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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 사이에서 '화제' 日은하수 양갱
교토발 은하수 양갱에 누리꾼들은 감탄 연발 "정말 예쁘다"
 
김명갑 인턴기자
한 트위터 사용자가 올린 사진 몇 장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어 화제다. 일명 '은하수 양갱'이라 불리는 이것은 교토 시치죠간슌도에서 만들어진 화과자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네티즌들은
 
"먹을 수 있는 거 맞아?"
"너무 예뻐서 못먹을 것 같다".
"어디서 파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못 먹나요?"
"헐. 진짜로 은하수네. 엄마가 먹는 걸로 장난치지 말랬는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 교토 시치죠간슌도에서 만들어진 화과자     ©온라인 커뮤니티

  
교토의 한 화과자 점에서 해마다 칠석(7월 7일)이 되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것을 기념하여 은하수 모양의 화과자를 만들어 시판하는데, 이것이 큰 인기를 끌게 되면서 주변 교토 화과자점들까지 하나 둘 동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각자 개성있는 은하수 화과자를 만들어 선보이자 인기가 폭발한 것.
 
또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하는 7월 무렵이면, 교토의 화과점들은 청량감을 느끼고자 한천(우뭇가사리에서 추출한 묵 형태의 천연재료)을 이용한 투명한 화과자를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팥 앙금 위에 천연색소를 가미시켜 각기 다른 색의 한천 반죽을 층층이 쌓아 밤하늘을 만들고, 흰 깨나 금가루를 이용하여 별 모양을 만든다. 바로 이것이 ‘은하수’ 화과자다.

교토의 화과자(和菓子)는 왜 유명할까?
 
▲ 교토 시치죠간슌도에서 만들어진 화과자     ©온라인 커뮤니티

 
교토는 한국의 경주에 해당하는 일본 전통문화의 보고이다. 8세기 경에는 교토를 수도로 헤이안 시대가 열렸는데, 불교를 비롯한 당 나라 문화가 수입되면서 일본 문화가 크게 번성했다.
 
이 무렵 함께 들어온 것이 당 과자로, 이후 일본 과자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과자는 장기간 보존을 위해, 양의 기름을 이용해 굳혀 만든 양갱과 불을 이용한 월병이 있었다.
 
반면 일본인은 양의 기름 대신 한천을 이용해 점성이 있는 과자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화과자와 가장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9세기 초에는 중국에 유학을 다녀온 학승으로부터 차 문화가 유입되면서 일본도 교토 귀족들을 중심으로 다도문화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차의 등장과 함께 이와 곁들여 먹는 다과(茶菓) 문화가 발전하게 된다. 쓴 차의 맛을 중화시키고자 과일을 이용한 단과자가 유행한 것이다.
 
과자(菓子)의 菓가 과일 과인 이유도 차에 어울리는 단맛과 감칠맛을 얻기 위해 만드는 과자에 과일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또한 화과자의 모양이 복숭아같은, 주로 과일모양으로 만들어진 이유도 있다.
 
덧붙여 흔히 화과자하면 꽃모양의 과자(花菓子)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우리가 일본 문화를 와문화(和文化)라 부르듯이, '화과자'란 말은 그저 단순히 ‘일본과자’라는 뜻에서 화과자(和菓子)라고 부를뿐 다른 의미는 없다.
 
그런가하면 일본의 다도문화가 발전한 것은 그윽한 차맛도 차맛이지만, 차와 화과자의 기막힌 조화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차의 부흥기로 불리는 12세기에, 승(僧) 에이사이(榮西)가  송(宋)의 말차(抹茶)를 일본에 전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때부터 ‘차는 약이다'라는 풍조가 일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교토 화과점에서는 화과자의 단맛과 어울리는 차로, 씁쓰름한 말차를 함께 권하고 있다.
 
에도시대에 이르러서는 설탕의 보급으로 화과자에도 꿀이나 엿, 과일 대신 설탕을 넣은 화과자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설탕을 사용하게 되면 과일을 넣었을 때보다 화과자의 보존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당시 화과점의 선호도가 절대적이었다. 또한 차의 인기와 함께 화과자도 덩달아 발전을 거듭했다.
 
