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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속에 사람이 들어 있다?
[인터뷰] 서예가 고바야시 후요 선생을 만나다
 
유재순
사람이 걷는다.
사람이 춤을 춘다.
사람이 꿈틀거리며 포효하고 있다.
 
 
▲ 사람 인(人)

깜짝 놀랐다. 그리곤 다시 한번 이들의 몸짓을 살펴봤다. 역시 사람이었다. 그들은 모두 움직이며 살아 있었다.

세상에, 글자 속에 사람이 들어있다니! 
 

 
 ▲ 학 학, 거북 귀(鶴亀)

 
▲ 짤 직(織)
 
 
▲ 범 호(虎)

신기했다. 그리고 생경스러웠다. 글씨 하나가 사람이 되고 그림이 되고 그리고 작품이 되어 승화됐다. 

고바야시 후요(小林芙蓉. 71세)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월 24일 밤, 어느 여성 단체가 주최하는 대통령 취임식 전야제 파티에서였다. 선생은 재일동포들로 구성된 참가단에 초대받아 유일하게 기모노 차림으로 참석, 누가 봐도 일본인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도쿄에서 선생을 만났다. 이번에는 '2013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4월20~10 월20일)' 명예대사로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2012년도에는 '여수엑스포'의 명예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일본인으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선생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도쿄도 세다가야구에 서 만난 날, 가슴에 무궁화 배지를 악세사리처럼 달고 나왔다. 그러고 보니 선생의 서예 작품 집에도 무궁화 꽃 사진이 한페이지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점이 또 있었다. 선생의 매니지먼트를 하는 담당자와 인터뷰 장소에 함께 나타난 것이다. 연예인도 아닌데 매니저라니? 

선생의 직업은 ‘서예가’. 그런데 서예가도 그냥 단순한 서예가가 아니다. 서예와 퍼포먼스를 동시에 하는 독창적인 작품을 창조하는 아티스트다. 또한 일본내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느 연예인 못지 않게 세계를 무대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물론 그 속에 한국도 포함된다.

선생의 서예 작품은 아주 독특하다. 작품 속 글자  한 획 속에는 사람과 동물, 그리고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 숨쉬고 있으며, 이들의 삶에 대한 해학이 밑자락을 깔고 있다. 그래서 글자 뜻에 따라 글의 모양새가 천태만상으로 변한다. 

몸부림치는 인간의 형상이 되었다가 거친 파도가 되기도 하고, 때론 우아한 학이 되어 성정을 평화롭게 다스린다. 글자 획 속에 인간의 희노애락이 침잠돼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선생이 쓴 서예를 보고 있노라면,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인지 또는 인간사의 해학을 보고 있는 것인지 도통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때문에 봐야 하는지, 아니면 읽어야 하는지, 그도저도 아니면 찬찬히 곱씹어 음미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헷갈린다. 

그런가하면, 한켠에서는 왠지 자유분방한 난해함마저 느껴지고 어떤 글자에 가서는 이 우주 만물을 온통 끌어안은 듯한, 인간사 세상만사를 집약시킨 것 같은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케도 한다. 섬세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일본의 스타일과는 일정부문 거리가 있다.       

 
 ▲ 넋 혼(魂)
 
 
▲ 바위 암(岩)

서른 세살에 천자문을 테마로 본격적인 프로 서예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고바야시 선생은, 벌써 한국에서만도 10회 이상 전시회를 열었다. 서울·부산·광주·천안·여수·순천 등 개인전을 포함해 한·중·일 ‘삼국전’을 열기도 했다.   



 ▲ 천지인(天地人)

도대체 고바야시 선생은 전생에 한국과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2000년 오사카시의 권유로 광주비엔나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돼서 지금까지 한국과 연을 맺어오고 있습니다.”

