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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원전 직원들, 원전사고 직후 도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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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제1원전내에 머물라는 명령 어기고 제2원전으로 피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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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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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당시 원전직원의 90%에 달하는 약 650 명이 원전 소장의 대기명령을 위반하고 10km 떨어진 후쿠시마 제2원전으로 피신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는 일본 유력 일간지 '아사히 신문'이, 지난 2013년 사망한 원전사고 사고 대응 책임자 故 요시다 마사오가 정부사고조사 검토위원회의 조사에서 답한 내용을 적은 '청취결과서'를 입수해 확인한 것이다. 도쿄전력은 이 같은 사실을 3년 이상 밝히지 않아왔다. 결과서와 도쿄 전력 내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3월 15일 오전 6시 15분쯤, 요시다 소장이 지휘하는 후쿠시마 제1원전 면진중요동 2층 긴급대책실에 중대한 보고가 도착했다. 2호기 방향에서 충격음이 나고 원자로 압력제어실의 압력이 '0'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2호기 격납용기가 파괴돼 원전내 직원 720여 명이 대량피폭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대책실내의 방사선량은 거의 상승하지 않았고, 요시다 소장은 아직 격납용기가 파손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오전 6시 42분, 요시다 소장은 TV회의를 열고 직원들에게 "방사능수치가 높은 장소로부터 일시적으로 피신하고, 바로 현장에 돌아올 수 있도록 제1원전내에서 대기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방사능수치가 늦은 지역으로 철수하되, 그 뒤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돌아오라"고 했다. 제2원전으로의 피신이 아닌, 제1원전에 머물도록 한 것은, 안전이 확인되는 즉시 현장에 돌아와 사고 대응을 지속하라는 의도였다. 도쿄전력이 2012년에 공개한 TV회의 영상에는, 긴급시 대책실에서 요시다의 명령을 듣는 많은 직원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고, 간부사원의 모습도 있었다. 도쿄전력은 영상만 공개했을 뿐, 음성은 "녹음하지 않았다"며 공개하지 않아 요시다 소장의 명령내용은 여지껏 알려지지 않았다.
▲ 식도암으로 사망한 요시다 마사오 후쿠시마 제1원전 소장 ©JPNews | | 요시다 소장의 증언에 의하면, 직원 누군가가 면진중요동 앞에 준비된 버스 운전사에게 "제2원전으로 가라"고 지시했고, 오전 7시쯤 출발했다고 한다. 자가용으로 이동한 직원도 있었다. 도로는 지진으로 훼손된 가운데 제2원전에 출입할 때는 방호복이나 마스크를 입고 벗어야 했고, 이 때문에 제1원전에 돌아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90%의 직원이 돌아오기 어려운 장소에 있었다. 그 중에는 사고 대응을 지휘해야할 부과장급 사원도 있었다고 아사히 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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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5/20 [08:06] 최종편집: ⓒ jpnews_co_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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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세월호로 비교 하자면 |
ㅗㅗ |
14/05/22 [1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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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하지 못한 원전 주위 국민들이 세월호 승객이고 도망간 원전원들이 선장과 승무원이군..한심한데...판박인데..더심한건 이런 사실이 3년 지나서 기사화 된건데..일본이란 나라는 진심으로 자기에게 불리한 뉴스는 은페하는 습성이 있네..날조도 모자라 은페까지 하다니..괴상한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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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도망가지 말아야 했던 것 맞나? |
들어라, 우리의 소리 |
14/05/24 [0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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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 하사오'라는 청년이 있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 학도병으로 징집돼 남아시아 방면에 참전했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철군 중 낙오한다. 적(?)의 손에 붙들린 것이다. 1946년 5월, 전쟁이 끝난 지 채 1년도 안 돼 싱가포르 장기 형무소에서 사형당한다. 그런데 그는 죽기 전에 한 통의 편지를 남겼던 것이다.
"나는 죽어야 할 정도로 흉악한 짓을 저지른 적이 없다. 악을 저지른 것은 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경우 변명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책임을 지고 내가 죽는 것이 언뜻 보기에는 불합리해 보이지만, 과거에 나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싫도록 강요한 만큼 불복할 수 없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내가 불운이라고 하는 것 외에 달리 하소연 할 데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돌아가는 세상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청년의 편지가 가슴을 세게 후려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내 조국인 대한민국은 일제로 인해 지대한 피해를 입었고 또 그 때문에 분단이라는 현실상의 모순을 안고 있다. 그런데 내 삶은, 정녕 그가 비워둔 자리에서 꽃 핀 것이 아니란 말인가? 확언할 수 없다. 물론 이미 꺾여진 그는 이런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일본 군대를 위해 희생된다고 하면 죽을 수 없지만, 일본 국민 전체의 죄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아 죽는다고 생각하면 화도 나지 않는다. 웃으며 죽어갈 수 있다."
뭣이, 일본 국민이라니? 전범으로 체포돼 곧 죽을 마당인데 일본 국민이라니! 어쩌면 내가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일 그가 되살아난다면 이 자리에 서있는 나를 용서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시절, 그가 죽음으로 예비해두었던 자리를 누가 차지하게 될 지는 그 역시 모르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면, 그가 비워두었던 자리는 누구를 위해 마련된 것이었을까? 일본 국민? 조선 국민? 아니면 남조선을 해방시킨 뒤 미래에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민? 이도저도 아니라면 원자력발전소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어쩌면 이것이 정답인지 모른다. 어찌됐건 우리는 이것을 치울 방법을 알지 못하니까.
만드는 방법은 알고 있다. 하지만 치울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자신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이것만은 과거의 자리에 남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 함께 영생을 부여받은 셈이다, 터져나온 원자력발전소와 함께. 아마 이 청년의 편지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리라.
"우리 국민은 지금 커다란 반성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반성과 지금의 역경이 장래의 일본을 위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일본은 사회, 역사, 정치, 사상, 인도, 모든 면에서 시련과 발달이 모자랐다. 만사에 우리가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던 우리의 지도자 - 그 지도자의 존재를 허락해 왔던 일본 국민의 두뇌에 책임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청년의 죽음을 슬퍼한다. 이제 막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미래에 올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예비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달려온 누군가가 이미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였음을 알기 때문에 한편으론 기쁘기도 하다. 비록 나 역시 죽어야 할 정도로 흉악한 짓을 저지른 적은 없지만 아마 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면 스스럼 없이 죽어야 하겠지. 그래서 세상의 죽음을 슬퍼하는 바이다. 나 없이도 굴러갈, 영원히 살아남을 이 세상을 그리며. 흑흑... 하지만 죽어야 한다면 이 자리에서 죽고 싶지는 않다. 만일 남길 수만 있다면 이보다 좋은 것을 남기고 싶다.
... 그래서 말인데, 아마 내가 당시 후쿠시마 원전 안에 있었어도 도망쳤을 것 같다고. 미쳤냐? 곧 폭발할 게 빤히 보이는데 누가 그런 자리에 남아 있어! ^^ 그러니 그만 하고, 원자력발전소 치울 방법이나 의논해 보자. 우리 지금 골로 가고 있다니까? 또 편지 한 통 남길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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