화과자는 불이나 기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느끼하지 않고 산뜻한 맛이 일품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화과자들은 나무판안에 한천반죽과 앙금을 채워 넣어 약식처럼 찍어 내는 방법을 취하거나, 만두처럼 손으로 빚어 내는 방식을 고수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양과자와 커피 셋팅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화과자의 인기가 주춤한 상태다. 교토에 자리잡고 있는 화과자점들은 모두 오랜 전통을 지닌 가게들인만큼, 뛰어난 맛과 화려한 모양을 자랑하며 관광객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일본 젊은이들의 외면은 그들에게도 큰 고민거리다. 때문에 젊은이들의 시선을 끌면서 구미를 당기게 하는 신 메뉴 개발에 늘 골몰한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은하수’ 화과자다.
 
교토에서 6대째 화과자를 운영하고 있는 키노시타 요시마사씨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전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게를 운영하는 방침은 80%의 전통, 20%의 혁신이예요. 그것을 잘못해서 혁신이 30%가 되면 망하게 돼요. 가령 20%가 넘어서 30%, 40%가 되면 우리의 전통적인 가게는 사라지고 전혀 다른 새로운 가게가 돼버리는 거죠.“
 
그렇다고 전통 화과자점들이 일본젊은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게을리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상호간의 소통과 홍보의 한 방법으로, 옛방식 그대로 화과자 만드는 비법을 학생들과 관광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관광객들의 경우, 유명 화과자점에 사전 예약을 하고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면, 직접 전통방식으로 화과자를 만들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손수 만든 화과자를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
 
한편 한국에 화과자가 들어 온 것은 일본 식민지 시대인 1910년 경부터다. 당시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이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단맛이 너무 강해 한국인은 잘 먹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한국 백화점에서 팔고 있는 화과자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단맛을 줄여 만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인들이 화과자를 먹을 때 차를 함께 마시는 습관이 익숙치 않은 연유도 있다. 일본에서라면 달디 단 화과자와 씁쓰레한 차맛의 궁합이 기가 막힌 조합을 이룬다고 모두들 알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하지만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워 먹기가 아까운 '은하수' 같은 화과자는, 비단 차가 없다 하더라도 그 한가지 만으로도 만족하며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 일본이 보인다! 일본전문뉴스 JPNews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사입력: 2014/07/09 [12:37]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배고팠던 거지떼가 죽을 만큼, 눈물겹게, 열심히 일해서 부자 나라" 로 만 에다마메마니아 14/07/10 [18:50]
입에들어가는 먹는 문화" 을 거의 신격화 하는 일본" 을 깊이연구해보면, 참 재미있다, 그 지방" 특색 의 먹거리문화" 우리가 먹지않는 것 먹는 일본" 일본이 먹지않는 것 한국은 먹는다. 수정 삭제
예쁘긴 하네요. 안녕? 앤 셜리~~ ^^ (홍당무~~ 홍당무~~) 14/07/14 [15:48]
『일본 전통문화론』을 공부하면서 내내 마음에 걸렸던 한 가지는 '이렇게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나라의 국민들이 왜 그토록 끔찍한 전쟁을 저질렀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차를 마시는 행위를 다도로 승화시켰으며 꽃을 장식하는 행위는 화도, 선종의 선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정원에서부터 신에게 바치는 제례인 스모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본받고 싶은 문화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선 맥이 끊겨버린 지역축제 - 마쓰리를 알고 나선 질투가 나도록 부러웠지. 너희는 왜 이토록 아름다운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거냐?
그런데 한 번 중심을 잃자 흔들리는 진동을 제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좌표를 가리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원래는 일본의 문화 따위 관심도 없었다. 그냥 귀찮은 대상에 불과했으니까. 일본이란 나라가 제주도보다 조금 큰 섬인 줄만 알았던 때가 엊그제였지. 물론, 학교 다니면서 지도에선 봤다. 하지만 관심이 없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불쌍한 왜놈들이 막 쳐들어왔겠지!
그런데 뭐라고? 열도가 남한 면적의 4배가 넘는다며? 헤엑~~ 그럼 대륙 아니야! 더구나 인구는 1억 2천만 씩이나! 그래 놓고 무슨 『일본침몰』 같은 영화를 찍냐?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지. 아마도 그래서 곧바로 쓰나미가 밀려오는 『해운대』가 따라 찍혔나 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어떤 이유로 너희들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단 말이야. 지금으로선 본 기사의 내용을 참고자료 없이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소득이 있었다고만 해두자.

