가 죽을 때 원피스를 그만보자고 결심했던 건 단순히 너무나도 일본적인 감상이 그곳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이 만화가 본질적으로 오락성을 지향하는 한 더파이팅에서와 같은 내면적인 고찰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루피가 최종지점 - 즉, 해적왕 - 에 도달하기 직전에 도달하게 될 중간 기착지가 최소한 하나는 있을 거라고. 바로 그 지점에서 작가는 무슨 수로 주인공의 폭주를,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할 생각이지? 그 때는 더 이상 빚을 미룰 공간이 안 남아있을 텐데. 에이스처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일 거야? 아마도 작가가, 애초 구상과는 달리 원피스를 그리기 힘들어하는 이유가 있다면 간과하고 넘어온 이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이 호쾌한 액션으로 끝날지의 여부는, 전일보가 세계 챔피언을 딸지 못딸지가 중요한 일이 아닌 것처럼 조금도 대수로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 다음 회에서 완벽한 결론이 나와야 한다고. 그런데 그 해적왕 타이틀이 그토록 가치있는 무엇이냐? 모든 빚을 안고 떨어질 정도로 말이야. 매번 신나는 이야기가 반복되지만 원피스 속 세계관이 그토록 불안정한 까닭이다.

물론 보다 폭발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예컨대 최종병기 플루톤이나 포세이돈 따위를 사용하면 이야기 속 시간 흐름을 지연시키는 구조적인 중압감을 한순간에 떨쳐버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해법이 아니다. 열려있는 인식의 지평선을 바탕으로 한 해적 이야기의 속성상 반복적으로 도달하게 될 필연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이 만화의 줄거리가 그렇게 흘러간다면, 나는 조선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어째서 환쟁이라 불렸는지 상기하게 될지 모른다.
드래곤볼에선 앉아서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만 하면 됐기에 외적의 등장을 에피소드로 치부할 수 있었다. 그러고도 이곳, 인식의 지평선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부심 덕분에 내면의 평화 또한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원피스에서 항해 때 만난 적을 그런 식으로 치부했다간 응당 자신에게 떨어질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적으로부터 응전을 불러 일으킨 주체가 바로 이 항해를 시도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왜 항해를 계속해야만 하는 거지? 가난한 전일보처럼 언제든지 포기할 수도 있는데 말이야. 매번 기착지를 이동할 때마다 실존적인 고뇌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에 짓눌린 이 흐름이 자아를 향해 질문을 던질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 항해의 목적과 수단이 결정되어 있기에 고뇌는 오직 다음에 찾아올 갈등구조의 해결을 목표로 정당화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세계가 위기에 빠진 까닭이다. 그렇다고 손씨 집안이 한 번 꺾이어 버린 마당에 신룡에게 소원을 빌던 시절로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겠지. 결국 우리는 이론상 최종적으로 예언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럼 남은 길은 무엇인가?

사실 우리는 이 작품이 이와 같은 이야기의 형태를 띄고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 봐야 한다. 원피스는,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를 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리인지 말하고자 시도된 듯 보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 진리를 말할 수만 있다면 지상 최대의 해적이라 할지라도 존재의 당위성이 인정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항해를 위해 한 발짝 움직이는 동안 그 이전까지 획득했던 인식의 지평선이 무효가 되는 까닭은, 바로 이곳에 있는 나 자신의 움직임으로 인하여 인식의 지평선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평선의 중심이 새로 설정되거든. 그리고 이것은 작품 내에서 주인공이 도달 가능한 인식의 최외곽선과 호응하여 이야기 전체를 예측할 수 없는 지점으로 이끌어간다. 이것이 '예측 못할 긴장감'을 낳을지, 아니면 '정말로 예측 안 될 혼동'만을 독자들에게 안길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서 후자 쪽에 걸고 싶다. 작가의 역량이 의심스러워!
음~~ 그건 그렇다 치고, 일본 너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맞지? 사실 한반도에서 수성하면서 주변 4강대국을 욕하긴 쉽다. 보통은 우리가 무척 약했기 때문에 쳐들어오는 자들에 맞서 자아만 유지하고 있으면 됐거든.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고, 일본놈 잊지 말고... 중국은 뭐더라? 아무튼 이 땅에서 지난 4천 년을 버텨왔던 까닭이, 지난 4천 년 동안 위기를 맞았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존재의 위기는 늘 있어왔던 것이다. 그 마지막 점에서 괴물 같은 능력자를 만났고, 덕분에 우리는 쪼개졌고,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 말하기에는 매우 유용한 위치를 점했다. 하지만 우리 역시 그 뿐이다. 무엇이 진리인지 말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니까 신사참배 하고 싶으면 해. 소년탐정 김전일 말마따나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최후의 최후까지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를 답해 보란 말야. 그 나머지 지점에서 떨어질 그것이 정답일 테니까.

지금으로선 열려있는 인식의 지평선이 깨지는 순간 답이 찾아온다는 가정이, 그 자체로 하나의 틀을 이루고 있다는 가정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듯 보인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의해 다시 이곳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리고 앞서 우리는, 문제가 제기되는 틀에 맞추어 자신을 분별함으로써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 답하기 쉽다는 사실을 발견한 바 있다. 오직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 그리고 아직 난 무엇이 진리인지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중에 원피스의 결론을 보고 마음에 들면 재시청을 검토하도록 하지. 쀍! 수정 삭제
.. ... 13/08/28 [21:16]
누군가 읽어줄 것을 기대한것 자체가 오류인데... 정말길다... 스크롤의 압박. 수정 삭제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관련기사목록
최근 인기기사
일본관련정보 A to Z
  회사소개회원약관개인정보취급방침 ㅣ 광고/제휴 안내사업제휴 안내소액투자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한국> 주식회사 올제팬 서울 송파구 오금로 87 잠실 리시온 오피스텔 1424호 Tel: 070-8829-9907 Fax: 02-735-9905
<일본> (株) 文化空間 / (株) ジャポン 〒169-0072 東京都新宿区大久保 3-10-1 B1032号 
Tel: 81-3-6278-9905 Fax: 81-3-5272-0311 Mobile: 070-5519-9904
Copyright ⓒ JP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info@jpnews.k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