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추리소설이 인기를 끈 것은 약 3, 4년 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추리물은 아니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국내 독자들이 일본 대중문학, 엔터테인먼트소설에 흥미를 느꼈고,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과 기리노 나쓰오의 <아임 소리 마마> 등 추리, 범죄소설들도 함께 인기를 끌었다.
최근 일본 대중소설은 매달 수 십 여권이 출간될 정도로 풍성해졌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등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작가들은 각각 번역본만 30여 편에 이를 정도다.
일본 대중소설이 성황을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엄청나게 다양한 소재와 치열한 문제의식은 읽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실감하게 해 준다.
미야베 미유키는 신용불량, 부동산 투기, 세대 간의 갈등 등 사회적인 문제에서 출발하는 범죄를 전면에 놓고, 사건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간다. 온다 리쿠는 어느 학교에나 존재하는 괴담, 기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특별한 가문, 하이틴 로맨스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질투와 동경 등 '그럴 듯한 이야기'로 독자를 매혹시킨다.
<음양사> <샤바케> <도시전설 세피아> 등 수많은 요괴들의 이야기나 도시 곳곳에 존재하는 괴담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부터 <남쪽으로 튀어> <4teen> 등 우리들의 일상에 존재하는 구체적이면서도 예리한 사건들까지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의 모든 영역을 진지하면서도 치밀하게 파고들어간다.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쓰는 일본 작가들은, 독자가 즐거워하는 작품을 쓴다는 자의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독자가 만족할만한 작품을 높은 완성도로 만들어내는 것이 최우선이다. 일본의 작가들은 엄청난 자료 조사와 엄청난 성실성으로 끊임없이 작품을 써 내고 있다. 그들은 위대한 예술가 이전에 탁월한 장인이고, 압도적인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낸 세련된 문화상품이 지금 한국 독자를 유혹하는 것이다.
일본 대중소설 중에서 가장 왕성하게 출간되는 장르는 역시 추리, 범죄소설이다. 일본 추리소설에 빠져들고 싶다면, 최근 유행하는 작품이나 걸작을 고르는 것도 좋겠지만 한번은 꼭 접해봐야 할 작가가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선>과 <검은 화첩> 등이 국내에 출간된 사회파 추리의 거장인 마쓰모토 세이초다.
사회파 추리소설이 시작된 것은 1958년의 일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이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본에는 추리소설 붐이 일어났다. 이전에도 에도가와 람포와 요코미조 세이지 등의 작가들이 추리소설 애호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를 필두로 한 '사회파' 추리소설은 하나의 장르를 넘어 사회현상이 되었다.
<점과 선>은 규슈 지방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펼쳐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녀의 치정에 얽힌 동반자살로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기업의 부정부패가 뒤얽힌 오직(汚職) 사건과 은폐된 진실이 있었다.
1958년 당시는 신칸센이 막 운행을 시작했을 때였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도쿄에서 규슈의 하카타, 그리고 다시 북해도까지 연결되는 신칸센을 이용하여 교묘한 알리바이 트릭을 만들어낸다. <점과 선>은 동기를 파헤치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본령을 중시하면서도 열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조작이라는 전통적인 트릭도 치밀하게 활용한다.
당시 마쓰모토 세이초는 추리소설이 '너무 트릭만을 중시하며 유희적 경향으로 빠지는 것에 반대하여 극한상황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파고들 것'을 주장했다.
<점과 선> 이후에 작품을 발표한 모리무라 세이에치, 미즈카미 츠토무 등의 작가들은 기이한 사건이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보다는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는 추리소설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사회파 추리는 사회적인 문제를 테마로 삼고, 탐정보다는 형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트릭보다는 사회적인 범죄에 얽힌 인간군상을 묘사하는 데 역점을 두는 스타일로 발전해갔다.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오히려 희생자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하여, 과거의 만행을 폭로하기 위하여 범죄를 계획한다.
사회파 추리는 급속한 경제개발에 따른 개인이나 집단의 피해, 정치권력의 폭력 등 명백한 '범죄 집단'으로 규정되지 못하는 권력의 범죄를 폭로하는 소설로서도 역할을 했다.
사회파 추리소설은 보통 사람의, 보통의 인생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중년 남성의 불륜 이야기나 회사에서 일어나는 비리와 부정부패 등의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을 보는 듯한 리얼리티를 느끼게 했다.
즉 추리소설이 단지 특이한 사건과 기발한 트릭만을 묘사하는 '게임'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걸쳐 있는 범죄와 사회악을 그리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추리소설 독자만이 아니라 일반 독자가 사회파 추리소설을 읽게 된 것은 그런 핍진성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역사소설의 시바 료타로와 함께 전후 최대의 작가로 평가받는 마쓰모토 세이초는,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 정통파 작가다운 장중한 묘사와 치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일본 추리소설을 한 단계 올려놓은 것으로도 평가되었다.
마스모토 세이초의 강건한 필력에 힘입어 수수께끼를 따라가다 보면, 그 사소해 보이는 사건의 이면에 거대한 사회악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또한 마쓰모토 세이초는 일본 각 지역의 특징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작품에 반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각 지역의 사투리와 독특한 풍경, 특산품까지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에는 풍성하게 펼쳐져 있었다.
사회파 추리는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추리물이다. 본격 추리는 게임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장르 애호가가 아니고는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 독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트릭 자체보다 사람의 마음이다. 왜 그가 죽어야 했는지, 왜 죽여야만 했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추리소설을 점점 파고들면 사회만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으로도 깊이 침잠하게 된다.
<마크스의 산>으로 나오키상을 탄 다카무라 카오루가 '내가 추리소설을 생각하고 쓰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좌와 벌>처럼, 범죄의 이유를 쫓아가면 필연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인간 내면의 탐구를 요구하게 된다.
그것이 추리 소설을 읽는 주된 이유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