그런데 오늘 브라질 월드컵이 독일 전차군단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예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가 16강 문턱에도 못 가본 채 탈락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도 사상 최악의 스코어로 주저앉는 대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그 직전, 박사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지.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세계의 근본 질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월드컵도 다르지 않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우주론에 대해서도 한 번쯤 의심의 잣대를 들이대 봐야 하는 것이다. 펠레 다음 가는 최악의 예언가가 탄생했으니까! 이 영감탱이의 이론이 틀렸단 말이지. 혹시 그가 못 보고 놓친 게 있지는 않았을까? 정녕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전제들을 충분히 숙지한 것이 맞나? 왜 이런 의심을 품게 되었느냐 하면, 일본을 관찰하면서 뭔가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연 일본은 팽창하는 것일까, 아니면 수축하는 것일까?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의 인구는 3천만에서 1억 2천만까지 불어났다고 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팽창한 것이 맞지. 4배를 넘었으니까. 그런데 그 안에서 관찰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좁은 땅에 촘촘히 심어져 식물처럼 길러지길 강요당하는 사회 - 후쿠시마 원전 사태 직후 실상을 알아차린 뒤 받은 충격을 굳이 말로 표현하면 이렇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끝없이 팽창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니, 정녕 이 나라는 팽창하는 것일까, 아니면 수축하는 것일까?
물론 한반도도 그동안 많이 변했다. 병합 당시 조선의 인구가 2천만이었는데 현재 남북한을 합쳐 7천만에 달한다고 하니, 비율로 따지면 엇비슷한 셈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봤을 때 결과가 뭐라고 나오건 한반도와 열도 사이의 거리는 1500년 전과 비교해 별로 달라진 것이 없으니, 그동안 우리는 대체 뭘 한 것일까?

만일 일본이 팽창을 했다면 한반도와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와져야 옳다. 하지만 그 순간 한반도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대륙의 문이 열렸지. 반대로 대륙이 팽창했더라도 일본까지의 거리가 가까와져야 옳겠지만 몽고가 대군을 끌고 왔을 때 문은 도리어 닫혔던 말씀이야? 찬바람만 쌩쌩 불었지. 그렇다면 혹시 우리의 인식 구조에 뭔가 심각한 오류가 내포되어 있던 건 아니었을까? 같은 오류가 500년이 지난 뒤에도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바람의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하수 - 영어로 'Galaxy' 또는 'Milky Way'라고 불리는 이것은 사실 실체가 없는 관념적 대상에 불과하다. 접시 두 개를 넓은 면 쪽으로 붙여 놓은 듯한 모양이 우리은하의 전체적인 구조인데, 그 변두리에 위치한 태양계에서 은하 중심을 향해 관찰했을 때 마치 별들이 촘촘히 심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 은하수라고 이름 붙였을 뿐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여신 레아가 제우스에게 젖을 먹이다 흘린 흔적이라고도 하고,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바꿔놓기 위해 바람둥이 남편의 아기를 강보에서 훔쳐낸 헤라 여신의 품속에서 도둑젖을 빨던 흔적이라고도 하던데 어느 쪽이 원조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은하수란 인식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붙여 놓은 접시 안에 숨어서 미세한 틈 사이로 세상을 관찰하면 당연히 은하수가 보이겠지. 하지만 접시 밖으로 빠져나와 원래 몸 담았던 틈을 들여다 보면 태양 역시 우리은하의 평등한 구성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단숨에 10만 8천 광년쯤 달린 뒤 되돌아 보면 은하수라고 알았던 별들 전체가 하나의 찰랑찰랑한 흐름에 잠겨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우리는 스스로의 인식에 대해서도 뭔가 심각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비록 스스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은하수의 빛을 쬐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너와 나는 같은 은하수의 일부가 아니란 말이더냐? 대체 '일본'은 뭐고 '한반도'는 또 뭐람? 팔이 4배로 늘어나는 동안 폭증했던 갈등이 1/4로 줄어든다고 해서 해결된다고 기대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조금 더 달려볼 용기가 있다면 복잡한 수학공식 없이도 호킹 박사의 미니블랙홀 증발 이론을 우주 전체로까지 확장시켜 놓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 보인다.
현재 인류가 그려낼 수 있는 우주의 반지름은 약 150억 광년. 스스로를 묶어놓은 시간에 비례해 인식 가능한 공간의 크기도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상 속에서 공간의 끝을 넘어 달리다가 마침내 이곳, 인식의 중심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는 한 천체를 발견했다. 그 천체도 이곳의 별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회전하는 게 가능하다면, 다음 순간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왔을 때 다시 관찰하게 될 천체의 본모습은 아까 발견했던 모습의 앞면일까, 아니면 뒷면일까?