선생은 그때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초청 관계자로부터 한복 세벌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일본의 전통복인 기모노가 잘 어울리니 한복도 잘 맞을 것이라면서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초행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리랑 가락이 울려퍼지자 자신도 모르게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고 한다. 덕분에 당시 광주시 직원들이 열광적으로 응원해 주었다고. 지금도 아리랑 가락이 들리면 자연스럽게 어깨 춤사위가 나온다고 한다.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물었다.
"한국인을 보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그 어떤 교감을 느껴요, 아마도 이것은 한국인들이 정이 많고 따뜻하고 뒤끝이 없기 때문일 거에요. 또 조용하구요."

"네? 한국인이 조용하다구요?"
"하하하 시끄러운 것은 오히려 나에요. 내가 더 시끄러워요."
깔깔깔, 껄껄껄 여러가지 느낌으로 호탕하게 웃는 선생은 한국인에 대한 나쁜 기억이 전혀 없다면서 추억만이 있을뿐이라고 아주 상큼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 '2013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에도 일본인 100여명과 함께 순천에 가서, ‘붓으로 표현하는 일본인의 마음’을 테마로 서예전(6월22-24일)을 열고, 또한 전시장에서 대형 붓으로 꽃 화(花)자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광주에서도 선생의 열성팬 30여명도 찾아왔다고 한다. 물론 이 자리에 선생은 어김없이 기모노 차림으로 등장했다.  

"1년에 3번 정도는 전시회 등 이런저런 일로 한국에 가요. 부산은 향수 같은 그리움이 있고, 목포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해요. 여수는 정이 느껴지는 곳이고 순천은 공기가 맛있고 기(氣)가 달라 제가 살고 싶은 곳이에요. 한국문화 중에 역시 관심이 있는 것은 그림과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인기있는 드라마죠."


 

한일서예 차이점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2006년도에 서울과 교토에서 각각 한·중·일 ‘삼국전시회’를 연 적이 있어요. 원래 서예의 원류는 중국인데 한국을 거쳐 일본에 건너왔지요. 부르는 명칭도 달라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한국에서는 ‘서예(書藝)’,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고 부릅니다. 세 나라의 서풍이 다른거지요. 즉 법→예→도로 그 흐름이 갈리는데 일본 서도는 선(線)이 중심이고 한국은 역시 정이 많다 보니 예술적인 성향이 강한 것 같아요. 일본의 선과 한국의 정을 합치면 과연 어떤 글자 모양새가 나올까? 아마도 대단히 부드러운 글모양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 대 죽(竹)

선생의 작품 가치에 대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보았다. 판매가격이 얼마나 되느냐고. 그런데 전혀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내 작품을 판매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모두 선물로 나눠줬지."

한국을 포함해 남편따라 수년간 머물렀던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각국을 돌면서 수 많은 전시회를 했지만, 자신의 작품을 판매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한다. 대신 신세진 현지 관계자들에게 몇 점 선물로 나누어 준 적은 있다는 것.

"그럼 생계는?"이라고 본능적인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교토에서 일본 전통요리집 ‘쇼라이안(松籟庵)’을 운영하고 있고, 도쿄에 건물과 상속받 은 유산이 있고 또 시코쿠에 저를 후원하는 후원회가 있어요. 때문에 작품을 팔지 않고도 경제적인 문제없이 서도가의 길을 가고 있답니다. 특히 교토 요리집이 있는 곳은 예전에 백제인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 그런지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옵니다."

선생은 영친왕과 정략결혼을 했던 일본여성 고 이방자 여사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매년 4월이 되면 이방자 여사의 제사에 참석하고, 누군가가 이여사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몇년 전에는 한국인 지인이 재일동포를 위한 양로원을 짓는다고 해서 흔쾌히 300만 엔을 기부했더니 돈만 받고 결국 양로원은 짓지 않아 사기를 당한 셈이 됐다고 털어 놨다. 그렇지만 양국의 가교가 되는 일에는 무슨일이던지 자신의 힘을 보탤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도쿄와 교토에 각각 작업실이 있으며, 1년 동안 30-40점의 작품을 쓴다고 한다. 글자의 형상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느냐고 물었더니,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난 바로라서 글이 떠으르면 그 자리에서 써버려요. ‘이예(李藝)’라는 작품도 우연히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훗날 최초의 조선통신사에 대한 단행본 출간의 책 제목이 됐다. 
 

