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키와 이카리 신지'
기자는 일본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다. 소위 말하는 ‘국민학교’를 경험했던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사람들은 거의가 다 그럴 것이고,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동시대 어린이들이라면 대부분 일본 만화를 보고 자랐을 것이다.
‘선라이즈’ 사의 로봇 만화를 보거나, ‘세일러 문’ 같은 변신 소녀물을 보면서 말이다. 그 당시 TV에 반영되었던 일본 만화의 위력은 단순히 그 또래 그룹의 유행을 넘어 학교 생활에까지 일정부분 영향을 줄 정도였다.
체육 교과서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던 ‘피구’라는 생소한 구기종목이 체육시간마다 남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순전히 ‘피구왕 통키’라는 만화 때문이었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뀔 무렵에 살던 곳을 떠나 전학을 가게 되었을 때도, 신축 공사 중이라 변변한 운동장이 없는 학교의 컨테이너 교실 뒷편에서 아이들이 피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안심감을 느낀 것도 바로 '피구왕 통키' 덕분이었다.
처음 만나는 내 또래의 남자들에게 기자는 종종 어릴적 피구를 해봤느냐고 물어본다. 혹은 미니카를 가져봤느냐, 포켓몬스터 게임을 해봤느냐고 물어본다.
이렇게 굳이 어렸을 적 만화속에 등장하는 운동이라든가 게임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각자 경험한 것들과 살아온 인생은 다르지만 동시기에 비슷한 추억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20년을 만난 친구처럼 쉽게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끼리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유대감인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자에게 어렸을 적 추억을 갖게 해준 만화들이 사실은 그 출처가 '일본'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누군가 우리가 알던 대부분의 만화들이 일본만화의 번역본이라고 말했을 때도 별로 믿고 싶지도, 또한 주변 아이들도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90년대 당시 한국은 일본에 대해서 금기시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만화책과 애니메이션 내용 모두 한국식 지명과 이름으로 나왔다. 일종의 로컬라이징이라 볼 수도 있겠다.
때문에 기모노를 입었다거나, 일본 문화색이 강한 장면은 여지없이 편집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성인이 되어 알았을 때, 이것은 애독자에 대한 기만행위요, 타국의 저작물을 자국의 것으로 혼동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락없는 도둑질임을 알고 기자는 솔직히 기겁했다.
기자가 일본 문화의 존재를 정면으로 알게 된 것은 1998년도 '일본문화 개방'이라는 거대한 분기점과 만난 이후다. 그 전까지, 반공교육이 상당히 약화되었던 90년대 중반쯤에는, 역사 교육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북한보다도 좋지 않았다.
어린시절 기자가 기억하는 일본의 이미지는 가부키나 스모같은, 단편적인 이미지의 콜라주가 전부였다. 마치 외국인이 한국을 떠올려 보라고 할때 비빔밥, 불고기만을 떠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한 애니메이션을 통해 일본문화와 정통으로 조우하게 되었다. 바로 ‘이카리 신지’라는 일본인의 이름이 정면으로 등장한 가이낙스사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국내 비디오 출시였다.
▲ 한국과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만화 에반게리온 ©JPNews | |
기자는 처음으로 외국인, 그것도 일본인이 주인공인 만화를 보면서 이전의 만화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충격을 느껴야 했다. 이전까지의 일본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판타지 세계의 인물이거나, 국가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이었지만, 신지는 '김신지', '최신지'가 아닌 '이카리'라는 일본식 성을 그대로 사용한데다가, 연령도 연상인 중학생이라 왠지 정서적인 거리감마저 느껴졌다.
거리감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일본인들은 외부 재난에 상당히 의연하고,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과도할 정도로 메뉴얼과 시스템에 집착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데 능숙하며, 타인과의 관계에 자주 실패하는 매우 고독한 사람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일본인이면서 동시에 '어른'이고, 이전의 일본 만화류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과장되지 않은 리얼리티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후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뒤로 하고, 대신 더 이상 시청자를 속일 자신이 없었는지, 한국의 TV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일본만화들은 점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대신 새롭게 출간되는 일본 만화들은 일반 단행본처럼 서점 도서코너의 일정부분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원복 교수가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을 발간했고, 오타쿠, 히키코모리, 중2병이란 용어가 어느새 일상으로 들어왔다.
이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기자는 이렇게 단기간내에 일본에 대한 관심이 급 상승한 배경에는 일본만화의 존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만화는 문학과 마찬가지로, 반영론적 관점에서 텍스트를 통해 그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 보는 일 또한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만화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나름대로 지대하다고 생각한다.
작은 것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면 안되겠지만, 적어도 일본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나 금기시 하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최소한 간접체험 혹은 엿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