어쩌면 아직은 좌표조차 확인할 수 없을지 모른다. 우주의 나이가 150억 년인데 천체의 나이가 그보다 적다면, 멀리 저 경계의 끝에서 출발한 빛이 공간을 가로질러 이곳까지 도달하는 데 그 차이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방금 공간의 끝에서 존재를 확인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상상력의 힘을 빌렸을 뿐이고. 상상의 속도는 빛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어붙은 시간의 끝자락에 붙박힌 천체가 현실 세계에까지 인식되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느려터진 빛의 흐름을 빌릴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때 인식이 되건, 안 되건 모든 천체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유롭게 회전할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우주는 스스로 닫혀 있는 동시에 열려 있다!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고. 아까 상상의 힘을 빌어 확인했던 천체는 이미 이곳의 기준과는 다른, 새로운 150억 광년의 반지름을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너는 단 한 번이라도 무한한 중력의 손길을 뿌리친 채 이 우주 밖에서 우리 우주를 관찰한 적이 있단 말이더냐? 갇혀진 인식에 의해 닫혀 있던 공간이, 상상의 힘을 빌어 발견한 새로운 천체로 인해 다시금 열린 셈이다. 그 경계가 존재한다고 여겼던 건 우주의 나이가 150억 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신념의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는 거라고. 하면, 새 생명을 얻은 쪽은 대체 어디인가?
더구나 유감스럽게도 시간과 공간을 측정하는 기준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비율에 맞춰져 있지. 별들 사이의 잣대는 광년(Light Year)을 사용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왜 이 우주가 인간 인식의 기준에 맞춰야 하는 거냐? 우리네 인식이 그 기준에 갇혀 있다고 해석하는 편이 보다 합리적이지 않을까? 고로 호킹 박사의 이론은 확장된 패러다임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 인식의 지평선에서 미립자의 미동을 통해 스스로 중력붕괴 현상을 일으키는 건 꼭 미니블랙홀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문학적인 표현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 우주 전체가 거대한 블랙홀인지도 모른다. 빛의 속도로도 빠져 나갈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잖아. 반지름 150억 광년의 구 - 발전된 현대과학에 따르면 인류는 이것을 '질서(Cosmos)'라고 부르지. 그런데 이것이, 배를 타고 서쪽으로 항해하면 거대한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이라고 무서워하던 시절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프톨레마이어스 시절의 붙박힌 천구, 갈릴레이의 목성과 케플러의 태양계, 혜성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게 된 뉴턴과 핼리에 이르기까지. 매번 인식의 지평선은 넓어졌지만 언제나 빠져나갈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반지름 150억 광년의 구 역시 절대적인 경계선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까닭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쩌면 우리는 이 거대한 놈의 손아귀에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간 적이 없었는지 모른다. 아~ 무섭다. 무섭다!

그런데 인간이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했을 때 나머지에 대해서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실,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 세상의 전체 모습에 훨씬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식의 조합이란 언제나 불완전하지 않은가?
제 아무리 천재적인 기억의 소유자라 한들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질문을 바꾸어 묻는다면 과연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앙?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일본 - 너희는 뭐라고 답할래? 중력붕괴를 통해 인식의 심연으로 사라져 간 과거의 흔적조차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관문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경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전까지 쌓아올렸던 지식이 재배치되는 수모를 겪게 되겠지만. 우리는 이것을 '역사논쟁' 혹은 '찬란한 과거의 유물'이라고 부르지. 늬덜이 이것 때문에 지난 1500년 동안 정신병을 앓아 왔던 게 맞지? 하지만 참말로 인식에 절대적인 경계선이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치 아니한가? 부자유스러운 몸뚱이으로도 인간은 크로노스와 맞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 인식의 경계선에서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천체를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 - 바로 상상력이라는 기반이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만일 이와 같은 가정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세계는 빅뱅이론에 따라 팽창하거나 혹은 수축하는 것이 아니라, 팽창하면서 동시에 수축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내가 서있는 이 자리가 아직 소멸되지 않은 미니블랙홀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인식의 시작과 끝, 그리고 얼어붙은 시공간의 경계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답을 찾았으니 호킹복사를 일으켜 스스로 증발하는 일만 남았겠네? 깔깔깔깔~~

... 이런 연유로 조선인이 아름다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거라고. 지평선을 넘어 사라져 간 모든 것들이 아름다왔으니까. 그것은 곧 슬픔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도 나를 사랑한다면, 우리를 갈라놓을 것은 죽음 뿐이리.' ♥~♥~♥~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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