 
 
그런데 이 두 글자가 화제가 되었던 것은, 신기하게도 이 글자 획수에 갓을 쓴 당대의 조선인이 4명이나 들어있었다. 아주 절묘하게 책 내용과 글씨가 완벽하게 매치되어, 이 작품은 한국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그래서 두고두고 화제가 됐었다. 때문에 영화 타이틀이나 큰 행사의 제호 제작에 고바야시 선생 이름이 가장 먼저 올라오는 것도 바로 이같은 연유에서다. 그냥 단순히 써내려가는 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  해협을 연결하는 빛- 1500년 전의 역사를 다룬 한일합작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아무튼 고령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열정적으로 서도가의 길을 가는 고바야시 후요선생. 어떤 혹자는 선생을 가리켜 서예가 그림 같다고 하여 '서화가'라고도 칭한다. 

아무렴 어떤가? 선생의 작품에는 우리네 인생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데. 때론 소녀같이,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선머슴 애처럼 굵직한 선을 드러내는, 인터뷰인지 수다인지 모를 장시간의 토크쇼가, 선생의 "우리 이대로 교토 가자"는 말에 화들짝 놀라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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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8/31 [09:47]  최종편집: ⓒ jpnews_co_kr
 


방금 글자 속에 뭐가 들어 있다고요? 기괴해서 싫어 13/09/01 [19:42] 수정 삭제
  내가 아는 이방자 여사라곤 '웰컴투 시월드'에 나오는 김지선씨네 시어머니 밖에 없는데. 언제나 입맛이 없으셔도 모닝빵 두 개쯤은 거뜬히 해치우시지. 그나저나 공자께선 무덤 속에 넣을 인형을 본 뒤 크게 한탄하신 적이 있지요.

"나무를 깎아 사람의 형상을 만들다니, 후대가 끊어지렷다!"

물론 당시까지만 해도 왕과 귀족이 죽으면 부리던 시종을 묻는 풍습이 흔했습니다. 남는 입을 책임질 군주가 사라졌으니 함께 보내버리는 것입니다. 순장의 규모가 클수록 생전의 권력도 컸다 하여 그만큼 존경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생산력이 늘어나면서 차차 산 사람 대신 인형을 파묻었다고 합니다. 진보일까요? 그런데 공자께선 그조차 용납할 수 없으셨던 모양입니다. 분명 인형을 제물로 바치게 되었으니 진보일 텐데 말입니다.

어쩌면 글자 또한 마찬가지 비유가 가능할지 모릅니다. 사람은, 생각을 글자로 표현해 둠으로써 세상을 일관되게 이해할 어떤 틀을 얻었죠. 그 틀이 아니었더라면 섬광과 같이 사라졌을 빛들을, 틀에 의지하여 이웃과 마음을 나누고 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 그 틀에 지배당하거나 자신이 갇혀버리는 경우도 생기는 법입니다. 글자로 모양을 빚어내는 순간,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진리의 일부가 복제당하는 결과를 피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글자를 통하여 완전한 진리 체계 전부를 가져오는 일이 불가능하기에, 비록 제 아무리 절대적인 진리를 설명하고 있더라도 글자는 한낱 인형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인형을, 산 사람 대신 무덤에 넣으려고 만든 것이었던가요?

글 쓰는 이에게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자신이 빚어낸 그릇에 자신이 담기게 되면, 그 그릇을 빚어낸 이는 반드시 생과 사를 가르는 존재의 시험대 위에 서게 됩니다. 본문의 서예가 가치를 인정받는 지점이 있다면 여기겠지요. 초서와 같은 형태의 변화는, 글자 속에 갇힌 사람의 인식을 깨뜨려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인(人)' 작품에서 기괴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글자 속에 사람이 들어 있다'는 원문의 표현에 이르면 그러한 거부감은 더더욱 심해지지요. 애초 깨뜨리려고 했던 것이 사람입니까, 아니면 인식입니까? 나머지 파묻고자 했던 것이 대체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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